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5화(5/235)
#005 노인과 사냥, 그리고 여자, 토끼
밖은 아직 캄캄하다.
반쯤 잠이 든 상태로 바깥을 경계하던 김주환은 곧바로 깨어나 몸을 세웠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건물 밖에 사람들이 있었다.
소곤소곤 목소리가 들리더니 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괴어 놓았던 나무를 치우는 모양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병사들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날이 밝은 뒤에야 출발할 거다.
김주환은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마을의 정보를 하나씩 꺼내 되새겼다.
마차에 실려 들어오면서 눈여겨 보았던 지형과 대략적인 사람들의 숫자, 집과 무너진 울타리의 위치….
울타리가 무너져 있던 곳은 산이 있는 방향이었다.
다른 곳은 김주환이 뛰어넘기에 너무 좁거나 높았지만, 그곳은 약간만 노력하면 도망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김주환은 자신을 잡았던 남자들의 손을 떠올렸다.
힘이 강했다. 농사와 여러 잡일로 다져졌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기는 했어도 현대 지구의 남자들보다는 훨씬 단단한 손이었다.
하지만 그가 더 강하다.
상대가 곡괭이나 쇠붙이 같은 걸 들고 덤빈다 해도 서너 명, 아니 대여섯 명까지라면 빠듯하게 지지는 않는다. 뿌리칠 수 있을 거다.
‘그 이상은 곤란하겠지.’
김주환이 강하다고는 해도 맨손으로 그 이상의 인원을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
김주환은 크게 숨을 쉬었다.
괜찮아. 병사들이 간 뒤에 행동하면 된다. 칼 든 병사들만 없으면 어떻게든 된다. 긴장하지 마. 두려워할 필요 없다.
아마도 노예 낙인은 찍히지 않을 거다. 그럴 거라면 병사들이 이미 했다. 추측이기는 해도 노예 낙인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종이뭉치는 미리 마법 같은 걸 부여한 계약서인 것 같다.
병사들이 일부러 그런 걸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소설에서처럼 즉석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당연히 이런 마을에도 그런 마법사가 있을리 없다. 마법이 걸린 종이를 가난한 평민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거다.
김주환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지금은 저들이 하는 대로 따라도 돼. 병사들이 가고 난 뒤에, 낌새가 이상하면 그때 가서 행동해도 늦지 않을 거야.’
여차하면 곡괭이든 부지깽이든 하나만 챙겨들어도 이런 깡촌 마을의 남자 정도는 이길 수 있다. 옛날부터 남들보다 힘 하나는 강했으니까.
강주환은 가볍게 숨을 쉬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여러 번 되풀이한다.
침착하자. 서둘러서는 안 된다. 노예처럼 구속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우선 이 마을에서 머무르면서 이 세계에 대해 알아보는 거야.
언젠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몰라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이 세계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뿐이다.
“….”
끼기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김주환은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촌장이었다. 중년을 조금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키는 작지만 몸이 단단해 보였다.
촌장 뒤로는 십여 명 정도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문가에 횃불을 든 사람이 한 명 있다. 흔들리는 불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겨, 사람들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보였다.
“## ##### ###.”
촌장이 웃으며 뭔가 말했다.
김주환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두 팔을 벌리면서 환영한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여러 번, 촌장은 자신과 남자들을 가리키고 다시 김주환에게 팔을 벌려 보였다.
아마도 우리는 같은 인간, 같은 마을의 동료다, 환영한다. 그런 뜻인 것 같다.
“….”
저런 식으로 공들여 표현하는 걸 보면 확실히 노예는 아닐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어깨에서 힘이 약간 빠졌다.
김주환은 촌장과 남자들을 향해 약간 미소를 보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의적으로 보이도록 의식하면서 몸을 구부정하게 움직였다.
커다란 그의 몸은 종종 너무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걸 조금이라도 줄여, 자신이 무해하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다.
촌장은 말이 통했다고 생각한 건지 눈에 띄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김주환이 커다란 덩치에 비해 온순한 성격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주환처럼, 촌장과 마을 사람도 한숨 놓았던 모양이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슬쩍 눈짓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순수한 마음에서 그를 받아들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이 사람들에게도 뭔가 속셈이 있다.
‘단순히 마을의 노동력이 필요한 거면 좋겠는데.’
김주환은 남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짝 시선을 움직였다.
안에 들어오지 않은 남자 두 명의 손에 나무를 다듬어 만든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문가에 서 있는 남자의 다리 사이에도 쇠꼬챙이 같은 것의 끄트머리가 약간 내려와 있다. 허리 뒤춤에 무기로 사용할 만한 것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다.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같지만, 뭔가 수상한 기미라도 보이면 곧바로 덤벼들 생각인 것 같았다.
뭐, 노예와 함께 죄인처럼 끌려온 사람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오히려 아무 경계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그게 더 무섭다. 그 뒤에 뭐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김주환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어느 정도 서로에게 적대심이 없다는 표시가 오간 뒤, 촌장이 갑자기 손짓 발짓을 해 보였다. 삼각형? 활 쏘는 모습?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촌장이 이번에는 허공에서 호리병 같은 걸 그려 보인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른다.
김주환이 전혀 못 알아듣는 듯하자 촌장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남자들을 보았다.
이번에는 촌장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나섰다. 김주환의 주의를 끈 뒤 허리를 앞뒤로 여러 번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호리병 모양을 허공에 그렸다.
아! 뭔지 알 것 같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남녀의 정사 모습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김주환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자, 촌장과 남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그의 짐작이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무슨 뜻으로 그런 몸짓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촌장이 뒤쪽을 향해 뭔가 외치자, 사람들 틈에서 노인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허연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몸에는 짐승의 털로 만든 외투를 입고 있었다. 사냥꾼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노인은 한쪽 다리를 절면서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가만히 김주환을 보았다.
촌장이 손가락으로 김주환을 가리키고, 다시 노인을 가리켰다. 번갈아가며 여러 번 그렇게 손짓을 하고 허공을 향해 활 쏘는 시늉을 해 보인다.
촌장이 두 팔을 올려 토끼 귀 모양을 해 보이고 다시 활 쏘는 시늉을 했다.
“###. ###.”
같은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노인을 가리키고, 그 뒤에는 김주환을 향해 같은 단어를 말했다. 아무래도 사냥, 혹은 사냥꾼이라는 뜻인 것 같다.
김주환이 촌장이 말한 걸 따라 말하며 자신을 가리키고 다시 노인을 가리키자, 촌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
‘이 노인에게서 사냥을 배우라는 건가.’
노인과 사냥, 그리고 여자, 토끼.
무슨 의미인지 정말 모르겠다.
아니, 여자만 빠지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냥 토끼같은 짐승을 사냥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뜻일 것 같은데, 거기에 여자가 끼니까 말이 이상해지는 거야.
어느새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횃불을 들고 있던 남자가 불을 끄자, 촌장이 밖으로 나가며 손짓해 김주환을 불렀다.
무기를 들고 있던 남자들은 무리의 외곽으로 빠져 약간의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나무 막대기와 쇠꼬챙이를 숨긴 채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남자들을 모른체하고, 김주환은 설렁설렁 촌장과 사냥꾼 노인을 따라 걸었다.
***
촌장이 간 뒤 촌장 부인이 남자 몇 명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남자들의 손에는 밀가루, 귀리 등의 음식과 소소한 생활용품이 들려 있었다.
리지는 우두커니 선 채 촌장 부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촌장 부인이 물건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에 있는 게 한 달 분의 음식이야. 저기에 있는 건 살면서 필요한 물건이고. 등잔 기름하고 냄비하고 또….”
리지가 멍해 보였던 모양이다. 촌장 부인이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알고 있겠지만, 이건 공짜로 주는 게 아니거든.”
리지는 고개를 약간 숙였다. 가만히 바닥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촌장 부인이 혀를 찼다. 하지만 실망이 심해서 거기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역시 모두 가져갔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이 보이자 마음이 암울해졌다.
이 물건들은 본래라면 촌장 부인이 가져다줄 필요가 없다. 산지기 오두막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이미 있었으니까.
한데도 이렇게 가져왔다는 건 촌장과 몇몇 사람이 집안의 물건을 모두 빼돌렸다는 말이 될 거다.
하지만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촌장에게 반대하면 살아갈 수 없다. 심지어 촌장 한 명이 물건을 착복한 게 아니라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통속이다.
리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촌장 부인이 그런 리지의 모습을 모른체하고 말을 이었다.
“한동안은 계속 음식과 물건을 마을에서 대줄 거야. 남편이 될 사람은 이쪽 말을 전혀 모른다고 하니까 당신이 잘 기억해둬요. 나중에 다 갚아야 하니까.”
촌장 부인이 한숨을 쉬며 눈짓하자 남자들이 밖으로 나갔다. 촌장 부인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와 손을 잡았다.
“이봐요, 당신이 우리 마을에 좋은 감정이 없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도 먹고살기가 워낙 힘들어. 당신 마을도 그렇겠지? 그러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
조금 전과 달리 촌장 부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촌장 부인이 힐끔 구석에 있는 아이를 보았다.
“게다가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산지기, 그러니까 죽은 당신의 남편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 사람도 외지인이었지. 산지기는 원래 사냥꾼이 하는 거라 마을에서 힘들게 수소문해 구해온 사람이었는데, 굉장히 거칠어서….”
촌장 부인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소문이 안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냥꾼은 워낙 구하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그 남자를 산지기로 삼았던 거야.”
이곳에 정착하게 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의 딸과 혼인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은 아이를 낳은 뒤 곧바로 죽고, 두 번째로 주었던 다른 사람의 딸은 맞아죽었다.
산지기 일은 그럭저럭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은 리지의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다고 했다.
“당신 잘못이 아닌 건 알고 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그 사람의 부인이 된 당신에게도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더라구.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촌장 부인이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리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남편이 그런 사람이어서 당신도 힘들었지. 하지만 이번엔 다를지 몰라. 이번에 당신 남편이 될 사람은 어쩌면 평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들었어. 생긴 건 좀 험악해 보여도 우리 바깥양반 말로는 손이 굉장히 곱다 하더라구. 어딘가의 귀족님이었는지도 모르지.”
촌장 부인이 리지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사람이면 최소한 때리지는 않을 거 아냐. 게다가 산지기한테는 동물을 잡는 일도 허락되어 있고, 생각보다는 훨씬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촌장 부인이 눈꼬리를 내리며 웃었다.
“….”
그녀의 말이 정말일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걸까.
마을 사람이나 촌장 부인이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주 조금,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그녀를 생각했던 걸까. 최소한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 남자에게 그녀를 보내주려고, 조금이나마 살펴준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고향 마을에서 리지는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나름대로 한껏 노력했지만 몸이 작고 약한 리지는 항상 아버지,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였을 거다. 촌장 부인의 별것 아닌 말에, 아주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위해 생각해 준 거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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