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7)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87화(87/235)
#087 유니콘 (외전;그 아이를 지켜줘)
쓰러졌다. 주환이 쓰러졌다. 연화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삐이…삐이…삐이…. 아기 뿔토끼의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울렸다. 뿔토끼의 마력에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나오고 있다.
쓰러진 주환의 곁으로 여자와 아이가 서둘러 달려갔지만 주환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상처 입은 노인과 젊은 남자가 주환을 일으키려고 했다. 어디론가 옮기려는 것 같다. 하지만 축 늘어진 주환이 너무 무거운 모양이다. 제대로 일으키지 못했다.
‘나, 잘못한 거야?’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산타의 계약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마력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생명력은 강하고, 산타의 계약자 만큼 마력이 많은 사람은 없다.
게다가 뿔토끼도 옆에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저 아이는 이미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주인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환과 뿔토끼가 힘을 합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지켜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성장을 시켜야 하니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어, 어떻게 하지.’
주환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 세상의 모든 루돌프는 주인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연결되어,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안다. 자연스럽게 주인의 뜻에 따를 수 있었다.
하지만 연화에게는 아직 주인이 없다. 마음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연화에게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도, 그 사회에 섞이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배웠지만, 항상 실수투성이. 자신은 계속 인간에 섞이지 못한 채 밖에서 겉돌았다.
연화는 루돌프지만 루돌프가 아니다. 이 세계에 와서부터 계속 불완전한 존재였다.
‘그녀’가 바란 것은 아들을 지켜주는 존재.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산타의 계약자지만, ‘그녀’는 연화의 주인이 아니야. 연화의 주인은 ‘그녀’의 아들, 주환이다.
하지만 아직 주환과 연결되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하고 웅성웅성한다. 연결되고 싶어. 주환의 도움이 되고 싶다.
‘그녀’가 말했던 것도 전해주고 싶다. ‘그녀’는 주환에 대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귀여웠던 일, 사랑스러웠던 행동, 때로 미웠던 것도, 귀찮았던 때도…. 연화는 주환의 귀여운 것들을 많이 알고 있다. 아, 그렇지, ‘그녀’가 주환을 너무 사랑한다는 말도 전해주어야 한다. 언젠가 만나면 전해달라고 했으니까.
연화는 벌떡 일어났다. 성장하는 걸 기다리다 주환이 ‘그녀’처럼 주름살이 많이 늘어나면 어쩌지? 병에 걸리면? 그래서 없어지면 어떻게 해? 조바심이 나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지켜만 보는 것은 싫다. 옆에 있고 싶어. 마음과 몸이 들썩들썩해졌다.
그때, 가느다란 실이 연화의 머리에서 살살 나오기 시작했다. 빨간색이었다.
‘어, 이거 혹시…?’
산타는 ‘그녀’와 계약할 때, 자신의 빨간 옷에서 실을 하나 뽑았다. 그걸 아직 어린 연화의 뿔에 감아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실을 한 개 주죠. 이 아이가 주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실이 연결될 겁니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이 아이는 당신의 소망을 이룰 거예요.]그때 산타가 말한 것처럼, 연화의 눈앞에서 빨간색 산타의 실이 넘실넘실 허공을 날아 주환을 향해갔다. 길게 뻗은 실 끄트머리가 주환의 심장으로 스며든다.
인간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뿔토끼가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실을 바라보았다.
후후후후후후. 연화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됐어, 진짜 루돌프가 되었다. 주인과 마음이 연결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그는 죽지 않았어. 다쳤지만 괜찮다. 그의 몸은 이미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유에 힘을 쓰다 보니 기운이 빠진 것뿐이다.
연화는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주환을 향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인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던 연화의 몸이 본래의 것으로 바뀌어간다. 이마에서 뿔이 돋아나고 손과 발은 긴 다리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목을 따라 길게 돋으며 부드럽게 바람에 흩날렸다. 히이이잉, 힘찬 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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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알만큼 하얗다. 리지는 쓰러지는 것처럼 주환의 몸 위에 엎드렸다.
“주환! 주환!”
주환의 몸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손에, 손목에, 뼈가 드러날 만큼 큰 상처가 있다. 얼굴도, 어깨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수의 발톱에 길게 찢겨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맙소사! 가슴이 캄캄한 절벽 속으로 내던져진 것 같다. 신이여, 제발 이 사람을 데려가지 마세요. 내겐 이 사람뿐입니다. 리지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숨이 헐떡헐떡, 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너무 마음이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
도로시가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엄마, 아빠 괜찮아. 아빠는 굉장히 강하잖아. 아빠 괜찮아.”
울음 섞인 아이 목소리가 마치 비명처럼 들렸다.
‘이러면 안 돼.’
자신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엄마니까. 하지만 안 돼. 주환이 없으면 안 된다. 그가 있어야 비로소 자신이 인간이 된다. 사람이 된다. 그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썩어서 속이 텅 빈 나무껍질에 불과하다.
잭이 주환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힘에 겨워 바닥에 엎어졌다. 바닥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라도 옮기고 싶은데, 안 되겠어요. 이 사람 너무 커서, 못 옮겨요. 내 힘으로는 힘들어.”
잭의 스승으로 보이는 노인이 주환의 눈을 뒤집어본다. 손가락을 목에 대고 가만히 있다가 안심한 듯 숨을 토했다.
“괜찮아요. 정신을 잃은 것뿐입니다.”
그 말을 듣고야 겨우 숨이 쉬어졌다. 머리가 덜컥하고 무겁게 내려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에서 우르르 힘이 빠졌다.
문득 노인을 보았다. 노인의 모습도 처참했다. 왼쪽 어깨를 다친 모양이다. 옷이 찢어지고 상체 한쪽이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안타깝다거나 뭔가 감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환이 다친 지금은, 리지의 관심을 빼앗는 것은 그의 일뿐이다.
리지는 다시 주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주환은 시체처럼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정말 괜찮은 걸까.
겁이 나서 그의 코에 손가락을 가만히 대보았다. 작은 바람이 느리게 손가락을 건드리고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괜찮아, 숨을 쉰다.
리지는 치마를 쭉쭉 찢어 주환의 상처에 감았다. 조금이라도 피가 멈추기를, 조금이라도 상처가 덜 아프기를. 그렇게 빌면서 조심조심 감는다. 깨닫고 보면 흐르던 피가 어느새 거의 멈춰 있었다.
‘다행…다행이다…치유되고 있어. 주환의 능력이 자신을 치료하고 있는 거야…죽지 않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오즈가 삐이, 하고 울었다. 응석을 부릴 때의 음성과는 다르다. 경고음도 아니었지만, 뭔가 기묘한 울림이 들어 있었다.
혹시 또 마수가 나타난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리지는 카람빗을 손에 들고 몸을 돌렸다. 주환을 지켜야 한다. 도로시를 지켜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몸을 돌린 리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눈물로 흐린 시야 속에서 눈처럼 하얀 말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말의 이마에 기다란 뿔이 달려 있다. 어둠 속에서도 말의 몸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반짝반짝 빛가루가 말의 몸체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날리는 것 같다.
“맙소사, 저거, 설마 유니콘?”
잭이 중얼거렸다.
뭔가 사람들이 반응할 사이도 없이, 유니콘이 바로 앞까지 달려왔다.
히이이잉, 유니콘이 운다. 흥분한 것처럼 앞발을 높이 들어 허공을 한 번 구르더니, 몸을 낮췄다.
“앗!”
리지는 깜짝 놀라 카람빗을 쳐들었다. 유니콘이 머리의 뿔을 주환의 몸 밑으로 집어넣었다. 설마, 이 아름다운 유니콘도 주환을 공격하려는 건가 싶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리지가 움직이는 것보다 빨리, 주환의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 잭이 몇 번이나 움직이는 걸 포기했던 주환의 몸이 공기처럼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른다.
“기, 기다려! 주환을 어쩌려는 거야.”
당황한 리지가 일어서는 동안, 유니콘은 이미 주환을 자신의 등에 태우고 따박따박 소리를 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즈! 아빠가 끌려가잖아!”
도로시가 외친다.
하지만 오즈는 유니콘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분명히 뭔가 행동했을 텐데, 오즈는 오히려 톡톡 뛰어 유니콘의 뒤를 따라갔다.
흔들흔들, 유니콘의 몸에 걸쳐진 주환의 손발이 움직인다.
리지는 당황해서 주환의 손을 잡았다. 혹시 몸이 흔들려 아픈 건 아닐까, 아니면 떨어지는 것은? 가슴이 철렁해졌다.
유니콘은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리지의 걸음보다 훨씬 빨랐다. 리지는 주환의 손을 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도로시가 오즈에게 아빠를 구하라고 시끄럽게 외치며 함께 옆에서 뛴다.
삐이, 삐이, 마치 괜찮다고 타이르는 것처럼, 오즈가 작은 소리를 내며 폴짝 도로시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도로시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팔을 위로 올렸다 다시 내린다. 유니콘을 쫓아 달리면서 가끔 울상을 지은 채 리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왠지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즈가 내는 작은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 유니콘도 적이 아닌 한편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실제로 유니콘은 위협적인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유니콘의 행동을 가만히 보면, 주환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 쓰면서 조심해서 걷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유니콘은 다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상해.’
왠지 어디에선가 이 유니콘과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유니콘을 보았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유니콘은 천천히 마차로 다가가더니, 뿔을 이용해 문을 열었다. 몸을 살짝 흔든다. 주환을 마차 안에 넣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손이 없는 상태에서 몸뚱이만으로 그렇게 정교한 행동을 하기는 힘들다.
뒤따라 온 잭이 유니콘의 눈치를 살피며 그 옆으로 다가갔다. 유니콘의 눈매가 조금 사나워진 느낌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도와주려고.”
잭이 변명하는 것처럼 말하자, 유니콘이 푸르르 머리를 흔들었다. 하얀 갈기가 환상처럼 밤공기에 빛을 뿌렸다.
“어, 빨리하라구?”
잭이 중얼거리더니 주환의 몸에 손을 댔다. 유니콘이 주환의 몸을 마차에 바짝 대고 살짝 몸을 굽히며 흔들었다.
그 반동을 이용해 잭이 주환을 마차 안으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힘이 모자랐다. 잭이 미끄덩 손을 놓치는 순간, 유니콘이 재빨리 머리를 돌려 주환의 몸을 밀었다. 무거운 주환의 몸이 가뿐하게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다. 리지가 재빨리 마차 안으로 뛰어들자, 잭이 밖으로 나갔다. 리지는 수건을 물에 적셔서 주환의 피를 닦아냈다.
어느새 주환의 상처가 막히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하던 안쪽의 살점이 조금씩 뼈에, 살에 붙고 있었다.
‘다행이다.’
리지는 주환의 손을 붙잡고 거기에 이마를 댔다. 눈물이 투두둑 마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 아빠는? 아빠는 강해서 괜찮아?”
도로시가 겁먹은 목소리로 가만히 물었다.
“괜찮아. 아빠한테는 치유의 힘이 있잖아. 아빠 상처가 이제 붙기 시작했어. 괜찮아. 그냥 자고 있는 거야.”
도로시가 털썩 마차 바닥에 주저앉더니 중얼거렸다.
“도로시는 알고 있었어. 아빠는 강하니까.”
아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리지는 한 팔로 아이를 끌어당겨 안았다. 리지의 눈물이 아이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도로시가 리지의 몸에 달라붙더니 다시 중얼거렸다.
“도로시는 알고 있었어. 아빠가 엄청 강해서 괜찮은 거, 다 알고 있었어.”
아이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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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그 아이를 지켜줘)
크리스마스이브,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아들의 선물을 함께 사러 가기로 했다.
아들 주환에게는 엄마 아빠 둘이 좋은 곳에 간다고 자랑하며 약을 올렸다. 덩치는 이미 어른처럼 커다란데, 아들은 잘 삐지는 편이었다. 엄마 아빠만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
아들을 놓고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미안해졌다. 앞으로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아들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다. 너무 어리다.
보험금과 집을 처리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돈은 나올까? 사고를 낸 사람이 제대로 보상금은 지급해 주려나? 아들이 어리다고 그것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녀와 남편이 인도를 걷고 있는데, 어떤 차가 두 사람을 덮쳤다. 그 바람에 지금은 피를 토하고 있다. 남편은 차 밑에 깔렸고, 그녀는 벽과 차 사이에 끼어 있었다.
아마 둘 다 죽어가는 중일 거다. 그러니까 이런 게 보이는 거겠지. 산타 옷을 입은, 아마 산타인 남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산타입니다. 지나가고 있는 길에 차가 달려오는 걸 보았는데, 두 분 덕분에 제가 산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신이라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마침 오늘은 이브 날이고, 이날이 저희 산타에게는 유일하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이틀 중 하루니까요.”
산타의 하얀 수염이 흔들린다.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벌써 죽은 걸까. 주위의 소리는 이제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지만, 산타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산타가 초조한 듯 다시 물었다.
“소원이 있으면 지금입니다. 당신이 죽으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 세계의 규칙이죠. 이곳에서 죽은 영혼은 이곳 신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든다. 누군가가 산타를 보고 겁에 질린 것처럼 뭔가 중얼거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미친놈이라고 한 걸 거다. 아, 그러면 이 산타, 정말로 실체가 있는 거구나.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 거다. 눈의 착각이 아니었어.
“남편분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에요.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인밖에 없어요. 제발 빨리, 소원을 말해주세요.”
산타가 너무 간절하게 말해서, 그리고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연화는 입을 달싹거렸다.
“살려…줄…수…있나요….”
“안됩니다. 이 세계 사람의 수명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
말로는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서, 이 산타, 할 수 없다고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게 아닐까. 연화는 숨을 가늘게 쉬었다. 숨쉬기가 힘들다. 다시 살아날 수 없다면 소원은 한 가지뿐이다.
“…내 아들…을…지켜 주세요…그 아이를…지켜줄 존재가 필요해…외롭지 않게…항상…곁에 있어줄…지켜줄 존재가 필요해요…내 아들…을….”
산타가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꺼풀 밑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눈이 흐려지는데도 이상하게 그것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산타가 눈을 떴다.
“좋습니다. 가능할 것 같군요. 하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루돌프로는 되지 않아요. 주인이 없어도 성장할 수 있는 아이가 필요합니다. 그런 아이는 일반적으로는 얻을 수 없죠.”
산타가 초조한 듯 침을 삼켰다. 수염이 흔들흔들 이상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루돌프에게서 태어난 유니콘을 당신에게 드리죠. 주인 없이도 혼자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려요. 그래도 정말 괜찮나요?”
“…그래…아들이 그런 존재를 얻을 수 있다면…좋아요…기다리겠어요….”
산타가 주머니에서 작은 빛을 꺼냈다. 자세히 보면 말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마에 작은 뿔이 돋아 있었다. 유니콘인가. 사람의 주먹보다도 작다. 꼭 인형 같은데,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당신의 소원을 이룰 겁니다.”
산타가 자신의 옷을 손톱으로 긁어 실 한 개를 뽑아냈다. 춤추는 뱀처럼, 허공에서 빨간 실이 굼실굼실 움직였다.
“이 실을 한 개 주죠. 이 아이가 주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실이 연결될 겁니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이 아이는 당신의 소망을 이룰 거예요.”
산타가 실을 유니콘의 작은 뿔에 감았다. 빨간 실이 하얀 유니콘의 뿔에 빨려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산타가 안심한 듯 수염을 흔들며 웃었다.
“됐습니다. 계약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두 분이 죽으면 어쩌나 정말 마음이 급했어요. 이제 됐으니, 남은 여생은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산타가 손을 흔들었다.
“손님, 행복하세요! 산타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산타 마을의 모든 산타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뒤늦게 남편은 고통 없이 죽었는지 궁금해졌다. 제발, 고통 없이 떠났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다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남편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보. 아무래도 우리, 이상한 곳에 와 있는 것 같아. 요새 저승은 이렇게 생긴 모양이야.”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자 울창한 숲이었다. 산타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그게 진짜였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다.
“나, 나, 나, 어떠케 해? 모미 이사해. 나, 닝가니 되어 버려써. 어떠케 하면 저아. 왜 내 모미 이러케 됭 거야?”
시선을 내리자, 요정처럼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다.
‘아, 이거, 그거구나, 유니콘.’
모습은 다르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분명히 아들을 지켜줄 존재라고 했는데, 어째서 여기에 함께 있어? 아들은 어쩌고?
“산타 개새x.”
연화가 씹어뱉듯이 중얼거리자, 남편이 한숨을 쉬었다.
“여보, 진정해. 당신 입이 험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지옥인지 천당인지 모를 곳에서 그랬다가 크게 벌받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
남편에게 그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자, 남편이 중얼거렸다.
“개새x!”
그렇지?
*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처음에는 손바닥보다 작았던 아이는 한 달 만에 인간 아이만큼 커졌다. 덕분에 인간 사회에 섞여 들어가 살 수 있었다.
연화와 남편은 그 유니콘 여자아이를 열심히 길렀다. 어쩌면 이 아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아들의 곁으로 가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들과 만났을 때 인간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그런지 제대로 사회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은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상식과 규범이 유니콘에게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몇 번의 사고 끝에 연화와 남편은 인간의 도시에서 나와 산속 오두막에서 살게 되었다.
버려진 남자아이를 발견해서 양자로 삼았다. 양자와 유니콘은 형제처럼 자랐지만, 양자가 성인이 되어도 유니콘은 여전히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유니콘은 아들의 곁으로 가지 않았다. 갈 수 없었다. 어디에도 아들에게 통하는 길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화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유니콘은 그녀와 남편의 아이처럼 계속 곁에서 머물렀다. 덕분에 외롭지는 않았지만, 아들은 어쩔 거야. 주환은 그 사이에도 계속 혼자, 외롭고 힘들게 살아갔을 텐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 평생 죽을 때까지 안된다는 말은 없었잖아.”
산타 개새X. 만나면 반드시 죽여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임종을 맞이하게 된 건,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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