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9화(9/235)
#009 첫키스
적국에 있다는 검은 머리의 용사님.
지금 눈앞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는 남편도 똑같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다. 어쩌면 이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다 깜짝 놀라 머리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만일 이 사람이 용사님이었다면 분명 왕도에 있는 화려한 궁 안에서 높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을에 죄인들과 함께 실려올 리 없었다. 이 나라에서 용사 소환 의식을 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리지는 살짝 남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남편이 얼굴을 조금 낮췄다. 남편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빛이 집안으로 들어와 남편의 머리와 얼굴을 비춘다.
‘아…!’
이 사람은 용사님이 아니다.
리지는 반짝거리는 빛 아래에서 남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보았다. 이 사람의 눈과 머리는 용사의 색이 아니었다.
눈의 가장 가운데는 검은색이지만, 그 주위는 갈색이다. 용사님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전혀 다른 걸 거다. 전설의 용사님은 검은 눈이라고 했으니까 갈색이 아니라 전체가 검은 거겠지.
자세히 보면 남편의 머리색도 새까맣지 않았다. 얼핏 검은색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진한 갈색이다. 햇빛에 비춰보면 확실하게 검은색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이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라니, 굉장히 이상한 게 아닐까. 용사님은 마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게 생겼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남편은 용사가 아니다. 덩치가 커다랄 뿐인 보통 사람이다. 나라의 높은 분들이 데려가지 않는다.
‘어, 근데 왜 나, 이 사람이 가면 싫다고 생각했지?’
단지 오늘 만난 사이인데 이상하다.
본래 남편이 될 사람은 아무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폭력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먹을 걸 약간 풍족하게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면 아무나 좋았다.
‘….그래서인 거겠지.’
이렇게 친절한 남자는 처음 보았다. 마을의 어떤 사람도 그녀를 이렇게 대해주지 않았다. 몸이 작고 일도 못하면서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여자에게 다정한 사람은 없다.
아마도 그래서, 친절하고 폭력적이지 않으니까 그런 걸 거다. 이 남자가 남편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없어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래, 그런 걸 거야.
남편이 다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이 사람은 자신을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친절하게 해주는 걸까.
‘그래도 좋아.’
리지는 눈을 감았다. 더, 더, 더 가득 만져 줬으면, 계속 쓰다듬어줬으면 좋겠다.
아주 오래전에 어른이 되었는데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던 시절의 그녀가 된 것 같다.
‘힘내야지.’
산지기의 아내는 보통보다 훨씬 힘들고 할 일이 많다. 마을에서 지낼 때 여자들이 가끔 툭툭 던지듯 말한 걸 보면, 가죽 처리 같은 건 물론이고 바쁜 시기에는 동물의 피빼기 같은 것도 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녀는 아직 할 줄 모른다.
이 남자도 아직 사냥을 할 줄 모르는데, 언젠가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 작은 오두막을 꾸려나가게 되는 걸까.
남자는 사냥을 하고 장작을 팬다.
그 외 나머지 일은 모두 여자 차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물을 길어오고, 음식을 만들고, 야채를 기르거나 아이를 돌보고, 옷을 짓거나 집을 손질하고, 장이 열리면 물건을 파는 일 등, 아주 큰 힘이 필요한 것만 아니면 모두 여자가 한다.
그게 보통이다. 딸이었을 때도, 아내였을 때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수가 줄어든 지금은 마을 공동의 노역도 여자가 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늘었다.
리지는 손이 느리고 힘이 약해서 다른 여자가 하는 일의 절반도 해내지 못했다.
고향 마을에서는 모두가 그녀의 쓸모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집도 가지 못했어. 아무도 원해주지 않았다.
잘 모르기는 해도, 그녀를 팔 때 아버지는 상인에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그녀가 일을 매우 잘한다고.
상인은 소문을 들어 진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자신이 받은 대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그녀를 선택했겠지.
그런 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런 곳에 팔려오는 일조차 가능하지 않았다.
“….”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에게는 그런 일을 알리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남편에게는 자신이 쓸모 있는 여자이고 싶어.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부디 때리지 말아요. 미워하지 마. 버리지 마. 이 다정한 손을 앞으로도 가끔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부디, 제발.
***
잠시 리지와 도로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장 오늘 밤부터 얼어 죽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아, 그전에 먹는 물부터 확보해야지. 다행히 집안에 드럼통 정도 되는 것과 조금 작은 나무통이 하나씩 있었다. 물을 담는 그릇 같다.
그것조차 없으면 정말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마을 사람들이 남겨둔 모양이다. 뭐, 그들도 그가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을 테니까.
혹시 물 흐르는 곳을 알고 있을까 싶어서 리지에게 물이 졸졸 흐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건 조금 한심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입으로 “졸졸”이라고 말하면서 손을 물결치듯 움직였던 거야. 바보 같았다.
그의 모습을 본 리지와 도로시가 약간 웃어준 게 의외의 소득이었다면 소득이었을까. 하지만 웃는 게 무례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는지, 두 사람은 곧바로 얼굴 표정을 감췄다.
그 뒤에 김주환이 물먹는 시늉을 하자, 리지는 금방 알아차렸다. 처음부터 그렇게 표현했으면 됐을 텐데, 정말로 바보 아닌가.
리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물 흐르는 곳을 물어보는지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특별히 뭔가 말하지 않고, 그녀는 주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에게 뭔가 말하더니 문을 닫는다. 아마 혼자 나와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을 거다.
그 뒤, 리지는 다시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좁은 숲속 길을 한참 걸어갔다.
이 산은 한국의 조밀한 숲과는 달랐다. 한겨울에도 마른 나뭇가지가 뒤엉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국의 산과 달리, 이 세계는 산이라 해도 나무가 드문드문하다.
나무의 키도 굉장히 컸다. 하늘 높이 올라간 나무 기둥을 보고 있으면 거인 나라에 온 걸리버가 된 기분이 들었다.
덩치가 큰 주환조차 그런 느낌이다. 당연히 리지의 몸은 이 숲에서 다람쥐처럼 조그마했다. 그 작은 몸으로 열심히 걷는 것이 왠지 귀여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리지의 몸이 앞으로 기우뚱했다. 땅에 섞여 있는 얼음을 밟았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먼저 손이 나갔다. 한 팔로 그녀의 배를 감싸 안으며 번쩍 올리자, 깜짝 놀란 눈동자가 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을 받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깝다. 심장이 두근두근 크게 뛰었다.
“….”
아이는 집에 있고, 지금은 둘뿐이다. 여자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항상 사랑이 우선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 부부다. 조금 맛을 보는 정도라면, 그 정도는 괜찮을 거다.
“리지.”
주환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살짝 입술을 겹쳤다. 리지는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었다. 가만히 굳어 있다. 눈을 뜬 채 감지도 않은 걸 보면 키스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얼굴의 각도를 살짝 기울여 다시 한 번 입술을 대자, 이번에는 눈이 크게 떠졌다. 혀의 감촉에 놀란 것 같다.
아, 정말 이 여자 키스를 해본 적이 없구나. 중세에는 키스라는 개념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죽은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였을지도. 그러면 도로시는 나이차 많은 동생일까.
추운 바람이 부는 산속에서, 주환은 이제 막 아내가 된 여자를 꼭 끌어안고 한동안 달콤한 입술 너머를 맛보았다.
코와 코가 살짝 맞닿았다.
체온이 겹쳐지고 나눠지면서 울컥울컥 사랑스러움이 생겨났다.
언젠가 한번,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누구였는지 잘 모르겠다. 직장 선배였는지, 아니면 상사였는지.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그 말은 옳았던 것 같다.
분명 앞으로 더욱 정이 솟고 사랑스러워지겠지. 지금은 단순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이지만, 분명 머지않아 그의 유일한 단 한 사람이 될 거다.
단 하나의 사랑하는 여자, 단 하나의 사랑스러운 딸 혹은 처제.
아니, 그냥 딸 하자. 실제로는 두 사람이 자매라 해도 그에게는 딸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산타에게 소원한 것은 그런 거였으니, 딸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거다.
일 년 뒤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브날 밤에 두 사람의 머리맡에 뭔가 놔줄 수 있는 처지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거라도 선물할 수 있었으면.
‘힘내서 돈 벌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쉬움에 미련을 질질 끌며 입술을 뗐다. 끈끈한 액체가 두 사람 사이에서 늘어진다. 처음에는 놀라기만 하던 여자의 눈동자가 지금은 반쯤 녹은 사탕처럼 되어 있었다.
귀여워. 내 아내다. 아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그 말의 의미가 정말 좋다. 누추한 삶부터 시작하게 됐지만, 이곳에 와서 정말 좋았다. 산타를 만나 정말 좋았다.
회색빛이었던 삼십 년 동안의 기억이 이제야 겨우 의미를 갖고 생생해졌다. 살아있어 좋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 근데, 살면 정이 생긴다고 말했던 사람이 뒤에 덧붙인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여자가 그냥 마누라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내 살이 네 살이 되고 네 살이 내 살이 되지. 올해 결혼 삼십 주년이다. 내가 술을 안 먹을 수 있겠냐.]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결혼 삼십 주년. 그 말을 한 사람은 그러고 보니 부장이었던 것 같다. 깐깐하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핸드폰 대기화면은 가끔 바뀌었지만 항상 부인 혹은 아들딸의 사진이었다. 입을 벌린 채 자고 있거나, 오이를 얼굴 전체에 붙이고 있거나, 자다 금방 일어나 까치집을 한 모습이거나, 어쨌든 항상 이상한 모습이었다.
아랫사람에게 가끔 그 화면을 보여주면서 [너희들도 결혼해봐라. 나중에 이런 몰골의 여자랑 돈만 뜯어가는 자식이랑 살게 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그때는 왜 그딴 사진을 보여주며 구시렁거리나, 나이 들면 다 저렇게 추해지나, 나는 아무리 원해도 없는 가족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평이라니, 그런 식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랑이었는지도 모른다.
“….”
언젠가 그 역시 꼭 그렇게 되고 싶다. 작은 목걸이에 아내와 자식의 그림을 넣어 다니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졌다.
부장, 항상 속으로 욕해서 미안했습니다.
*
리지가 가르쳐준 곳은 오두막에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작은 옹달샘이었다.
사람 두어 명이 들어가 누우면 꽉 찰 것처럼 작다.
동그란 돌이 여러 개 물을 감싸고 있고, 주변에는 풀이 시든 흔적과 작은 나무들이 샘을 보호하듯이 서 있었다.
집에서 아주 멀지는 않지만 제법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어째서 물에서 떨어진 곳에 집을 지었을까. 바로 붙어있었다면 더 편했을 텐데. 이상하다.
‘어쨌든 조금 곤란하구나. 수도가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물이 가까이 있어야 살기 편한데.’
지금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쩌다 자신이 집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여자 혼자 물을 길러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런 산속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까.
지구에도 산에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이 있다. 오래전에는 늑대도, 호랑이도 있었으니 문명이 덜 발달한 이 세계에는 그보다 더 위험한 동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여기가 얕은 숲이라 다행이려나. 조금 더 깊은 곳이었다면 남자인 자신도 혼자는 위험했을지 모른다. 마법이 있는 세상에 도대체 뭐가 또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주환은 리지를 다시 집에 데려다주고, 커다란 나무 물통을 번쩍 들어 올렸다.
물통 양옆에는 나무로 만든 손잡이가 달려 있고, 다시 전체를 밧줄로 묶어 짊어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훌쩍 통을 등에 짊어지자, 리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 것이 조금 웃겼다.
그 뒤에, 리지는 약간 당황한 것처럼 물통을 빼앗으려고 했다. 아마 물 긷는 건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말도 안 되지. 이 커다란 통에 물을 채우려면 작은 물통으로 몇 번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거야. 하물며 산길은 위험하다.
앞으로 그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환은 몇 번이나 물통을 가리키고 고개를 저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리지의 얼굴이 왜인지 빨개졌다. 왜 그게 부끄러운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
도로시는 주환이 물통을 가지고 가는 게 굉장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물통을 들고 그가 밖으로 나가는 데도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름이면 파리가 들어갔을 거다. 겨울이라 다행이다.
“….”
물통을 들고 옹달샘으로 향하면서 약간 으쓱한 기분이 되었다. 자신의 힘이 센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두 사람이 그렇게 놀라는 걸 보니 왠지 코가 조금 높아진 것 같았다.
옹달샘에 도착하니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푸드득 날갯짓하며 여러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길이 아니라, 뭔가에 놀라 나무에서 날아오른 것 같았다.
‘산짐승이라도 나타났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물통을 샘에 넣어 물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막 물통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갑자기 온몸의 솜털이 돋았다. 오싹해졌다.
순간적으로 물통을 놓고 홱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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