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8)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88화(88/235)
#088 마차 끄는 유니콘
꿈을 꿨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산타 개새X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생긋 웃는 얼굴로 개새, 소새, 욕을 하는 사람이었지. 꿈속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을 꿈에서 만난 뒤에도 기분이 좋은 건 처음이다.
주환은 천천히 눈을 떴다. 좁은 천장이 보인다. 마차의 천장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몇 번 눈을 깜박인 뒤에야, 아, 머리 둘 달린 개를 때려눕혔지, 하고 쓰러지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리지, 도로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르토스가 죽은 건 알고 있었다. 확실하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확인한 뒤에야 의식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도, 마수 사냥꾼도,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들에게 필요할 때는 주환의 가족을 해칠 수 있다. 오즈는 믿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왓!”
몸을 일으켜 앞을 본 주환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지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서 주환을 보고 있다. 한데 눈이 퉁퉁 부어, 마치 새끼 판다 얼굴처럼 되어 있었다.
“리지….”
가만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토끼처럼 빨갛게 된 리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투두둑 떨어졌다.
“…걱정했어요.”
맙소사. 주환은 팔을 벌려 리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무릎에는 울다 지쳐 잠이 든 도로시가 안겨 있었다.
“계속 이러고 있었던 거야?”
“….”
끄덕, 리지가 말도 못 한 채 울면서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미안, 리지. 정말 미안해.”
“….”
자신의 몸 위로 리지와 도로시를 한꺼번에 끌어당겨 안은 채 두 사람의 이마에 번갈아 입술을 갖다 댄다. 눈이 이렇게 될 때까지 울다니, 정말 미안한 일을 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 주환…당신 없이는 안 돼….”
품 안에서, 리지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움직이는 바람에 깬 모양이다. 도로시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불쑥 위로 올라왔다.
주환과 리지 사이에 낀 채 아이가 고개를 한껏 올려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삐죽삐죽, 황금빛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주환의 모습을 확인한 도로시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빠!”
좁은 틈새에서 리지의 얼굴을 보더니, 도로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거봐, 엄마. 도로시가 말했지? 아빠는 강해서 괜찮잖아. 하룻밤 자고 나면 다 낫는 거야! 알겠어?”
“…응, 알아, 도로시.”
리지가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알고 있어….”
주환은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정말 걱정시켰구나. 다음에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절대로 죽지 않게, 걱정시키지 않도록 해야지. 이제는 더 이상 혼자 훌쩍 싸우고, 이기고, 다쳐도 괜찮은, 그런 처지가 아니다. 가족이 있는 거야. 언제나 안전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이렇게 걱정시킬 일이 없을 거야. 두 사람 모두, 정말 미안해.”
“….”
“아빠는 강하니까 괜찮아.”
도로시가 맥락없이 불쑥 말했다. 조용한 웃음 소리가 주환과 리지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환은 잠시 두 사람을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다. 가운데 끼인 도로시가 지루해졌는지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맞아. 아빠! 우리 하얀 말 생겼어. 유니콘이래. 뿔 달린 말이야.”
“….”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갑자기 머리 둘 달린 개가 유니콘이 됐을 리도 없는데. 아이의 환상 친구 같은 건가. 적당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잠시 머뭇거리자, 리지가 작게 웃었다.
“…주환, 당신이 쓰러진 뒤에, 정말로 어디선가 유니콘이 달려왔어요. 당신을 마차로 옮긴 것도 그 유니콘이죠. 굉장히 아름다워요.”
“안 도망가, 아빠. 도망치지 않고, 오즈랑 뽀뽀도 했다!”
“….”
그건 참, 왠지 미묘하다. 리지가 킥킥 웃으며 주환의 품에서 약간 몸을 빼냈다.
“유니콘도 중요한 일이긴 한데…. 주환, 상처는 어때요? 새벽이 되면서 많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프지 않아요?”
“음, 괜찮은데.”
가장 심한 상처를 입은 곳은 오르토스의 입속에 처넣었던 손이다. 하지만 이빨에 사정없이 긁혀 뼈가 드러나 있던 손목은 어느새 살로 뒤덮여 있었다. 욱신욱신한 감각은 여전히 심하게 남아있지만, 살과 뼈를 찢던 당시의 아픔은 사라졌다.
주환은 가만히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오래된 화상처럼 상처 부위가 매끈하게 파여 있다. 이전에는 조금씩 진행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리던 치유 과정이, 지금은 단번에 몇 단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다.
주환은 자신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은 뒤 히죽 웃었다. 의식적으로 치유 마법을 사용하면, 그의 마법은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다.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됐어.’
이 정도의 치유력이면 어떤 상황에서도 리지와 도로시를 구할 수 있다. 설령 두 사람이 죽기 직전이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살릴 수 있을 거다. 그래, 아마 가능할 거야. 자신감이 기둥처럼 우뚝 섰다.
이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역시 그의 능력은 그가 필요하거나 바라는 정도에 호응하듯 강해지는 것 같다.
주환은 몸을 길게 뻗어 기지개하면서 근육을 풀었다. 여기저기 긁힌 곳이 아직 약간은 뻐근하다. 하지만 움직이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주환은 양쪽에 한 명씩 번쩍 안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허공으로 몸이 들린 리지와 도로시가 작게 비명을 지르며, 양쪽에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새벽을 갓 넘긴 것 같다. 해는 떠 밝아졌지만, 공기에는 새벽 특유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주환의 시선이 양쪽 팔에 자리 잡은 리지와 도로시를 향했다. 밝은 외부에서 보니 두 사람의 퉁퉁 부어오른 눈이 더욱 판다처럼 보였다.
목구멍에서 크크 이상한 웃음이 새 나왔다. 판다 얼굴의 두 사람 모습이 귀엽다. 이렇게 될 때까지 울게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너무 예뻐 보였다.
자신의 얼굴이 퉁퉁 부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리지가 주환의 어깨에 얼굴을 대며 숨겼다. 어깨의 피부를 간질이면서 리지의 입술이 움직인다.
“보지 말아요, 주환.”
“귀여워, 리지.”
도로시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리지와 주환을 번갈아보더니, 불쑥 말했다.
“도로시도 귀여워, 아빠.”
“당연히 우리 도로시는 귀엽지.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말하지 않은 것뿐이야.”
“정말? 음, 근데 도로시는 말해주는 게 더 좋아요.”
“그래, 우리 도로시는 정말 귀엽구나.”
“그치?”
도로시가 판다 얼굴로 활짝 웃었다.
히이이잉, 그때 말 울음소리와 함께, 뭔가가 등에서 슬쩍 그를 밀었다.
고개를 돌리자, 주환의 키보다 훌쩍 큰 백마가 보였다. 이마에 긴 뿔이 있다. 보통의 말보다 훨씬 몸이 크다. 나란히 서면, 2미터에 가까운 주환이 보통 사람보다 작아 보일 것 같다.
“유니콘….”
주환이 중얼거리자, 유니콘이 어리광 부리듯이 머리를 주환의 몸에 살짝 비볐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해온 주인을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넌 어디서 왔는데 갑자기 어리광이냐.”
주환의 말에, 유니콘이 약간 원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히이잉 울었다. 마치 왜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아니, 정말로 널 모르니까 그런 표정 지어도 소용없다. 만난 적이 없어.
유니콘의 머리 위에, 오즈가 앉아있었다. 유니콘이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용케 자세를 잡고 있다. 그것이 마치 오즈가 주환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아이를 자신처럼 가족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주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리지가,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아참, 주환, 오르토스 때문에 말이 도망쳤어요.”
“….”
말을 하루 종일 마구로 묶어 놓을 수는 없다. 조금 쉬라고 마구를 풀고 고삐만 마차에 묶어 두었는데, 마수 때문에 놀라 새벽에 도망친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없어졌다고 했다.
혹시 마을 사람이 훔쳐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는 건 나쁘다. 주환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이제 어쩐다. 말을 살 때까지 자신이 마차를 몰아야 하나.
히이잉, 유니콘이 콧김을 내뿜으며 주환을 머리로 밀었다. 마치 자신이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 같다.
“이 아이한테 부탁해볼까.”
주환이 말하자, 하얀 갈기를 흔들며 유니콘이 땅을 발굽으로 긁었다. 왠지 공부하기 전 학생이 불타오르는 모습 같아서 조금 우스웠다. 도로시가 까르르 웃으며 주환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빠, 저거, 콧구멍 봐. 엄청 크다.”
“….”
도로시, 유니콘이 화내고 있는 거 보이니? 푸르르 푸르르, 마치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유니콘이 도로시의 머리카락을 입에 넣고 씹는다.
유니콘의 코에서 센 바람이 새 나와 리지와 도로시의 얼굴을 덮쳤다.
리지와 도로시가 동시에 깔깔 웃고, 흉내 내는 것처럼 오즈가 리지의 머리 위에 뛰어내려 황금빛 머리카락을 오물오물 씹었다.
가족이 모두 한 무더기가 되어 웃는다. 가슴에 따뜻한 것이 스몄다. 점점 대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왠지 그것이 기뻐졌다. 외동이지만, 도로시는 결코 자신처럼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러면 오르토스 사체는 어떻게 됐는지 한 번 보러 갈까.”
주환은 몸을 돌려 오르토스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마을 사람 몇 명이 오르토스의 사체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서 증오가 보였다. 하지만 죽은 사체인데도 두려운 모양이다. 가까이 가지 못한 채 멀찍이서 노려만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르토스의 사체 근처에는 사람들이 던진 것처럼 보이는 돌멩이가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오르토스의 피부에는 돌멩이 때문에 생긴 상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주환이 만든 화상이나 상처조차 많이 남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 치유가 된 듯 몸이 거의 온전한 상태였다.
“맙소사!”
멀리서 잭이 달려왔다. 눈이 휘둥그레져 있다.
“사, 상처가 엄청났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치유 마법사라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몇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이런….”
잭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주환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스승님이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 스승님 좀 살려주세요. 치료비는 제가 뭘 해서라도 갚겠습니다. 노예 증서를 쓰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지금 당장 노예로 살라고 하면 그렇게 살겠습니다. 제발 우리 스승님 좀 살려 주세요.”
스승님이라고 하면, 아마 주환에게 마석에 대해 가르쳐준 목소리의 주인일 것이다. 오르토스를 추적한다고 하더니 상처를 입었나.
“당신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나도 이놈을 죽이지 못했을 겁니다. 내 목숨도 그분한테 도움받은 거나 마찬가지니, 치료비는 필요 없어요. 갑시다.”
주환이 걸음을 옮기자, 잭이 허둥지둥 일어나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달렸다 다시 되돌아오고, 다시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면서 띄엄띄엄 주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어요. 그냥 피만 많이 난 것 같았는데, 갑자기 쓰러지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해요. 몸이 불덩이 같은데, 얼음을 갖다 대도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러다 정말 돌아가실 것 같아서….”
잭이 주먹으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스승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저, 사실은 능력도 없고, 정말 별것 아닌데, 내년에 16살이 되면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준다고 하셨어요. 정말 좋은 분이시거든요.”
“….”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잭의 얼굴을 보았다. 틀림없이 스물은 넘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얼굴로 설마 15살이었나.
이 세계에서는 새해가 되면 모두 한 살 먹는다. 이 아이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4살이었던 거다.
나이를 알고 보니, 잭이 리지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도 이해가 갔다. 일반적인 남자의 육욕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이웃집 예쁜 누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는 정도의 감각이었던 모양이다. 그 나이에는 근처에 예쁜 누나가 있으면 괜히 뽐내고 허세도 부리게 마련이니까. 나잇값도 못하고 질투하던 자신의 속 좁음에 기가 막혔다.
“….”
잭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허세를 부린 것도, 주환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도, 나이가 나이니까 그랬던 거겠지. 중2병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 나이, 주환 자신은 혼자서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보면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어디에나 널려 있는데, 혼자만이 이 세상 모든 악운을 짊어지고 있는 거라고 여겼어. 지금 보면, 그것도 중2병의 한 가지였는지도 모른다. 쓴웃음 나는 일이다.
주환은 초조한 모습으로 달려가려는 잭의 등을 툭 쳤다.
“괜찮아. 네 스승님은 살릴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잭이 앞을 곧바로 보고 다시 냅다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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