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9화(29/235)
#029 도로시의 엄청난 임무
아빠가 집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었다. 아직 조금 밖에 없지만, 이제 금방 울타리가 커질 거야. 우리도 토끼처럼 집이 생겨!
“….”
어, 이상하다. 집은 이미 있는데. 울타리를 왜 만들지?
도로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이상해. 아빠가 왜 울타리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아빠 오면 물어봐야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도로시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다. 토끼한테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다시 밥을 주고, 놀아 주고, 그다음에 똥을 치우고, 아, 물도 줘야 한다. 아무튼 토끼한테 그런 걸 줘야 해.
아빠가 더듬거리며 도로시한테 말했다. 토끼가 다시 토끼를 낳고, 그 토끼가 또 토끼를 낳고, 그 토끼가 또 토끼를 낳는다. 그리고 울타리가 토끼로 가득가득 해지는 거야.
도로시가 열심히 밥을 주면 토끼가 그렇게 늘어난다. 그러면 우리는 부우자가 될 거야. 엄청난 엄청난 부우우우자가 되어서 고기를 엄청나게 가지게 될 거야. 토끼 고기 부자야.
도로시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리지가 그랬다. 토끼 고기는 엄청나게 맛있다고. 리지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늑대보다 맛있을지 모른다.
도로시는 가만히 아기 토끼가 자는 걸 보았다. 아기 토끼는 아직도 잠만 잔다. 가끔 눈을 뜨지만 또 자. 아직 움직이지 못한다.
아빠가 그랬는데 아기 토끼가 움직이게 될 때까지는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너무 많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한대. 불쌍하다. 심심할 텐데. 하루 종일 잠만 자다니, 엄청나게 심심하잖아.
전에는 뼈가 보였는데, 이제 뼈가 안 보인다. 리지 엄마가 그러는데 살이 새로 나온 거래. 마법인가. 살이 막 나오다니, 정말 놀랍잖아. 마법 토끼인 것 같다.
“토끼야, 빨랑 일어나. 심심하지? 도로시가 놀아줄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지만, 아기 토끼는 깨어나지 않았다. 심심하다. 깨워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바쁘게 나갈 준비를 하던 리지가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걸었다.
“도로시, 그건 먹는 게 아니야.”
응? 엄마는 바보야? 아기 토끼는 먹는 게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하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리지가 가까이 와서 입을 닦아줬다. 침이 턱까지 흘러 있었어.
리지 얼굴을 보자,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 토끼 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토끼 밥을 줘야 해. 오늘은 행생? 행상? 어쨌든 거기에 가야 한다. 촌장 아줌마가 어제 와서 그런 게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도 마을에 가는 거야. 행생에 가야 한다.
“엄마, 도로시는 토끼 밥 주고 올게!”
도로시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에 없는 동안 토끼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밥 줘야지.
도로시는 아빠가 대나무를 자르면서 생긴 이파리를 모아 토끼집으로 갔다.
대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토끼가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귀도 코도 자꾸만 움직인다.
“토끼야! 밥 먹어! 도로시는 오늘 바쁘니까 혼자 밥 먹고 착하게 있어야 해. 알았지?”
토끼에게 말해주고 대나무 잎을 예쁘게 한곳으로 모아 주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대나무 잎을 한 곳에 모으자, 토끼 밥이 더 많아졌다. 토끼도 기쁠 거다. 밥이 많으면 좋은 거니까.
“근데 마법인가! 밥이 많아졌어.”
뒤늦게 깜짝 놀랐다. 도로시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것 같아. 아빠가 오면 자랑해야겠다. 아빠, 도로시도 마법 쓸 수 있어요. 늑대 고기한테도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신난다!”
***
작은 마을에는 한두 달에 한 번, 혹은 몇 달 간격으로 행상 마차가 온다. 리지가 있던 마을에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행상이 왔다.
도시와 떨어져 물건 구하기가 쉽지 않은 마을에서, 행상이 오는 날은 매우 중요하다.
행상이 와 있을 때 필요한 물건을 구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는 부족한 대로 지내야 한다.
없어도 생활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만일 소금처럼 꼭 필요한 걸 구입하지 못하는 날엔 그야말로 큰일일 것이다.
“….”
리지는 늑대 모피를 앞에 두고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에 빠졌다.
행상은 물건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도 한다. 돈보다는 물건으로 바꿔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어쨌든 괜찮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행상에게 구입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그녀는 한 번도 팔아본 적이 없지만 모피나 가죽은 특히 행상이 좋아하는 물건이다. 품질이 좋든 나쁘든 항상 인기가 있었다.
리지는 늑대 가죽을 손으로 가만히 쓸었다.
처음에는 다소 실수했지만, 거스에게 가죽 처리하는 법을 배운 뒤에 다시 제대로 손질했다. 잘 모르기는 해도 꽤 괜찮은 품질이 아닐까. 이런 마을에 오는 행상에게 판매하는 건 조금 아깝다.
게다가 이건 주환이 처음으로 사냥해온 것이다. 가급적이면 팔지 않고 남겨두고 싶었다. 주환은 팔라고 말했지만 역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사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주환의 옷도 조금 더 사고 싶고, 신발도 필요하다. 산에서 다닐 때는 특히 신발이 중요할 것이다.
냄비도, 물통도 사고 싶었다.
거기다 식재료와 주환이 쓸 칼이나 도끼도 한 개 더 있었으면 좋겠고.
도로시의 물건도 미리 사놓아야 한다. 아이의 몸이란 금세 커버리는 것이니까.
왜인지는 몰라도 촌장이 원단과 물건을 더 주었지만, 그 사람이나 마을에서 받는 건 왠지 뒤가 무섭다. 주환을 묶어놓으려는 의도가 보이고, 싫다.
남편은 생활을 위해서라면 괜찮다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사람은 이런 작은 마을에 묶여 살 사람이 아니다. 리지 자신은 무식한 촌마을 여자라 잘 모르지만 아마 그 남자는 더 높이 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아무것도 없는 이런 산에 묶어 놓으려는 거야.’
물론, 그를 묶어두는 가장 큰 사슬은 자신일 테지만. 리지는 우울하게 숨을 쉬고 두 손으로 뺨을 찰싹 때렸다. 어쨌든 마을에서는 가급적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남편에게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아.
리지는 작게 한숨을 쉬고 옆에 놓인 토끼 가죽에 시선을 주었다. 어쨌든 토끼 가죽 한 개로는 모자랄 것이다. 가급적 모피의 품질을 높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사야 할 물건이 너무 많았다.
리지는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가위를 꺼냈다. 원단 조각으로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는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제법 좋은 가격으로 팔린다. 귀족님들의 가발이나 장식 머리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들었다.
리지의 황금빛 머리는 특히나 평이 좋았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행상인에게 머리를 팔라는 권유를 받았다. 주환과 함께 살게 된 이후로는 더욱 머릿결이 좋아졌으니 괜찮은 값에 팔릴 거다.
가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때, 아주 조금이지만 눈물이 스몄다.
종종 주환은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남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좋아했다. 아마 상당히 많이.
“….”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없어진다.
싹둑, 머리가 잘리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다. 괜찮아. 이런 때를 위해 길러온 머리다. 게다가 머리는 또 자라니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왠지 슬퍼졌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토끼가죽을 천주머니에 넣어 나갈 준비를 한다.
그 뒤에는 다시 한번 필요한 물건을 점검했다. 반드시 꼭 사야 하는 물건부터,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것까지 머릿속으로 꼼꼼하게 생각한다.
“아빠!”
밖에서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른 새벽부터 사냥에 나갔던 주환이 돌아온 것 같다. 도로시가 흥분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토끼다! 도로시의 토끼가 또 생겼어!”
굉장히 기쁜 것 같다. 리지가 밖으로 나가자, 주환이 토끼 두 마리를 우리에 넣고 있었다.
도로시는 또다시 대나무 잎을 모으러 돌아다녔다. 두 손에 가득 담다가 언제나 반 이상은 다시 흘리지만, 그래도 열심이다.
“다녀오셨어요.”
리지가 말을 걸자, 돌아보던 주환의 동작이 갑자기 굳었다. 눈이 커진다.
약간 멀리에서 대나무 잎을 줍던 도로시가, 두 손에 모아 들고 있던 이파리를 다 떨어뜨리고 외쳤다.
“엄마! 머리카락이 없어졌어!”
도로시가 당황한 것 같다. 리지한테 달려오더니 주변을 빙빙 돌며 바닥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머리카락을 찾는 것 같다. 리지가 잘라준 적은 없지만, 도로시도 머리를 자른 적이 있을 텐데 어째서 이런 반응일까.
“머리는 내가 자른 거야.”
“…어째서!”
도로시가 화가 난 것 같다. 아이의 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리지의 머리카락이 굉장히 예뻤던 것 같다. 결국에는 찔끔거리며 울기까지 했다. 머리카락이 불쌍하다나.
주환은 대강 짐작을 한 모양이다. 잠시 굳어있던 그가 가까이 다가와 썰렁해진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미안.”
작은 소리로 주환이 말했다.
이상한 사람이다. 왜 이런 게 미안한 걸까. 그녀의 주변에서 이런 일은 평범한 것이다. 항상 일어난다. 여자들의 상당수가 팔기 위해서 머리를 기른다. 그냥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고, 남자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이 참으로 다정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찼다. 슬퍼서가 아니라 행복해서, 기뻐서, 마음이 따뜻해져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잠시 목이 메 말을 못 했다. 남편이 그녀를 끌어안고 짧아진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었다.
아이는 전환이 빠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불쌍하다며 울던 도로시가 불쑥 말했다.
“도로시는 토끼 밥 줄게요.”
아이는 다시 자신이 떨어뜨렸던 잎을 주워 토끼장으로 향했다. 뛰어가는 걸음마다 대나무 잎이 떨어져 흔적을 만들었다. 밖에서 점점이 굴러다니는 잎을 보면 아이가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다 알 것 같다.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 뒤에는 서둘러 마을로 갈 준비를 했다.
리지는 이 마을에 올 때 입었던 낡은 외투를 걸치고, 아이에게는 두 겹으로 누빈 겉옷을 입혔다.
나중을 생각해 넉넉하게 만든 겉옷은 아이 몸보다 훨씬 크다. 도로시는 긴 소매를 몇 번이나 접어 올린 겉옷이 기쁜지, 주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옷을 입은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이 외투의 겉은 새 원단이지만, 안쪽은 낡은 옷을 이어 붙여 누빈 것이다. 접어올린 면으로 해진 원단이 보이자 리지의 마음이 조금 아파졌다.
토끼 가죽으로 안을 대면 따뜻할 테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다. 토끼들이 새끼를 낳아 수가 많아지면, 나중에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주환은 물건을 가지고 돌아올 때를 대비해 나무 지게를 짊어졌다.
도로시는 토끼장에 가서 토끼들에게 잠시 마을에 다녀온다고 보고를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토끼한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데 행상이라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자꾸만 행생이라고 한다. 리지가 발음을 고쳐주자, 옆에 있던 주환도 슬며시 따라 했다. 어쩌면 남편도 행생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을까.
산을 내려가면서, 도로시가 지게에 자꾸만 관심을 가졌다. 주환이 몸을 낮춰 그 위에 올려준다. 도로시는 신이 났다. 떨어질까 무섭지도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남편과 손을 마주 잡고 산길을 걷는데, 아이는 연신 지게 위에서 시끄럽다. 가끔 조용히 하라는 듯 새들이 깍깍거리며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엄마! 엄마! 엄마도 타!”
도로시가 너무 졸라서일까. 주환도 그녀에게 권했다. 아예 걸음을 멈추고 지게를 그녀 앞에 댄다.
무서웠지만 도로시가 너무 시끄러웠다. 그리고 아주 조금, 그녀도 지게에서 보는 광경은 어떨지 관심이 있었다.
못 이기는 척 지게에 엉덩이를 올리자 주환이 몸을 일으켰다. 훌쩍 지게가 올라가면서 시야가 갑자기 높아졌다.
“꺄아아아아!”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도로시가 깔깔 웃는다. 주환의 웃음소리도 약간 들렸다.
결국 리지는 지게에서 내리고 다시 주환의 옆에 서서 걷게 되었다.
기분 좋은 산길이 끝나고 마을에 다가가면서, 리지의 마음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일전에 주환과 마을 남자들이 싸운 일로 무슨 말을 듣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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