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1)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81화(81/235)
#081 남은 것은 하나 뿐
어디에선가 닭 우는소리가 들렸다. 리지는 반짝 눈을 떴다. 사방은 캄캄하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다.
주환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몸을 일으키자, 다리에 뭔가가 닿았다. 더듬더듬 손으로 만져보자 아이였다. 분명히 다른 침대에서 잠들었던 도로시가 바로 발밑에 있었다.
‘정말, 자면 깨어나지도 못하는 애가 어떻게….’
설마 데굴데굴 굴러서 이 침대로 온 것은 아닐 텐데, 이상한 일이다. 등잔불을 켠 뒤, 아이 침대에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곧바로 식사 준비를 한다. 여관에 전날 저녁에 미리 부탁해둔 스튜를 받고, 시장에서 사 온 야채와 와인을 준비하면 끝이었다.
그 무렵이면 항상 주환이 깨어난다.
“리지.”
“일어났어요?”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느릿하게 주환이 일어서 허공으로 팔을 쭉 뻗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늘어났다.
주환의 몸은 보통의 남자들과 다르다. 근육이 붙어 있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남자의 울퉁불퉁한 근육 따위,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주환의 것은 달랐다. 보고 있으면 눈이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자꾸만 보게 된다.
몰래 훔쳐보고 있었지만 들킨 것 같다. 주환이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공연히 벽에 걸어둔 빨래를 확인하는 척했다. 빨래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어젯밤에 널었으니 당연하다. 주환도 그걸 알고 있는 듯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
이전에는 이런 시간에 식사하는 일이 없었지만, 주환은 아침과 정오 무렵, 그리고 저녁에 꼬박꼬박 식사를 했다.
가만히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원래부터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것 같다.
가끔 어떤 곳에서 온 건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곳이 이 나라와 동떨어진 곳일수록 남편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안 그래도 산타의 계약자라 저만큼 먼 하늘 위에 있는 사람인데,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게 싫었다.
식사 외에도, 주환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항상 사놓았다. 건포도 같은 말린 과일이 가장 많은데, 그런 건 대부분 비싸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밥도 아닌 곳에 써도 되는 걸까 싶어, 가끔 마음이 불안해졌다. 리지가 살던 마을에서 이런 데에 돈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부자인 촌장조차도 밥 아닌 말린 과일을 그냥 시시때때로 먹기 위해서 사놓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그런 비싼 걸 주환은 자신이 먹으려는 것도 아니다. 주로 그녀나 도로시에게 먹게 했다. 한 입 달콤한 걸 입에 넣고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지면, 그걸 보고 기뻐하는 거다. 정말 이상한 사람.
지금도 주환은 까만 건포도를 몇 개 집어 그녀의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두꺼운 손가락과 함께 건포도가 들어온다. 짭짤한 맛과 달콤함이 함께 느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지켜보는 주환 앞에서, 또다시 달콤함에 표정이 무너졌다. 도로시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싫지만, 그래도 달콤한 걸 혀끝으로 맛보면 입술 끝이 올라갔다. 맛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문득 주환을 보니 또 그가 웃고 있었다.
아이가 아닌데, 이 사람은 자신을 어린 여자애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왠지 그게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어 살짝 눈을 흘기자,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아이 취급이다. 자기도 모르게 입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런 교환을 거치고 아침식사를 모두 끝마치면, 그 뒤에는 길드로 향하거나 일을 하러 간다. 오늘은 길드로 가야 한다. 주환도, 자신도 의뢰를 받아 하던 일이 모두 끝났다. 새로운 의뢰를 찾아야 한다.
주환이 팔다리를 이상한 모습으로 뻗고 자는 도로시를 반쯤 일으켰다. 리지가 거기에 달라붙어 아이 옷을 입힌다.
아이의 팔이 흐느적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주환이 리지를 위해 아이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아이 몸에 하나씩 옷이 더해졌다.
마지막으로 도톰한 코트에 털모자까지 씌우면 끝이다. 도로시가 반쯤 눈을 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주환이 웃으면서 아이를 안아 올리자, 오즈가 폴짝 그 위로 뛰어올랐다. 이 마을에 다시 온 뒤로 매일 이어지는 일상이다.
불과 작년만 해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런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낯설고 난폭한 사냥꾼에게 팔려간 초라한 여자가 이렇게 행복해질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 무서울 정도였다.
남편과 나란히 여관을 나서며, 리지는 주환의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끼었다. 한데 조금 이상하다. 평상시보다 여관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무슨 일이지?”
주환이 중얼거리는데, 중고옷 바느질을 하면서 친해진 여자가 광장으로 향하다 리지를 보았다.
“리지! 아이고, 남편분도. 여전히 사이가 좋네요.”
여자가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리지가 주환의 팔짱 낀 손을 빼내자, 이번에는 주환이 그녀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여자가 큰 소리로 다시 웃었다.
“정말, 우리 거시기씨도 댁의 남편을 좀 본받았으면 좋겠네. 썩은 통나무 같은 남자라 평생 다정한 말 한마디 못 들어봤어요.”
여자가 한숨을 쉬더니 리지에게 물었다.
“두 사람도 광장 시장으로 가는 건가요?”
“광장에 시장이 있나요?”
“아, 외지에서 와 몰랐나 보네. 몇 달에 한 번, 근처 마을이 모두 참가하는 장이 서죠. 아주 먼 마을에서도 오기 때문에 상당히 커요. 사람이 모이니까 상인들도 오고, 아주 떠들썩하거든. 이때가 물건이 가장 싸기 때문에 한 번 가보는 게 좋아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시장으로 가버렸다. 사야 할 물건이 있는데 이날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리지의 시선이 저절로 광장 쪽을 향했다. 마을의 가게도 괜찮지만, 큰 시장이라는 것을 약간 동경하고 있었다. 가보고 싶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간 바로 위 언니는 나름 부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가난하기 그지없는 살림이지만, 가끔 만나 이야기를 듣는 언니의 생활은 리지에게 엄청난 부자로 들렸다.
그 언니가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큰 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농작물 중에서 세금으로 내는 걸 제외한 일부를 큰 시장에 판다고 했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옷감이나 예쁜 장식품을 선물 받는다고, 언니는 자랑이 대단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귀하게 대접받는지를 끊임없이 되풀이해 말하곤 했다. 실제로 언니가 내밀어 자랑하는 물건은 리지의 눈에 너무도 예뻐 보였다.
마음이 들떠 안절부절못하자, 주환이 웃으며 구경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길드에 가서 새로운 의뢰를 찾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은 했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시장에 가볼까?”
“길드는요?”
“그거야 나중에 해도 되고, 내일 가봐도 되잖아. 이제 우리가 편한 시간에 일을 하면 돼.”
그러고 보니 그렇다. 붉은검의 지도 기간은 끝났다. 지금도 이것저것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듣고는 있지만 더 이상 함께 다닐 필요는 없어졌다.
“오늘은 당신이 하고 싶은 만큼 즐겁게 보내, 리지.”
“…응, 고마워요.”
주환과 나란히 걸어가는데, 바느질 일을 하면서 친해진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여자들과 인사를 하다 함께 돌아다니면 어떠느냐는 이야기가 되었다.
살짝 주환을 보자,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혼자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주환의 말에, 여자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걱정이 지나치다고 말한다. 아이도 아닌데 다 큰 여자를 뭐 그리 걱정하느냐고.
리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주환은 항상 너무 걱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묘하게 그것이 기뻤다. 그녀는 항상 걱정되는 쪽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있어도 없어도 아무 상관 없는, 오히려 입만 축내는 필요 없는 인간 취급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주환이 걱정해 줄 때마다 소중한 인간이 된 느낌이 들었다.
도로시가 눈을 떴기 때문에 자신이 데리고 있을까 물었지만, 홀가분하게 다른 사람들과 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로시도 그 말에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아빠 목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오즈를 데리고 다녀. 도로시, 엄마를 지켜주도록 잠시 오즈에게 부탁해도 될까?”
주환이 도로시에게 묻는다. 뭘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도로시도 흔쾌히 좋다고 해서 오즈를 안고 다니게 되었다.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 뒤에는 여자들과 돌아다니며 물건을 보았다. 농작물을 파는 사람, 집에서 만든 대나무 바구니를 파는 사람, 야채 절임이나 집에서 직접 짜다 남은 원단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행상인도 여러 명 와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부터 예쁜 돌을 깎아 만든 목걸이와 팔찌까지, 물건도 다양했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난생처음 보는 물건도 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한참 수다를 떨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게 부인이 좋은 걸까?”
주환을 말하는 거다. 얼굴이 빨개지자, 다른 여자도 그래 그래, 하며 말을 덧붙였다.
“정말 부러워 죽겠어.”
“그러게.”
“마법사라 돈도 잘 벌잖아. 벌써 2급이라며?”
“소문이 자자해.”
“여관집 말을 들어보니까 뭐, 공주님보다 떠받들어준다며?”
“우리 남편은 공주는커녕 내가 무슨 노예인 줄 아는데 말이야.”
“뭐, 다 비슷하지. 가끔은 때려죽이고 싶다니까.”
부럽다는 말은 금세 푸념으로 변했다. 그래도 이 마을에 사는 여자들의 남편들은 괜찮은 편이다. 외부인이 거의 없는 지방의 마을은 굉장히 심한 편이었다. 리지가 사는 곳도, 지금에 와서 보면 여자의 처지가 정말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물건을 구경한다. 여자들은 근처에서 각자 관심이 있는 물건을 보고 있었다. 리지도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물건을 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 곳에 시선이 갔다.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가 수레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곡식이 든 포대자루가 바닥에 하나씩 쌓인다. 상당히 무거울 텐데, 여자도 짐을 내린다. 익숙한지 요령껏 물건을 다루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굉장히 지쳐 있었다. 리지보다 십 년, 이십 년은 나이 들어 보였다.
수레에는 집에서 베틀로 짠 거친 원단도 약간 있었다. 필시 여자가 짠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베틀을 잘 다루었다. 리지가 서툰 만큼, 그녀가 원단을 잘 짜는 건 더욱 눈에 띄었다.
‘언니.’
늙은 남자에게 후처로 시집간 바로 위의 언니였다.
***
딸 중에서 가장 시집을 잘 간 것은 막냇동생이다. 열여섯 살에 비슷한 나이의 남자에게 시집갔다.
그 남자에게 따로 재산은 없었지만, 대신 기술이 있었다. 막냇동생의 남편은 어릴 때부터 목수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언젠가는 독립할 테고, 그때쯤 되면 상당한 돈을 벌게 된다.
반면에 그녀는 나이 든 남자의 후처로 들어갔다. 남편의 자식들이 자신과 비슷한 나이였다. 마을에서는 상당한 부자였지만, 그래도 나이차가 너무 크다. 자존심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한다고 칭찬을 들어왔는데, 코 찔찔 흘리는 걸 보아온 막내보다 못한 남자를 만나다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바로 밑의 동생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허약하고 일을 잘 못하던 동생 리지는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차고 혼기가 되어도 어느 누구도 리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잘못하면 자신도 그렇게 되었을지 모른다. 여자가 남아도는 형편이다. 누구도 나이 먹은 여자를 부인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역시, 자신은 시집을 잘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지를 만날 때마다 흩어진 자존심이 다시 자리를 잡고 온전해졌다.
나이 많은 남편은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손을 올렸다. 때린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나이 어린 부인을 귀여워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남편의 자식들, 의붓아들들은 나이 어린 새엄마를 우습게 여겼다. 하지만 역시, 남들 앞에서는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마음이 조각날 것 같으면 몰래 동생을 만나러 갔다.
남편이 남들에게 보이려고 사준 싸구려 팔찌와 원단을 리지에게 자랑하고, 남편이 다정하다고 실컷 거짓말을 하고 나면,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리지가 자신을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은밀하게 기쁨이 자랐다. 처지가 이렇게 되었어도, 아직 시집가지 못한 동생보다는 나은 거라고 마음이 속삭였다.
동생이 다 떨어진 토끼털 한 장에 팔려갔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뒤에는 약간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 사냥꾼에 대해서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행상인의 이야기를 듣고 딸 가진 누군가가 여기저기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부인을 때려죽였다는 걸 알고, 아무도 딸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만이 덥석 그 건을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곡식 포대를 내려놓다 말고 멍하니 여자를 보았다.
분명히 동생 리지였다.
하지만 리지가 아닌 것 같아.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지금쯤 남편에게 맞으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 동생이 어째서 저렇게 비싸고 예쁜 옷을 입고, 환한 얼굴로 저기에 서 있는 거지?
예전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었다. 푸석하던 피부에는 윤기가 돌고, 예전부터 크기만 했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얀 피부가 꼭 우유를 바르고 있는 것처럼 촉촉해 보였다.
입고 있는 옷도, 신고 있는 신발도 분명 비싼 것이다. 어딘가의 귀족 집 아가씨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반면에 자신의 모습은….
그때, 등 뒤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뭘 멍하니 있는 거야!”
남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그녀의 등을 밀었다. 몸이 휘청하며 앞으로 기울었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 때문에 남편도 가식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평상시처럼 거칠게 말하고 행동했다.
리지가 약간 놀란 듯 당황한 듯 그녀에게 다가오려고 한다.
그녀는 홱 고개를 돌렸다. 싫다. 저런 건 동생이 아니야. 윤기 있는 얼굴로 웃고 있는 리지 따위, 모르는 여자다. 그래, 저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뒤늦게 다른 가능성이 생각났다. 가끔 집에서 도망쳐나간 여자가 창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여자가 혼자 있어봤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뻔하다. 어쩌면 리지도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남편이라는 사람은 정말 최악이었을 테니까. 그래, 그런 걸 거다.
‘아직 내 쪽이 더 나아.’
최소한 그녀는 제대로 된 남편과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 아직 저 아이보다는 낫다.
힐끔 리지 쪽을 보자, 자신이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오려고 했던 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겨우 마음의 힘이 되살아났다. 리지가 상처를 입은 만큼 자신이 복구되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덩치가 아주 큰 남자가 빠른 속도로 리지에게 다가갔다. 굉장히 크고 무섭게 생긴 남자였다. 저 사람이 창관의 포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 끝이 히죽 올라갔다. 저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있어도, 자신이 훨씬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 큰 남자가 리지에게 몸을 약간 숙이더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묻는 것 같다. 리지가 고개를 흔들자,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남자의 표정이 너무 다정하다.
“….”
리지는 그녀를 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남자가 애지중지하는 동작으로 리지의 어깨를 안고, 달래는 것처럼 뭔가 말했다.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리지의 일행이었던 모양이다. 여자들이 리지와 남자를 향해 정말 사랑받네, 라든가, 매일 보는 얼굴인데 뭐가 그리 좋아요, 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리지와 남자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왜 이렇게 됐지. 저 남자는 누구? 설마 행상인이 말했던 사냥꾼인가.
멍하니 리지와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등 뒤에서 남편의 손이 날아왔다. 머리를 강하게 친다.
“일 안 하고 뭐하고 있는 거야!”
남편의 거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포대자루를 들었다. 자신의 거친 손이 보였다. 얼굴도 분명히 그렇겠지. 지금의 그녀는 리지보다 열 살, 스무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일 거다.
‘겨우 한 살 차이가 날 뿐인데.’
눈물이 뚝 손등으로 떨어졌다. 남편이 그걸 보고 더욱 거칠게 윽박질렀다.
“재수 없게 왜 울고 지X이야.”
“….”
사람은 타인을 보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알게 된다. 이제 리지는 예전의 자신처럼 그녀를 보고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되는 걸까.
***
언니가 가끔 찾아와 해주는 말들은 리지에게는 미래를 꿈꾸게 하는 마법 같은 것이었다.
먼 땅의 귀족이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자란 자매의 실제 생활이다. 언니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똑같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은 언니의 속마음을 짐작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하지만 아니었어.’
눈이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오래전, 언니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리지의 눈에서 부러움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했던 말이었을 뿐이다.
자신에게 약간의 정이나마 걸어주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집에서 유일한 보물이었던 기억은 가짜였던 거다. 자신이 태어나 살아왔던 집에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괜찮아, 리지. 내가 있어.”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다정한 말을 부어주는 남편의 목소리가 유난히 마음을 울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남편과 도로시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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