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7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79화(79/235)
#079 루돌프는 젠탱글
지구에 남기고 온 것은 없다. 기껏해야 부모님의 무덤과 어린 시절의 추억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낯선 언어를 익히느라 필사적이었던 일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피곤했던 건지도 모른다.
귀에 익숙한 언어를 듣는 순간 심장이 튀었다.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 흔히 보이는 외모의 아이였다. 얼굴이 유난히 희고 눈이 맑은 정도가 조금 눈에 띄는가.
“….”
하지만 가만히 보면, 처음 인상과 달리 소녀는 조금 특이한 느낌이었다. 얼핏 볼 때는 평범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사람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뭐가 다른 걸까.’
옷차림도, 외모도,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녀는 나이에 맞게, 아, 그래서인가. 주환은 문득 이 소녀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도로시조차 처음 만났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삶이 소모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녀는 삶에 지친 기색이 없다. 왠지 동화 속에서 자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만들었다.
소녀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크리스마수 이부, 소원을 말해? 산타 나뿐놈?]“….”
하마터면 자기도 모르게 대답할 뻔했다. 하지만 하지 말라. 지구의 언어는 이곳 세계의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다소 부주의한 면도 있었지만, 지금의 주환은 한국말이 얼마나 이곳에서 이색적인 건지 안다.
지구의 말은, 이 세계의 타국 언어보다 사람의 귀에 이상하게 들렸다. 거기에 답하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 버린다.
주변 사람들이 소녀의 말을 듣고 웅성거렸다.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뭐야, 저 말은? 어느 나라 말이지? 나도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봤지만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건데?”
역시, 지구의 언어는 눈에 띈다.
마른 입속에 침을 조금 내 삼키고, 주환은 소녀에게서 눈을 약간 내렸다.
“특이한 언어네요.”
주환이 말하는데, 리지가 바짝 다가와 몸을 붙였다. 옆구리에 파고들듯이 하여 안긴다. 바깥에서 그녀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살짝 리지의 표정을 살피자,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리지는 가끔 주환이 한국말을 하는 걸 들어왔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소녀가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거다.
소녀를 바라보는 리지의 얼굴이 조금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괜찮다는 의미로 리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
길드 마스터가 손을 훠이훠이 저어 사람들을 쫓았다.
“뭘 구경하는 거야. 어서 돌아가서 일들 봐. 이제 곧 길드 문 닫을 시간이라구. 빨리 안 하면 다 내쫓아 버릴 거다.”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다시 접수대 앞에 줄을 섰다. 매입 창구 앞에도 마찬가지였다. 주환 주위의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길드 마스터가 주환을 보았다.
“잠깐 시간 있습니까? 여러 가지로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
“마수에 대해서도 좀 알아봤어요. 뿔토끼에 대해서. 주환 씨는 아직 마수에 대해 잘 모를 테니, 들어보면 좋은 것도 좀 있을 거요.”
안 그래도 마수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참이다. 길드 마스터의 말은 주환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지구의 언어를 알고 있는 소녀가 마음에 걸렸다.
길드 마스터가 말하는 사이, 소녀는 도로시 품에 있는 오즈를 유심히 보았다.
오즈도 까만 눈으로 소녀를 본다. 왠지 오즈의 털이 약간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깨닫고, 주환은 의식적으로 몸에서 약간의 마력을 흘렸다. 이렇게 해두면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거다. 만일을 위한 보험이었다.
오즈가 뒤로 눕힌 귀를 조금 움직였다. 귓구멍이 사방을 향해 약간 돌아다녔다. 소리를 모으는 것 같다. 동시에 코도 약간씩 움직였다. 마치 소녀의 소리와 냄새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환은 가만히 소녀를 보았다. 혹시 소녀가 악의를 품고 있을 수도 있다.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마법사일 가능성도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공기가 바짝 마르는 것 같다. 호흡을 따라, 짜릿한 긴장이 정전기처럼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입이 바짝 말랐다.
너무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손끝에서 라이터를 켤 때처럼 파직 파직 불꽃이 작게 일었다.
주환의 긴장이 전염된 듯, 리지와 도로시의 몸도 굳었다.
“후훗.”
문득 소녀가 웃었다. 한순간 소녀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눈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네요.”
소녀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오즈의 경계가 사라졌다. 곤두서있던 털이 가지런히 눕고, 긴장한 것 같던 모습도 가라앉았다.
주환이 볼 때는 소녀의 모습이 특별히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오즈가 볼 때는 뭔가 다른 걸까.
오즈는 관심을 잃은 것처럼, 도로시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오즈, 졸려?”
오즈가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게 간지러웠던 모양이다. 도로시가 몸을 비틀며 웃었다.
길드 마스터는 소녀의 말에 마음을 놓은 것처럼 주환을 보았다.
“우선 2층으로 갑시다. 할 말이 좀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자, 길드 마스터가 앞장을 서고 소녀가 그 뒤를 따랐다. 주환과 리지는 그 뒤다.
붉은검은 아래층에 남았다. 매입 직원이 대금을 어떻게 할 건지 묻자, 예금하겠다고 대답하는 카린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굉장히 기쁜 것 같다. 주환의 마음도 조금 즐거워졌다.
하지만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대체 길드 마스터가 데려온 저 소녀는 뭐지? 왜 지구의 언어를 알고 있는 거지? 소녀의 정체를 몰라 당황스럽다.
*
길드의 2층은 매입한 물건들을 두는 창고인 것 같다. 커다란 공간에 칸막이 같은 벽이 여러 개 있었다. 칸막이로 구분된 공간마다 용도가 다른 모양이었다.
여러 명의 직원이 바쁘게 물건을 옮기거나 정리하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걸 보면 꽤나 중노동인 것 같다. 생각보다 길드에서 일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길드 마스터가 주환의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올라가는 계단에서 가장 먼 장소였다.
물건이 쌓인 좁은 통로를 걸어가자, 구석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탁자와 의자가 몇 개 놓인 공간이 있었다.
어쩌면 손님이 올 때 접대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런 것치고는 조금 초라했지만, 작은 시골마을의 길드가 가진 접대 공간이란 이런 걸 거다. 주변에는 상자가 몇 개 쌓여 있어서 조금 어수선해보였다.
“우선 모두 앉읍시다.”
길드 마스터의 말에, 주환이 리지와 나란히 앉았다. 소녀는 길드 마스터의 옆이다.
“우선, 주환 씨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혹시 산타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루돌프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
산타까지는 예상했지만 루돌프는…. 설마 산타 마을까지 이 세계에 있는 건 아니겠지.
주환은 아무 표정도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길드 마스터 눈에는 대답이 보였던 모양이다. 히죽 웃었다.
“주환 씨는 마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던데, 일단은 내가 알아온 걸 말해주죠. 그다지 별다른 건 없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마수와 일반 짐승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력의 유무다. 마수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수]라고 불린다.
마수는 잡식이다. 아무거나 먹는다. 오즈를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토끼처럼 생겼지만 풀만 먹는 게 아니라 고기도, 쌀도, 빵도 먹었다.
그리고 마수는 마력을 흡수한다. 자연이나 비명당근처럼 마력이 깃든 생물로 충당하는 경우도 있고, 인간에게 사육되는 경우에는 주인에게 받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마수는 마력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하더군요. 꽤 오랫동안 견딜 수는 있지만 그래도 결국엔 죽는다고 합니다. 뭐, 자연에서도 마력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별로 없다고 하지만.”
뿔토끼는 마수 중에서는 가장 사람 눈에 많이 띄는 종류라고 한다. 마수 사냥꾼이 가장 많이 잡는 것도 뿔토끼였다. 다만 잡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토끼처럼 함정으로 잡을 수도 없었다.
마수에 관한 걸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면서, 길드 마스터의 눈이 도로시의 불룩한 앞주머니를 향했다.
“뿔토끼가 가장 많이 잡힌다고는 해도 수가 많은 건 아닙니다. 눈에 띄지 않는 마수 중에서 많이 보이는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생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하지만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뿔토끼는 성체가 되면 뿔이 나오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커진다고 하더군요.”
“어.”
리지가 깜짝 놀라 소리를 내고, 입을 손으로 막았다. 오즈는 아직 어린 모습인데도 뿔이 나와 있다.
“그래요. 당신네들의 뿔토끼는 조금 이상하죠. 그래서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그 녀석은 루돌프라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길드 마스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환은 소녀의 모습을 살폈다.
아까부터 소녀가 코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특히 주환의 냄새를 맡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모르도록 조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코를 움찔거리면 눈에 띈다.
길드 마스터도 소녀의 모습을 보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이 아이는 같은 행동을 해왔던 모양이다. 모른 척하고 말을 이었다.
“루돌프는 산타의 계약자가 만들어내는 마수에요.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죠. 뭐, 마수조차도 본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이니까.”
주환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의 교환을 보면, 길드 마스터에게는 다양하게 알려진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산타의 계약자라는 건 뭡니까?”
“아, 거기부텁니까.”
길드 마스터가 하하 웃었다. 주환 때문에 매끈해진 머리를 긁는다.
“용사와 산타의 계약자라는 게 있죠. 용사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왕가에서 소환진을 통해 불러오는 존재입니다. 이건 많이들 알고 있는데, 음, 얼굴을 보니까 주환 씨는 잘 모르는 것 같군요.”
반면에 산타의 계약자는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산타를 만나 소원을 빌고 산타가 선물을 주면 계약이 성립하는데, 산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는 건 왕족이나 신분이 높은 귀족들이었다.
길드 마스터는 주환이 산타의 계약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굳이 당신이 계약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소녀를 힐끔 보았다.
“이 아이는 오래전에 이 길드에서 마수 사냥을 하던 남자의 손녀라고 합니다. 루돌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갔더니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뜨고 이 아이 혼자 집에 있더군요.”
루돌프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이야기를 좀 해달라 말하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루돌프의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알려줄 수 없다고.
“솔직히 피곤했어요. 이 애는. 말은 안 하겠다고 하면서 갑자기 나한테 가까이 와서 개처럼 킁킁거리더니 루돌프의 주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길드 마스터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24시간 내내 곁에 붙어 있는 거예요. 개처럼 냄새를 맡으면서 말이죠. 미치겠어요. 볼일 볼 때도, 잘 때도 따라다니면서 냄새를 맡아요. 이젠 정말….”
하아, 하고 숨을 쉬면서, 길드 마스터가 천장을 보았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닙니까. 이렇게 어린애랑 24시간 붙어 있으면.”
그것이 가장 곤란했던 일이라고 말하는 길드 마스터를 보며, 주환은 조금 웃었다. 속으로는 역시,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소녀는 조금 이상하다.
***
모르는 말들이 나온다. 산타니, 계약자니, 루돌프니….
남편은 소녀와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녀가 말했던 그 언어, 뜻은 모르지만 분명히 주환이 가끔 중얼거리는 말과 같은 언어였다.
다른 나라의 귀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지만, 본래는 고귀한 태생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어쨌든 보통 사람은 아닐 거라고.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산타는 신에 가까운 존재다. 그런 존재와 계약을 한 사람이라면, 어중간한 귀족보다 신분은 위가 아닐까. 앞으로 이 남자는 화려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초라한 평민 여자 따위는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무서워졌다. 남편이 훌쩍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위대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 사람은 여기에 있을 신분이 아니라고 말한 뒤 데려갈 것 같았다. 자신처럼 하찮은 여자 곁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소녀가 말할 것처럼 느껴졌다.
무심코 너무 세게 팔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리지, 괜찮아.”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면서, 주환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리지는 숨을 가다듬었다. 남편의 다정한 얼굴을 보자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남자는 부자가 됐다고, 고귀한 신분이 됐다고 그녀를 버릴 사람이 아니다. 괜찮아.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뒤에야 겨우 억지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버림받지 않게, 귀찮은 여자가 되지 않도록, 리지는 입꼬리를 한껏 들어 올렸다.
***
소녀는 그다지 주변 분위기를 살필 줄 모르는 것 같다. 몸을 테이블 위로 내밀어, 거의 그 위에 올라가다시피 하더니, 주환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루돌프는 젠탱글이에요.”
“젠탱글?”
주환이 무심코 묻자, 소녀가 얼굴을 마주치고 방긋 웃었다.
“역시, 그 말을 아는군요. 그 단어는 산타의 계약자였던 사람이 남긴 말이죠.”
산타의 계약자는 소녀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였다고 한다.
“매일 투덜거렸대요. 그 썩을 놈의 산타라든가,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든가.”
그 산타, 모든 사람에게 주환과 비슷한 식으로 약속을 이행한 모양이다. 문득, 소녀의 고조할머니는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궁금해졌다. 주환의 질문에 소녀가 킥킥 웃었다.
“항상 곁에 있으면서 지켜줄 존재라고 말했대요.”
“그래서, 그런 존재는 만났답니까?”
“네. 분명히.”
소녀가 히죽 웃었다.
“산타는 확실하게 약속은 이행해요. 그 방식이 조금 문제일지는 몰라도.”
대화는 정상적으로 하는데, 소녀는 또다시 코를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말하는 중간중간 코에 주름을 잡으며 킁킁거렸다. 주로 주환의 냄새를 맡으려고 했다. 이상한 아이다.
“그래서, 젠탱글은 뭡니까?”
주환의 질문에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젠탱글은 젠탱글이겠죠?”
“루돌프가 젠탱글이라는 의미는.”
“아.”
소녀가 약간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젠탱글이 무슨 뜻이에요?”
이번에는 소녀가 물었다.
주환이 아는 젠탱글은 같은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자, 소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뭐야, 단순히 그림을 말하는 거였어.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인삿말도 없이 나가려고 막 몸을 돌리다, 생각난 것처럼 다시 주환을 향해 몸을 숙였다. 주환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인다.
“붉은 표시가 나타났나요?”
“그래.”
“그거예요. 그게 루돌프의 능력이죠. 몇 번 보면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루돌프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표시가 늘어나요. 젠탱글처럼. 할아버지는 그 능력을 이용해서 마수 사냥을 했죠.”
소녀는 목을 사용하지 않고 속삭였다. 입에서만 작게 소리가 났다. 소리가 너무 작아 리지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을 거다. 주환에게조차 너무 작게 들렸다.
소녀는 훌쩍 몸을 일으키더니 기쁜 듯이 후후 웃었다.
“나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나중에 다시 만나러 올게요.”
젠탱글이라는 단어를 안 게 기뻤던 것 같다. 노래라도 부르는 것처럼 흥겨운 얼굴로, 소녀는 후다닥 복도를 달려나갔다.
길드 마스터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봐, 얘야, 갈 데는 있는 거야? 네 집까지 상당히 거리가 있는데. 이봐.”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소녀가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타닥타닥, 나뭇바닥에 신발 부딪치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아니, 정말 먼데.”
길드 마스터가 걱정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