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5)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35화(35/235)
#035 감사합니다
거스가 불쑥 찾아왔다.
보통은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오는데, 오늘은 많이 늦었다. 해가 떠 있는 방향을 가늠해 보면 거의 두어 시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오두막과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 거스는 숲과 공터의 경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전에 없던 일이라 조금 놀랐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주환은 집 뒤편으로 이어지는 울타리를 박다 말고 거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울타리를 만드는군.”
“네. 산이라, 늑대는 위험해요.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
머리가 조금 덜 굳었을 때 왔다면 달랐을까. 머릿속에서 한국어로 생각하고 그걸 다시 이쪽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는 건 시간이 조금 걸린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입으로 표현하는 게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다.
듣는 건 단어만 알아들으면 얼추 뜻을 가늠하기 쉬운데, 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모두 생각해야 되어서 그런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언어를 조금 더 잘 공부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거스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주환을 보았다.
“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다른 때라면 주환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거스가 괜찮다며 그냥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진짜는 나중에 만들면 돼, 나중에. 지금은 ##만.”
허리춤에 도끼만 하나 꽂고서, 주환은 거스가 이끄는 대로 허둥지둥 산을 내려갔다.
거스는 그를 자신의 집 뒤편에 있는 창고 옆으로 데려갔다. 창고 옆에는 길쭉한 통나무가 여러 개 있었다.
활을 만들기 위해 잘라온 나무를 말리는 건지, 아니면 막상 해온 나무가 활에 적당하지 않아 버려진 건지는 모르겠다.
거스가 가장자리에 있는 통나무 앞에 서더니 주환에게 잘 보라고 손짓했다.
통나무 표면에, 도끼의 얇은 면을 이용해 길게 선을 긋는다.
그 뒤에는 대나무로 만든 쐐기를 주환에게 보여주었다.
“먼저, 이걸 만들어 놔.”
굵은 대나무를 길쭉한 삼각뿔 형태로 다듬어 만든 것이다. 윗면은 둥근 대나무 형태 그대로이고, 중간에서 아랫부분으로 갈수록 좁고 납작하게 되어 있었다.
거스가 대나무 쐐기를 통나무 단면의 중심에 세로로 놓더니 뭉툭한 망치로 살살 박았다.
쐐기 끄트머리가 나무 중심에 조금 박히자, 거스는 다시 통나무 윗면에 다른 쐐기를 올렸다. 미리 그은 나무의 선에 쐐기를 놓고 다시 망치로 살살 두드린다.
쐐기가 약간 들어가자, 그 옆에 다른 쐐기를 대고 다시 살살 박았다.
한 번에 쪼개는 것이 아니다. 거스는 긴 줄을 따라 여러 개의 쐐기를 박으며 조금씩 통나무를 쪼개 갔다. 가끔은 도끼를 이용해 가른다.
통나무가 완전히 반으로 갈라지자, 이번에는 쐐기를 이용해서 껍질을 벗겼다.
“너무 많이는 안 돼. 조금씩.”
거스가 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자세히 보인다. 껍질은 살살 벗겨야 하는 것 같다. 거스가 쐐기의 각도를 세워 깊이 깎는 시늉을 하며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 뒤에는 활의 모양으로 깎아가기 시작했다. 가운데, 손으로 잡는 부분을 움푹하게 파고 서서히 활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거스는 대강 윤곽을 만든 활을 그 자리에 놓고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기다려. 한 #.”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바닥에 숫자를 썼다. 30. 그리고 다시 말한다.
“기다려. 나무를 말리는 거야.”
그렇게 말한 뒤, 거스는 주환을 작업실 안으로 데려갔다. 활과 화살이 빼곡하게 차있는 곳이다.
작업대 위에는 만들다 만 활이 놓여 있었다.
거스는 활을 만드는 나머지 작업을 그 미완성 활을 이용해 보여주었다.
거스는 화살을 만드는 방법도 작업실에 있는 대나무를 이용해 가르쳤다.
“보고 기억해.”
거스는 그렇게 말하며 주환의 앞에서 깃털을 화살에 붙이고, 촉을 달았다.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자, 거스는 아직 아무것도 달리지 않은 대나무를 불에 굽는 시늉을 해 보였다. 화살이 일반 대나무와 달리 진한 색인 건 불에 굽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분명히 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마 활 만드는 시기가 되면 그 작업을 보게 해준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한꺼번에 보여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환은 거스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나쁜 일 있습니까? 산, 위험해?”
“아니.”
거스가 고개를 저었다.
“산 위, 새가 날았어요. 동그라미, 높은 산, 먼 곳, 먼 산에서.”
주환은 며칠 전에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며 거스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지금 거스의 행동은 그때 일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거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산에는 늑대가 있으니까. 늑대가 인간을 공격한 거겠지.”
추측을 의미하는 동사를 리지가 가르칠 때 굉장히 고생했다. 추측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설명하기가 참 고약하다.
주환은 거스가 하는 말을 듣고 아, 그런가 싶었다. 자신도 늑대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만일 늑대 무리가 공격한다면, 보통 사람은 쉽게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쪽의 늑대는 상당히 크다.
하늘에서 빙빙 돌던 새를 떠올리자, 주환의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그때의 새는 인간의 살점을 먹기 위해 상공을 맴돌던 거였겠지. 그만큼 죽은 사람이 여러 명이었다는 뜻일 거다.
주환이 불안해하는 걸 알았는지, 거스가 웃으며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가보게. 나중에 또 가르쳐주지.”
“감사합니다.”
주환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작업실을 나왔다. 주환은 겅중겅중 뛰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이제 서서히 날이 저물어갈 시간이지만, 남은 울타리는 오늘 모두 끝내는 게 좋겠다.
문득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때가 떠올랐다. 함께 산지 겨우 일 년 만에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가슴이 두근두근 불길하게 뛴다.
늑대 무리가 집을 덮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안 돼. 심장이 너무 뛰어서 몸 전체가 두근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에 젖은 리지와 도로시의 모습만 떠오른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차 사고로 참혹하게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불쑥 눈에 비쳤다.
주환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가 집에 도착했을 때, 토끼장으로 들어가는 도로시의 모습이 보였다.
주환의 발소리를 듣고 뒤돌아본 도로시가 활짝 웃는다. 아이의 팔에는 토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아빠.”
타박타박, 도로시가 뛰어 그에게 달려온다.
주환은 바구니와 함께 아이를 안고 눈을 감았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다. 아이가 웃고 있어. 나쁜 일은 무엇 하나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어.
“아빠, 아빠, 이거, 토끼 ##.”
도로시가 주환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바구니를 내밀었다. 바구니 안에 토끼가 두 마리다. 하나는 진짜 토끼, 다른 하나는 인형이었다. 리지가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준 것 같다.
“도로시 인형이야! 아빠, 토끼하고 인형하고 이름 주세요.”
도로시가 바구니를 주환에게 쭉쭉 내밀며 말했다.
주환은 숨을 몰아쉬며 아이를 껴안았다. 아이가 품에서 벗어나려고 꼼지락거렸다.
“….”
미안, 도로시. 숨 좀 쉬고. 너무 미친 듯이 달렸더니 지금 당장 주환 자신이 죽을 것 같다.
***
거스는 주환의 모습이 멀어진 뒤,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가 고블린을 발견했다고 알리자, 촌장은 곧바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마을로 자신의 아들을 보냈다.
정기마차가 서는 그 마을에는 길드의 지점이 있다. 작기는 하지만 그곳에 알리면 일처리는 금방이다. 길드에서도 이런 일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들었으니, 적당한 모험가들에게 의견을 타진해서 곧바로 사람을 보내줄 것이다.
‘아마 며칠 뒤면 도착하겠지.’
하지만 생각보다 고블린의 행동이 빠르다.
주환이 보았다는 새는 아마 인간의 시체를 노리는 놈들이었을 거다.
고블린의 부락을 찾았을 때 산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발견했었다.
고작해야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작은 무리였다. 먹고살기 힘들어 도망친 사람들인지 무기도, 옷차림도 변변치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부인 것으로 보이는 남녀도 한 쌍 있었다.
‘그 여자가 고블린 놈들의 시선을 끈 거겠지.’
참고 참았던 것이 터지면 그 여파는 크다.
고블린 무리 안에 있는 여자는 강한 놈 차지다. 약한 놈들은 여자 근처에 가는 것도 어려웠을 거다.
그런 놈들이 한 번 여자 맛을 보면, 안 그래도 나쁜 머리가 더욱 작동하지 않게 된다.
산 저쪽으로는 인접한 마을이 없다. 허허벌판에, 인적 뜸한 길이 있을 뿐이다. 산적이 굶어죽기 딱 좋을 만큼, 마차도 거의 통과하지 않는 길이다.
고블린이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이곳이었다.
거스는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하던 주환의 얼굴을 떠올리고 세게 머리를 저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희생이 따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당장은 마음이 아파도 살아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그 남자라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거스는 고블린과 맞닥뜨렸을 때 사용할 활과 화살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인생을 걸어가는 길 마지막 끝에서, 가장 화려한 사냥터를 만난다. 사냥꾼으로 평생 살아온 거스에게 이보다 더한 행복도 없을 것이다.
***
오늘따라 유난히 밤이 춥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가 마치 귀신 울음 같았다.
‘이렇게 추운 날.’
리지는 겉옷을 두른 뒤 밖으로 나갔다.
주환은 허리도 펴지 못할 만큼 열심히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대나무 끄트머리를 창처럼 깎고 다시 땅에 박는다. 계속해서 그걸 반복해갔다. 거스와 함께 나갔다 들어와서는 잠시도 쉬지 않은 것 같다.
늑대와 같은 짐승은 위험하지만, 그들이 이 집에까지 덮쳐오는 것은 아니다. 불을 사용하는 인간의 집에, 짐승은 거의 근접하지 않는다.
게다가 산이라고는 해도, 이 집은 가장자리에 자리해 있었다. 인간이 보면 산속의 집이지만, 짐승 쪽에서 보면 아마 산 밖일 거다.
이 집이 오랫동안 사냥꾼의 거처로 사용되어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그렇게 말해도, 주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쉬지 않는다. 저러다 몸이 상하면 어쩌나, 생각될 정도로 열심이었다.
다행히 울타리는 거의 완성된 것 같다. 입구만을 남기고, 키 높은 대나무창이 빽빽하게 집을 둘러싸고 있다.
리지는 스튜가 식지 않도록 품에 안듯이 들고 주환이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스튜의 따뜻한 공기와 함께 연기처럼 흔들흔들 허공으로 올라갔다.
“주환.”
리지가 부르자, 주환이 뒤돌아보았다. 이렇게 추운데 남편은 위를 벗고 있다. 땀방울이 물처럼 흐른다. 따뜻한 스튜가 아니라 차가운 물이 더 좋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주환이 그녀의 손에 든 그릇을 보자 반갑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스튜! 고마워, 리지. 맛있어. 배고파.”
웃으면 험악한 눈매가 둥글게 되면서 조금 아이 같아진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모습이 조금은 도로시와 닮은 것처럼 보였다. 분명 다른 사람의 아이인데, 어째서일까. 정말 이상하다.
주환이 리지의 손에서 스튜 그릇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 리지. 춥다. 들어가.”
“당신이 먹을 때까지만. 조금만 같이 있고 싶어요.”
춥긴 하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오늘은 이 사람이 모자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대화도, 눈 맞춤도 다른 때보다 적었다. 왠지 그게 서운하고 안타깝다.
주환은 몇 번 더 춥다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리지가 고개를 젓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런 부분도 좋아. 주환은 강제로 뭔가 하라고 하지 않는다.
리지가 응석처럼 살짝 그의 팔에 기대자, 주환은 땀 냄새를 걱정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 코를 킁킁거렸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웃음소리를 흘리자, 주환이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귀엽다.
“리지, 이리 와요.”
밖에는 장작을 패다 남은 찌꺼기나, 잘라낸 대나무로 화톳불을 피우고 있었다. 캄캄함을 밝히는 횃불 대신인 셈인데, 주환이 그 앞에 통나무를 한 개 놓더니 그녀를 앉혔다.
바람을 막는 것처럼 등 뒤에 서서, 주환이 스튜를 먹는다.
리지는 몸을 조금 돌려 주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후루룩, 커다란 남자는 따뜻한 스튜를 후후 불어가며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눈이 마주치자 주환의 눈매가 다시 자그마한 곡선을 그리며 웃었다.
다 먹고 그릇을 내리면서 주환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맛있어, 리지. 감사합니다.”
아니요, 당신이 감사한 게 아니에요. 리지는 방긋 웃으며 주환의 손에서 그릇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주환.”
차가운 공기 속, 두 사람의 손이 살짝 겹쳤다. 평범한 것처럼 맞닿은 살갗이 왜 이리 행복한 걸까. 리지는 다시 한 번 주환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왠지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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