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05
105
토드는 저번 전투의 패착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선 지휘 구조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수십 정도를 몰고 다녔을 땐 괜찮았지만, 스케일이 점점 커지니 감당하기가 어려워.’
이제 토드의 마력으론 파멸의 기사나 살점 거인과 같은 고위 망자를 두고도, 하위 망자는 500구 가까이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지닌 정신력의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자아가 없는 하위 망자들은 토드가 통제하지 않으면 피아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산 자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짐승이 되어 버린다.
그들을 통제하면서 교전 중에 발생한 손실까지 주기적으로 충원하고, 이스라나 거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건 급격하게 토드의 정신에 부하를 가했다.
‘내가 일개 하급 하수인들까지 조종할 순 없어. 나 대신 작은 단위를 이끌 녀석들이 필요하다.’
망자들을 통제하는 건 비유하자면 수시로 알트탭 키를 누르면서 일일이 망자의 시야와 자신의 시야를 번갈아 가는 것과 다름없다.
하여 토드는 휘하에 모인 시신 중에 백인장, 보병대장 등의 계급을 막론하고 장교 견장을 찬 이들을 추려냈다.
“저자는 어떤 것 같습니까?”
【으음··· 근골이 제법 쓸만해 보인다만, 미간이 좁군. 살짝 부족하네.】
“이자는요?”
【흠흠,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대개 단장의 직위에 오르는 이들은 눈썹 윗부분이 돌출된 경향이 있다고 하더군.】
비록 이스라가 기사도 전집에서 주장하는 엉터리 관상학에 근거를 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망자는 더 망자에 가까운 존재일수록 더 잘 알아보는 법.’
그녀는 상위 망자로서 무의식중에 하위 망자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지휘관으로서 활용하기에 적합한 망자를 추려내는 건 토드보다 이스라가 뛰어나다.
당장 40기까지 줄어들었던 해골 기마대가 줄곧 이 숫자를 유지하는 것만 보더라도 이스라의 안목은 증명되었다.
【아, 저자도 괜찮겠군! 머리가 크고 얼굴이 직사각형에 가까우니, 근골이 발달해있고 감정에 쉬이 휘둘리지 않을 생김새네. 필히 중간 관리자로선 더할 나위 없을 것이야.】
“이스라. 어차피 망자가 되면 감정은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이런! 그럼 이자들도 기마대와 마찬가지로 벙어리 신세란 말인가?!】
“별수 없지요. 제가 상위 망자로 만들 수 있는 개체는 한정되어있습니다. 이들에겐 그만한 의식도 남아 있지 않고요.”
탄식한 이스라가 중얼거렸다.
【끄응···. 그래도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지휘가 더 원활할 텐데 말이네. 대답이 돌아와야 기사도 전집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보람도 있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는 이미 휘하의 해골 기마대를 끌고 다닐 때마다 줄곧 기사도 전집의 글귀나 어록들을 읊어대곤 했다. 토드가 넌지시 해골 기마대를 바라보자, 그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버렸다.
“말을 하진 못해도, 의미는 통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 괘씸한 것이네!! 저놈들. 괜히 알아들으면서 안광만 깜빡이면 그만이냔 말이야! 고얀 놈들.】
어깨를 으쓱인 토드는 산시아를 불러들여 발골 작업에 착수했다. 이윽고 뼈만 남은 9기의 유해를 향해 토드가 향로를 흔들었다.
“일어나라. 부관들이여.”
송진을 바른 뼈마디가 꿈틀거린다. 여기저기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절이 맞물리고, 마력으로 자아낸 실이 어긋난 부위를 엮어나간다.
“그대들이 생전에 누굴 섬겼든 간에, 이제는 나의 인도하에 놓여있노라. 그대들은 나의 병졸들을 지휘하게 될 것이니.”
완연히 일어선 해골들의 텅 빈 동공에 연녹색 안광이 선명하게 깃든다.
토드는 그들의 이마에 일일이 자신의 피를 바르며 향로를 흔들어줬다.
“사령술사인 나와, 파멸의 기사, 그리고 나의 제자인 산시아의 말에 복종할지어다.”
해골들이 토드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스라 역시 안광에서 흡족한 빛이 넘쳤다.
【하, 하! 하. 이제 좀 제대로 된 체계가 잡히는 느낌이군.】
이들은 앞으로 토드를 대신하여 휘하의 하위 망자들을 이끌 것이다. 작전이나 계획을 토드가 수립하면, 세부적인 움직임은 이들에게 맡긴다.
‘아무래도 사령술사의 특성상, 여전히 내가 쓰러지면 끝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어.’
킹이 잡히면 게임은 끝난다. 절대적인 대명제는 바꿀 수 없으나, 지휘 체계가 병렬적으로 변모함에 따라 사령술사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줄어든다.
이로써 교전의 큰 흐름에 집중할 수 있고, 일신의 보호에 신경을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
지휘관들을 헤아리던 토드는 그들에게 할당된 수용량을 확인했다.
“개체당 통제할 수 있는 하위 망자가 70기 정도군요. 편의상 백인장으로 칭하겠습니다.”
【자네의 경지가 상승하면, 이들이 지휘할 수 있는 망자들도 늘어나는 셈인가?】
“아마 그러겠죠. 지금은 백인장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추후 천인장, 연대장, 군단에 해당되는 편제까지 늘려나갈 수 있을 겁니다.”
【군단···!!】
이스라의 안광이 이글거렸다.
【그래! 이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겠지! 더 많은 병사, 더 큰 군대! 그래야만 더 장엄한 전투가 펼쳐질 테니 말이네! 이 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만한! 서사시에 기록될 만한 대전일 테로다!!】
흥분한 파멸의 기사가 콧김을 흘릴 때마다 불티가 투구의 틈새에서 새어 나와 희번덕댔다.
당분간 이스라는 별도의 성장할 여지가 없다. 파멸의 기사로 격이 상승하면서 이스라 개인의 성장세를 토드의 테크 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기사 다음이 파멸의 기사, 아마 그 위가 심연의 기사일 텐데, 거기까지 해금하려면 내 레벨이 못해도 50 이상은 도달해야 해.’
40 중반에 들어선 뒤론 부쩍 경지의 상승이 더뎌지고 있다. 아마 요구되는 업의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업을 수급할 수 있는 대규모 전투를 빈번하게 겪거나,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사상자가 필요했다.
‘이미 어지간한 인간으론 이스라의 무력을 감당하지 못해.’
무기의 달인, 필멸자의 벽을 넘어선 존재들이 아닌 이상, 이스라가 흩뿌리는 기세만으로 질식해서 죽는 정도다.
무력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내실을 다질 차례.
“이스라. 당신은 백인장들과 더불어 망자들을 통솔하는 훈련에 정진해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지휘 훈련을 맡으란 말인가? 본인은 성격상 누굴 이끄는 것보단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게 성미에 맡는다만.】
“여태껏 당신은 선봉장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적들에게 공포를 안기고, 무너뜨린 방진을 일방적으로 섬멸하는 건 기사로서 모범적인 모습이죠.”
이스라는 견갑을 추켜세우며 헛기침했다.
【흐흠. 모범적이라. 그런가?】
“하지만 소규모 교전이면 모를까, 규모가 큰 야전에선 이런 식의 움직임이 전세에 미치는 영향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전의 전투에서도 제국백의 병력을 몰아내긴 했지만, 결국 우리가 완전히 승리를 거두진 못했잖습니까.”
토드의 지적에 파멸의 기사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더욱이 당신은 기마대를 이끄는 만큼, 아군 보병과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적재적소에 적을 타격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이런 역량을 기르려면 지휘 훈련이 필수적이겠죠?”
【크흠······.】
차마 반박하진 못하고 이리저리 안광만 굴려대는 이스라를 향해 토드가 판갑을 톡톡 쳤다.
“게다가 당신도 언제까지나 기사로만 머무를 순 없지 않습니까. 장차 기사단장이 될지도 모르지요.”
【본인이 기사단장이 된다라.】
“그럼요. 앞으론 죽은 기사 중에도 우리에게 합류할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자들을 통솔하려면 미리 지휘자로서 능력도 갖춰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임자가 서열이 밀리면 안 되지요.”
이스라처럼 기사도를 추종하는 고지식한 성격이라면, 서열에 집착하기 마련. 파멸의 기사는 그대로 걸려들었다.
【아무렴!! 박혀있던 바위가 굴러들어온 돌멩이 따위에게 뽑힐 순 없는 법이지!!】
씩씩거린 이스라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장검 대신에 나무 작대기를 들곤 봉처럼 휘두르며 일갈했다.
【이놈들!! 오늘부터 훈련이다!! 오늘은 기사도 전집 9장에서 등장하는 사례인 쐐기 돌파 대형을 재현하겠다!!】
백인장들을 비롯해 망자들은 특유의 맥없는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지만, 이스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괄괄한 목소리로 망자들을 연신 꾸짖었다.
【어차피 네놈들의 흐느적대는 몸뚱이론 정교한 방진을 구사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신병을 충원하려면 사상자가 필요하다! 고로 반드시 돌진!! 돌진이다!!】
아무렴.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지.
언데드 군대가 손실을 두려워할 필요 없으니까.
어차피 다음 전투를 앞두고 말미가 그리 많진 않다. 짧은 기간 내에 망자들이 훈련을 거쳐 정예병으로 거듭날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이스라에게 더 많은 병사를 이끄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
그녀에게 망자들을 맡겨두고 토드는 군막으로 돌아왔다.
가운데엔 소리의 서를 받침대에 세워두고, 대접에 담긴 양초가 희미하게 빛을 밝힌다.
그 아래 산시아는 눈을 감은 채 집중하고 있었다.
“산시아.”
토드의 부름에 제자가 눈을 떴다.
“적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변함없이 제국백의 군대는 뒤벵겐에서 머무르고 있어요.”
산시아는 점점 스킨워커 구울들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사령술을 극대화하는 서책의 보조가 필요하긴 했지만, 수습생에 불과한 사령술사가 구울 무리를 활용해 원거리 정찰까지 수행하는 건 대단한 성과였다.
“지켜보는 동안 별도의 움직임은 없었는지요.”
“네. 정찰병들이 근방의 가까운 지역만 돌 뿐, 그 이상 나가진 않았어요. 마치 저희가 접근하는 게 아닌지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네요.”
제국백은 토드를 두려워하고 있다.
에베르호펜으로 기세등등하게 침공했던 것과 달리, 막상 망자들과 교전을 해보니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눈썹을 찌푸린 토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완전 물러서진 않았단 말이지. 여기서 재정비할 여지가 남아 있나? 그래 봤자 뒤벵겐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야. 물자를 충당하기에 적합한 곳도 아닌데.’
문득 산시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비록 정찰대가 밖으로 돌진 않아도, 수시로 전령을 보내는 모습은 보였어요. 어쩌면 제국백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증원이라고 해봐야 제국백이나 방백 수준으론 수백 안팎으로 그칠 것이다. 고작 그만한 병력을 기대하고 제국백이 뒤벵겐에 틀어박힐 것 같진 않았다.
“제국백이 기다릴 만한 자라면···.”
토드가 말꼬리를 흐리던 중, 누군가가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마르커스. 당신이 저를 찾아올 줄은.”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부상자의 처치에만 전념하던 마르커스였다.
그는 평소 망자임을 감추기 위해 투구와 망자를 눌러쓰곤 했는데, 웬일로 투구는 옆구리에 끼운 채 창백한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우연히 나를 찾아오신 분이 계셨네.】
마르커스가 가리킨 곳엔 회색 망토를 걸친 사내가 서 있었다.
【나는 이리 영락한 몰골임에도, 기꺼이 나를 찾아와주셨지.】
그의 손에는 군막의 풍경과 대척점에 놓인 물건이 걸려 있었다.
묵주로 엮인 광륜표.
미간을 좁힌 토드는 펼쳐져 있던 소리의 서를 덮곤, 그 위에 검은 천을 덧씌웠다.
그러자 사내가 나직이 속삭였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경계하는 산시아를 뒤로 물러 세운 토드가 답했다.
“보통 성직자분들은 서책의 음성을 듣곤 횃불부터 들이미시는데, 별난 분이시군요.”
마르커스는 영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제멋대로 구는 몸뚱이만 아니었다면 진작 저 책을 찢어발겼을 거다.】
반대로 공손히 손을 모은 사내가 읊조렸다.
“비록 구주를 섬기는 제가 듣기엔 다소 불편하나, 다른 높으신 분을 모시는 경전이라면 마땅히 온유한 마음으로 존중하는 게 피조물의 도리겠지요.”
음,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 낯간지러운데.
항상 거품부터 몰고 보던 사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오히려 이런 상대가 더 까다롭지.’
토드는 입가에 의례적인 미소를 띄웠다.
“자비로운 처사에 감사를. 실례지만 어떤 용무로 저를 찾아오셨는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사내 역시 망토를 거둬들였다. 그의 가슴팍에는 광륜 위로 검이 가로지르는 문양이 선명했다.
“저는 에덴트라흐 교구의 성직 제후, 주교후 카셀미어 예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신부 디터입니다.”
카셀미어 주교후. 그는 일찍이 성전 기사단을 이끌고 출병한다고 하지 않았나.
제국백이 기다리는 전력은 이들이다.
‘근데 왜 다름 아닌 내 군막에 주교후가 전령을 보내셨을까.’
일이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네?
토드의 입가가 비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