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75)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75화(75/235)
#075 용사소환의 진실
인간은 보이는 것을 믿는다. 그걸 잘 활용하면 사람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무지한 국민을 속이는 것은 더욱더 쉽다. 성공적인 건 내놓고 실패하면 숨긴다. 아주 조금, 손질을 가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쉽게 열광하고 쉽게 믿어버렸다.
하지만 가끔 숨길 수 없는 일도 생긴다. 깊은 숨이 입에서 샜다. 글렌은 창문에 선 채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타이론 왕국의 남자들에 비해 다소 낮은 신장의 남자가 검을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 모양이다. 남자는 열 살 꼬마가 해도 더 나을 것 같은 칼놀림으로 허공을 후비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여자는 더욱 심하다. 검을 쥔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제대로 된 자세조차 잡지 못했다.
저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저 두 사람은 마법사다. 굳이 검을 들 필요가 없었다. 필요 없다고 여러 번 설명도 했다. 그런데도 요구한 것은 그들이었다.
‘제대로 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두 사람이 투구와 갑옷을 착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입어보니 힘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입자마자 몇 걸음 걷지도 않고 금세 벗어버렸다. 단순히 검과 갑옷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보고를 들어보면, 때때로 생각과는 다르다고 투덜거리면서 옷만 그럴싸하게 입고 거울에 비춰본다고 했다. 근성도, 의욕도 없다. 정말 쓸모없는.
하지만 두 사람이 의욕적이었다 해도 큰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검은 어릴 때부터 다뤄야 한다. 나이 먹은 성인이 뒤늦게 배운다고 해서 쉽게 달인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학습이 느렸다. 말을 배우는 것도, 예절을 몸에 익히는 것도, 심지어 가장 중요한 마법을 다루는 것조차 느리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 두 사람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것은 오직 힘이 강하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힘은 다룰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루지 못하는 힘은 재앙일 뿐이다.
“….”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다. 최대한 조심하고 또 포장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들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드러나고 만다. 그전에 뭔가 되면 좋겠지만, 지금 저들의 모습을 봐서는 희망이 없었다.
“이곳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왕세자 전하.”
시종이 그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글렌은, 여자 용사가 호위 기사와 뭔가를 속닥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고 창문에서 떠났다. 여자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남자의 목소리가 창을 통해 들려왔다.
이 세상은 연극이나 그림이 아니다. 굶으면 배가 고프고 다치면 피가 난다. 용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병들거나 다칠 수 있고, 늙으면 힘이 약해질 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알아서 가늠하고 대책을 세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이 되도록 노력하고 주위 환경을 주의 깊게 살필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협력하거나 친분을 꾀할 것이다. 어쨌든 뭔가 한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그런 걸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지는 쾌락과 칭찬에만 반응한다.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가 그대로 모습만 자란 것처럼 보였다.
‘좀 더 괜찮은 인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만일 그랬다면 글렌도, 아버지 왕께서도, 그들을 중용할 생각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힘만 있는 저속한 멍청이는 그저 단순한 말로 밖에 쓸 수 없다. 애인과 돈, 그리고 이름만 그럴싸한 지위를 주어 사용하다 자식을 낳게 하는 용도로 쓰이고 끝난다.
‘모처럼의 용사인데 아깝게스리.’
하지만 정말로 저 두 사람은 용사였을까. 처음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의문이 생겼다.
“….”
타이론 왕국은 용사 소환의 의식을 한 적이 없다. 저 두 사람은 그저 어느 날 용사의 소환진이 그려진 방에 갑자기 나타나 있었다.
소환 의식은 없었지만 당연히 용사라고 생각했다. 전쟁하고 있는 타이론을 위해 신이 보내준 거라고 여겼다. 외모도, 나타난 장소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좀 더 신중하게 다뤄야 했는데.’
전설과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용사는 여러 가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단 한 개의 힘 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힘이 발현하려는 기색이 없다. 분명히 강대한 힘을 가졌지만, 반쪽짜리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꺼낼 수는 없다. 아버지 왕께서도, 신전장도, 지금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미 온 나라에 저 두 사람이 용사라는 말을 퍼뜨렸다. 다른 나라에까지 소문은 널리 날아가 있다. 첩자를 이용해서 그걸 부채질한 것은 바로 왕과 글렌 자신이었다.
글렌은 숨을 가볍게 내쉬고 걸음을 빨리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무겁지만, 뒤로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긴 복도를 지나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멈출 것도 없이 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계속 기다렸다는 증거다. 무거운 마음이 한층 가라앉았다.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와 잡아당기는 것 같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창문을 보고 서 있던 아버지가 몸을 돌렸다.
“왔느냐.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괜찮다.”
아버지가 근처에 있는 의자로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앉아 맞은편 의자를 시선으로 가리킨다. 글렌은 약간 긴장한 채 아버지 앞에 앉았다.
“어떠냐, 용사들은.”
“…여전히 더 이상의 힘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루돌프를 만들 기미는 보이더냐?”
아버지도 대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글렌은 눈을 약간 내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도 마수가 두 마리 죽었을 뿐입니다.”
“혹시 용사도, 산타의 계약자도 아닌 게….”
아버지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천장을 노려본다. 아버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그 두 사람이 산타를 만난 것은 확실한 이야기냐?”
“예,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아주 어릴 때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산타에게 소원을 빌었던 것도 맞느냐?”
“예, 아버님. 몇 번이나 소원을 빌었다고 했습니다. 산타가 그 소원에 응한 것도 틀림없습니다. 선물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
“그런데 왜….”
아버지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만일 그들이 용사가 아니어도 산타의 계약자라면 좋았다. 오히려 더 좋은 일이다. 하지만 힘들게 마수를 갖다 바쳐도 그들은 루돌프를 만들지 못했다.
“저, 아버님.”
글렌이 주저하며 입을 열자, 왕이 그를 보았다.
“이제 국내에서는 마수를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너무 드러내 놓고 구하면 소문이 설 테고, 은밀하게 구하기에는 마수가 너무 적습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다.
용사들이 루돌프를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너무 일찍 포기할 수도 없는데, 마수는 산 채로 잡기 가장 어려운 짐승이었다. 안 그래도 적은 마수를, 소문이 나지 않도록 구하는 건 이제 무리였다.
아버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아버지가 손짓으로 시종장을 불렀다. 시종장이 가까이 오자,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윈드 왕국의 상인에게 연락해서 마수를 구하라고 하게. 시모니 왕국의 산타 길드에 의뢰하면 될 거야. 그쪽의 마수 사냥꾼은 실력이 좋기로 유명하지.”
시모니 왕국은 자국과 현재 전쟁 중인 나라다. 글렌은 멍청한 얼굴이 되어 아버지를 보았다.
“하지만 아버님, 그 나라는 현재 전쟁 중인…적입니다.”
아버지가 히죽 웃었다.
“글렌, 우리나라가 오랜 전쟁으로 재정이 어려운 것은 알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돈이 생겨 무기를 사고 병사들을 먹이고 있겠느냐.”
“….”
“약탈이다.”
“예?”
“우리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어. 이제 너도 알 때가 되었지.”
맙소사.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쿡쿡 웃었다.
“도적질을 하면 그걸 위장해서 국경을 넘도록 도와주는 상회가 윈드 왕국에 있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지. 그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우리 존재를 숨기고 마수를 구해줄테니 너무 걱정 마라.”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시종장이 그와 만나게 해줄 게다. 그의 수완을 잘 보아두도록 해.”
“예.”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설마 왕이 다른 나라에서의 약탈을 허용하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위정자가 국민의 눈을 속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니, 그건 당연했다. 정치라는 건 깨끗하기만 한 게 아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약탈을.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글렌은 감정을 숨기면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왔다. 오랫동안 몸에 익힌 무표정으로 무장하고 복도를 걷는다.
“왕세자 전하.”
문득 뒤쪽에서 시종이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자, 시종이 눈썹을 약간 내리고 조용히 말했다.
“계속 입술을 닦고 계십니다.”
깨닫고 보니 손등으로 입을 문지르고 있었다. 글렌은 주먹을 쥐었다.
“뭔가가 묻은 것 같았다.”
“….”
시종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다시 손이 올라가지 않도록 주먹을 굳게 쥔 채 걸음을 옮긴다. 창으로 용사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깨닫고 보니 다시 손으로 입술을 문지르고 있었다.
***
사람이라는 동물은 정말 적응이 빠르다. 실제로 이 길드에 온 건 몇 번 되지도 않는데, 몇 년은 출입한 기분이 들었다.
길드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 의자에 앉아있던 모험가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환 쪽을 향했다. 그 모습은 물론, 앉아있는 모험가들도 비슷한 것 같다. 설마 모두가 백수건달은 아닐 텐데, 어째서 예전에 본 얼굴이 똑같이 앉아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
“주환 씨, 왜 그래요?”
리지가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도로시의 손을 잡고 주환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웃는다.
“어서 들어가요. 붉은검 파티가 기다리겠어요.”
예전에 처음 왔을 때는 뻣뻣하게 굳어있던 리지와 도로시가, 이번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안으로 척척 들어갔다. 척추를 곧게 펴고 걷는 리지의 모습이 의젓하게 보였다. 정말 모험가 같은 느낌이다.
계속 함께 있을 때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문득 보면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을 만나 그녀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새삼 사랑스럽고 귀여워졌다. 마치 애지중지 꽃을 피우는 정원사가 된 기분이었다.
붉은검은 구석자리에 앉아있었다. 왠지 그녀들 주변만 예전과 분위기가 달랐다. 뭐가 다른 걸까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이전과 달리 주변 남자들이 거친 말로 희롱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뭔가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붉은검이 앉아있는 탁자 위에 핏자국이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핏방울이 못 자국인 것처럼 보이는 동그란 흠집 위에 몰려 있었다.
수다쟁이 길드원이 붉은검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이봐요, 당신들. 아무리 당신들이라도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길드 물건을 파손하면 물어 내야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안 그래도 매번 난폭한 사람들 때문에 비품 값이 엄청난 거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 길드에 있는 탁자와 의자는 굉장히 튼튼한 거예요. 비싼 걸로 산 겁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당신들처럼 핏기 많은 모험가들이 매번 깨부수기 때문이죠. 뭐, 좋아요.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그 흠집과 핏자국은 흔적이 안 남도록 잘 처리해 주세요. 사포로 문지르면 없어지겠죠. 핏자국도 깨끗이 닦아요.”
아니, 한 마디가 아니구나. 붉은검의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리지가 무슨 일이냐고 속닥속닥 묻자, 마리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평상시에 시비 거는 놈이 또 지저분한 농담을 하면서 걸리적거리길래 카린이 못으로 탁자를 찍었거든요. 그냥 겁만 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손가락 사이를 찔렀어요.”
아니, 겁을 주는 게 아니라 진짜 죽일 생각으로 덤볐어야지.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모험가 한 명이 불쑥 입을 열었다.
“잘했어. 뭐, 그놈은 좀 당해도 싸지. 내가 본 것만 해도 수백 번은 지저분하게 달라붙었으니까.”
카린이 모험가를 쳐다보자, 히죽 웃는다.
“그 정도의 깡다구는 있어야 모험가 해먹지. 다음에 또 지저분하게 굴거든 손이 아니라 불X을 터뜨려 버리라구.”
모험가의 말에 주변 남자들이 와하하 웃었다.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붉은검 근처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젠장, 저것들한테 집적거리면서 은근슬쩍 만져보는 게 그나마 여기에 오는 즐거움이었는데.”
“미친놈아! 그러니까 네가 5급을 못 넘어가는 거야.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해야지.”
“젠장, 네놈도 똑같으면서 뭔 소리야.”
남자들이 와하하 웃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끈적거리는 시선을 붉은검에게 보내는 게 아니라, 그저 단순한 남자들끼리의 음담패설이었다.
수다쟁이 길드원이 손바닥을 딱딱 치면서 소리쳤다.
“그딴 잡소리는 술집에나 가서 하세요. 여기는 신성한 길드입니다.”
여기저기서 모험가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미친!”
“신성하긴 개뿔이나 신성하겠다.”
“농담이냐.”
문득 시선을 옮기자, 리지와 붉은검이 남자들 웃는 걸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한 장의 그림 속에 있는 풍경 같다. 예전처럼 그녀들만 뚝 떨어져 나온 느낌은 없었다.
“….”
조금씩 조금씩, 그녀들이 이 사회에 녹아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소한 것부터라도, 조금씩 변해가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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