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6)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86화(86/235)
#086 오르토스, 머리 둘 달린 개(외전;인생은 항상 잔인하다 / 삽화;오르토스)
막 불의 마력을 쏘려던 주환의 손이 주춤했다. 지금 오르토스의 주변에 불을 일으키면 여자는 죽는다.
멀리 어둠을 주시하자, 여자의 손이 반짝 빛을 발했다. 칼을 들고 있었다. 그 칼로 마수를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거다. 죽으려는 거구나, 알았다.
작은 숨이 샌다. 분명히 가족을 잃은 사람일 거다. 마음이 뭉클, 아파졌다.
가족이 없어지는 괴로움은 누구보다 주환 자신이 잘 안다. 그냥 죽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마수에게 물려갔다면, 그야 죽고 싶어지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주환은 마음을 정하고 횃불에 마력을 담았다. 때로는 죽음이 자비일 수도 있다.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그의 손에 잡힌 횃불이 거대한 빛을 일으켰다.
그 불의 마력을 막 던지려는데, 마수 사냥꾼의 제자 잭이 소리치며 여자에게로 달려갔다.
“무슨 짓이야!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말 못 들었어요?”
잭이 마구 화를 내며 여자의 바로 뒤까지 쫓아갔다. 오르토스와 가깝다.
‘빌어먹을.’
주환의 눈썹에 힘이 담겼다. 저 남자까지 죽게 할 수는 없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주환은 힐끔 곁에 있는 오즈에게 시선을 보냈다.
“오즈, 부탁한다.”
리지와 도로시 곁에서 떠나지 말라는 의미로 한마디 던지고, 주환은 횃불을 버렸다. 그대로 오르토스를 향해 내달린다.
오르토스와 어떤 식으로 싸우든, 이쪽에 접근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놈과 싸운다면 장소는 최대한 마차에서 먼 곳이야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자신이 나가서 싸운다.
주환이 오르토스를 향해 달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잭은 여자를 붙잡으며 소리치고 싸우고 화를 냈다.
“놔! 놓으라구요!”
“미쳤어요? 당장 이리 와요.”
“당신이 뭔데 상관이야!”
“내 눈앞에서 마수가 또 사람을 죽이는 꼴을 볼 줄 알아! 이 썩어빠진 여편네야!”
잭이 여자의 배에 주먹을 넣었다. 여자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칼을 놓쳤다.
“우리 부모님이 잡아먹힌 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당신이 죽으면 그 가족은 어떻게 돼. 자기 피붙이가 눈앞에서 먹히는 장면을 본 가족이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게 되는지 당신이 아냐구!”
잭이 소리치며 여자를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 냅다 달린다.
“마수한테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마수 사냥꾼이 된 거야!”
잭이 외치는 소리가 어둠 속을 울려 퍼졌다.
사람마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이 세상에 사는 불행한 사람에 비하면, 주환 자신이 지구에서 겪었던 일은 하찮은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세상의 불쌍한 사람 중에서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치밀어 올랐던 화가 갈 곳을 잃고 제풀에 꺾였다. 어쩔 수 없지.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는가.
다행히 오르토스는 잭과 여자에게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주환만을 바라본다. 마력을 탐내는 놈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희번덕 빛났다.
가까이 가자, 그림자로만 보이던 오르토스의 몸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크다. 일반적인 개의 몸집이 아니었다. 다리는 짧은데, 오르토스의 머리 높이가 거의 주환 어깨에 가까웠다.
근육질의 몸이 주환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선다. 네 개의 커다란 발톱이 바닥을 움켜쥐었다. 탱탱하게 힘을 받은 다리의 근육이 지금 당장이라도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를 것처럼 보였다.
오르토스의 몸 전체에서 마력이 새어 나와 주위를 압박한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력은 알 수 없었는데, 놈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공기의 밀도가 높아져 쓰나미처럼 주변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과연, 이 정도쯤 되면 마수 사냥꾼 한둘로는 턱도 없겠다. 길드에서 안달하며 추가로 누군가를 보내려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수 사냥꾼이 적은 이유도 알 것 같다. 이런 놈들을 사냥해야 한다면, 당연히 하겠다는 사람은 적을 거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제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을 테니까.
‘만만치 않겠는데.’
입이 바짝 말랐다. 주환은 몸 전체에 마력을 두르며 놈을 노려보았다.
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있어도 굉장히 짧을 것이다. 어둠 속이라 검은색에 가깝게 보이지만, 밝은 곳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전신이 모두 근육인 것 같다. 단단해 보이는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울룩불룩 튀었다.
몸은 한 개지만, 두 개의 얼굴은 각자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끝이 뾰족한 귀가 한 마리는 바짝 서 있는데, 다른 녀석은 뒤로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생김새는 똑같아도 표정이 서로 다르다. 팔이나 다리와 달리, 두 개의 머리가 완전히 따로 떨어진 개체인 모양이다. 한 몸에 두 마리의 다른 개가 공존하는 것이다.
크르르르, 오르토스가 사나운 소리를 내며 이를 드러냈다. 두 개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른다. 투명한 침이 마치 진득한 본드액처럼 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를 완전히 먹이로 보는 모양이군.’
자기도 모르게 씨익 미소가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의 비장감이 사라지고, 감정이 교만해졌다. 감히 너 따위가, 그런 생각이 몸 전체에 차올랐다.
시간을 되감아, 삶에 대한 분노를 풀기 위해 거리를 떠돌던 고등학교 시절로 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누구든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그대로 때려눕혔다.
‘똑같아. 상대가 인간이든 마수든 상관없다.’
덤비면 상대해 준다. 와라.
주환이 두 발을 펴고 허리를 느슨하게 내리자, 오르토스도 그 뜻을 알아차린 것 같다.
건방진, 그런 말을 할 것 같은 얼굴로 오르토스가 몸을 낮추었다. 놈의 근육이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 팽팽해졌다. 공격하기 직전의 움직임이다.
크르르 크르르, 오르토스의 으르렁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쉴 새 없이 흐른다.
그때 정면을 향한 오르토스 한 마리의 입속이 반짝 빛을 발했다. 혓바닥 깊은 곳에 뭔가 있었다.
그게 뭔지 확인하기 전에, 오르토스의 몸이 훌쩍 허공을 날아 주환에게 달려들었다.
두 개의 머리가 한꺼번에 주환을 물려고 덤빈다. 이쪽저쪽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침을 튕기며 움직였다.
주환은 팔에 불을 둘렀다.
한 놈이 불을 보고 깜짝 놀라 머리를 뒤로 물렸다. 그걸 놓치지 않고 오르토스의 머리를 주먹으로 친다.
쿵, 소리와 함께 머리 하나가 옆으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머리가 왼쪽에서 덤벼왔다. 이놈은 불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둘 중 우두머리가 있다면 아마 이놈일 거다.
불을 두른 주환의 주먹이 다시 한번 허공을 가로질렀다. 살과 뼈를 치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오르토스의 살 타는 냄새가 역하다.
쿠루쿠루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우두머리 오른쪽 머리가 주환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비릿한 입냄새가 공기를 가로질러 풍긴다.
놈의 이빨을 피하는 순간, 다른 머리가 주환의 손을 물어뜯으려 했다. 재빨리 몸을 낮췄지만 날카로운 이빨에 긁히며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주환은 곧바로 반격에 나서, 무릎으로 놈의 목을 올려쳤다. 켁, 목이 막히는 소리를 내면서 오르토스의 눈이 뒤집어졌다.
주환은 매번 몸에 불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으로 칠 때마다 놈의 살이 타들어갔지만, 일부분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새로 생겨나는 도마뱀 꼬리처럼, 놈의 몸은 스스로를 치유해서 복구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안되겠군.’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은 무리다. 작은 충격을 줘봤자 놈을 죽일 수 없다.
주환은 팔에 최대한의 마력을 담아 오르토스를 후려쳤다. 불꽃이 화려하게 튀면서 오르토스의 몸을 밀어냈다.
오르토스의 거구가 휘청하며 옆으로 들렸다. 땅을 움켜쥐고 있던 발이 떨어지는 순간을 노려, 주환은 다시 연달아 놈을 후려쳤다. 불과 바람이 함께 일어나 오르토스를 덮쳤다.
오르토스가 꾸에에, 소리를 지르면서 넘어진다. 주환은 놈의 몸을 뒤집어 꼬리와 다리 한쪽을 잡았다. 몸에 두른 불이 오르토스의 몸을 불태운다.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놈을 꽉 잡는다. 놈의 기다란 발톱이 사정없이 주환의 몸을 긁었다.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송진 숨겨둔 장소로 끌어당기자, 놈의 두 머리가 아우성치며 허공에서 흔들렸다.
놈을 송진 바로 위로 끌어놓은 뒤, 주환은 놈에서 손을 떼고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주환의 손에서 불이 나갔다.
밤공기를 건너 불꽃이 땅에 닿자, 오르토스 주변에서 한꺼번에 불이 올랐다. 환한 불꽃이 오르토스의 몸뚱이를 태우며 밤공기로 치솟아 올랐다.
놀란 오르토스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려고 한다.
주환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끼를 뽑으며 훌쩍 몸을 띄웠다. 그대로 놈의 두 머리 사이로 도끼를 찍는다.
도끼가 Y자로 갈린 놈의 몸에 박혔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날이 피부를 뚫고 근육에 막힌 느낌이었다.
“빌어먹을.”
자신이 송진을 통해 일으킨 불기운이 공기를 뜨겁게 달구며 주환의 전신에 닥쳤다. 몸에 두른 마력 덕분에 화상은 막았지만, 불기운 때문에 피부가 화끈거렸다.
주환은 오르토스의 뒤로 돌아가 꼬리를 잡았다. 두 손으로 힘껏 쥐고 당겨 도망치려는 것은 막았지만, 더 이상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통은 줄 수 있는데 죽일 것 같지 않다.
그때, 밤공기를 가로질러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놈의 몸 어딘가에 마석이 있을 거다. 그걸 파괴해야 돼!”
마석. 주환은 아까 놈의 입속에서 뭔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것이 마석일지 모른다.
주환은 놈의 꼬리를 힘껏 잡아당겨 불속에서 빼냈다. 버둥거리는 오르토스의 비명에 귀가 멀 것 같다.
“아, 젠장.”
주환은 중얼거리면서, 오르토스 오른쪽 머리의 주둥이에 손을 쑥 넣었다.
딱딱한 이빨에 걸려 살점이 갈려 나간다. 피가 쏟아지면서 고통이 밀려와 팔이 얼얼해졌다.
그래도 놓지 않는다.
주환은 오히려 더욱 팔을 놈의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미끌거리는 혀의 감촉을 넘어 손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급해진 모양이다. 오르토스의 몸이 요동치면서 발톱이 주환의 전신을 긁었다.
몸부림치던 오르토스의 발톱이 주환의 눈을 향했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숙였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아, 눈에 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멀리에서 오즈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삐이!”
그 순간, 주환을 물고 있던 오르토스의 이빨에 손톱보다 작은 작은 동그라미가 여러 개 생겼다. 붉은 빛으로 된 무늬다. 크기가 작고 숫자가 많을 뿐, 이전에 오즈가 비명당근에 만든 것과 똑같이 생겼다.
동그라미가 생기자, 오르토스의 몸이 경직되었다. 마치 얼음 땡 놀이라도 한 것 같다.
주환은 재빨리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오르토스의 혓바닥 위에 콩알처럼 작은 돌이 있다. 그걸 마력으로 꾹 누르며 일시에 힘을 준다.
마력이 단번에 마석으로 흘러들어가자, 어느 순간 손끝에서 마석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꾸에에에, 두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비통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오르토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죽었다.
간신히 그걸 확인한 뒤, 주환은 벌렁 뒤로 자빠졌다.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 정신이 몽롱했다.
마석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 산으로 들어갔다던 사냥꾼일 거다. 적이 아니다. 괜찮아. 리지와 도로시는 안전하다.
주환은 눈을 감았다. 멀리에서 리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로시가 뭔가 외치고 있다.
발소리가 타닥타닥 들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오즈는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건가. 리지와 도로시를 지키고 있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 (외전;인생은 항상 잔인하다)
작년 가을,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타이론 왕국의 병사들이 마을을 약탈했다.
그때, 두 딸이 죽었다. 엉망으로 병사들에게 더럽혀져, 한 아이는 곧바로 죽고 다른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아 있어도 좋은 꼴은 보지 못했을 거다. 병사들이 험하게 다룬 탓에, 몸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겨울이 되기 직전, 마수가 마을의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남편이 머리 둘 달린 마수에게 죽었다. 목을 물렸다. 하지만 마수에게 물려 질질 끌려가면서도 살아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피를 줄줄 흘리는데 비명을 지르며 끌려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여섯 살 된 어린 아들이었다.
이런 외진 마을에서는 아이를 낳아도 금방 죽는다. 죽지 않고 서너 살이 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들은 여럿 낳은 자식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빼빼 말랐지만, 남편도 딸들도 죽은 여자에게는 유일한 혈육이요 가족이었다.
그 아이만큼은 어떻게든 살리려고 이집 저집에서 구걸을 해 먹였다. 먹을 게 정 없을 때는 흙을 파 물에 끓여 먹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죽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젊은 촌장이 며칠 전, 마을회의를 열었다.
상황이 나빠지면 인신공양으로 신을 달래는 마을이 몇 군데 있다. 그런 곳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야 신이 노여움을 풀고 복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런 마을에서는 노예 대신 스스로 원해서 몸을 파는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마을 한 곳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대로는 마을 전체가 굶어죽는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모두가 그렇게 결정했다.
사람을 한 명 내밀면 곡식을 약간 나누어 받는다.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마을의 미래를 위해 젊은 몇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걸 받음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간신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희생자는 나무 뽑기로 정했다. 커다란 나무통에 여러 개의 가느다란 나무를 넣는다. 그중 한 개에 색이 칠해져 있었다. 색을 칠한 건 촌장이다. 어느 나무에 칠이 있는지 아는 건 촌장뿐, 겉으로 볼 때는 아무도 모른다.
나무통을 흔들어 섞은 뒤 마흔 넘은 여자들이 줄을 서서 한 개씩 뽑았다. 남자와 젊은 여자는 뽑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앞으로 마을을 위해 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몇 사람이 나무를 뽑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뒤, 색이 칠해진 나무를 뽑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혼자 남을 아이는 촌장이 거두어 성인까지 길러주기로 했다. 출발은 며칠 뒤, 인신공양하는 마을에서 데리러 온다고 했다.
밀가루와 말린 고기를 약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걸 조금씩 내놓았다. 모처럼 푸짐하게 아이를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스름한 저녁, 물을 끓여 말린 고기를 넣고 푹푹 끓이는데 마수가 마을에 들이닥쳤다. 여섯 살 어린 아들이 물려갔다.
물려가는 아이의 눈동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저 그 얼굴을 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를 구해야 하는데 다리가 덜덜 떨려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직후에 마수 사냥꾼이 왔지만,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엄마이고, 무엇이 소중한 아이야. 며칠 뒤면 죽을 자신의 목숨이 귀해서 아이를 구하지 못했는데.
그날 밤부터, 여자는 밤이 되면 칼을 들고 집 밖에 웅크리고 앉아 마수를 기다렸다. 낡은 모포로 몸을 둘둘 감고 조용히 허공을 본다. 이번에는 반드시 마수에게 덤벼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수가 나타났다. 눈앞에서 조용히 지나가는 걸 보았다. 그녀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일어나야지, 지금 찔러야지, 생각했지만 무서웠다. 비릿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허공을 떠돈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빛났다. 차가움 속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무서워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꼼짝하자, 마수가 그녀를 보았다. 들켰다. 이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마수는 그녀를 보고도 아무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길가의 벌레라도 본 것처럼, 혹은 아무 생명도 의미도 없는 돌멩이를 본 것처럼 그냥 눈을 돌렸다.
아, 하고 알았다. 이 마수는 자신이 있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하지만 신경 쓰지 않은 거다.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한 거야.
마수는 어둠과 똑같은 색의 몸을 조용히 움직여 그녀를 지나가버렸다.
아들의 눈동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두려움에 가득한 그 얼굴이 매시간, 매 순간 눈앞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마수를 그냥 보내면, 인신 공양으로 죽는 순간까지 아들의 눈동자를 보게 될 것이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 마수를 향해 달려갔다.
“이 괴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칼 든 손을 마구 휘둘렀다.
제발, 나를 먹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그래도 자신의 목숨이 귀해 자식을 지키지 못한 나를, 제발 그 잔인한 이빨로 물어뜯어 죽여라.
….
하지만 인생은 항상 잔인하다.
원하는 때에 죽지 못했다.
며칠 뒤,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에게 이끌려, 여자는 인신공양하는 절벽으로 끌려갔다.
스스로 절벽 안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그게 조건이었다.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질끈 눈을 감았다. 두 번, 세 번, 발걸음을 옮기다 어느 순간 몸이 밑으로 꺼졌다.
쿵, 몸 전체에서 소리가 울린다. 몸이 바닥으로 깊이 꺼지면서, 그녀는 자유로워졌다. 겨우 죽는다. 마른 대지를 떠나 겨우 가족 곁으로 가게 되었다. 마음이 놓였다.
*** 다음 페이지에 삽화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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