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9
139
사방에 불길이 가득했다.
넘실거리는 화염은 쉴 새 없이 뻗어 나가며 주변의 건물들을 집어삼키고, 매연 탓에 눈을 뜨기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힘겹게 허덕인 카리나가 눈썹을 치켜떴다.
“요제핀, 네가 미친년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
어깨를 잠식한 작열통이 몸을 좀먹고 있음에도 그녀는 사납게 일갈했다.
그러자 키득거린 요제핀이 허공에 부유하던 불덩이를 공 굴리듯 회전시켰다.
“아, 그래? 그렇게 날 잘 아시면 이쪽으로 오지 말았어야지.”
“네가 감당 못 할 수준까지 일을 벌여놓을 줄은 몰랐으니까! 네가 저지른 짓을 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한 짓이 왜? 난 병에 걸린 놈들을 좀 청소해줬을 뿐이야. 뫼를렌푸르트 시의 치안을 위해서.”
요제핀의 등 뒤론 불타는 시가지가 장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화마를 헤어나오지 못한 이들의 비명이 울리고, 무너진 잔해 속에 짓뭉개진 시신들도 덩달아 그을린다.
“넌 지금 역병을 핑계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거야!”
요제핀은 한숨을 흘리며 손가락에 대고 바람을 불었다.
“그놈의 철없는 사고관은 여전하구나. 카리나. 여기 사는 것들은 뫼를렌푸르트에 기생하는 떨거지들뿐이야. 가뜩이나 역병이 퍼지는 위급한 상황에선 병을 옮기는 것들이라고.”
발치에 날라온 불씨를 잘근잘근 지르밟으며 그녀가 속삭였다.
“불결한 시궁쥐나 바퀴벌레, 거머리 같은 것들과 다르지 않아. 여기가 전부 불타더라도 언젠가 비슷한 것들이 다시 와서 자생하겠지.”
“너, 에메랄드 석판 앞에서 했던 맹세를 잊었어? 어떻게 그딴 망발을···!”
카리나의 비난에 요제핀은 언성을 높였다.
“나는 마법을 수양함으로써 세상의 진리를 수호하고, 나의 지식으로 하여금 숭고한 대의를 실행한다! 이게 숭고한 대의를 위한 방법이야! 등신아!”
눈자위를 이글거린 요제핀이 입가를 비틀었다.
“내가 도시 전체를 불태웠냐? 네가 어영부영 망설이는 동안, 난 거지새끼들이나 우글거리는 곳을 솎아냈을 뿐이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네게 사람의 목숨을 놓고 저울을 기울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게다가 저 사람들이 모두 병에 걸렸는지 확신하지도 못하는데, 무턱대고 불을 질러댄 게 정당화될 순 없어.”
요제핀이 귀를 후비적댔다.
“그딴 알량한 마음가짐을 품고 있으니 네가 스승님 눈 밖에 난 거야. 스승님께서 명하신 건 뫼를렌푸르트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지, 살 가치도 없는 놈의 명줄까지 붙들어 놓는 게 아냐.”
카리나는 그녀를 향해 자신의 권표, 쇠로 된 봉을 겨눴다.
“네가 하는 짓이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이라 생각해? 이 병은 곰팡이 포자를 퍼뜨려 확산되는 식이야! 도리어 네가 불길을 일으킨 탓에 지금 부채질을 하는 꼴이라고!”
눈썹을 꿈틀거린 요제핀이 되물었다.
“곰팡이? 역병이 무슨 버섯처럼 자라나는 건 줄 알아? 누가 그러디?”
“토드가 사망자로부터 채취한 표본을 부검해서 알아낸 사실이야. 당장 마력을 거둬.”
그 등신 같은 흑마법사 놈. 평생 역병만 연구했다면서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 자부하더니, 시체 만지는 놈한테 들통났어? 입가를 씰룩인 요제핀은 교묘한 미소를 흘렸다.
“대체 쾨흘링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령술사 놈의 말을 그렇게까지 믿는 걸까. 떡정이라도 쌓였나 봐?”
카리나는 봉을 거머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 경고야. 요제핀. 마력을 거둬. 그러지 않으면 네 주둥이를 지져버릴 테니까.”
“하! 네가 날 막겠다고? 우리 기수 중에서 낭송이 제일 빠른 건 나야. 동시대 다른 마법사들을 견줘봐도 그렇고.”
요제핀의 머리 위에 떠오른 불덩이가 고리의 형태로 변모하여 흩어졌다.
“낭송도 오래 걸리고, 대단위 주문 밖에 쓸 줄 모르는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요제핀이 일으킨 열기가 위협적으로 몰아닥치자, 카리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번번이 대련에서 패배했던 카리나였다. 한 번도 요제핀을 이겨본 적 없었다.
과거의 상흔이 되살아나자, 짓무른 어깨의 통증이 카리나의 몸을 짓눌렀다.
‘나, 난 또. 무턱대고 피가 쏠려서 감당도 못 할 상대를···’
요제핀이 홍염 마탑의 광견이라면, 카리나에겐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뒤따랐다.
시종일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따지고 드는 기질 탓에, 마탑 내에서 그녀는 은연중에 기피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적어도 마탑에선 자신의 실력과 논리가 카리나를 보호해줬다.
그러나 마탑 밖의 세상에선 그러지 않았다.
일찍이 쾨흘리에서 깨달은 바였고, 그 덕에 자신은 철부지 기질을 덜어냈다 생각했었다.
여전히 착각이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다.
자신이 주문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적어도 다섯 어절 이상의 낭송이 필요했다.
도무지 노력해도 고쳐지질 않는, 자신에겐 저주와 다를 바 없는 천성.
“그간 최연소 마지스터니, 띄워주니 잊었지? 그게 원래 네 위치야. 주문의 고매함을 따지는 마탑에서나 네가 고평가를 받지, 현장에선 쓸모없다고.”
요제핀이 입가를 이죽거렸다.
“날 방해하지 말고, 이만 꺼져. 카리나. 다른 구역도 마저 소각해야 하니까.”
무력감에 사무쳐 입술조차 달싹이지 못하는 카리나 대신, 다른 이가 답했다.
“불장난이 너무 지나치시군요. 라우터바흐 양!”
온통 불길로 가득한 길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목소리. 어째서인지 카리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카리나 옆에 선 토드가 능글맞은 미소를 흘렸다.
“불길을 거둬들이시지요. 라우터바흐 양. 지금 당신이 벌이는 짓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요제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연놈들이 이젠 쌍으로 지랄이네. 너흰 지금 공무를 방해하는 거야! 난 뫼를렌푸르트의 검역을 수행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가요? 누굴 위한 검역이지요? 자신의 뒤틀린 방화 욕구를 투영하기 위한 변명은 아니고요?”
말꼬리를 늘어트린 토드가 쐐기를 박았다.
“아니면 악마의 강림을 위해 의도적으로 뫼를렌푸르트 전역에 공포를 뿌리기 위함일 수도 있겠지요.”
그녀가 코웃음 쳤다.
“악마? 뭔 개소리야? 기껏 모함이랍시고 생각해낸 것치곤, 너무 뜬금없는데.”
“세니바 시장에 따르면 시청 지하의 공간을 대여한 건 당신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살점도서관의 사서들이 암약하던 은신처는 소탕하고 오는 길인데, 그들이 어디 숨어있었을까요?”
익살스러운 추임새를 넣자 요제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동시에 토드의 뒤로 경비대가 들이닥쳤다.
“요제핀 라우터바흐! 너를 흑마술 공조 혐의로 체포한다! 즉시 마력을 해제하고, 경비대의 지시에 순응하라!”
은을 씌운 방패벽을 구축한 병사들은 요제핀을 향해 쇠뇌를 겨냥했다.
카리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말까지 더듬었다.
“요, 요제핀이 흑마법사랑 결탁했다고?”
“글쎄요. 이미 정황은 명확합니다. 마지스터 라우터바흐에게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시내에 개인 공간이 주어졌는데, 그녀는 그곳을 흑마법사들에게 내어줬습니다.”
고개를 돌린 카리나는 요제핀을 응시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뭘 그리 놀라.”
“너, 정말···.”
카리나를 돌아보던 요제핀이 읊조렸다.
“이번 기수에서 권표를 받는 건 네가 아니라 나여야만 했어. 카리나.”
“그렇다고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아?!”
욱했는지, 요제핀의 눈동자가 불길에 휩싸이듯 희번덕거렸다.
“네년이랑 뭐가 다른데! 넌 저 시체 부리는 놈이랑 결탁했잖아! 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번번이 현장 실기에서 낙제하던 년이, 쾨흘링에서 이리공을 상대로 분쟁을 이기고 돌아와? 지랄 말라 그래!”
그녀는 표독스럽게 눈을 부라렸다.
“나도 합리적인 제안을 내거는 쪽이랑 손을 잡은 것뿐이야. 저들 지시대로 따르면 뫼를렌푸르트에 악마가 떨어진다고 그랬어. 황소대공의 군대가 이곳으로 진군할 거고. 그럼 난 그들과 더불어 뫼를렌푸르트의 영웅이 되는 거지.”
화염의 천성은 난폭하기에, 자연히 그를 익히는 마법사도 닮기 마련.
홍염 마탑에 입문한 수습생들은 달궈진 가마에서 나흘을 견디는 통과 의례를 거친다.
고통을 통해 인내를 깨우치고, 자신의 성급함을 투지와 열정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함양한다.
가마에 들어간 절반은 반나절도 견디지 못하고, 그중에 반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탈한다.
카리나와 요제핀은 그 난관을 헤쳐나온 동기였다.
자신을 쏘아보는 눈빛에서 뚝뚝 떨어지는 열등감에 카리나는 허탈한 기분이었다.
“너··· 이게 밝혀지면, 어떻게 될진─”
콰앙!!
폭발이 작렬한다. 그걸로도 모자라, 불의 고리가 폭격을 가하듯 길거리 위로 쏟아졌다.
“여기서 너희를 다 쓸어버리고, 아는 놈들까지 불길에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뫼를렌푸르트의 혼란은 어느 때보다도 극렬하다. 요제핀은 그 틈을 타 재빨리 나머지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쉬이이익─!
그런데 돌연 수증기가 끓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응축된다. 기화된 연기 너머, 연녹색 암광이 아른거렸다.
파멸의 기사는 장검으로 화염을 걷어냈다.
【하, 하! 하. 요술쟁이년. 과연 네 불길도 별 것 아니구나! 이 정도론 본인의 갑주에 그을음조차 남기지 못한다!】
요제핀은 대번에 권능의 본원을 파악했다.
사령술사가 손에 찬 백색 반지.
‘냉기를 싣는 유물인가? 귀찮긴.’
“자유 사격!”
병사들이 쇠뇌를 쏘아대자, 요제핀은 불의 고리를 회전시키며 날아드는 화살들을 녹여버렸다.
제아무리 불길을 상쇄할 수단이 있다 한들, 더한 열기로 태워버리면 그만.
“카룬틸! 내 분노를 여기 쏟아내리다!”
그녀의 입에서 부풀린 숨결이 불타는 독사의 주둥이가 되어 길거리에 쇄도한다.
이글거리는 격류에 이스라가 재빨리 토드를 감싸고, 마르커스가 온몸으로 카리나를 보호했다.
콰아아아─!!
“아아악!!”
“끼약!!”
화마에 휩싸인 병사들은 속절없이 쓸려나갔다. 외마디 비명만 내지르던 경비병들은 앓는 소리를 흘리며 허우적대다가, 실 풀린 인형처럼 널브러졌다.
이스라의 품에 안겨있으니 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 몸이 벌벌 떨린다.
‘이스라. 주문을 외지 못하게 방해하세요.’
【알겠네!】
토드를 놓아준 이스라가 즉각 뜀박질로 뛰쳐나갔다. 뒤쪽에서 폭발이 번지는 사이, 토드는 겨우 몸을 가누며 죽은 경비병들을 확인했다.
녹아내린 투구 속 얼굴이 하나같이 괴기스럽게 구겨져 있었다.
‘고통이 상당했겠는걸.’
무릎을 굽힌 토드는 향로를 흔들며 속삭였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원통하게 죽은 사자여.”
콰앙!!
“그대들은 용맹하게 책무를 다하였으나, 아직 과업이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의 고장에 불을 지른 마녀가 태연히 지상을 거닐고 있는데, 어찌 눈이 감기겠는가.”
토드는 친히 향로를 흔들며 여전히 시신에 옮겨붙은 불씨를 하나하나 꺼트렸다.
마법사가 발산한 주문의 열기가 상당했던 탓에 외피나 신경은 대부분 녹아내렸고, 일부는 뼈까지 손상되었다.
그럼에도 불완전한 조각들을 그러모아, 온전히 기동할 수 있는 하나의 형태로 엮어낸다.
“뫼를렌푸르트의 소요가 끝나면, 그대들의 해방을 약속하겠다.”
일그러진 얼굴들이 각기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끄, 아, 야, 약!!】
“마음껏 울분을 발산하라. 망자여.”
어설프지만 대화도 할 수 있던 대작과 달리, 분사(焚死)가 사인인 유해로 일으킨 탓인지, 살점 거인은 오로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온몸에서 진물을 떨어트리며 약동하는 하수인의 염원은 한 가지.
저 마법사 계집을 찢어 죽이는 것뿐.
【아, 히, 헤! 야.】
쿵, 쿵!!
2m를 훌쩍 넘기는 거구가 뛰어오자 요제핀이 기겁했다.
“이런, 미친!”
설마 방금 태워죽인 놈들을 일으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조각들을 얼키설키 기워 맞춘 탓에, 벌겋게 드러난 살갗은 화상으로 덕지덕지 일그러진 흔적이 역력했다.
【야!!】
고함친 거인이 주먹을 뻗었다.
쾅!!
요제핀은 재빠르게 반경에서 벗어났지만, 박살 난 지붕이 조각나면서 불씨가 사방에 튀겼다.
게다가 갑옷을 입고도 점멸 주문을 따라올 정도로 움직임이 빠른 파멸의 기사까지.
【정의의 칼날을 받아라! 이 불꽃쟁이 계집아!】
후웅─
장검이 아슬아슬하게 요제핀의 망토 끝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급히 물러선 요제핀은 사방에 만연한 불꽃을 향해 손아귀를 휘어잡았다.
콰지직, 우르르!!
전소한 건물들의 일부가 무너져내리면서, 토드 일행과 요제핀 사이를 가로막았다. 거기에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맹렬한 화염의 장벽이 몰아쳤다.
“이, 이 역겨운 것들! 가까이 오지 마!”
상당한 양의 마력을 투자했는지, 사납게 이는 불꽃에 이스라조차 안광을 좁혔다.
【으음, 토드. 이건 본인도 지나가지 못할 듯하네. 저 요술쟁이가 간교한 조화를 부렸군!】
장벽으로 시간을 번 사이, 낭송을 외울 작정인지 건너편에서 마력이 모여든다.
‘거인은 건너가기도 전에 장벽에 비비다가 녹아내릴 거고. 카리나도 캐스팅 속도를 따라가진 못해.’
문득 토드는 마르커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마르커스, 당신, 「대침묵 기도」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느꼈는지, 마르커스가 주춤거렸다.
【그,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냐?】
마르커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장벽의 불길을 어림한 토드가 확신에 찬 어조로 외쳤다.
“머리만 던집시다! 머리는 접촉 면적이 작으니, 최소한의 마력과 보호만으로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몸에서 떨어져도 기도문은 외울 수 있지 않습니까.”
본래 둘라한은 자유자재로 제 머리를 던지거나, 몸은 싸우고, 동시에 머리론 주문을 외우며 싸우는 하수인이다.
지금이야말로 마르커스의 특성을 극대화할 기회였다!
【미친 소리 마라! 원래 네놈이 돌은 건 알고 있었지만, 드디어 정신이 나갔어!】
쑥.
【어?】
악을 쓰는 머리와 별개로, 몸뚱이는 가차 없이 머리통을 뽑아버렸다.
“신중하게 던져야 합니다. 장벽의 높이만 하더라도 지붕 위로 아른거릴 정도이니, 팔을 더 위로 뻗고···”
곧바로 몸뚱이에 훈계를 늘어놓자 마르커스가 비명을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이건 아니잖아! 널 죽이겠다!】
“마르커스, 어금니 꽉 깨물고 버티세요! 어차피 불길은 금방 지나갑니다! 바로 앞에 떨어트릴 테니, 미리 기도문은 외우고 계세요!”
【아냐, 아니. 안 돼!】
숙련된 투수처럼 팔을 쭉 뻗은 몸뚱이는 힘껏 머리를 움켜쥐고 내던졌다.
머리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토드 셰우드! 널 저주하겠다! 천상에 계신 구주시여, 당신께서 내리신 언약의 숭고함을 존중하며···】
악바리를 쓰던 머리통은 곧바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르커스는 어느 때보다도 바삐 입을 놀렸다.
불길을 지나가는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아무리 마력과 신성력을 덧씌웠더라도 눈썹까지 홀랑 태우는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몸뚱이를 돌려받으면 곧장 놈을 죽인다.’
잔뜩 충혈된 눈자위를 부릅뜬 채로, 심문관의 머리가 막 낭송을 마치려던 요제핀 앞에 뚝, 떨어졌다.
【···하여 협잡꾼들의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번쩍!!
광채가 마법사를 덮쳤다.
대번에 낭송문은 깨졌고, 실패한 주문의 반향은 고스란히 시전자를 향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