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3)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83화(83/235)
#083 남자의 질투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마을을 보아왔다. 대체로 초라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처럼 처참해진 꼴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이곳에도 울타리는 있었지만, 반 이상 부서지거나 소실된 상태였다. 이런 걸로는 도적은커녕 짐승도 막기 어렵다.
‘아무리 가난한 마을도 이 정도까지 놔두지는 않을 텐데.’
울타리가 소실되면, 하다못해 대나무라도 끊어다 허술하게 막아두는 게 보통이다. 한데 이 마을에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왠지 이상하다.
마을 입구의 문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문과 울타리의 결합 부분 위쪽이 부서져,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닫지도 열지도 못해 그냥 놔둔 모양이다.
리지가 천천히 마차를 몰아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도 마을의 참상에 놀란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간 움츠러든 어깨가 대신 그녀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아빠.”
마부석으로 나 있는 구멍으로 바깥을 쳐다보던 도로시가 작은 소리로 주환을 불렀다. 아이 눈에도 주환과 리지의 분위기가 뭔가 달라 보였던 모양이다. 불안한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마부석으로 작은 손을 내밀었다.
‘아.’
실수했다. 아이는 다른 것보다 부모의 표정에 민감하다. 부모가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이면, 그제야 아이는 주변의 것이 위험하고 무섭다고 느끼는 법이다. 알고 있었는데 배려가 모라랐다.
도로시의 손을 잡고, 주환은 부드럽게 웃었다.
주환이 웃는 것을 보고서 겨우 안심이 된 모양이다. 도로시가 후, 숨을 쉬더니 주머니 안에 있는 오즈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 오즈. 무섭지 않은 거야. 이건 그냥 마을이거든.”
“….”
무서웠구나. 나름 언니라고, 오즈에게 허세를 부리는 도로시를 향해 리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도로시가 자신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빙긋 웃었다.
“도로시, 건포도를 먹어도 되니까 오즈랑 마차 안쪽에서 놀고 있어.”
“정말? 밥 먹기 전인데 그래도 돼? 엄마가 항상 밥 먹은 뒤에 먹으라고 했는데.”
“오늘은 점심이 조금 늦을 것 같아. 그러니까야.”
“네!”
리지는 도로시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살그머니 주변을 보았다.
“이 마을은 특히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밥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일 것 같다는 말이다. 자신도 한때 굶주렸기 때문인지, 약간 동정적인 말투였다.
확실히, 이런 몰골을 보면 마을 사정은 뻔할 거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리지와 달리 주환의 마음은 단번에 경계로 바뀌어 있었다. 마수뿐 아니라 마을 사람의 약탈도 염두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설마하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는 해도, 사람은 극한 상황에 빠지면 뭘 어떻게 할지 알 수 없다. 평상시에는 손에 대는 것조차 혐오하는 사람도, 바다에서 조난당하면 자신의 소변을 받아먹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우선인 거다. 선악과 수치 따위는 자신의 생명 앞에 아무 의미도 없다.
덜그럭 소리를 내며 마차가 지나가던 중, 주환의 시선이 문득 바닥을 향했다. 도로 옆쪽으로 거무죽죽한 자국이 있었다. 가장자리에 검붉은 빛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핏자국인가.’
며칠 내의 것은 아니다. 아마 더 오래된 자국일 것이다. 흔적의 넓이를 보면 상당히 피가 많이 흐른 것 같다. 그걸 확인한 뒤 다시 주변을 살펴보자, 핏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드문드문 있었다.
‘약탈의 흔적….’
길드 마스터가 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국경 쪽에는 약탈이 가끔 일어난다고 했다. 지금은 아니라도 이 마을 역시 약탈당한 적이 있는지 모른다.
조금 더 들어가자, 주환의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문이나 창이 부서진 집이 몇 채 보였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꼭 영화 속 유령 마을에 들어온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겨울밭과, 외로이 서 있는 집 몇 채를 지나 더욱 안쪽으로 향한다. 여러 채 집이 모여있는 곳에 가까워지자 겨우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이제 스물쯤 되었을까. 상당히 젊은 남자다. 활과 화살은 없었지만 전형적인 사냥꾼 차림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마차를 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힐끔 리지 쪽을 본다. 리지의 얼굴을 확인한 남자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남자의 눈에서 호의를 읽고, 주환의 마음이 약간 찌푸려졌다.
남자는 젊고 청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미남은 아니지만 나이에 맞는 싱싱한 젊은이라는 느낌이었다. 자신처럼 무섭고 험악한 외모가 아니다. 나이도 주환 자신보다는 리지에 더 가깝다.
주환은 힐끔 리지를 보았다.
“….”
혹시 리지가 남자의 시선을 눈치채고 얼굴을 붉히는 건 아닐까. 남자의 호의에 조금이나마 기뻐하지는 않는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리지는 남자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예 남자의 얼굴을 봐주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마을사람1 취급이었다. 안심이 된다.
‘나, 의외로 마음이 좁구나.’
지구에서는 이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여자에게 집착한다는 것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세계에 온 뒤로는 리지가 남자에게 그런 시선을 받지 않았다. 어쩌다 집적거리는 놈은 있었어도, 이 남자처럼 순수하게 남녀의 호의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갸름한 얼굴도, 커다란 눈동자도, 가느다란 손목과 발목, 하얀 피부도, 주환의 눈에는 처음부터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지만, 아마 이 시대의 미의 기준이 조금 다르거나, 리지가 마르고 초췌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얼굴이라도 피부가 고와지면, 그걸로도 인상은 확 바뀐다. 지금은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면서 리지의 몸 전체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도 당연하지.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지금의 리지는 막 피기 시작한 꽃이다.
“….”
편협한 남자는 흉하다. 기분이 약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놈은 왜 유부녀한테 관심을 주는 거야. 자신의 편협한 질투보다는 저 남자가 이상한 게 아닌가.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남자는 괜히 혼자서 얼굴만 붉히다 주환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리지에게 신경을 쓰면서, 남자가 마차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까지 보았다.
“이곳은 지금 일반인이 올만한 장소가 아닙니다. 위험한 마수가 나오고 있어요. 국경으로 가고 있는 거라면 돌아가는 게 좋아요.”
짐이 많은 걸 보고 여행객이거나 국경으로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길드 마스터가 말한 마수 사냥꾼이 이 남자일까. 설마,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젊다.
힐끔 리지를 보면서 남자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저렇게 귀여운 아가씨가 올 곳이 못됩니다.”
아, 하고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이 남자는 리지가 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동생이나, 어쩌면 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는 혼인하는 나이가 이르다. 서른쯤 된 남자에게도 십 대 딸이 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어쩌면 주환을 마흔쯤으로, 리지는 십 대 정도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얼굴을 붉히고 슬금슬금 쳐다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리지한테 라면 모를까, 남자한테도 아저씨 취급을 당한 건가. 기분이 점점 더 바닥을 긴다.
리지가 몸을 바로 세우고 남자를 보았다.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이 사람 부인입니다. 아가씨가 아니에요.”
아가씨 같다는 말을 들으면 여자는 모두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지는 다른 모양이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정말, 자신은 속이 좁은 남자로구나, 하고 기분이 또 떨어졌다.
“우리는 마수 사냥을 보조하기 위한 모험가에요. 모험가 마을이라고 아십니까? 거기에서 의뢰를 받았습니다.”
주환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바뀌었다.
“아, 보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내려보는 얼굴이다.
주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업종에서 이런 사람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오랫동안 한 가지 길을 걸어온 사람은 고집이 있을지언정 이런 식으로 타인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무시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풋내기한테서 많이 보이는 경향이다. 아직 경험이 적고 어려서 그런 것이다.
주환은 상대방이 미숙하니까, 하고 넘겼지만, 리지는 화가 난 것 같다.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가고 입술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리지도 아직 어린 모험가 풋내기였다.
“경험 많은 마수 사냥꾼이 일을 맡았다고 하던데, 본인이십니까?”
“아니, 그건 우리 스승님이죠. 우리 스승님은 우리 영지에서는 가장 뛰어난 마수 사냥꾼 중 한 명입니다. 뭐, 우리 스승님 성함은 들어본 적이 있으려나. 사냥꾼 그웬이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젊은 남자의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힐끔 리지의 얼굴을 훔쳐보는 얼굴이 자랑스럽다.
주환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모릅니다.”
“흠.”
젊은 남자의 어깨가 약간 처진 것 같다. 한껏 자랑하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모른다고 하니까 흥이 깨진 걸까. 아마도 우와, 하고 놀라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뽐내는 표정은 여전했다.
“뭐, 변방 마을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죠. 모험가 중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모험가 마을은 외진 곳이잖아요? 마수 사냥꾼 그웬이라고 하면, 모도니 도시에서는 레너드 씨의 이름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죠.”
몰랐는데 레너드가 상당히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마수 사냥꾼으로 유명한 건지, 상인으로 유명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가 가슴을 내밀면서 말했다.
“나는 그분의 유일한 수제자, 잭입니다. 스승님은 한 번도 제자를 둔 적이 없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예요.”
“우리 아빠도 유명해요. 마법사야!”
마차 안쪽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던 도로시가 마부석 구멍에 코를 빼꼼히 내밀면서 말했다. 리지도 흥, 하는 얼굴이 되어 있다.
“뭐, 마법을 조금 쓰나 보군요. 하지만 길드의 마법사라고 해봐야 다들 비슷하죠. 3급쯤 되어야 겨우 사용할 만한 마법이 나오는데….”
잭이 힐끔 주환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마법보다는 몸을 쓰는 것 같은데, 한 4급쯤 됩니까?”
“우리 남편은 2급 모험가예요. 불 마법과 치유 마법을 쓰죠.”
리지가 잭을 흉내 내 약간 깔보는 눈을 한다. 잭의 눈이 둥글게 떠진 걸 보고, 그녀가 비웃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런 걸로 경쟁해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까. 남자를 풋내기라고 속으로 비웃었더니, 자신의 아내가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이거 웃지 못하겠는데.’
하지만 리지의 행동은 귀여웠다. 그를 위해 화내고, 그를 자랑하는 거다. 그런 게 귀엽지 않을 도리가 없지. 가슴속이 간질간질해졌다.
잭이 약간 분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주환은 입을 열었다.
“그웬 씨는 어디 있습니까?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 만나보고 싶은데요.”
“스승님은 마수의 흔적을 쫓아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그제 도착했다고 한다. 어두워질 무렵 마을에 들어왔는데, 마침 마수가 마을의 아이를 물고 간 직후였다.
“마수가 아이를 물고 가기 5일 전에도 내려와서 한 명 끌고 갔다고 하더군요. 스승님은 아이가 하루 이틀 정도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어제 날이 밝자마자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돕는 사람 없이 혼자 들어갔습니까?”
“….”
잭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마 같이 가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당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만일 그웬이 혼자서도 충분히 마수를 잡을 수 있었다면 레너드나 길드 마스터가 굳이 주환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웬 씨는 아이를 구하러 들어간다고 말했습니까?”
잭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주환을 보았다.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이다.
“아이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으니까, 그렇겠지요.”
“….”
어쩌면 그건 단순한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짐승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먹이를 입에 물고 있다면, 그 흔적을 찾는 것은 조금 쉬울 거다.
추측이지만, 그웬이라는 사냥꾼은 아이를 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불쌍하게 여겼을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애를 데려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
‘아마, 서둘러 들어간 건 단순히 흔적을 놓치기 전에 따라잡기 위한 거였을 거야.’
만일 거스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주환은 한숨을 조금 토하고 잭을 보았다.
“마수가 마을에 내려오는 빈도는 4,5일에 한 번 정도겠군요.”
“그래요.”
다시 한번 무거운 숨이 내려왔다. 마수가 계속 마을에 집착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면, 미끼는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의도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다.
그웬이라는 사냥꾼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서둘러 마수를 따라나섰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마을 사람이 미끼가 되지 않았으면 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놈의 둥지를 찾아야 하니까.
잭과 이야기하고 있는 중에 중년 정도로 보이는 마을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얼굴이 불안과 피곤함으로 찌들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
먼저 있던 촌장이 얼마 전에 죽고, 아들이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이전의 촌장은 작년 가을, 적군의 약탈병이 쏜 화살에 맞았다.
약탈에 마수의 습격까지 연이어 생기는 통에 마을은 그야말로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라고, 촌장이 우는 소리를 했다.
“정말 정말 모험가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내놓을 것이 없어요.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버겁습니다, 나으리.”
길게 마을 상황을 설명한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한 것 같다.
길드에서는, 이번 마수 토벌의 비용이 모두 영주에게 청구된다고 했다. 마을이 부담하는 건 기껏해야 모험가들이 머물 집과 음식뿐이었다. 하지만 촌장은 그나마도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은 모두 챙겨왔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촌장이 머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머물 숙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웬만한 집보다는 마차가 훨씬 낫다.
촌장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한다.
마수가 두려워서인지, 집에 숨어서 밖을 내다보는 몇몇 사람의 얼굴이 작은 창문 너머로 보였다. 하나같이 모두 수척한 얼굴들이었다. 참으로 이 세상은 살기 어려운 곳이구나. 주환의 입에서 다시 한번 작게 한숨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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