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01
101
전장에서 토드의 지휘 역량은 기존의 노련한 장군들에 비해 뒤떨어진다. 야전에서 병력의 배치나 유연한 운용, 적의 공세에 대한 대응 같이 무지한 분야는 크뤼거를 비롯한 가신단에게 맡겨놓는다.
모든 분야에 어설픈 팔방미인 흉내를 내느니, 사령술사로서 가진 강점에만 주력했다.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적을 흔들고, 판단 능력을 떨어트린다.
‘척후병들을 보내는 족족 쏴 죽이고 있군. 저러면 지휘부가 당분간 보고를 받긴 어렵겠지.’
눈앞에서 시체 폭발의 위력을 똑똑히 봤으니 두려워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제국백을 날려버리지 못한 건 아쉽긴 해도, 어차피 적 수뇌에게 공포를 심겠다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
중앙으로 진출한 제국백의 병사들은 살점 거인과 맞닥뜨렸다.
‘짓밟으세요.’
토드의 명령에 살점 거인은 거침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장창 대형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우워어!!】
콰앙!!
육중한 거체에 간격을 맞춰 정렬했던 병사들의 무리가 와해된다. 단숨에 수십을 깔아뭉갠 살점 거인은 발을 구르며 적병을 짓밟았다.
저번에 거인을 저지했던 것과 동일하게 적의 보병들이 산개하여 막아 세우고, 후열이 사격을 퍼부었다.
그땐 당황했던 것과 달리, 거인은 히죽 웃었다.
【이젠 안 아프다. 그냥 간지럽다. 내 피부, 더 질겨졌다.】
회전을 앞둔 하루의 말미 동안 토드는 살점 거인의 개조에 매진했었다. 기존에 보유하던 인자인 ‘질긴 살갗’을 접목한 결과, 물렁살에 불과하던 살점 거인의 피부 위로 거친 외피를 덧댈 수 있었다.
【난 더 위대해졌다. 계속 더 위대해질 거다! 난 대작이니까!!】
방어력을 보강한 대신에, 움직임이 조금 둔해진 게 유일한 흠이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저 녀석에게 기동력은 필요 없지.’
살점 거인은 전방에 나선 탱커인 셈이다. 몸집으로 적의 시선을 끌고, 단단하게 굳힌 적의 진형을 흩트려놓는다.
딜러 역할을 수행할 하수인은 따로 있었다.
“이스라. 좌측 측면으로 기동하세요.”
―끼이이익!!
안개 너머,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곤 즉각 병사들이 반응했다.
“저 소린.”
“그, 그놈이다.”
거인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던 장정들이 몸서리친다. 부사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창을 내던지고 도망치려는 이들까지 속출했다.
“위치 사수해라! 탈영병은 처형 대상이다!”
기습만 3주를 거듭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악랄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덕분에 파멸의 기사가 뿌린 공포는 저들의 뼛속까지 학습되었다.
새파란 유령말이 내달린다. 그 위에는 흑색 갑주를 입은 기사가 타 있었고, 뼈마디만 남은 앙상한 기수들이 선봉장을 따랐다.
투구 속에서 번뜩이는 귀기 어린 눈동자.
지면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짓이겨진 채 바닥에 뒹구는 시신이 풍기는 피비린내.
피부 위로 느껴지는 오싹한 한기.
혀 밑이 따갑고, 투구에 눌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감각이 선연하다.
엉겁결에 방진의 선두를 맡게 된 병사가 입을 벌렸다.
“아, 아. 아···!”
바들바들 떠는 그에게선 짐승이 앓는 듯한 외침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서 있는 것조차 버겁다. 창대를 쥔 손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미 바지춤은 축축해졌지만, 병사에겐 그걸 의식할 여유조차 없다.
‘난 여기 왜 있는 거지?’
모병관은 상대가 어차피 변경백령을 점거한 반란군이나 다를 바 없다며, 가서 깃발만 꽂아도 끝날 싸움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 외에 정당한 권리니, 에베르호펜의 백성들을 구할 대의라느니 떠들어대더라도 다른 제후의 권역, 이른바 남의 동네에 싸움하러 간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밭에서 쟁기를 매느니, 징집병으로 차출되는 편이 훨씬 벌이가 쏠쏠했다. 그래서 자원했다.
‘벌을 받는 건가.’
그렇다면 왜 하필 신께선 저런 불경한 형상을 한 존재들을 불러들여 자신들을 단죄하시는 걸까.
창끝에 맺힌 녹색 섬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돌연 주변이 고요해지고, 병사의 시야는 오로지 기사가 옆구리에 끼운 창에만 쏠린다.
죽음이 엄습했다.
콰직―
병사의 의문은 종식되었다. 그는 제 양옆의 동료와 더불어 분쇄된 살덩이로 전락했다.
대열을 뚫고 들어간 파멸의 기사는 거침없이 방진의 측면을 휘젓고 지나간다.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진 병사들의 시체가 바닥에 깔린다. 파괴적인 돌파력으로 난입한 이스라는 창을 내던지고, 장검을 휘두르며 주변의 병사들을 베어 넘겼다.
【나를 두려워하라! 침입자들이여!】
간혹 전장의 열기에 이성이 마비된 자들이 이스라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그녀는 가뿐히 장대를 빼앗아 부러트리곤, 영마로 하여금 짓밟았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앞에 누구도 쉽사리 대적할 엄두를 못 냈다.
【네 주군의 탐욕이 너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나니! 본인을 상대해 보거라!】
덩달아 앞발을 치켜든 영마가 포효한다.
【본인은 이스라다! 여기서 날 쓰러트리고 명예를 쟁취할 자는 없는가!】
‘엄청 신났네.’
파멸의 기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전장을 누볐다. 간혹 검술에 능한 중보병이나 부사관이 그녀와 맞섰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그녀가 지나간 곳엔 피범벅이 된 시신이 뒹굴었다.
전투는 참혹한 일이다. 누구나 살아온 족적은 있다. 저기 있는 이들 하나하나가 토드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게임이었다면 이렇다 할 상호작용도 없고, 절차적 형성으로 만들어진 무작위 데이터 쪼가리들이었겠지.’
플레이어는 이야기가 없는 캐릭터에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단역들은 게임을 꾸며주는 배경에 지나지 않을 뿐.
푸각!
해골 기수가 휘두른 창에 사수의 머리가 꿰였다. 일반 보병에 비하면 화기를 다룰 줄 아는 사수들은 봉급을 많이 받는다. 저자도 죽기 위해 여기 온 건 아니겠지. 들어보면 분명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지나치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령술사는 향로를 들어 올렸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흘러나온 향연과 안개가 뒤섞여 미동조차 않고 바닥에 엎드린 이들에게로 스며든다.
“여기엔 피로 얼룩진 허물만 두고 가라. 당신이 진 업은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갈 테니.”
제후들의 욕심으로 말미암은 전쟁. 자의로 참전했거나, 타의로 끌려왔건 간에 죽음은 참혹한 일이다. 토드 역시 이를 기회 삼아 이용하고 있으니 저들이 자신을 원망한다 하더라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안타까운 영가여. 안식을 찾아 고통과 소음으로 가득한 이 땅으로부터 떠나라. 장차 그대의 넋은 고요한 바다로 나아갈 지어니.”
무의미한 살생은 지양한다.
순환의 교리를 익히는 사령술사로서, 토드는 죽음의 순리만큼이나 생명의 무게 또한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적대하는 한, 자비를 베풀진 않을 것이다. 그가 베풀 수 있는 일말의 자비라곤 망자를 애도하며 전송하는 것뿐.
“이제 남겨진 잔해들은 일어서라. 모두.”
시체들의 눈에 안광이 맺혔다. 불완전한 파편들이 약동했다.
“일어나라.”
되살아난 존재들은 산 자를 쫓았다. 그 사이 거리를 벌린 이스라와 해골 기수들이 재차 돌격을 감행했다.
“아아악!!”
“일어나라.”
사령술사가 재차 읊조렸다. 향로에 맺힌 불꽃이 춤을 추듯 요사스럽게 흔들린다.
“일어나라.”
토드는 단검으로 손바닥을 긋곤, 향로에 떨궜다. 사나운 불빛은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일어나라.”
쿠웅!!
발을 구른 살점 거인은 성가시게 매달리는 놈의 몸을 분지르곤, 축 늘어진 몸뚱이를 집어던졌다. 사지가 뒤틀린 채로 날아간 육신에 뒤엉킨 병사들이 넘어졌다.
“일어나라.”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시신은 돌덩이나 다름없었다. 뼈가 부러진 병사가 신음을 흘리며 허덕이던 와중, 돌연 위에 깔렸던 시신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크으으···!】
“흐악! 떼어내! 떼어줘!”
절박한 외침은 전장의 소음에 묻혔다. 사방에 죽은 자들이 가득했다. 산 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도 벅찬 상황.
망자가 손을 뻗어 병사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끼야아악!! 악!!”
얼마 안 가 두 구의 망자가 일어섰다.
“···일어나라.”
토드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느덧 들판에 만연하던 안개가 걷히고, 늦은 아침의 광명이 모두의 눈을 트였다.
제국백의 중앙 병력은 궤멸했다.
오롯이 토드와 그의 하수인들만으로 이뤄낸 전과.
그러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기병대는 보이지 않았고, 마법사도 나타나지 않았어.’
토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대강 벌판에서 일으킨 망자들이나 바닥에 쓰러진 주검을 헤아려봐도 제국백의 전력에 미치는 숫자는 아니다.
돌연 우측 능선 너머로 섬광이 번뜩였다.
꽈릉――!!
휘청이던 토드가 주저앉았다. 마력을 과도하게 쏟아부어서, 몸의 기력이 쇠한 탓이었다.
‘젠장.’
겨우 몸을 일으킨 토드는 물약을 비웠다. 오늘따라 목 넘김이 시원치 않더니, 급기야 속이 끓어오른다.
“쿨럭.”
입안에 쇠 비린내가 난다. 애써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른 기운을 억눌렀다. 3주간 몸을 혹사시킨 여파가 고스란히 몰아닥친 것이다.
‘제국백의 병사들도 극한까지 몰렸다. 숫자가 크게 밀리지만, 크뤼거의 병사들이 고지를 점하고 있으니 대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버틸 거야.’
하지만 문제는 마법사의 존재다.
일찍이 그가 전격을 사용하는 걸 목격했으니, 아마 창공 학파에 속한 인물일 것이다.
토드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필 창공 학파라니.’
번개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는 광역 주문과 더불어 유틸성이 탁월하다. 잡몹 정리도 시원시원하고, 「점멸」 사용 횟수가 늘어나는 특성 덕분에 기동성도 뛰어나서 초보자들에게 선호되는 빌드였다.
제국백이라면 당연히 주력 부대가 있는 쪽에 마법사를 보내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설마 중앙의 병사들은 미끼로 던져준 건가?’
번개가 떨어진 곳은 오른쪽.
우익을 지휘하는 건 크뤼거다.
토드가 홀로 중앙을 도맡아 전선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일 생각이었는데, 정작 적이 힘을 실은 곳은 측면이었다.
“이스라!”
토드의 부름에 파멸의 기사가 휘하의 기병대를 이끌고 왔다.
“우측의 크뤼거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본인도 벼락이 떨어지는 걸 보았네. 어찌나 밝은지 눈이 부시더군. 고약한 놈 같으니.】
“가서 그를 구하세요.”
토드의 상태가 도저히 따라올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이스라가 중얼거렸다.
【흐음. 그럼 자네가 혼자 남겨지지 않나.】
“크뤼거가 잡히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파멸의 기사는 안광을 좁혔다.
【그래도 불안하군. 자네는 허약한 사령술사이지 않나. 본인 없인 이 혹독한 전장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걸세.”
“이 일대의 적은 소탕했고, 주변에 하수인들이 있으니 아마 괜찮을 겁니다.”
투구 속 안광이 수시로 흔들린다.
【끄응, 그래도···!】
온몸에 피칠갑을 해놓곤 저리 고집을 부리는 게 어이가 없었다. 병사들을 학살하며 광소를 터뜨리던 존재가 자신의 안전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꼴이라니.
입가를 훔친 토드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제국백의 마법사를 쓰러트린다면 대단한 군공일 겁니다. 설마 그 명예를 다른 이에게 넘길 겁니까? 다름 아닌 당신이?”
식어가던 안광에 다시 불이 붙는다.
【명예를 양보하라? 그럴 순 없지!!】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세요.”
【알겠네! 천천히 따라오게나! 본인이 요술쟁이의 목을 가져올 테니!】
대뜸 파멸의 기사는 멀뚱멀뚱 바라보던 살점 거인을 가리켰다.
【네놈! 반드시 사령술사를 잘 지켜야 할 것이다!】
【난 사령술사의 대작이다. 잘 지킨다!】
고삐를 잡아당긴 이스라가 소리쳤다.
【이놈들! 느슨해진 뼈마디는 기워 맞추고, 느슨해진 투구 끈은 다시 묶어라! 한 놈이라도 낙오했다간 전투가 끝난 뒤에 경을 칠 것이야!】
―끼이이익!!
영마의 포효에 덩달아 해골마들도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하, 하! 하. 본인을 따르라! 건방진 요술쟁이를 잡으러!】
이스라를 떠나보낸 토드는 땅바닥에 걸터앉았다.
‘전격법사라도 영마의 속도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파멸의 기사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주문 저항력도 뛰어나지만, 갑주의 문양도 단단히 보강해뒀다. 전격 마법사의 관통력으로도 쉽사리 뚫어내지 못할 거다.
‘좀만 쉬었다가 여기서 눈물의 업을 거두고 합류해야겠다.’
일으키지 않고 남겨둔 시신은 꽤 많았다. 아마 약식으로 이들의 넋만 달래주더라도 적지 않은 수확이 될――
빠직.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따끔한 느낌에 토드의 눈이 흔들렸다.
‘정전기?!’
냅다 몸을 일으킨 토드는 시신이 많이 쌓인 곳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마력을 일으켰다.
“잔해의 약동!”
투두두둑···!
살점과 뼈가 피로 얽혀 일어선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더 두껍게 쌓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가해질 고열을 감안하면 밀도를 빽빽하게 채워야 하고, 설령 뚫지 못하더라도 이 일대에 흐를 전류를 감안하면···
“하. 이건 죽었네.”
토드가 탄식했다.
“왜 여긴 밸런스 패치 안 하냐. 아직도 텔포 망겜인데.”
잊고 있었다. 대가에 이른 창공 마법사는 「점멸」 뿐만 아니라, 「차원의 문」이라는 장거리 이동기도 있었지.
전투에 집중하느라 놓쳤나···.
어쩔 수 없다. 실수했으면 뒤져야지.
그게 원작의 본질이었고,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두 번 실수하진 마라.’
이를 간 토드는 목걸이를 쥐었다.
―벽력이여!!
하늘에서 웅대한 고함이 울려 퍼졌다.
플래시 터뜨리듯 새하얀 뇌광이 사방에 번진다. 뒤따르는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사령술사의 몸이 녹았다.
깔끔한 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