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0)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80화(80/235)
#080 그 애를 만났어요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오랜만에 마음껏 바람을 느끼며 땅을 박차고 달렸다.
어제의 오늘과 오늘의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그 아이를 만났으니까. 그녀가 말할 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왠지 알 것 같다. 자신이 똑똑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랐어.’
조금 더 귀엽고 예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항상 너무 작고 귀엽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래서 언젠가 만나게 될 그 아이는 보송보송 포근포근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덩치가 컸다. 얼굴은…뭐, 귀엽다고 하지 못할 것도 없나.
‘아!’
어쩌면 그게 그녀의 남편이 말했던 [추억 보정]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귀여운 아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그 덩치 큰 놈이 뭐가 그리 귀엽냐며 웃곤 했었다. 성인보다 덩치 큰 [중학생]이 작고 귀여운 아이일 리가 없잖아, 라고.
중학생이 뭔지 몰랐지만 묻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는 게 싫었다. 그냥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좋았다.
처음 두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얼굴이 매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두 사람의 얼굴에 주름살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억 속에 있는 그들은 매우 젊다. 왜인지 모르지만 처음 만났던 시절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죽을 때의 주름 많은 모습은 일부러 기억해야만 떠올랐다. 조금 더 예쁜 모습이 머릿속에 남는 것 같다.
‘이게 추억 보정인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녀가 말했던 ‘귀여운 아이’가 추억보정, 자신이 떠올리는 젊은 두 사람의 모습도 추억보정. 두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던 걸 자신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니, 굉장히 기쁘다.
“후훗.”
두 사람의 무덤은 얼마 전까지 소녀가 살던 집의 뒤편에 있었다. 길드 마스터라는 사람이 데리러 올 때까지 소녀는 계속 그 집과 무덤에서 살았다.
거기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소녀는 방금 들에서 뽑아온 풀을 훌훌 뿌렸다.
원래는 꽃을 뿌리는 거라고 한다. 국화라는 꽃이라고 들었다. 아니, 뿌리는 게 아니라 그냥 놓는 거였던가. 어쨌든 꽃을 무덤에 주면 된다. 지금 계절에는 꽃을 찾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제일 예뻐 보이는 풀을 가져왔다.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몸을 엎드린다. 이게 절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에게 배웠다.
절을 한 뒤에는 술도 뿌리면 좋겠다고 그녀의 남편이 말했었다. 그녀의 남편이 좋아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술은 비싸다. 소녀가 가진 돈으로는 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남긴 가죽 포대에 호수의 물을 담아왔다.
두 가지를 모두 뿌리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 아이를 만나게 되면 그때 우리 무덤에 뿌려줬으면 해. 그전에는 싫어. 아무것도 하지 마. 만일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아이를 만나지 못하면, 그때는 산타를 찾아가서 반쯤 죽여놓는 거야. 알겠어?]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만났어. 그 애를 만났어요.’
작은 무덤을 보고 말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눈에서 물이 조금 나왔다. 소녀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찍어 물기를 보고 하하 웃었다.
“나, 우네.”
두 사람은 함께 죽었다. 그녀에게 주름이 아주 많이 생기고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에 걸린 거라고 했다. 죽어가고 있다고.
그래서 그녀의 남편이 소녀에게 젠탱글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를 혼자 죽게 하고 싶지 않아. 함께 무덤에 들어가고 싶구나. 나도, 아내도, 고통스럽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어.]그 말을 들은 뒤, 두 사람이 양자로 거둔 아들이 한참 울고, 그 양자의 딸이 또 한참 울었다.
소녀는 울지 않았다. 그때는 우는 게 뭔지 잘 몰랐다. 왜 그렇게 양자인 아들과 그의 딸이 눈에서 물을 쏟아내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부탁받은 대로, 두 사람의 몸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 넣었다. 동그라미, 네모, 세모, 꽃과 별.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걸로 두 사람을 가득 채운다.
그녀가 젠탱글이라고 불렀던 소녀의 무늬는, 두 사람의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잠다듯이 숨이 끊어지게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피부 가득 아름다운 무늬를 품은 채 숨을 거뒀다.
그 뒤, 한참 시간이 지난 나중에야 양자와 그의 딸이 왜 울었는지 알았다. 사람이 무덤 속에 들어가면 더 이상은 말할 수 없게 된다. 죽음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설명을 듣기는 했었지만, 그게 어떤 건지 진짜로 알게 된 건 두 사람이 함께 무덤에 묻히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두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소녀도 슬퍼졌다. 하지만 슬퍼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우는 게 뭔지 배웠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 조금 분하게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도 울 수 있어요. 슬프지 않은데 왜 우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물이 나온다.
“아!”
뒤늦게 소녀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덤에 와서 그 아이를 만났다고 얘기하는 게 너무 급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는 걸 잊어버렸다. 인간은 만나면 이름을 말하는 게 규칙이었는데.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소녀에게 ‘연화’라는 이름을 주었다. 자신들이 죽어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외롭지 말라고 준 이름이다. 연화는 그녀의 이름이라고 했다.
[내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 네가 산타를 만나 한 방 먹일 때도, 내가 두들겨 팬 거랑 같아. 좋지?]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무덤 속으로 들어간 이후부터 상상하는 일이 늘어났다. 두 사람이 했던 말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소녀,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항상 곁에 있으면서 지켜줄 것. 그리고 산타에게 한 방 먹일 것.
물론 그 아이를 만났으니까 안 때려도 되지만, 너무 늦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살아있을 때 그 아이를 만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늦었어. 그녀라면 분명히 한 방 때려줬을 거다.
“….”
연화는 무덤에 대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자주 오지 못해요. 하지만 가끔 올게. 꽃피는 계절이 되면, 꽃을 들고 와요. 술은 돈이 생기면 가져올게요.”
무덤 속에 있는 그녀가 산타에게 소원한 것은, 사랑하는 아들의 항상 곁에 있으면서 지켜줄 존재.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자신이 항상 지켜줄 테니까.
***
비명당근 덕분에 행복해하던 리지의 마음은 이제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원래는 은화가 금화로 변했으니 정말로 행복한 하루가 되었어야 하는데.
주환은 아내의 어깨를 한 손으로 안고 중앙광장을 걸었다. 천천히 맞춰 걷는 걸음이 유달리 느렸다.
비명당근의 소문이 퍼졌는지 가끔 일부러 와서 얼굴을 보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던 도로시도, 사람들이 당근 당근 하면서 쳐다보면 알게 된다.
도로시는 앞주머니 입구를 밑으로 당겨, 오즈의 얼굴을 주머니 밖으로 내놓고 코를 높이 쳐들었다.
점점 코가 높이 올라간다. 이제는 앞에 있는 사람의 시선에 콧구멍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 모습에, 리지가 약간 웃었다.
“겨우 웃네.”
“….”
주환이 어깨를 안은 손에 힘을 주자, 리지가 머리를 기댔다.
“미안해요.”
“뭐가?”
“….”
다시 침울해졌다. 가느다란 작은 몸이 더욱 움츠러든 것 같다.
“리지, 당신이 뭘 불안해하는지 알아.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는 거야. 아까, 내가 산타의 계약자라는 말 들었지? 그건 사실이야. 나는 소원을 빌고 이 나라에 왔어.”
“….”
“뭘 빌었는지 알아?”
“….”
리지의 몸이 약간 굳었다. 어쩌면 강한 마력이나 불 마법사의 힘, 돈,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지금 주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보일 거다.
“내가 바란 건 아내와 아이였어. 바로 당신과 도로시인 거야.”
“어….”
리지가 머리를 떼고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당신과 도로시가 내 소원이야.”
“…정말?”
“그래.”
광장 한복판이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일부러 와서 얼굴을 보는 자들까지 있는데, 리지가 걸음을 멈추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눈물이 쏟아진다.
“어.”
사람들이 지나가며 쳐다보고, 웅성거리며 또 쳐다본다.
주환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손으로 리지의 어깨를 잡았다, 놓았다, 다시 잡았다. 눈물을 닦아주고는 싶은데 얼굴 전체가 눈물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닦으면 얼굴 전체가 구정물이 될 것 같다.
도로시가 허둥지둥 앞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즈 엉덩이 밑을 뒤적이더니, 작은 수건을 꺼냈다.
“아빠, 여기!”
리지가 도로시를 위해 만들어준 것이다. 구석에는 작게 토끼 자수가 놓여 있었다. 비싼 수실이 아니라 바느질할 때 쓰는 평범한 실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도로시가 굉장히 좋아해서 이 수건만큼은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았다. 도로시 자신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보물처럼 가지고만 있었다.
그 소중한 수건을 당장 꺼내줄 만큼, 도로시가 볼 때는 긴급상황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주환에게도 그렇다.
커다란 손에 작은 수건을 들고, 조심조심 리지의 얼굴을 닦는다. 리지가 울면서 웃었다. 이렇게 마음을 놓을 줄 알았다면 진작에 말해줄 걸 그랬다. 조금 미안해졌다.
본래는 쇼핑을 조금 할 예정이었지만 그냥 여관으로 돌아갔다. 리지가 너무 많이 울어서 탈진하는 바람에 돌아다닐 여유가 없었다.
그날 저녁은 여관의 특별 메뉴를 주문했다. 소금과 허브로 맛을 낸 두툼한 고기에, 건더기가 굉장히 많은 스튜, 거친 풍미의 빵을 받았다.
특별 메뉴라고 해서 별것은 아니었다. 단지 양이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많고 싸구려 와인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모더니 도시에서 먹은 것만큼 맛있었다. 도로시도, 리지도 본래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이, 듬뿍 먹었다.
오즈도 한 사람 몫의 두툼한 고기를 받았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면서 조금씩 먹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고기가 사라졌다.
“대단해, 오즈! 끝장이다.”
도로시는 기뻐했지만, 리지는 고민스러워했다. 앞으로의 식비가 걱정인 것 같다.
두 사람의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웃었더니, 둘 다 약간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보니 피가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주환과 함께 세 사람이 서로 닮아지는 걸까. 기분이 묘해졌다.
도로시가 잠이 든 뒤에는 부부만의 시간이다. 은은한 등잔불 밑에서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리지의 모습이 귀여웠다. 여러 번 피부를 거듭해왔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
이것도 산타의 선물 중 하나일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 그다음 날이, 좋아한다고 깨달았던 순간보다 그 이후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사랑스럽다.
모래시계의 가루가 조금씩 밑으로 흘러 넓은 모래사장에 쌓이는 것처럼, 감정이 깊어져간다.
사랑스러움이 뭉클 솟아올라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사랑해.”
속삭이면, 어두운 등잔불 밑에서도 알 정도로 리지의 몸 전체가 붉어졌다.
어릴 때부터 일을 해온 리지의 손은 조금 거칠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드라웠다. 가볍게 씹고 맛을 보면 달콤한 목소리로 그녀가 울었다. 오늘따라 그녀의 목소리가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
붉은검은 비명당근을 판 날, 무기상에서 카람빗을 주문했다고 들었다. 처음 방문할 때 주환과 함께 갔기 때문에 약간의 할인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 제작된 게 없어서 5일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며 세 명 모두 조바심을 냈다.
주환은 몇 가지 의뢰를 더 받았다. 인원수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붉은검과는 별도로 일을 하기로 했다. 붉은검은 약초채취를 계속할 모양이다.
주환은 앞으로도 마차로 여행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마차 수리를 보조하는 일을 며칠 했다.
지구에서처럼 고장 났다고 어딘가에 전화하면 차를 끌고 가주는 서비스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식 수리야 맡기면 되지만 길 가다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응급처치는 스스로 해야 한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건드리는 만물상처럼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게도 만들고, 먹을 건 스스로 사냥하고, 고기와 털을 나누고, 마차를 수리하고…. 나날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나도 꽤나 이 세상에 익숙해진 건데.’
왠지 좋은 남편이 된 것 같아서 약간 뿌듯했다.
주환이 마차 수리를 보조하는 동안, 리지는 도로시를 데리고 중고 옷 수선하는 일을 했다.
마침 하급 귀족의 옷을 대량으로 매입한 상인에게서 길드로 의뢰가 들어왔다고 한다. 제법 수입이 괜찮은 일이라고 들었다. 바느질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모험가가 아닌 마을 여자들에게 의뢰가 돌아갔다.
길드에는 이런 때를 위한 가짜 모험가 명의가 몇 개 있는 모양이다. 길드 명의의 모험가가 일을 받아서, 다시 여자들을 고용해 시키는 형태였다. 결국 길드가 직접 마을 여자들을 고용하는 셈이다.
모험가 마을의 여자들 상당수가 그 의뢰에 달라붙었다. 드물게 생기는 부수업이라 마을 여자들의 기세가 엄청났다.
바느질도 상당한 노동이다. 굳이 리지까지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리지의 의욕도 대단했다.
바느질 일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배당되었다. 여자들 몇 명이 모여 바느질하면서 수다도 떨기 때문에 즐거운 모양이다.
도로시는 어른들이 바느질하는 동안 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바늘과 실, 작은 옷감을 가져오거나 여자들의 어깨를 주물렀다고 들었다. 도로시의 임금은 손바닥만 한 인형 두 개와 약간의 조각 원단이었다.
오즈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왜인지 예쁜 망토를 얻어왔다. 작은 토끼가 망토를 입고 있는 모습은 귀여웠다.
귀엽다고 리지와 함께 몇 번 말하며 쳐다봤더니, 도로시가 약간 분해하고 있었다.
“도로시도 망토 입으면 귀여운데.”
반면에 오즈는 망토가 어색한 모양이었다. 망토를 입혀놓자 움직이지도 않고 얼음이 된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있었다.
결국 리지가 벗겨주었다. 그 뒤로 다시 망토를 근처에 가져가면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
마차 수리도, 중고 옷 수선도, 모험가 마을 안에서 하는 일이었다. 해지기 전에 일이 끝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붉은검과 만나 모험가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묻거나 들었다.
붉은검은 그때마다 몇 개씩, 문득문득 생각난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중에는 창관에 관한 것도 있었다. 여자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것도 난처해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길드의 대독하는 여자로부터 문자 수업을 받았다.
깊은 사정은 모르지만, 대독자는 귀족 집안의 여식이었던 것 같다. 행동도, 말씨도 어릴 때부터 나름대로의 교육을 받은 티가 났다.
리지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보고, 혼자가 되면 몰래 따라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손가락으로 물건 집어 올리는 시늉을 하고, 안녕하세요 저는 리지, 라는 식으로 억양을 흉내 내어 자기소개를 하거나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는 포즈를 잡아본다. 꼭 소꿉놀이하는 아이처럼 보였다.
어쩌면 대독자의 행동이 아름다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주환이 볼 때는 그냥 리지가 밝게 웃는 모습이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다.
은근슬쩍 그렇게 말했더니, 자신의 행동을 들켰다는 걸 알고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리지, 내가 볼 때는 그런 걸 따라 하지 않아도, 정말 당신이 더 아름다워. 귀엽고 사랑스럽고.”
“…주환 당신은 참.”
살짝 눈을 흘기면서 피식 웃는다. 진심으로 말한 건데, 리지는 입에 발린 칭찬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왜인지 루돌프에 대해 말해주었던 소녀가 이 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것 같다. 어디에서 사는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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