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8)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38화(38/235)
#038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버린다
주환은 몸을 굽혀 바닥을 자세히 살폈다. 눈과 낙엽이 쌓인 곳에 발자국이 여러 개 남아있었다.
사람의 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다르다. 발가락도, 발톱도, 인간보다 더 길었다. 그리고 작다. 성인 남성의 것보다 훨씬 작았다. 리지의 발과 비슷하려나. 어쩌면 리지 것보다는 조금 클지도 모른다.
‘인간은 아닌데.’
사람이면 신발을 신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도 아니다. 사람도 짐승도 아닌 무언가다.
발자국은 오래되지는 않은 걸로 보였다. 하지만 주환이 근처에 왔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지 한참 되었을 거다.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불길하다. 마음이 술렁술렁 움직였다.
발자국이 남겨진 흔적을 따라 걷는다. 발자국은 깊은 산속에서부터 이곳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최소한 이, 삼십 개는 넘는 것 같다.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른다.
흔적을 조금 따라가보면,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돌아다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하게 향하는 곳이 있었다.
주환이 다니는 곳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이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는 대강 알 수 있다. 빙 돌아서 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어쩌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 수도 있어. 정해진 도로가 없는 산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야.’
주환은 발자국의 흔적에서 벗어나, 자신이 다니던 길로 되돌아갔다.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이쪽이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저절로 허공을 가르며 뜀박질한다. 주환은 발이 땅을 디디는 것 같지도 않을 만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발자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놈들은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리지와 도로시가 있는 그의 집으로.
제발, 신이여, 만일 이 세상에, 그리고 저 우주, 그리고 어딘가에 아직도 있을 지구에 신이 있다면, 더 이상 내게서 빼앗지 말아…빼앗아 갈 거라면 처음부터 주지 마십시오. 부디, 부디, 이렇게 간절히 애원하노니.
심장이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
“오즈, 오늘은 스튜야. 아빠 오면 먹을 거야.”
엄마가 만든 스튜에는 고기가 듬뿍 들어간다. 맛있어. 벌써부터 침이 자꾸만 입속에 고였다.
아기 토끼가 꼼지락거리며 주머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안 돼, 오즈! 너는 그렇게 나쁜 토끼가 될 거야?”
도로시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리지 엄마가 옷에 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다. 커다란 주머니. 아기 토끼는 거기에 들어가 있었다.
좋아, 완벽해. 끝장이야. 도로시는 죽은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끝장이야! 도로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여러 번 그렇게 말했었다. 뭔지 모르지만 그 말이 지금 여기에는 딱 맞을 거다. 도로시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끝장이야!”
아기 토끼는 주머니 속에 얼굴까지 폭 들어가 있었다. 귀가 조금 나왔지만 어쩔 수 없지. 토끼는 귀가 너무 크니까. 귀가 모두 들어가게 만들려면 도로시의 옷에 있는 주머니가 너무 커진다. 그러면 안 돼. 리지 엄마가 만들어준 예쁜 옷이 미워질 거다.
도로시는 주머니를 들춰 얼굴을 숙였다. 아기 토끼 오즈가 주머니 속에서 까만 눈으로 도로시를 올려다보았다.
“오즈, 얌전히 있어야 착한 토끼가 되는 거야. 알겠어?”
“….”
대답은 없지만 괜찮아. 토끼는 말을 못 한다. 오즈는 아기라서 더욱 못할 거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도로시는 토끼 때문에 무거워진 원피스 위에 엄마가 만들어준 새 외투를 입었다. 따뜻하고 예쁘다.
주머니 속에 있는 토끼에게, 벌써 여러 번 했던 말을 또 했다.
“이거 엄마가 만들어줬어. 새 거야. 내 거. 내가 처음 입는 거야. 아무도 안 입었대.”
왠지 기쁘고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도로시는 가슴을 쭉 내밀었다.
부엌에서 스튜의 맛을 보던 엄마가 킥킥거리고 웃는다. 엄마가 기뻐해서 도로시도 기쁘다. 좋아. 도로시는 행복한 기분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빠 마중할게요.”
“그래, 도로시. 힘들겠네. 조심하고.”
“네!”
“아, 아빠가 한 말 잊어버리지 마.”
“응! 알아요!”
도로시는 토끼 때문에 무거워진 주머니를 두 손으로 안듯이 하며 밖으로 나왔다. 토끼가 배 밑, 다리 있는 곳까지 내려와 있어서 걷는 게 힘들었다. 뒤뚱뒤뚱하게 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왔다. 해님은 하늘 높이 있는데, 무지 춥다.
엄마가 매일 말했다. 이렇게 추운데 아빠가 나가서 힘들게 일하시다니, 엄마는 너무 속상해요, 라고.
“도로시도 속상해.”
뒤뚱뒤뚱 걸으면서, 도로시는 오즈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오즈도 똑같은 생각일 거야. 오즈는 도로시의 토끼니까. 그렇기 때문에 생각도 똑같다.
아, 이런 토토를 잊어버렸네. 토토도 아빠 마중하고 싶을 텐데. 도로시는 인형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올 시간이다. 데리러 갈 시간이 없다. 그동안 아빠가 와버리면 곤란하다.
“아빠는 도로시가 어서 오세요, 하면 굉장히 기쁘대.”
그러니까 아빠 마중을 빼먹으면 안 된다. 오즈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아기 토끼는 귀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오즈는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하아, 정말 도로시는 너무 바쁘다. 아빠 마중도 해야 하고, 엄마도 도와줘야 한다. 엄마가 음식 할 때는 도로시가 맛을 봐야만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거기다 아기 토끼랑 인형 토끼도 돌봐줘고 공부시켜줘야 하니까.
“아, 바쁘다, 바빠.”
도로시는 서둘러 울타리 문으로 달려갔다. 아직 아빠가 오려면 이르지만.
“어?”
밖에서 뭔가 타다다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빠가 벌써 왔나 봐. 도로시는 허둥지둥 토끼를 안은 채 문에 달라붙었다.
문은 나무 막대기를 옆으로 뉘여 잠그는 것이다. 그 막대기를 위로 올리면 쉽게 열렸다. 아빠가 도로시도 열 수 있게 열심히 만들어줬어.
나쁜 짐승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문이지만, 뭔가가 안에 들어오면 도로시도 쉽게 도망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문은 열기 쉽다. 도로시도 할 수 있다.
도로시는 문을 열려고 막대에 손을 올렸다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엄마도 그랬지. 아빠가 한 말을 잊으면 안 된다고. 아빠가 몇 번이나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을 열기 전에 아빠인지 확인해야 하는 거야. 알겠어? 아빠가 꼭 그렇게 하라고 했던 거야! 잊어버린 건 아니야. 잠깐 생각나지 않았어. 진짜야.”
도로시는 오즈에게 그렇게 말해 준 뒤, 문틈으로 한쪽 눈을 갖다 댔다. 아빠는 집에 도착하면 도로시가 볼 수 있게 문틈에 와서 얼굴을 내려준다. 그러면 도로시랑 아빠랑 눈이 딱 마주치는 거야. 지금도….
“!”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아빠가 아니야. 아빠랑은 전혀 달랐다. 누런 흰자위 위에 빨간 실 같은 게 잔뜩 있었다. 꼭 짐승 같다. 무서운 눈동자가 도로시의 눈을 보고 있었다.
“히이.”
이상한 숨소리가 나왔다. 너무 무서워서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얼음처럼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도망쳐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문밖에 있는 것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웃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문 사이로 들려온다.
도로시는 꼼짝도 못한 채 눈동자를 움직였다. 문 건너편에서 손이 움직인다. 도로시의 눈동자가 그 손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했다.
그것이 손을 올려 문에 가까이 댔다. 긴 손톱이 달려 있다. 긴 손톱이 도로시의 얼굴을 향해 가까이 왔다. 문틈으로 들어오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보고 있는데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밧줄로 몸을 칭칭 감아놓은 것 같아.
“우, 우에에.”
울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도망쳐야 하는데,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우에에에엥.”
입에서 울음이 터지고, 긴 손톱이 문틈으로 쑥 들어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손톱이 밖으로 훌쩍 나가버렸다. 누런 눈도 없어졌다.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누군가에게 잡혀서 훌쩍 문틈에서 멀어졌다.
“아빠!”
도로시는 크게 외쳤다. 아빠다. 아빠가 와서 그 이상한 사람을 잡더니 훌쩍 집어던졌어.
도로시의 목소리를 듣고 아빠가 잠깐 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걱정 말라는 듯 아빠가 씨익 웃는다. 괜찮아, 도로시.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빠는 곧바로 이상한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좁은 문틈 사이로, 멀리에서 달려오는 이상한 사람들의 모습이 잔뜩 보였다. 괴물이구나. 아빠와 그 이상한 것들이 함께 있으니까 알겠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다. 나무들 사이로 괴물들이 잔뜩 달려오고 있었다.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렸던 건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집이 있는 곳에서 리지 엄마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도로시!”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미친 듯이 도로시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엄마, 아빠야! 아빠 왔어.”
조금 전까지 무서웠지만 이제 괜찮다. 정말이야, 괜찮아. 아빠가 왔다. 엄청나게 강한 아빠가 왔으니까, 엄마도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왠지 울음소리만 나온다.
엄마가 가까이 오더니 홱 도로시를 끌어당겼다. 도로시는 문에서 훌쩍 뒤로 끌려가 리지 엄마의 품에 안겼다. 리지 엄마의 가슴이 등에 딱 붙었다. 등이 따뜻하다.
도로시와 토끼를 함께 안은 엄마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도로시는 자신의 배 앞에 있는 엄마의 손을 보다가 자신의 몸도 엄청나게 떨리고 있는 걸 알았다.
이상하다. 아빠가 와서 도로시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 왜 이렇게 떨고 있는 거지? 정말 이상하다. 자신의 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엄마 손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어쩌지. 괴물이 너무 많다. 아빠는 하나인데, 괴물은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이 왔어. 산에서 죽어버린 아버지처럼 아빠가 없어지면, 그때는 어쩌지. 아빠가 없어지면.
“우아아아아아앙!”
엄청나게 커다란 울음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
집으로 달려갔을 때 주환이 제일 먼저 본 것은 몸을 숙이고 엉거주춤 서 있는 괴물이었다. 울타리 앞에 서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저것이 무엇인지 안다. 금방 알 수 있었다. 영화나 만화 같은 데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다.
놈은 초록에 고동색이 섞인 것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귀가 약간 뾰족하게 나 있었다. 키가 작다. 리지보다 작은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에 비해 발은 조금 큰 편이었다. 놈은 옷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한 헝겊 쪼가리 같은 걸 허리에 감고 있었다.
‘고블린.’
주환은 재빨리 집 주변을 살폈다.
다른 놈들의 모습은 아직 멀다. 아직 숲속에 있었다. 저 한 마리가 다른 놈들보다 일찍 도착한 모양이다.
놈은 몸을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문틈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도로시!’
항상 아이가 아빠를 마중한다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지금 당장이라도 과열되어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당장, 지금 당장 저놈을 울타리 문에서 치워버려야 해.
주환의 뜀박질이 더 빨라졌다.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고블린이 히죽 웃는 것 같다. 손을 올리더니, 놈이 인간보다 훨씬 긴 손톱을 울타리 틈에 꽂았다.
아이 울음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주환은 땅을 박차고 몸을 붕 떠올렸다. 손을 길게 뻗는다.
아슬아슬하게 놈의 머리를 잡았다. 끈적끈적 미끈거리는 머리통에는 거친 머리카락이 약간 나있었다.
순간적으로 놈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휙 한번 감으며 그대로 뒤로 잡아당겼다. 놈이 종이호랑이처럼 훌쩍 뒤로 당겨졌다.
힐끔 울타리를 확인하자, 고블린의 긴 손톱이 빠지는 문틈 너머에 동그란 눈동자가 있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았어. 아이의 눈은 놀라고 겁에 질려 있었지만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좁은 틈새로 보이는 약간의 피부에도 붉은 피는 묻어있지 않았다.
아이가 아빠, 하고 그를 부른다. 안심하라고 웃어준 뒤, 주환은 몸을 돌렸다.
숲에서 고블린 놈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얼핏 봐도 수십 마리다.
주환은 허리춤에 꽂고 있던 도끼를 뽑았다. 활과 화살은 아직 미숙하다. 급한 상황에서 명중률을 높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몸으로 뛰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주환은 멀리 있는 고블린과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자신이 집어던진 고블린을 향해 몇 걸음 달려나갔다.
이놈들, 죽여버린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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