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4화(24/235)
#024 첫사냥은 특별하다
올무에 토끼가 걸려 있었다. 아직 힘이 빠지지 않은 걸 보면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이나 아침 정도려나. 잘 됐다. 이 정도로 힘이 남아있는 게 첫 사냥감으로는 딱 알맞다.
거스는 힐끔 주환을 보았다. 주환은 올무에 걸린 토끼를 보고 왠지 당황하고 있었다. 반응을 보면 토끼를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역시 이 남자는 이상해. 어디라고 딱히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딱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제대로 아물리지 않는 상자의 뚜껑 같다.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지.’
귀족이든 평민이든, 성직자였건 죄인이었건, 아무 관계없다. 짐승을 사냥하는 일은 인간 세상의 삶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그저 단순히 인간이 짐승을 죽인다는 사실 만이 남는다.
잠시 당황하다 어느새 침착해진 주환을 보고, 거스는 히죽 웃었다. 그의 생각은 얼추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짐승을 죽여봤다고 해서 사냥할 때 주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자신을 공격하는 짐승을 죽이는 것과 무저항인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모든 게 그렇듯이 사냥도 하다 보면 익숙하고 무뎌진다. 하지만 처음 느꼈던 충격과 감정은 평생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사냥이 중요하다.
거스의 처음은 열두 살 때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에게 자신의 활로 짐승 사냥하는 걸 허락했던 그날, 모든 것이 익숙한 상태에서 단 한 가지 자신이 사냥감을 향해 활을 쏜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인간 마을의 집보다 익숙한 산과 새소리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포근하게 했던 것이 기억난다. 손끝이 떨리는 것은 흥분 때문, 결코 두렵거나 혐오감 때문이 아니었다.
많은 사냥꾼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사냥꾼의 길을 걷게 되지만, 거스는 달랐다. 아버지의 곁에서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고 붉은 피를 손에 묻히는 것에 담담했다. 오히려 열성이었다.
첫 사냥도 마찬가지였다. 노련한 사냥꾼 아버지에게 인정받았다는 게 기쁘고, 자신의 손으로 화살을 날리는 게 자랑스러웠다.
거스의 첫 번째 사냥감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노루 새끼였다. 어미가 근처에 있었지만 새끼가 죽을 것을 알자 곧바로 도망쳤다.
다른 때와 달리 아버지는 더 좋은 사냥감인 어미 노루를 잡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의 모든 것을 거스에게 맡겼다. 그 사냥은 온전히 거스의 것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곁에서 봐주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자신은 지켜지고 있었다. 첫 사냥은 안전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고, 자신이 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축복받은 사냥꾼, 이 산에 녹아들어 있다고.
그래서 고블린에게 당한 것이다. 항상 자신만은 안전할 거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자신만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발밑에 검은 구멍이 입 벌리고 있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 감각은 늙은 지금에까지 빠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지금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거스는 잠시 숨을 느리게 쉬어 숲에 공기를 보낸 뒤, 주환에게 짧게 말을 건넸다.
“내가 준 화살을 꺼내게.”
주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한 인간일 거다. 산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상당수의 단어를 기억하고 말을 조합해서 사용했다. 예전처럼 굳이 손짓 발짓하지 않아도 말이 얼추 통한다.
지금도 거스가 한 말을 금세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화살을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아까 주었던 쇠촉 화살을 그에게 내밀었다.
거스는 고개를 저은 뒤 주환의 활을 가리켰다. 거기에 화살을 메기라고 손으로 표현하면서 말했다.
“자네가 사냥하는 거야. 이게 첫 번째 사냥이다. 사냥이라는 건 참혹한 거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지. 오늘의 시간을 자네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못할 걸세.”
거스는 주환을 조금 앞으로 밀었다. 올무 쪽으로 걸어간다. 화살을 쏘면 반드시 맞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도착해서 걸음을 멈췄다.
주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거스와 토끼를 번갈아 보았다. 왜 굳이 올무에 걸린 토끼에게 화살을 쏘라는지 이해 가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똑똑한 사람이다. 자신이 그에게 뭔가 할 때는 가르치려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면서도, 주환은 활을 들었다. 그리고 묻는 것처럼 거스를 보았다.
“쏘게. 먼저 발을 쏘는 거야.”
일격에 죽여서는 안 된다. 먼저 발을 쏘고 심장과 거리가 먼 곳을 쏘아 살아 움직이는 사냥감을 맞추는 훈련을 하는 거다. 처음에는 얌전하게 있는 동물을, 두 번째에는 고통에 울부짖는 표적을, 그 뒤에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어 가면 된다. 주환은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일 테니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아주 좋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활을 당기지 않는 주환에게, 거스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자, 이제 쏴보게.”
산은 공정하다. 산 앞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인간에게도, 짐승에게도 똑같이 너그럽고 동일하게 잔혹한 게 산이라는 존재다.
거스는 주환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이 남자는 분명 위대한 마수 사냥꾼이 될 것이다. 자신이 그걸 눈으로 보고 죽게 될지는 모르지만, 오래된 사냥꾼의 감각이 그렇게 속삭였다. 이 남자는 특별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능숙하고 노련한 사냥꾼도 실수하게 마련이다. 산이 익숙하게 느껴져 자신이 사랑받는다, 특별하다고 방심하는 순간 위험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사냥이 잔혹한 작업이라는 것, 산에서는 누구나 똑같다는 걸 마음 깊이 이해해야 한다. 오늘 사냥당하는 짐승의 처지는 내일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자신의 말을 주환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스는 입을 열었다.
“산은 공정하지. 인간의 편만 들어주지 않아. 잔혹한 행동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짐승이 우위에 서는 날도 오게 될 걸세.”
어떻게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주환의 얼굴을 보며 거스는 히죽 웃었다.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오늘을 잊지 말게나.”
사냥꾼은 새끼에게 젖 먹이는 어미를 노리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산도, 사냥 당하는 짐승도 그걸 알고 있다.
인간만이 그 사실이 의미하는 걸 모른다.
둥근 고리를 따라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앞선 놈이 자신의 꽁무니를 밟는 날이 오는 법이다.
***
거스가 활과 화살을 들게 했을 때, 주환은 오늘 노루나 새를 잡으러 갈 거라고 추측했다. 활과 화살은 아마 그럴 때 쓰는 걸 테니까. 적어도 올무에 걸린 짐승에게 사용하는 건 아니다. 그 정도는 주환도 알고 있었다.
만일 올무에 토끼가 걸려 있으면, 칼로 죽인 뒤 모피와 고기를 얻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무에 두 마리가 걸리면 아마 하나씩, 한 마리밖에 없으면 모피나 고기를 따로 가를 거라고.
모피와 고기를 갈라야 한다면, 둘 중 값나가는 건 거스가, 남는 건 자신이 갖게 될 것이다. 주환으로서는 모피도, 고기도 괜찮았다.
거스가 모두 가져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환에게 사냥을 가르치면서도, 거스는 절대로 스스로 활을 쏴 짐승을 죽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하지 않는 걸 보면, 거스에게 사냥은 금지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거스는 이 산에서 몰래 사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 번도 사냥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가끔 옷이나 가방에 묻어있는 피의 흔적과 수가 바뀌는 화살통의 화살들, 유난히 잘 알고 있는 토끼똥의 위치,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많다.
겉으로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거스는 그 사실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마 마을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일 거다. 어쩌면 거스의 사냥을 묵인하는 대가로 마을 사람들도 고기를 약간씩 얻는지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 사냥하고 있는 거스이니, 두 사람이 함께 다닐 때 토끼 한 마리에 욕심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정도는, 같이 다니는 동안 알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람됨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스의 말은 뜻밖이었다.
거스가 쏘라고 한 것은 토끼의 발이다. 그런 곳을 쏘아봤자 죽지 않는다.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어째서 그런 걸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싫은 기분이 목구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아무래도 좋지 않다.
“##시작#. 토끼###발###머리##. #계속###쏴###.”
거스가 다시 한 번 올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몇 번 반복되는 거스의 동작과 말속에서, 이게 아마 살아있는 짐승을 쏘는 훈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가 불길한 분위기를 느끼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흉포하게 생긴 얼굴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위협하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차게 움직일수록 올무는 더욱 조이게 된다. 고통스러운지 아니면 두려워서 그러는 건지, 토끼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환은 가볍게 숨을 쉬고 화살을 겨누었다.
토끼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보았던 마차 안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참한 사람들, 말라비틀어진 몸, 죽어도 치워지지 않는 시체,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 있는 좁은 공간.
모두가 그 안에서 아귀다툼하며 죽은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이었다. 주환 자신도 그렇게 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산에 대해서, 사냥에 대해서, 주환은 모른다. 이 세계의 삶도 잘 모른다. 지금 아는 것은 거스가 자신에게 사냥꾼의 삶을 훈련시키려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가볍게 숨을 내쉰 뒤, 주환은 화살을 토끼에 조준했다. 가까운 거리라 화살이 빗나갈 염려는 적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듯 토끼가 날뛰었다.
그 토끼의 얼굴을 배경처럼 보면서, 주환은 조용히 활을 겨눈 채 발이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가만있는 표적과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완전히 다르다. 단순히 조준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필사적인 몸짓이 마음을 방해했다. 살아있는 짐승의 공포 질린 눈동자는 심장을 강하게 쳤다.
토끼가 몸부림치며 몸을 뒤척였다.
순간 좋은 각도가 나왔다.
생각하기 전에 화살이 손을 떠났다.
팍,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발을 통과하며 바닥에 박혔다.
뀌에엑, 꿰엑!
토끼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퍼덕였다.
거스가 다시 조용히 말했다.
“###.”
주환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거스가 자신의 팔을 툭툭 쳤다. 토끼의 앞다리를 쏘라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거스의 얼굴을 보았다.
거스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조용히 주환의 눈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 부딪쳤다.
먼저 눈을 피한 건 주환이었다. 거스의 눈동자에서 본 것은 왜인지 몰라도 그가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주환은 리지와 도로시의 얼굴을 떠올리고 다시 활을 들었다. 공포에 질린 토끼가 퍼덕퍼덕 움직이며 주환을 보고 있었다.
잘 모르는 세계지만 산이, 사냥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늑대보다 더한 놈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곰이라도 나타나면, 주환의 거구로서도 이기지 못할 거다. 마법이 있는 세상, 늑대나 곰을 넘어서는 짐승이 살고 있을지 그 누가 알까.
거스가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겠지. 짐승이 불쌍하다고 측은해하기 전에 먼저 리지와 도로시를 생각해야 해. 두 사람을 지키고 부양하기 위해서는 악귀도, 살인귀도 될 수 있다.
‘짐승 따위.’
괜찮다. 괜찮아, 짐승 따위, 겨우 짐승이다. 소리를 듣지 마. 흘려 들어. 저건 고작해야 짐승일 뿐이다.
주환은 토끼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화살을 날렸다. 가까운 거리지만 토끼가 움직이는 바람에 빗나갔다. 화살은 토끼의 머리와 귀 사이를 뚫었다.
거스가 토끼에게 다가갔다. 꽤액 꽤액 비명을 지르며 피하는 토끼의 몸통을 발로 누르고, 화살을 빼낸다.
거스가 매끈한 쇠촉 화살을 사용하게 한 이유를 이제 알았다. 지금처럼 짐승에게서 화살을 쉽게 빼내기 위해서였다.
다시 돌아온 거스는 새로운 화살을 통에서 꺼내 주환에게 건넸다. 거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앞다리###.”
“….”
조용한 가운데 토끼의 비명만 사방으로 퍼져갔다.
주환은 다시 화살을 메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는다.
화살은 동작이 약간 둔해진 토끼의 앞다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한번 더, 거스의 지시에 따라 다시 토끼의 남은 다리를 쏘았다.
급소를 피했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꽤액 꽥, 토끼의 울믐소리만 조용한 숲을 울렸다.
“….”
거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편하게 해줘도 되나.
비병을 지르던 토끼의 소리는 어느새 울음소리가 되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토끼가 길게 운다.
주환은 다시 활을 당겼다.
마지막 화살은 토끼의 머리를 꿰뚫었다. 잠시 몸을 떨던 토끼는 이내 잠잠해졌다.
“….”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로시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살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일은 필요하다. 앞으로도 자신은 많은 짐승을 죽여갈 것이다. 주환은 작게 숨을 토했다. 삼키는 침에 씁쓸함이 섞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