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3)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33화(233/235)
#233 도시락 싸들고 나간 날
#233 도시락 싸들고 나간 날
공작의 반란은 반쯤 붙다 만 불처럼 된 모양이다.
궁정에 있는 시종과 시녀들은 다른 귀족과 연락이 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출신 가문은 물론이요, 혼인과 인척 관계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변경백은 그런 관계를 이용해서, 주환이 왕의 명에 따라 참전한다는 소문을 귀족 사회에 퍼뜨린 것 같다.
공작의 설득과, 용사가 부인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귀족들 사이에서 대번 혼란이 일었다.
거기에, 다른 귀족의 끄나풀이 왕의 보좌관 중에 있었던 모양이다.
몰래 주환의 편지를 확인했다.
그것도 물론 변경백이 의도한 대로였겠지만.
그 일로 소문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반란에 동조하던 귀족들은 순식간에 꼬리를 감추고 수그러들었다.
주환은 그런 일의 진행을 변경백에게서 몇 번 서신으로 받고 있었다.
그리고 한창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변경백의 편지가 주환에게 닿았다.
참전해달라는 말은 아니었다.
단순히 하루만 와서 모습을 비춰달라는 요청이었다.
차 한잔하러 오면 어떻습니까,라고 권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마침 딱 좋다.
리지가 출산한 뒤에는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무서워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출산하기에는 아직 기간이 있으니, 하루 이틀 정도 집을 비운다 해도 걱정은 덜하다.
주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변경백의 서신을 서랍에 넣었다.
부드럽게 나무 서랍이 닫히는 걸 보면서, 주환의 얼굴의 미소가 떠올랐다.
리지와 주환이 침실로 사용하는 이 공간에는 본래 침대와 옷을 걸어두는 행거 하나밖에 없었다.
이 책상은 목수와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선물해 준 것이다.
영주에게 작은 책상 하나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처음에 괴물이라며 두려워하던 것과는 큰 차이다.
책상은 고급품이라고 할 수는 없고 소박한 것이지만, 주환과 리지에게는 더없이 빛나 보였다.
마치 영주 부부로서 잘 해나가고 있다는 훈장처럼 느껴졌다.
주환은 가볍게 책상을 한 번 쓰다듬은 뒤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가자, 영주관 저편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큰 소리로 노래하면, 아이들이 따라 부른다.
가까이 가서 살짝 들여다보자, 십여 명의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다섯 살 도로시도, 열네 살 토비도 있다. 그 주위에는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노래가 끝나자, 저마다 앞에 놓인 상자에 노랫말을 적기 시작했다.
납작한 상자에는 모래가 담겨 있었다.
거기에 글자를 쓰고 다시 모래를 가지런히 해 지운 뒤, 또 글자를 쓰는 것이다.
이곳은 본래 가죽 공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아이를 돌보기 위한 공간이었는데, 어머니가 마을 아이들까지 하나둘 불러들여 학교로 만들었다.
때때로 집안 일 때문에 못 나오는 아이도 있어서, 출석은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생 수도 적고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능력도 달라, 어차피 일대일로 개인 학습이 낀다.
가끔 못 나와도 큰 문제는 없었다.
주환은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눈이 반짝반짝한 토비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토비는 본래 머리가 좋았던 모양이다.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다.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와 주환이 가르치는 것으로 괜찮지만, 조만간 더 전문적인 선생을 불러와야 할 것 같다.
“….”
토비의 장래 희망은 하인에서 어느새 보좌관이 되어 있었다.
말로는 하인이라는데, 하고 싶은 일을 들어보면 주환의 일을 돕는 게 희망이었다.
한 마디로 보좌관이다.
하인 주제에, 라는 감각이 아직 빠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스스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보좌관이라는 걸 인정할 것 같다.
반면에 도로시는 공부에 맞지 않았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무래도 서툰 것 같다.
겨우 문자와 숫자를 익히는 것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주환한테 배울 때는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마 당시에는 아빠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일념이 본능을 이겼던 모양이다.
주환을 알아차린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노랫말을 두 번씩 반복해서 쓰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왔다.
“왜? 수업 중간에 찾아오다니, 무슨 일 있니?”
“베른 변경백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잘 됐네. 귀찮은 일은 빨리 치워버려야지.”
“저, 근데 어머니.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오가면서 한 끼 정도 간단하게 해결할 게 있으면 좋겠는데, 리지가 당분간은 좀 바쁜 것 같아서요. 부탁하기가 좀 그래요.”
어머니가 큰 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일은 내가 도시락을 싸주마.”
“예, 감사합니다.”
어머니 눈동자에 기쁜 빛이 뜬다.
그것을 확인하며, 주환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소원이 도시락 싸주는 거였다니.’
며칠 전, 리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은 여자들끼리 모여 술을 한 잔씩 했다고 한다.
술이라고 해봤자, 와인이나 맥주다.
이 세계에서는 물처럼 마시는 것이라 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물론 리지는 마시지 않았다.
그녀 대신 어머니가 더 마신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맘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리지에게 털어놓았던 것 같다.
아들에게 도시락 한 번 싸주지 못해,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고.
아마 그 말속에는 주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곁에서 함께해 주지 못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이 세계에 와서도, 그리고 주환을 만난 이후에도, 그 사실이 계속 마음에 저주처럼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한참 지난 일인데.’
게다가 그런 쪽으로는 한 번도 신경 써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 사소한 일로 마음에 못이 박히는 게 아마 어머니라는 존재겠지.
주환은 아버지에게 가족을 맡기고,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 영주관을 출발했다.
연화의 등에 올린 짐 안에는 어머니가 만든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 한 개 먹어봤지만, 양념된 고기와 말린 야채 등 건더기가 밥보다 많다.
하나라도 더 많은 걸 넣으려다 밸런스가 조금 무너져 버린 느낌이었다.
왠지 거기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고 하면 과장이려나.
주환은 작게 웃으며, 바람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 막았다.
연화가 달리기 시작하자, 풍경이 휙휙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미처 형태를 확인할 겨를도 없다.
필름을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주위 풍경이 지나가면서, 주환은 순식간에 여러 도시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공작령 근처에 있는 너른 벌판은 병사와 천막으로 가득했다.
천막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이 나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아침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연화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어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출발할 때 캄캄하던 하늘은 이제 막 아침의 서늘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유니콘이라 해도 너무 빨라. 괴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게 우습다 생각했는데, 너 진짜 괴물 같구나.
“히이잉.”
칭찬을 기대했는데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불만스러운 듯 연화가 작게 울면서 땅을 박박 긁었다.
아니, 미안하기는 한데, 정말 괴물 같아.
*
“와아아아아!”
주환의 모습을 확인한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른다.
한 곳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그 때문에 주환을 본 병사들이 다시 저쪽에서 함성을 질렀다.
진 한가운데서 몇 명이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변경백이 천막에서 나왔다.
곧바로 말을 타고 이쪽으로 온다.
“대체 언제 출발했기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도착했나?”
불과 몇 시간 전에 출발했다고 하자, 변경백이 웃는다.
“정말, 자네는 나를 놀라게 하는군.”
변경백이 말머리를 돌렸다.
나란히 서서 천천히 움직이며, 변경백이 입을 열었다.
“공작에게 가담하려던 자들은 대부분 포기했네. 공작의 주변에서도 내심은 그만두고 싶은 모양이야. 하지만 이제 와서 항복하면 모양새가 이상해지지. 우리가 처음 제시한 것보다 영토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 공작 자신도 목숨을 잃을 확률이 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네.”
변경백이 악당 같은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거기에 자네라는 한 방을 먹이면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항복이지. 일족이 모두 죽는 것과 한두 명의 목숨으로 일을 끝낼 수 있다면 선택은 빤한 게 아닌가.”
아아, 그래서 차 한잔 마시라는 식의 편지였던 건가.
정말로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괜찮았던 모양이다.
주환은 열광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저 왔다 가는 것도 재미없죠.”
왕의 문장이 그려진 천막이 열린다.
입구 천을 들추고 나온 다니엘이, 주환을 보고 기쁜 듯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폐하는 토비와 동갑이구나.’
정말 아직 어리다.
주환은 연화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연화야, 네 등에 다니엘을 한 번 올려주지 않겠니?’
[….]어쩌면 조금 싫은 건지도 모른다.
연화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잠시 뒤에는 어리광 부리듯 가볍게 목을 흔들었다.
부정이 아니라, 칭찬해달라는 몸짓이다.
‘고맙다.’
주환이 가볍게 톡톡 쳐주자, 연화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니엘 앞에 서자, 주환은 훌쩍 내렸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자, 다니엘이 그의 어깨를 안았다.
주환이 훨씬 크기 때문에 모양새가 조금 이상해졌다. 어깨를 안았다기보다는 꼬마가 안긴 것처럼 보인다.
“오랜만입니다. 윈우드 남작.”
다니엘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주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폐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보니, 다니엘의 눈가가 조금 꺼져 있다.
왕의 격무에 공작의 반란까지 겹쳐 피곤한 탓일까.
옷으로 감추고 있는 것 같지만 몸도 약간 마른 것 같다.
‘지구였다면 아직 한참 친구들과 놀고 있을 나이인데.’
어린 왕의 너무 어른스러운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주환은 몇 가지 의례적인 인사말을 올린 뒤, 그에게 연화에 타는 것을 권했다.
깜짝 놀란 다니엘과 변경백을 보고, 주환은 작게 웃었다.
“폐하께서 유니콘의 등에 오른 걸 보면 누구의 눈에도 상황이 확실해지겠지요.”
용사가 언제나 왕의 뒤에 서 있을 거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약간 주저했지만, 변경백도 주환의 말에 동의하자 결국에는 연화의 등에 올랐다.
어린 왕이 유니콘을 타고 공작의 성에서 훤히 보이는 곳으로 한 바퀴 돈다.
아군의 진지에서 함성이 끊이지 않고 울리는 동안, 굳건히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멀었는데, 우스울 정도로 간단하게 항복이었다.
‘아니, 그 정도로 쉽게 항복할 생각이라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 말라구.’
주환은 작게 중얼거리면서 환호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았다.
변경백이 가까이 다가왔다.
“공작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글쎄, 반란을 주도했으니 공작 자신은 살아남기 어려울 거야. 사형을 면한다 해도 평생 유폐될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그의 가문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걸세. 물론 영토는 형편없이 깎이겠지만 말이야.”
“그렇습니까.”
주환은 멀리 보이는 공작의 일행 중에 어린아이가 껴 있는 것을 보고 음울한 숨을 토했다.
공작이 왕으로 내세우려 했던 손자일 거다.
변경백은 말을 피했지만, 손자 역시 사형당할 확률이 컸다.
공작이 일을 주도했더라도, 여러 사람들을 끌어모을 때 사용된 이름은 손자의 것이다.
반란군의 총대장은 명목상으로 볼 때 공작의 손자였다.
만에 하나 죽지 않더라도 앞날이 평탄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작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어째서 자신의 욕심에 저토록 어린아이를 이용했단 말인가. 차라리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섰다면 아이는 이 사태와 무관했을 텐데.
주환은 억지로 눈을 돌려 변경백을 보았다.
“그렇지. 언제 한 번 저희 영지에 부인과 함께 와주세요. 리지가, 집사람이 가죽 장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인께 자신이 만든 가죽을 선물하고 싶어 해요.”
“그래, 가죽 장인의….”
변경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었다.
“드문 일이군. 축하하네.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지.”
“오시는 김에 저희 도시의 길드에도 한 번 들러주시면 감사합니다. 저희 지점의 마스터가 상당히 유능하고 열정적이죠.”
“….”
변경백의 눈이 약간 커졌다.
이렇게 변경백이 놀란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주환은 작게 웃었다.
“그래… 자네 도시의 길드에….”
변경백의 눈동자가 옅은 습기에 감싸였다.
“집사람이 기뻐할 걸세. 고맙네.”
“별말씀을요.”
주환은 그렇게 말한 뒤 덧붙였다.
“리지가 변경백 부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건 사실입니다. 집사람에게 부인은 자신이 꼭 따라 하고 싶은 우상 같은 거라서요.”
“…그래.”
변경백의 주름진 입가에 깊은 미소가 그려졌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표현은 하지 않았어도, 역시 변경백 역시 아들을 만나고 싶었던 걸 거다.
가만히 허공을 노려보며 눈물을 말리는 변경백의 얼굴에는 한동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날 점심이 지날 무렵, 주환은 다시 남작령으로 출발했다.
영주관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높을 무렵이었다.
“아니, 도시락 싸 달라며 나가더니, 왜 벌써 왔어?”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그러게 말이에요. 설마 하니 이렇게 일이 금방 끝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주환은 웃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
주환이 공작의 손자를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변경백이 공작의 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재판장에서, 공작의 손자가 나이가 너무 어려 반란을 주도한 것은 공작이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그 결과 공작은 사형되지만, 손자는 생명을 건졌다.
다만, 앞으로 그의 양육은 공작가가 맡지 못한다.
공연히 또다시 왕위 욕심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금으로서는 변경백이 맡을 확률이 높다고 적혀 있었다.
혈연관계가 있으면서 반란의 여지도 없으니, 그 이상의 적임자는 없을 것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
그리고 막바지 추위가 한참 기승을 벌일 무렵, 리지에게 출산의 기미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