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6)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6화(26/235)
#026 토끼와 도로시
지구에 살고 있을 때는 뭔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가족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조금씩 희미해져, 기계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다였다.
하지만 이렇게 활과 화살을 만지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직장을 다닐 때와는 왠지 달랐다.
어쩌면 소원하던 가족이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걸지도.
언젠가는 나도 이런 활과 화살을 만들 수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심장 저 밑바닥에서 뭔가 작은 것이 올라왔다.
활과 화살을 구경하고 있는데, 문득 쇠촉이 담겨 있는 통 근처에 나무패 몇 개가 있는 것이 보였다.
“!”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것과는 다르다. 숫자의 단위가 더 크고, 문자도 조금 더 많이 적혀 있었다. 아마 주문표 같은 걸 거다. 품목과 수량, 금액이 적혀 있는.
‘이런 게 여기 있다면, 어쩌면.’
주환은 다급히 그 나무패를 집어 거스에게 다가갔다.
“이거!”
주환은 흥분한 상태로 나무패의 글자를 짚으며 말했다.
“거스, 알아? 이거 알아? 나, 배워, 원해. 거스, 가르쳐. 이거, 이거.”
“응?”
거스의 눈이 둥그레졌다. 나무패를 보고 약간 이상하다는 듯이 다시 주환을 본다. 문자를 배우고 싶다는 말은 금방 알아들은 것 같다. 거스가 물었다.
“### 배워 원해?”
“원해. 많이, 많이, 원해.”
주환의 반응이 드문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민 중에는 문자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모른다. 거스의 반응을 보면 아마 그럴 것이다.
리지는 숫자조차 쓸 줄 몰랐다. 셈하는 것 자체가 잘 안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숫자나 문자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스는 허연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좋아.”
거스가 잠깐 기다리라는 듯 손짓을 하더니, 구석으로 향했다. 잡다한 것들이 쌓여 있는 상자를 뒤적거린다.
어디쯤 있더라, 아마도 그런 종류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 상자, 저 상자의 물건을 들추던 거스가 오, 하고 소리를 내며 뭔가를 집어 올렸다.
달그락, 달그락, 나뭇조각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 여기, 가져가. 이걸로 #####.”
“….”
거스가 내민 건 작은 나뭇조각에 구멍을 내 한데 묶어 놓은 꾸러미였다. 오래된 물건인지 귀퉁이가 닳아 있다. 손때도 묻어, 나무패는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주환은 긴 끈에 묶여 있는 나무패를 뚫어지게 보았다.
나뭇조각 한 개에 글자 한 개, 알파벳과 많이 닮은 문자가 적혀 있었다. 어떤 글자에는 독일어처럼 점이 찍혀 있고, 어떤 글자는 조금 이상하게 생겼다.
주환은 나뭇조각에 적힌 문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거, 가르쳐, 부탁.”
“….”
거스가 이상한 놈이라는 듯 히죽 웃었다. 하지만 주환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거스는 나무패를 가만히 쳐다보며 문자를 읽었다.
주환은 근처에 놓여 있던 숯을 가져와, 거스가 불러주는 대로 나무패의 뒷면에 발음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모든 걸 기억할 수는 없다. 그렇게 머리가 좋지는 않아. 한글로 적어놓은 뒤 되풀이해서 읽고 익히는 게 최선일 것이다.
주환이 한글을 써넣는 걸 보고 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만히 한글을 들여다본다.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거스는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단순히 외국의 문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나라의 문자는 모두 29개였다.
하지만 나무패는 스무 개 정도가 더 있었다. 거기에는 아마 가장 기초적인 단어가 적혀 있는 것 같다.
문자를 조합하거나 단어의 뜻을 아는 건 뒷전이다. 발음만 알면 리지에게라도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주환은 거스에게 다시 부탁해, 그가 불러주는 발음을 나무패 뒷면에 그대로 적어 넣었다.
발음을 적는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한글로 적어넣기만 하는 거니, 시간 걸릴 일이 없다. 거스에게 시간이 있으면 단어의 뜻도 배우고 싶었지만, 그는 이제 끝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거스는 작업대가 있는 쪽으로 가더니, 손짓하여 주환을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자, 거스가 한쪽에 세워두었던 활을 꺼내들었다.
다른 것보다 크고 굵다. 때가 타거나 흠집 난 구석도 없어, 이제 막 만든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활이었다.
“이거 너의 활##. ### 이런 활##맞다##몸##.”
거스가 활을 내밀며 말했다. 중간중간 알아듣지 못할 말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알 것 같다. 아마 주환의 거구에는 이런 활이 맞으니 앞으로는 이걸 쓰라는 뜻일 거다.
주환이 이전에 받은 활은 지금 여기에 있는 활에 비하면 매우 큰 것이다. 다른 활은 거스의 키에 맞춰져 있는지, 대부분 주환이 사용하던 것보다 짧았다. 단지 몇 개만 다른 활보다 크다.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활을 만들어주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몇몇 산지기에게는 거스가 직접 그들의 몸에 맞는 걸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거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크기의 활이 몇 개 존재하는 거겠지.
주환에게 처음 주었던 활도 아마 누군가의 몸에 맞춰서 만든 걸 거다.
주환은 물끄러미 활을 바라보았다. 이런 걸 받아도 될까. 문자가 적혀 있는 나무패도, 아마 그리 싸거나 흔한 물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런 활까지.
거스에게는 이미 받은 것이 많다. 아무리 마을에서 결정한 일이고, 거스에게도 뭔가 이득이 있을지 모른다 해도, 자신이 그에게 받은 게 매우 크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주환이 망설이는 걸 알았는지, 거스가 반강제로 주환의 손에 활을 쥐여주었다.
“이 활은 너 활이다.”
장식이나 색은 칠해져 있지 않았지만, 활의 단면은 매끄러웠다. 먼저 받은 활보다 정성껏 다듬은 것 같다.
활의 가운데 부분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옴폭하게 들어간 형태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가죽이 감겨 있었다.
활의 양쪽 끝에도 뭔가로 처리한 듯한 가죽이 동그랗게 감겨져 있다. 만져보면 단단했다. 활줄은 그 부분에 매듭을 지어 걸어놓았다. 활을 당기면 그 볼록한 부분에 줄이 걸린다.
먼저 활보다 확실히 공이 더 들어간 물건이다.
주환은 활을 세워 들고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거스, 고마워.”
“너는 좋은 사냥꾼##된##.”
거스가 빙그레 웃었다. 좋은 사냥꾼이 될 거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거스는 주환에게 화살이 담긴 가죽 가방을 세 개 주었다. 미리 준비한 모양이다.
하나에는 대나무로만 된 화살이, 다른 하나에는 쇠촉이 달린 화살이 들어 있었다. 세 번째 화살은 촉이 돌로 된 것이었다.
“####한 사람###. ###혼자###사냥####.”
못 알아듣는 단어가 많으면 거스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해준다. 주환은 최대한 집중해서 거스의 말을 추측하고 해석했다. 혹시라도 잘못 알아듣지 않도록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다.
거스는 며칠 동안 주환의 집에 오지 않을 모양이다. 그동안은 주환 혼자 사냥을 다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방금 알아들은 말과 단어를 조합해서 다시 한 번 거스의 말을 되풀이했다.
잘했다는 듯 거스가 주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시 한 번 활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한 뒤, 주환은 창고를 나왔다.
거스는 뭔가 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그대로 창고에 남았다.
달그락달그락. 손에 쥔 나무패 꾸러미가 부딪쳐 명쾌한 소리를 낸다. 하루라도 빨리 문자를 익혀 리지와 도로시에게도 가르쳐주고 싶다. 문자를 알고 있으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난다. 도로시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다.
허리춤에서 토끼가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 출렁출렁 주머니가 흔들린다. 토끼가 새끼를 낳고, 다시 그 새끼가 새끼를 낳는 상상에,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
이상한 남자다. 문자 따위, 알아서 어디에 쓰려고 배우려는 걸까. 게다가 그렇게 기쁜 표정으로.
거스는 주환의 얼굴을 떠올리고, 자기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문자패, 버리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주환이 아니었다면 계속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
문자 나무패는 자신이 무훈을 세워 귀족에게 고용되었을 때를 위해, 젊은 날 구입했던 것이다. 귀족 밑에서 일하려면 글자는 알고 있는 게 좋다는 충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가 십 대 중반 즈음이었나.
문자패는 상가의 아이를 가르칠 때 사용했다는 물건이었다. 오래 사용해서 버리려고 내놓은 물건을 구입했었다.
그 나무패를 구입한 뒤, 거스는 자신을 가르칠 선생을 구했다.
큰 도시에 가면 문자를 읽어주거나 대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거스의 선생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무패도 비쌌지만 선생에게 글자를 배우는 건 돈이 더 들었다.
배우는 데에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문자를 익히는 것도, 그걸 그대로 쓰는 것도, 단어를 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외운 뒤에 뒤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그렇게 어렵게 배운 건데, 지금은 쇠촉을 주문할 때 받는 나무패를 읽을 때만 사용한다.
하지만 글자를 읽지 못해도, 적은 돈을 받고 주문패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
글자를 알고 있는 이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배우는 데 들어간 시간과 돈만 버렸다.
거스는 자신의 희망이 담겨있던 나무패를 떠올리고 세게 머리를 저었다. 생각하지 말자.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산을 돌아다니며 고블린의 흔적을 찾아봐야 한다. 어딘가에 부락을 만들어 살고 있을 텐데, 아직도 놈들의 거주지를 찾지 못했다.
‘좀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봐야겠어.’
봄이 되면 대부분의 동물이 번식기에 들어가는 것처럼, 고블린의 활동도 그 즈음에 활발해진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 동안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던 여자 약탈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도 봄이 오기 직전이었다.
‘너무 늦게 찾으면 안 되는데.’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어 있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아직 부락이 형성되기 전이거나, 형성되었어도 매우 작다면 내년 봄까지 기다려도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부락이 이미 형성되어 대규모가 되어 있다면 올해 봄, 놈들이 여자에 눈이 돌아가 마을을 침략하기 직전에 발견해 처리하는 게 가장 좋다.
모험가들을 불러오고, 거기에 자신과 주환이 참여하면 된다.
주환이 사냥을 배우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아직 서툴기는 하지만 모험가들과 협력한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낼 거다.
주환의 활 쏘는 솜씨는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이번에 만들어준 활을 사용하면 위력이 커진다. 주환의 괴력에 견딜 수 있도록 탄성도, 강도도 좋은 나무를 썼다. 그의 괴력이라면 명중률이 떨어지는 걸 충분히 보완해 줄 것이다.
거스는 며칠간 산에서 지낼 짐을 챙겨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익숙한 사냥꾼도 한밤의 숲은 위험하다. 밤이 되기 전에 산에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절뚝 절뚝 걷노라니 유난히 다친 부위가 쑤셨다. 빌어먹을 고블린 놈들. 거스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상처가 쑤실 때마다 증오는 나날이 더해져 간다.
“….”
모두 죽여버린다.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다.
***
사각사각사각. 가위가 옷을 자른다. 아니, 옷 되기 전의 옷을 자르나.
도로시는 침을 꿀꺽 꿀꺽 넘겼다.
리지가 화덕 옆에 앉아, 처음 보는 천을 도로시의 크기만큼 자르고 있었다.
“이거 내 거야?”
“응.”
“정말?”
“그래.”
“언제 끝나?”
“….”
리지가 커다란 가위를 놓고 도로시의 얼굴을 보았다. 일을 방해했다고 화낸 것은 아니야. 웃고 있었다.
“도로시, 벌써 몇 번째 묻는 건지 아니?”
“…몰라?”
“열 번은 확실하게 넘은 것 같은데.”
“…몰라?”
리지는 하하, 웃더니 마지막으로 천을 자르고 가위를 상자에 넣었다. 바늘에 실을 넣은 뒤 옷을 꿰매기 시작한다.
도로시는 그 앞에 바짝 붙어 가만히 리지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게 자신의 옷이 된다. 처음 보는, 예쁜 천이었다.
“이거 내 거야?”
도로시가 묻자, 리지가 킥킥 웃었다.
“도로시, 이건 정말 네 거야.”
“정말?”
“그래.”
기쁘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리지가 오기 한참 전에 마을 아줌마가 가져다준 것이다. 그전에 입고 있던 옷이 너무 작아져서 입을 수 없게 되어 받은 것 같다. 아줌마가 감사해야 해, 감사해, 라고 굉장히 많이 말했었다.
하지만 새 옷은 구멍이 나있었다. 예쁘지도 않았다. 엉덩이가 있는 곳에는 뭔가가 묻어 있었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리지가 올 때까지, 계속 이 옷을 입고 있었다. 아, 지금 생각났다. 리지를 만났을 때는 헐렁하던 옷이 꽉 맞게 되어 있었다.
리지가 빨아준 뒤에는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구멍이 있었다. 한 개였던 구멍은 손가락 이만큼, 음, 리지가 세 개라고 말해줬던 만큼 많아졌다.
옆은 찢어져 있었다. 리지가 꿰매줬지만 다시 찢어졌어. 리지가 이 옷을 볼 때마다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거야? 새 옷이야?”
“응, 그래.”
리지의 대답을 들으면 기뻐진다. 응 그래, 응 그래. 자꾸만 듣고 싶어져. 그래서 자꾸만 묻는데, 화내지 않으려나.
다시 한 번 도로시 건지 물어보려고 할 때 문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지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도로시의 옷을 옆으로 미뤄놓았다. 리지가 허둥지둥 일어난다. 리지는 머리 묶은 끈을 풀은 뒤 다시 묶으며 문으로 다가갔다.
도로시도 벌떡 일어났다. 조금 늦었지만 도로시가 더 빠르다. 도로시는 발바닥으로 바닥을 때리며 리지 옆을 지나 달려갔다.
문이 막 열리고 아빠가 들어왔다. 주환 아니야. 아빠야.
“아빠!”
달려가서 팔을 옆으로 활짝 벌리자, 아빠가 옆구리를 잡고 번쩍 올려줬다. 아빠가 도로시를 한 팔로 안아 옆구리에 붙였다. 도로시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새 옷이야. 도로시 새 옷이야.”
“오오.”
아빠가 웃고 있지만, 아, 그래, 아빠는 말을 잘 못하지. 새 옷이 뭔지 아마 모를 거다. 도로시는 신이 나서 새 옷에 대해 이야기해주려고 하다, 문득 머리를 아래로 내렸다. 뭔가가 발바닥에 닿는다.
어? 어? 어어어? 주머니가 움직여!
이상하다. 주머니가 왜 움직여?
“아빠, 마법이야? 주머니 마법?”
깜짝 놀라 아빠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빠는 손가락에서 불을 낼 수 있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했으니, 어쩌면 주머니가 움직이는 마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빙그레 웃더니 한 손으로 주머니를 풀려고 했다. 아빠는 굉장히 힘도 세고 용감하지만 조금 바보야. 한 손으로는 끈을 풀 수 없다. 리지가 웃으면서 다가와 뽀뽀를 하고, 끈 푸는 걸 도와주었다.
아! 도로시도 뽀뽀!
입술을 쭉 내밀려다 말고, 도로시는 주머니에서 쏙 삐져나온 걸 바라보았다. 어어, 어어, 저건.
“토끼?”
리지의 목소리였다. 리지가 깜짝 놀라 주머니에서 쏙 나온 토끼의 귀를 보았다.
귀가 쫑긋쫑긋, 움찔움찔 움직인다. 이쪽저쪽으로 쫑긋쫑긋.
“우, 움직여.”
도로시의 눈이 동그래졌다.
토끼가 움직여. 어째서? 토끼는 축 늘어져 있는 건데, 어째서 움직여? 토끼가 움직이는 거였어?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토끼는 항상 축 늘어져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침이 주르륵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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