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91)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91화(91/235)
#091 루돌프의 능력
데굴데굴, 오즈와 함께 바닥을 구르던 산적의 동작이 멈췄다.
오즈가 훌쩍 놈의 몸에서 떨어지자, 뻣뻣하게 굳은 산적의 얼굴이 보였다.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 같다. 놈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놈의 몸에는 목과 손등은 물론 손가락 끝에까지 빡빡하게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점차 주위에 있는 산적의 동작이 굳어, 여기저기 살아있는 동상처럼 남자들이 멈춰 섰다.
쓰러진 놈과 마찬가지로, 입술조차 움직이지 못하면서 눈동자만 굴린다.
순식간에 산적 모두가 마네킹처럼 굳어 버렸다.
주환은 몸을 돌려 유니콘을 보았다. 유니콘의 하얀 뿔이 신호등처럼 점멸하면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저 무늬는 모두 네가 한 거니?”
유니콘이 자랑스러운 듯 갈기를 흔들며 주환을 보았다. 마치 칭찬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주환은 다시 산적에게 시선을 주었다. 산적들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머리카락 한 올, 손가락 한 개까지 완전히 마비된 것 같다. 하지만 정신은 멀쩡해서, 산적들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
뿔이 붉게 점멸하며 빛나는 것은 루돌프다. 그렇게 들었다. 하지만 이런 무늬를 만든다거나, 사람의 동작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까지 듣지는 못했다.
아니, 무엇보다, 대체 왜 그런 게 자신한테 달라붙어있는지 모르겠다. 그에게는 이미 오즈라는 루돌프가 있는데.
“젠탱글….”
문득 길드 마스터가 데려왔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젠탱글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었지.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확실히 지금 산적들의 모습을 보면 젠탱글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 소녀가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산적들의 몸에 그려진 것은 글자가 아니었다.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그저 단순한 무늬였다. 꽃, 달, 별, 곡선, 직선, 달팽이, 기하학적인 선, 그런 것들이 반복되어 온몸에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눈꺼풀처럼 좁은 곳까지 빈틈없이 무늬가 있다.
‘아, 무늬가 그려진 곳만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왠지 기괴하다.
“하지만…정말 도움이 됐다.”
주환은 움직이는 산적이 없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유니콘에게 다가갔다. 갈기를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말하자, 유니콘이 자랑스러운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놈들은 어쩐다.”
주환은 산적들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이상한 무늬가 있는 상태로 산적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묶어두고 떠나거나, 경비병들이 체포하도록 알리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주환이 봐도 저들의 모습은 기괴하다. 이런 모습의 산적들을 사람들 눈에 드러냈다가는 어떤 소문이 생겨 어떤 식으로 일이 번질지 모를 일이다. 잘못해서 마녀사냥이라도 당하게 되면….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주환이 산적들을 보고 난감해하는데, 유니콘이 히이잉 울면서 오즈를 쳐다보았다. 갈기를 흔드는 모습이, 마치 오즈에게 뭔가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삐이.”
오즈가 유니콘에게 대답하듯 작은 소리로 운다. 그리고 털 뭉치 몸을 꼼질꼼질 움직여 산적 궁수에게 다가갔다.
궁수는 활과 화살을 손에 든 채 굳어져 있었다. 데구룩 데구룩, 궁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눈자위에 붉은 실핏줄이 생겨, 눈이 피를 가득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아!”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고, 다른 산적들의 모습을 살폈다. 다른 산적들도 눈이 벌게져 있다.
주환은 잠시 산적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꺼풀을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모두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대로 뜨고 있었다.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한 건가.”
저 기괴한 무늬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눈꺼풀조차 강제로 뜨고 있게 만드는 모양이다. 산적들은 눈을 감지도, 깜빡이지도 못했다.
지금은 단지 동작을 멈추게 했을 뿐이지만, 어쩌면 코로 호흡하는 행위부터 배설하는 것까지 모두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저 무늬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장에까지 그려진다면, 그래,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
그러고 보니 동작을 멈춘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걸까. 정말로 몸속까지 건드릴 수 있구나. 왠지 섬뜩해졌다.
주환은 유니콘을 돌아보았다. 붉은빛으로 빛나던 뿔은 이제 다시 본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환과 눈이 마주치자, 하얀 말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해졌다. 상대가 짐승인데도 그 표정을 알 것 같다. 이 아이는 정말로 자신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대로 저 유니콘을 데리고 다녀도 되는 걸까.
관계가 좋을 때는 괜찮다.
하지만 만일 도로시가 유니콘의 심정을 거스르게 되면, 리지가 잘 모르는 상태로 이 아이의 기분을 건드리면, 혹시 이 유니콘이 질투라는 걸 하게 되면, 그래도 안전한가.
자신이 모르는 상태에서, 저 유니콘이 리지와 도로시를 해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만일 내장에 무늬가 그려진다면 주환은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전혀 모를 거다.
저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는 존재를, 가족의 곁에 있도록 허용해도 되는 걸까.
“….”
주환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처럼, 유니콘이 부드러운 갈기를 흔들었다. 히잉, 히잉, 약간 슬픈 목소리로 운다. 마치 자신이 주환의 뜻을 거스를 리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까지는 설마 했지만, 이 아이, 역시 내 마음을 읽는구나.’
그것까지 섬뜩한 기분이 든다. 오즈 때와는 달랐다. 왠지 모를 기분 나쁨이 전신에 스며들었다.
‘이 아이는 그냥 떼어내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오즈가 삐이, 소리 내며 울었다.
오즈를 바라보자, 동그란 눈으로 주환을 살짝 쳐다보더니 코를 움찔거렸다. 귀가 약간 옆으로 처져 있다. 조금 우울해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즈도 이런 무늬를 그릴 수 있지.’
아직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오즈도 이 유니콘처럼 사람의 몸 전체에 기괴한 무늬를 그리게 되는 걸까.
오즈가 갑자기 우울한 얼굴이 된 건, 그렇게 되는 경우 주환에게 미움받는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괜찮아.”
주환은 오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아이는 괜찮다. 도로시와 항상 붙어 다니는 오즈라면, 어떤 상황이 돼도 배신하지 않는다. 그의 루돌프니까. 리지와 도로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즈가 톡톡 뛰어 주환에게 달려왔다. 훌쩍 몸을 떠올려 그의 품에 안긴다. 기쁜 것 같다.
코를 움찔거리며 주환의 표정을 가만히 살핀 뒤, 오즈가 궁수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삐이!”
오즈가 온몸에 힘을 주고 힘껏 소리를 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궁수의 화살을 쳐다본다. 귀를 뒤로 바짝 눕히고 가만히 화살을 노려보았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작은 몸이 잔뜩 긴장되어 딱딱해져 있었다.
“뭐 하는 거니, 오즈.”
유니콘의 흉내를 내고 싶은 걸까. 그게 멋져 보여서? 온몸에 힘을 주면서 끙끙거리는 오즈가 왠지 우습다.
주환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는데, 오즈의 뿔이 빛을 발하며 깜박거렸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삐이!”
오즈가 다시 한번 힘주어 소리를 내자, 산적 궁수가 들고 있던 화살촉에 붉은 무늬가 여러 개 떠올랐다.
동글동글, 마치 달팽이처럼 생긴 무늬였다. 굉장히 작다.
동그란 무늬는 순식간에 나팔꽃 덩굴처럼 화살촉을 뒤덮었다. 화살촉 전체가 동글동글 무늬로 가득해진다. 붉은 개미가 몰려와 화살촉을 빽빽이 덮은 것처럼 보였다.
“뭐….”
주환의 눈이 커졌다.
붉은 무늬로 가득해진 화살촉이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밑으로 톡, 구부러졌다.
“삐이! 삐이! 삐이!”
오즈가 기쁜 듯, 작은 털뭉치 몸을 부르르 떨며 꼬물꼬물 움직였다. 주환의 팔에 얼굴을 비빈다. 마치 칭찬해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오즈, 너.”
유니콘은 인간과 같은 생물을 마비시키고, 오즈는 금속과 같이 딱딱한 물건을 구부릴 수 있는 건가.
주환은 오즈를 보고, 다시 유니콘을 보았다. 기분 탓인지, 유니콘은 기운이 없다. 칭찬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두려움을 심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주환은 오즈를 보고 중얼거렸다.
“너, 단단한 걸 구부릴 수 있구나.”
오즈가 오르토스에게 무늬를 만들었던 곳은 이빨이었다. 어쩌면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았을 뿐, 몸속 어딘가의 뼈에도 그런 무늬가 생겼을지 모른다.
주환은 오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렇다면 비명당근은….’
아, 그런가. 주환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이나 이빨처럼 무생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거다. 식물도 단단하기만 하면, 이 작은 토끼는 뭐든지 구부릴 수 있는 모양이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딱딱한 당근의 꺼풀을 건드려서 마력을 그 안에 가둔 거겠지.
오즈가 코를 움찔움찔 움직였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삐이.”
왜 칭찬을 해주지 않으세요? 그렇게 묻는 것 같다.
주환은 손가락으로 오즈의 부드러운 털을 살살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듯 오즈가 눈을 감고 주환의 손에 몸을 맡겼다. 고양이였다면 골골 소리를 냈으려나.
“…그래, 그런 거구나.”
오즈도, 유니콘도 똑같다. 똑같은 종류의 생물이다.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른 것뿐, 두 아이 모두 그의 마음을 읽고, 똑같이 두려운 힘을 쓴다.
소녀가 했던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루돌프는 젠탱글이라고 했지.
‘그래서였군.’
소녀가 그걸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젠탱글이라는 단어를 루돌프에 붙인 사람은 단순히 무늬만 보고 말한 게 아니었을 거다.
모든 루돌프가 무늬를 그림으로써 능력을 발현하니까, 그래서 루돌프는 젠탱글. 그러나 그들이 갖는 성질은 아마 일반적인 짐승과 다르다. 전혀 이질적인 존재인 거야. 그러니 성격과 능력을 모두 통틀어, 루돌프가 여느 동물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걸 거다. 루돌프는 젠탱글이라고.
다를 바 없다. 오즈도, 유니콘도, 같은 생물이다. 모든 루돌프가 똑같다. 단지 주환이 오즈를 더 안전하게 느끼는 것뿐, 둘 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이런 생각도 모두 오즈와 유니콘에게 전해지는 걸까. 두 아이가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감정만 전해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주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즈를 믿어볼까.’
오즈가 유니콘을 받아들였다면 이유가 있겠지. 왜 만나자마자 곧바로 마음을 허락한 건지는 몰라도,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면 가족 안에 들여보내지 않았을 거다. 그래, 분명히 그렇다.
게다가 추측이지만, 루돌프끼리는 서로 뜻이 통한다. 오즈가 화살촉을 구부리기 전, 분명히 유니콘이 그렇게 하라며 용기를 북돋은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걸 수도 있고, 단순히 용기를 내라고 응원한 걸 수도 있다. 잘은 몰라도, 유니콘은 오즈에게 언니, 혹은 지도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또 모르지. 유니콘이 오즈의 어미일지도.’
종이 다르기는 해도 루돌프잖아. 종에 상관없이 낳을 수 있는지 모른다. 루돌프인 유니콘이 뿔토끼를 낳아, 그게 다시 루돌프가 되었는지 누가 알까.
히이잉, 유니콘이 구슬프게 울었다. 주환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오즈만 칭찬받아 슬픈 건지 잘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 갈기를 쓰다듬자, 유니콘이 주환의 몸에 여러 번 머리를 비벼댔다.
“….”
산타의 계약자니, 루돌프니 하며 길드에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 능력을 가진 생물이 있다면, 그야 난리 칠 만도 하겠지.
‘하아.’
왜인지 모르지만, 그런 루돌프가 두 마리.
주환은 무심코 하늘을 보았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놈들이 함께 있으면 뭔가 사건만 잔뜩 끌어들이게 되는 건 아닐까. 벌써부터 앞일이 걱정이다.
“….”
어쨌든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 산적들을 어떻게든 해야지. 한숨이 한숨으로 다시 이어져갔다.
유니콘이 머리로 주환의 몸을 살짝 밀었다. 한숨을 쉬니 걱정스러운가 보다.
몇 번 머리를 들이밀던 유니콘이 갑자기 히이잉 울었다. 조금 전까지 주환의 상태를 살피는 것처럼 보이던 눈동자가 반짝반짝한다. 마치 그 모습이 좋은 생각이 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과장이려나.
히이잉. 유니콘이 의기양양한 듯 다시 한번 울더니, 뿔에서 옅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뭐야, 또.’
섬뜩한 마음에 휙 몸을 돌려 산적들을 쳐다보는 순간, 투둑 투둑 놈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이었다.
십여 명 남은 산적들은 서 있던 장소에서, 마치 허물 벗은 매미처럼 힘없이 무너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 보자,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모두, 한 명도 남김없이.
‘1초도 걸리지 않았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리고 마치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듯이 산적들 몸에 새겨져 있던 무늬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얼굴에서 손에서, 수많은 그림 가운데, 무늬가 하나씩 사라져 듬성듬성 비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빛으로 그려진 무늬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흔적도 없다. 마치 신기루를 본 것 같았다.
“….”
유니콘에게 시선을 주자, 기쁜 듯이 푸드득거리던 유니콘이 문득 동작을 멈췄다. 또 실수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 모양이다.
유니콘이 눈치를 보는 것처럼 머리를 약간 내리고 주환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괜찮아, 잘했어.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본다.
그 즉시 유니콘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시 의기양양, 고개를 들고 명주실 같은 하얀 갈기를 흔들었다.
역시 마음을 읽는다. 하지만 주환의 모든 것을 매 순간 감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
주환은 마차로 다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리지, 이제 괜찮아. 하지만 문은 열지 마. 조금 지나간 뒤에, 그때 밖을 보면 좋겠어.”
시체들이 가득한 모습을 아내와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꼭 처참한 몰골을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바깥은 이렇다는 걸 알고 있으면 그걸로 족해. 굳이 매시간 매 순간, 주환이 보는 것을 똑같이 볼 필요까지는 없다.
딱딱한 문을 사이에 두고 리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주환. 어디 다친 데는 없나요?”
“괜찮아.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어.”
오즈가 톡톡톡 뛰어 마차의 마부석으로 향했다. 작은 몸이 쏙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즈! 위험하잖아. 아빠가 말했지. 나가면 안 된다구. 여기에서 함께 있어야 위험하지 않은데!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나쁜 토끼가 되는 거야. 알겠어?”
“삐이.”
열심히 일하고 들어갔는데 도로시에게 혼나는 모양이다. 뭐, 도로시와 리지는 상황을 전혀 보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화살을 구부린 뒤 자랑스러워하던 오즈의 얼굴을 생각하고, 주환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도로시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화가 난 듯 탕탕탕, 마차 바닥을 치는 토끼의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
“오즈! 그건 나쁜 행동인 거야! 마차가 아프잖아. 마차가 얼마나 슬프겠어.”
또다시 도로시의 잔소리를 듣는다.
주환은 피식 웃고, 돌아다니며 산적들의 무기를 모았다. 산적 대장의 것만이 아니라 다른 놈들의 무기도 제법 품질이 좋았다. 일반 도적이 아니라 약탈병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으리으리한 갑옷을 입고 있는 놈은 없었지만, 가죽조끼 형으로 된 갑옷이 여러 개 있었다. 덩치가 큰 주환에게는 맞지 않지만, 무기 가게에는 이런 종류의 중고 갑옷도 있었다. 이런 것도 팔면 돈이 된다.
무기와 갑옷을 모두 모은 뒤, 주환은 마부석에 올라 고삐를 흔들었다. 또각또각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산길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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