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2)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32화(32/235)
#032 산산이 부서진 도로시의 꿈
안심하는 냄새다. 폭폭 따뜻한 물에 잠기는 것처럼, 마음이 튼튼해지는 냄새가 도로시 주변에 가득 차 있었다.
‘아빠.’
이 냄새 속에 있으면 안전하다. 아주아주 힘센 아빠가 지켜줘. 아무도 리지 엄마와 도로시를 건드릴 수 없다. 좋아, 너무 좋다.
출렁출렁 냄새가 움직였다. 위아래로 몸이 꺼떡꺼떡한다. 머리도 흔들흔들했다. 왠지 재미있다.
하지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나올 때만 해도 바람이 춥게 불었지만, 지금은 한 개도 없다. 바람이 모두 없어졌어. 이상하다. 바람은 다 어디로 갔지.
‘아, 그렇지. 지금 도로시는 아빠 옷 속에 있었어.’
도로시는 잠결에 생각하다 반짝 눈을 떴다. 생각났어. 도로시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토끼!”
그렇게 외치자,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버둥버둥 움직여서 머리를 쏙 내밀자 리지 엄마가 웃고 있었다.
조금 멀리에 집이 보인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벌써 집이잖아.
“엄청나게 빨라.”
도로시가 외치자, 아빠도 웃으면서 약간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아빠가 엉덩이 잡고 있던 팔을 치운다. 도로시는 아빠 옷 밑으로 쑥 빠져 나왔다.
미끄러지는 게 재미있어서 또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바쁘다. 토끼 밥 주러 가야 해.
“토끼 밥 주고 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뛰어가다 문득 생각났다. 올게요가 아니었어. 모두 함께 집으로 가는 중이었으니까 엄마 아빠가 도로시한테 와야 하는 거다.
도로시는 뛰면서 얼굴을 뒤로 돌려 외쳤다.
“엄마, 아빠, 빨리 와!”
“도로시, 앞! 앞을 봐. 넘어지겠어.”
엄마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리지 엄마는 걱정쟁이다. 하루 종일 걱정하는 말만 해. 도로시는 넘어지지 않.
철푸덕!
넘어졌다. 아프다. 코를 박았다. 무릎도 아프다. 새 옷에 구멍이 나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
도로시는 벌떡 일어났다. 아프지만 괜찮아. 도로시는 용감하니까.
행상 마차에 갔을 때, 도로시보다 많이 큰 남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를 생각하고, 도로시는 눈에 힘을 주었다. 그 남자애는 입이 심술쟁이였어. 나쁜 아이였다. 도로시는 여자애라서 용감하지 않다고 했어.
게다가 도로시의 아기 토끼에는 뿔이 있다고 가르쳐줬더니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머리에 뿔 있는 토끼는 마수라서 너처럼 어린애가 가까이 가면 먹어버린대.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 아이는 입이 잘 움직였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거야. 도로시가 말할 틈이 없었다.
겨우 말이 멈춰서 도로시가 입을 열면, 곧바로 다시 남자아이는 뭔가 말을 시작했다. 굉장히 똑똑한 말을 해서, 분하지만 도로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진짜, 그 애는 엄청나게 똑똑했다. 아는 게 너무 많아서 도로시보다 훨씬 선생님 같았어. 도로시도 아빠한테 말 가르쳐주는데, 그 애가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엄청난 놈이었다.
뒤늦게 다시 화가 나서, 도로시는 뛰다 말고 발을 쿵쿵 굴렸다.
그 애가 도로시보다 아는 게 많다고 해도, 도로시는 거짓말쟁이 아냐! 아기 토끼를 데리고 다시 가야지. 그 나쁜 애한테 진짜 뿔 있다고 보여줄 거야.
산에 가서 죽어버린 아버지가, 오래전에 도로시와 두 번째 엄마한테 마구 소리쳤던 것처럼 완전히 뭉개줄 테다.
“하지만 우선 토끼 밥!”
도로시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대나무 잎을 두 손 가득 모았다. 더 많이 모으려고 이파리를 주우면 들고 있던 게 자꾸만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어떨 수 없이 들고 있는 것만 가지고 토끼집으로 달려갔다. 밧줄을 튀어나온 나무에 꽁꽁 돌려서 묶은 걸 풀고 문을 젖힌다. 들고 있던 잎이 또 다 떨어졌다. 에잇, 조금 있다 주워야겠다.
도로시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크게 외쳤다.
“토끼야! 밥 먹어!”
안으로 들어가 우뚝 선 도로시의 눈이 커졌다. 손에 들고 있던 대나무 잎이 투두둑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없다. 토끼가 없다. 한 개도 없어.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어, 어디 갔지.”
어딘가에 숨었는지도 몰라. 숨바꼭질하려는 건가. 도로시는 휑한 토끼집 안을 뛰어다니며 토끼를 찾았지만, 여전히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우…. 입술이 삐죽거렸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도 삐죽삐죽 입이 제 맘대로 움직였다. 토끼, 내 토끼, 없어져 버렸어. 아무리 찾아도 없다.
“우, 으에….”
삐죽삐죽 울음이 입술 사이로 샌다. 토끼 얼굴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아다녔다. 토끼가 토끼를 낳고 다시 그 토끼가 토끼를 낳고 다시 또….
“우와아아아앙!”
토끼 왕국이 없어졌다. 엄청나게 커다란 토끼 왕국이 될 거였는데, 사라져버렸어, 내 토끼.
‘고기도 한 개 못 먹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슬퍼졌다.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도로시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
갑자기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토끼장 안에서 엉엉 우는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환은 깜짝 놀라 지게를 진 채 걸음을 서둘렀다. 급박한 울음소리는 아니다. 어딘가 다치거나 절박한 일을 당한 건 아니었다. 당황한 가운데서도 그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저 넘어져 우는 것과는 다르다. 왜 우는 건지 몰라, 가슴이 두근두근, 불길하게 뛰었다.
짐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창고 앞에 지게를 내려놓고 막대기를 댄다. 물건이 많아 조금 위태로운 느낌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받아온 짚단의 부피가 굉장히 컸다. 기계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한 건지, 단단하게 뭉쳐 있지만 그래도 매우 컸다. 높이 올라간 지게 짐의 절반 이상은 짚단이다.
그게 균형을 잃지 않도록 막대기의 위치를 조정해 잘 대고, 주환은 몸을 돌렸다.
리지는 이미 토끼장에 들어가 있었다.
한데 왜인지 잠시 뒤에는 그녀의 울음소리도 작게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왜 둘 다 울고 있는 거야. 마음이 조급해졌다.
주환은 서둘러 토끼장으로 가다, 문득 대나무가 박혀 있는 땅에 시선을 주었다.
‘아!’
대나무를 박아 만든 토끼장의 바깥 부분을 보고, 주환은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깨달았다.
단단하던 땅이 보슬보슬 해져, 대나무와 가까운 부분이 살짝 꺼져 있었다.
나름대로는 깊이 박는다고 했는데, 토끼들이 그 밑을 파고 도망친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리지까지 우는 거지?’
토끼장 안으로 들어가자, 도로시는 맨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고, 리지는 그 옆에 우두커니 선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도로시는 토끼 왕국이 무너진 게 안타까운 것 같다. 통곡하는 사이사이 자신의 계획을 목 놓아 부르짖고 있었다.
리지는 왜 우는지 모르겠어. 어쩌면 그녀도 토끼로 뭔가 엄청난 부자가 될 생각이었던 걸까.
어쨌든 개구리처럼 엎어져 우는 아이를 안아 올리고, 순식간에 눈이 빨갛게 된 리지도 가슴으로 끌어당겨 등을 토닥인다. 두 사람이 그의 가슴에 매달려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만, 슬픔도 그런가 보다. 이 세상 어떤 일이 닥쳐도 이보다 슬프지 않을 것처럼 구슬프게 우는 아내와 아이를 보고,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주환이 웃는 게 화가 났는지 도로시가 울면서 소리쳤다.
“아빠 ##!”
아마 ‘미워’라는 말이었겠지.
도로시가 바닥으로 뛰어내리더니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리지도 주환의 반응에 속이 조금 상했던 모양이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면서 도로시를 따라들어갔다.
아니, 토끼가 도망쳐서 주환 역시 속이 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너무 웃기잖아. 이렇게까지 통곡하고 울다니.
“….”
집으로 들어가 다시 불씨를 되살리고 매운 연기가 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도로시는 아기 토끼에게 너만은 도망가 버리면 안 된다고 울면서 타이르고 있었다.
아기 토끼를 넣은 바구니에는 침대에서 빼내온 지푸라기가 한가득이다. 가족들이 마을에 간 동안 춥지 말라고 도로시가 넣어준 것이다.
아기 토끼는 그 가운데 폭 감싸이듯이 자고 있었지만, 도로시가 끊임없이 말하는 통에 깨버린 것 같다. 어느새 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도로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환이 사 온 물건을 창고에 넣는 동안, 리지가 저녁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식품을 놓는 장소는 리지가 정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창고에서 일하는 동안,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리지는 주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우울하구나. 남자는 화가 나면 주먹으로 대화한다. 별것 아니면 까맣게 잊어버려 자연 소멸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명쾌하게 끝났다. 화가 나면 난 거고, 풀어지면 풀어진 거고, 영원히 못 잊을 거면 평생 원수가 되는 거다. 심플하지.
하지만 여자는 그게 어렵다. 화가 난 것 같은데 명확하게 말로 하지도 않고, 또 그냥 놔두면 풀리겠지 할 수도 없다. 왠지 모르지만 화가 난 걸 표현하고 싶어 해. 곤란하다고 풀리겠지 놔두면 더 화를 낸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사귀던 여자들의 반응을 떠올리고, 주환은 슬그머니 리지의 뒤에 붙어 섰다. 리지와 그런 식으로 다투고 싶지 않다.
“리지.”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가느다란 목덜미에 살짝 입술을 맞추자, 리지가 몸을 움츠렸다. 귀가 새빨갛다.
응? 이상하네. 예전 여자들과는 반응이 좀 다르다. 이전에 사귀던 애인은 이렇게 하면 조금 더 화를 냈다. 그걸 조금씩 풀면서 잠자리까지 가져가면 그제야 간신히 회복되는 거다. 여자의 화를 풀어줄 만한 말주변은 없고, 주환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리지.”
왠지 얼굴이 보고 싶다. 지금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정리할 물건이 쌓여 있는 창고 안에서, 주환은 리지의 앞으로 손을 돌려 안고 몸을 구부렸다.
그의 얼굴이 리지의 옆모습으로 향하자, 리지가 살짝 눈동자를 굴려 그를 보았다. 빨갛게 된 얼굴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
뭐가? 지금 화가 난 건 리지가 아니었나?
주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리지가 마음을 놓은 것처럼 자그마하게 숨을 쉬고 미소 지었다.
귀엽다. 뭐가 어떻게 돼서 자신에게 미안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화를 내고 있지 않으면 됐어.
주환은 리지의 몸을 돌려 가슴 속으로 끌어안았다.
“리지, 미안.”
“…아니, 내가 미안해요.”
왠지 재미있다.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둘이 서로 미안하다고 하다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작게 웃었다.
***
식사 준비를 하고,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 와도, 누구 한 명 그녀에게 고맙다고 한 사람이 없다. 나름대로는 한껏 노력했지만 그녀가 제일 일 못하고 쓸모없는 딸이요, 여자였다.
하지만 주환과 함께 있으면 시시때때로 고맙다, 귀엽다, 잘한다고 말해준다. 밥을 먹으면 맛있다고 해주고, 약간만 몸을 쓰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바느질을 하면 어깨를 주물러 준다. 물을 길어오는 건 여자의 일인데도, 힘들다며 굳이 새벽부터 주환이 처리해버렸다.
그와 함께 살면서, 무엇 하나 행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항상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배가 불렀어. 자기도 모르게,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왔다. 자신이 너무 슬픈데 주환이 웃었다고 화를 냈다.
“….”
토끼 한 마리는 오늘 가져온 짐 만큼의 가치가 있다. 앞으로 그 토끼들이 새끼를 낳으면 얼마나 많은 걸 가지게 될까 생각했을 때는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주환의 옷도 여러 벌, 아이의 새 신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기뻤다. 두 사람에게 고기도 잔뜩 먹여주고 싶었다. 한데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어.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주환에게 화가 났다.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전혀 모르고 웃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화를 내자마자 아차 싶었다. 아버지나 친정 오빠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몇 대 맞았을 것이다.
곧바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말을 못 하고 그냥 그대로 흘러가게 되었다. 빨리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꺼낼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창고에 둘만 있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미안하다고 말을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주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건 그때였다. 화해하자는 뜻을 보이며 뒤에서 끌어안아준다. 새삼스럽게 정말 다정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다만, 그때 등 뒤로 남자의 단단한 부위가 닿은 것이…. 아직 해가 떠 있고, 아이도 잠들지 않았는데 어째서. 주환이 자신의 몸을 돌려 앞으로 껴안았을 때도 이 사람의 몸 일부는 여전히 단단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아마 주환은 그래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왠지 깊이 안심하는 주환의 허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으면서 리지는 키득거리고 웃었다.
오늘은 많이 피곤한 하루였지만,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다.
알고 있나요? 나는 행복해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거야. 정말 사랑하고 있어요, 주환.
***
드디어 고블린의 부락을 찾아냈다.
거스는 험악한 표정으로 멀리 보이는 고블린의 모습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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