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8
138
워낙 악독한 병을 연구하는 집단이니만큼, 유출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을 것이다.
설마 어떤 미친놈이 병에 걸린 시체를 끌고 쳐들어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의외로 흑마법사들의 대응은 신속했다.
“장구가 없는 놈들은 재가공해라!”
재가공. 추종자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흑마법사들은 가죽을 뒤집어쓰지 않은 놈들을 향해 가차 없이 주문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녹아내린 추종자들은 인간의 모습을 잃고 뒤틀린 살덩이 형태로 다시 일어섰다.
‘저놈들도 사역마를 부리는 계통이구나.’
그렇다면 어느 쪽의 하수인이 더 나은지 비교해볼까.
놈들이 대오를 갖추느라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사령술사가 읊조렸다.
“이스라, 마르커스.”
콰앙-!!
단숨에 천장을 부수고 내려온 인영이 흑마법사를 짓뭉갰다. 검녹색 휘강이 번뜩일때마다 살덩이, 흑마법사, 가릴 것 없이 일단 서 있는 것들은 죄다 찢어발겼다.
풍차날 휘두르는 듯한 소리가 몇 차례 울려 퍼지더니, 낙하에 휩쓸린 일대는 분쇄된 고기 조각들만이 남았다.
연기 속에서 망자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하, 하! 하. 네놈들이 이 도시에 악독한 역병을 뿌린 놈들이렷다!]간발의 차이로 물러서 있던 흑마법사들이 벌벌 떨었다.
“죽음의 기사…!”
아무래도 자신들이 마주하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여, 파멸의 기사는 그들을 위해 친절히 통고했다.
[본인은 네놈들에게 도래한 파멸이다! 네놈들의 악행은 목숨으로 단죄하마! 그게 응당 죽어간 희생자들을 위한 도리일 터!]파악!
흐릿한 섬광이 번뜩였으나, 이스라는 날렵하게 검자루를 비틀어 막았다. 맹렬하게 끓어 오르며 증기를 일으키는 모습에 그녀가 안광을 찌푸렸다.
“통째로 녹여. 아무리 죽은 자라도 기반이 되는 육신을 상실하면 움직이지 못한다!”
치이익…!
사방에서 쏟아지는 맹렬한 극독에 이스라의 갑주가 타들어 간다. 아직 버틸 만 했지만, 이대로 계속 포화를 맞으면 갑주가 녹아 내릴지도 모를 일.
파멸의 기사가 씨익 웃었다.
[과연, 지독한 독이로군! 이렇게 해로운 놈들이 가득한데, 두고 볼 작정인가? 심문관!]그와 동시에, 돌연 선명한 광휘가 이스라의 주변에 감돌았다. 직접적으로 갑주는 감싸지 않고, 미세한 간격을 둔 채 뒤덮는 섬세한 안배.
철퍽, 철퍽.
흑마법사들의 주문은 이스라를 타격하지 못하고, 빛에 가로막혀 산화했다.
천천히 입구를 통해 걸어들어온 마르커스는 선명한 빛이 어린 검을 겨눈 채 중얼거렸다.
[진정 영락한 자들에게도 구주의 빛은 닿을 수 있는가…. 그게 더한 대의를 위한 일이라면.]클라우스는 눈앞의 광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지?’
눈을 감은 태양 갑주. 명백한 이단 심문관의 상징이다. 풍기는 기운만 보더라도 살아있는 인간은 아니었는데, 멀쩡히 성검을 쥐고 있는 데다, 검은 기사에게 축복까지 실어줬다.
보호막의 성능을 확인한 이스라는 장검을 치켜든 채 조소했다.
[보아하니 네놈들의 주문도 이 빛을 뚫을 순 없는 모양이군.]쩌엉!
발을 구른 이스라는 단칼에 살덩이들을 쪼개버렸다. 거침없이 내달릴 때마다 기껏 빚어낸 사역마들이 뭉텅뭉텅, 갈려 나간다.
거기에 옆에서 가세한 마르커스가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쳤다.
[구주의 가호가 함께하리라! 빛이 그대를 보호한다. 작렬하는 태양의 신성이 원수를…]기껏 방어막을 뚫고 갑옷에 손상을 입혔다 싶으면, 어김없이 빛이 부식된 부이를 감싸고. 이스라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펑펑 터지는 광채에 흑마법사들은 눈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나름 거대한 실험실의 규모에 걸맞게, 상주하는 흑마법사들도 수십 이상이다.
그럼에도 이곳엔 이스라의 폭주에 제동을 걸만한 자는 없었다.
마르커스를 노리고 주문을 쏠 기미가 있으면 이스라가 한발 앞서 달려들고, 치명적인 일격엔 적절하게 마르커스의 축복이 맞물려 상쇄한다.
‘산성 빌드를 타는 흑마법사도 까다롭지. 도트뎀도 만만치 않고, 부식 디버프도 강력한 편이고.’
평균 레벨 50을 넘어가는 흑마법사들로 우글거리는 실험실?
잘 키운 하수인이면 저런 조무래기들 수십 안 부럽다.
클라우스는 부하들은 내팽개치고, 황급히 오수를 내버리는 통로로 뛰어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도르래를 잡아당기자 뫼를렌도르프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도시의 상공은 어두침침했지만, 지상은 곳곳에 번진 불길과 연기 기둥이 자욱하게 깔렸다.
‘강림은 시작되었어. 하지만 은신처가 너무 빨리 발각되었다! 이 정도론 공양물이 터무니 없이부족한데…!’
이미 성공적으로 의식을 마치기엔 글러먹었다. 분명 데믈러의 진노가 미칠테지만, 알게 뭐람?
지금은 목숨을 보전하는 데 더 급급한 상황이지 않는가.
찰박.
발을 내디디려던 클라우스는 홀연히 들려오는 물소리에 멈춰섰다.
“잘 봤죠? 신시아. 이렇듯 하수인들을 운용할 땐 상호간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합니다.”
“네. 저번 대련에서도 그렇고, 다양한 범주의 하수인들을 갖춰야 교전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통로에 드리운 어둠 너머, 진한 초록빛이 일렁였다.
“특히나 당신이 다수의 하수인 운용에 애를 먹는다면, 이런 식의 소수 정예를 육성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합니다.”
주변 분위기와 동떨어진 듯한 어투에 클라우스는 무릎을 꿇었다.
대뜸 흑마법사가 고개를 숙이자 토드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살려주십시오! 사령술사님!”
토드가 어깨를 들석였다.
보통 결사대에 속한 놈들은 사경에 몰리면 어떻게든 발악하던데, 냅다 목숨을 구걸하다니. 새삼 신선한 반응이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클라우스라고 합니다.”
“그래요. 클라우스. 제가 저걸 보고도, 당신을 살려둘 거라 생각합니까?”
어느새 뒤는 고요해진 뒤였다. 침을 삼킨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살점도서관에서 수장을 보좌하는 직책입니다.”
토드가 빙긋 웃었다.
“아하. 나름 이인자라는 거군요. 그럼 더 살려둘 이유가 없는데요?”
사아아…
사령술사에게서 흘러나온 한기가 천천히 흑마법사를 잠식했다. 천천히 발끝에서부터 휘감기는 지배력에 클라우스가 턱을 부딪쳤다.
“이미 기우제는 시작되었습니다. 저걸 저지하려면, 제 지식이 필요하실 겁니다!”
토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이미 다른 흑마법사를 죽이고 그들의 육신을 부려본 적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말할 순 있을텐데요.”
“아, 아뇨. 사령술사님. 제 영혼은 존귀하신 분의 손아귀에 붙들려있어, 저를 죽이시면 제 존재가 끌려갑니다! 그러면 사령술사님께서 찾으시는 물건도 얻지 못하실 테고요!”
요놈 봐라. 나름 살아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는데, 조금 혹하는 구석이 있다.
“당신의 영혼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굽니까?”
“그, 그건… 맹약이 걸려있어 제가 발설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기우제가 끝나면 내리실 분입니다.”
강림 의식을 기우제라고 칭하고 있다.
역병을 다루는 흑마법사들이 부를 악마라면, 필히 그가 내리는 비가 생명체들에게 이로운 계통은 아니겠지.
“흠, 제가 찾는 물건이 구체적으로 뭔진 아시고요?”
클라우스가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용해반지를 찾고 계신 게 아닙니까. 본래 흑색 학파가 소유하던 유물이지요!”
“보아하니 여긴 없는 것 같은데, 누가 소유하고 있는 겁니까?”
“데, 데믈러. 살점도서관장입니다. 그는 사역마들을 이끌고 적색 마탑을 교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상당한 수의 수조가 있었는데, 모두 비었다. 제대로 된 놈들은 이미 끌고 나갔다는 건가.
“저, 저는 도시에 숨겨둔 역병 제단의 소재지를 전부 파악하고 있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무조건 사령술사님께 협력하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마르커스가 인상을 구기며 그를 가리켰다.
[사령술사, 뭘 망설이고 있나. 이 악독한 놈을 살려뒀다간,자칫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를 일이다.]검에 맺힌 백색 광휘가 흑마법사를 집어삼킬 것 처럼 사납게 요동쳤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 마력 운용은 보잘것없어서, 살점도서관의 대외 실무만 담당하던 놈입니다! 이런 힘으로 어찌 강대한 사역마를 부리는 사령술사님께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닥쳐라! 이교도! 네 역한 숨결이 공기를 더럽히는구나. 당장에라도 목을…!]토드가 손을 까딱이자, 몸뚱이가 마르커스의 머리를 뽑아버렸다.
[캬아악1 이 망할 놈이, 또!]“의식이 완료되면 당신들이 섬기는 악마가 뫼를렌푸르트에 강림한다. 그리고 용해 반지도 얻을 수 없다는 거고요.”
“예, 예!”
[이번에는 본인도 심문관의 말에 동의하네. 그것만으론 저 사특한 놈을 살려둘 사유가 부족하지 않나?]이스라도 거들고 나서자, 토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자는 데믈러라는 흑마법사의 오른팔로서 살점도서관의 실무를 담당해온 자입니다. 추후 소란이 진정되면 진상조사를 시행할 텐데, 그에 대한 증인으로 살려둘 가치는 있습니다.”
산시아가 그를 몰아세웠다.
“당신, 이 일을 사주한 콘라트 대공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나요?”
눈깔을 번뜩인 클라우스가 황급히 답했다.
“물론이지요! 대공은 저희와 긴밀하게 협력했습니다! 살려주신다면, 제가 아는 건 모두 실토하겠습니다!”
이스라의 안광이 이글거렸다.
[저놈을 살려두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이번 기회로 뫼를렌푸르트와 관련된 전모가 드러난다면 자연히 대공의 치부도 밝힐 수 있겠군.]고개를 끄덕인 토드가 손짓했다.
“저자는 포박해두세요. 일단 이곳은 정리 됐으니, 위로 올라가서 대체 흑마법사들이 시청 지하에 도사리고 있던 까닭을 들어봐야 겠습니다.”
토드 일행이 워낙 거나하게 소동을 일으킨 탓에, 시장을 위시한 인원들이 바로 위에 몰려 있었다.
마르커스가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눈 채 일갈했다.
[흑마술 혐의에 협조한 것만으로도 사형감이다! 가증스러운 이교도들을 시의 공공시설에 들여놓다니!]이단 심문관의 표식을 확인한 시장이 넙죽 엎드렸다.
“저는 무관합니다! 어찌 제가 뫼를렌푸르트를 이끄는 몸으로서 저런 무뢰배들을 이곳에 들여놓겠습니까!”
자칫 호위병들도 말려들까 싶어 주춤대는 가운데, 토드가 나직히 속삭였다.
“결백을 주장하기엔 정황이 너무 명확한데요. 시장.”
기겁한 시장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이, 이곳을 이용하도록 허가받은 사람은 마지스터 라우터바흐입니다! 마법 수양을 할 공간이라 엄포을 놓으셔서, 평소에도 관리인 없이 폐쇄되었던 곳입니다요!”
그 마법사가? 토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콰앙!!
어디선가 울려 퍼진 묵직한 굉음에 바닥과 천장이 요동쳤다. 충격파로 깨진 유리 조각이 나뒹굴고, 희미한 열풍이 일었다.
‘카리나가 싸우고 있다.’
대강 상대가 누구일진 짐작이 갔다. 하지만 카리나의 마력을 여기서 남발해선 안 된다. 가뜩이나 악마가 물과 관련된 권능을 다루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결전 병기처럼 운용할 필요가 있다.
토드는 시장을 돌아보며 외쳤다.
“추후 당신의 결백에 대해선 자세히 추궁하겠습니다.”
뒤룩뒤룩 살이 오른 시장의 면면에 화색이 돌았다.
“감사합니다!”
“단, 지금부터 제가 내리는 지시를 잘 들으세요. 모든 경비 인원을 통솔하여 뫼를렌푸르트 내 거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이자가 증언하는 곳에 마련된 제단들을 파괴하세요.”
“대, 대피라니…! 흑마법사들을 소탕했으니 상황이 마무리된 게 아닙니까? 그랬다간 라이히슈타크는…”
이 자식은 대체 시장 자리를 어떻게 꿰차먹은 거지?
“지금 라이히슈타크가 문제입니까! 자칫 온 도시가 불타고, 악마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마당에!”
토드의 성토에 시장이 딸꾹질을 해대며 고개를 조아렸다.
“산시아, 당신이 곁에서 클라우스를 감시하세요. 바우어 양도 잘 대피할 수 있도록 돌봐주시고요. 우리는 카리나 쪽으로 합류 하겠습니다.”
“네, 스승님.”
토드는 대기하고 있던 두 기사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갑시다!”
[하, 하! 하. 좋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도시라! 그토록 아름답던 곳을 이리 난창판으로 만들다니! 기사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불의인지라!]안광을 일그러트린 마르커스가 투덜댔다.
[젠장, 저놈의 입 좀 틀어막을 수 없나? 사령술사? 이 상황에서도 저리 시끄럽다니!]호탕하게 웃은 이스라는 마르커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부끄러워할 것 없네! 심문관! 비록 이전에는 교회의 졸개였으나, 자네도 악을 단죄하겠다는 숭고한 대의로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서로 다른 자들도 한뜻으로 뭉쳤으니,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떤가!!]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음 고청에 마르커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사령술사! 침묵 주문은 모르나! 침묵시켜라!] [악마건, 뭐건, 올 테면 와라! 본인은 필멸성마저 극복했나니! 그야말로 무적의 기사이니라!]오래간만에 피 맛을 제대로 보았더니, 아무래도 하수인의 광기가 한결 강해진 모양이었다.
본격적인 전투를 앞두고 전사가 투지를 끌어올리는 게 나쁠 건 없다.
아직 진정한 적은 나타나지도 않았으니.
쿠르릉…!
‘흙냄새가 안 나.’
당장에라도 비가 떨어질 것처럼 하늘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으나, 싯누런 구름은 숨죽이고 몸을 굽히듯 웅크리고만 있었다.
‘오히려 매캐하고, 눈이 따갑다.’
왜닞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엔, 이런 날씨가 퍽 익숙했었는데.
‘서둘러야겠어.’
주변의 기후가 뒤틀린다는 건, 이차원의 존재가 물질계에 강림하기 위해 적합한 환경을 구축한다는 전조 현상.
게다가 이렇게 광범위한 번위에 권능이 미칠 정도라면, 적어도 북부에서 강림했던 악마에 준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대앵-! 대앵, 대앵!
짧은 간격으로 대피를 알리는 종소리가 뫼를렌푸르트의 풍경에 불길함을 더했다.
악마들은 물질계에서 사망하면, 혼이 지옥으로 돌아간더랬지.
진짜 몸은 지옥에 두고, 지상에서 끄나풀들의 의식으로 허물을 빌려 나타나는 방식인 셈이다.
육신을 빌려 지상에서 온갖 분탕일랑 다 쳐놓곤, 박상 퇴치하면 호시탐탐 돌아올 기회만 엿보는 행태가 토드 입장에선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나름 영체에 대한 권능도 연마해둔 상태.
단단히 기강을 잡을 생각이었다.
‘이번엔… 아예 놈을 붙잡는다.’
넌 얼마짜리 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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