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52
152
이스라도 여인치곤 상당한 장신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상대할 군더만은 족히 머리 2개는 얹어놓은 듯한 차이를 보여줬다.
한차례 칼날을 섞어본 이스라는 저린 손목을 흔들었다.
【대단한 힘이로군! 본인은 스칼바냐르에서 거인들을 상대한 바 있네! 자네도 그들의 혈통을 물려받았나?】
멀뚱히 이스라를 응시하던 군더만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 말이 너무 많다.”
다소 어눌한 말씨와 달리, 동작은 신속하다.
군더만은 등 뒤로 대검을 젖히더니, 오른발을 내디딤과 검을 내리쳤다.
부웅─!!
투구와 더불어 두개골을 단숨에 쪼개버릴 기세로 엄습하는 사선베기.
파멸의 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이마까지 칼자루를 치켜들어 응수했다.
쩌엉!!
칼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폭약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어찌나 힘이 억센지, 충돌했던 검이 일순간 출렁거리는 게 생생하게 보일 정도.
이스라가 다섯 걸음 정도 밀려 나갔다. 그녀는 가까스로 무너진 균형을 제어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바인딩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니! 엄청난 괴력이군!’
이스라도 평범한 인간의 근력을 상회하는 고위 망자이나, 골격 구조상의 한계가 있기 마련.
압도적인 체격은 그 자체만으로 초월적이다.
생각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지면을 긁어 올린 군더만의 검이 치솟는다.
이스라는 재빨리 내질러 군더만의 검로를 차단했다.
카앙!
이스라의 안광이 가늘어졌다.
‘내려베기에 비하면 그리 위력적이진 않도다.’
카득, 맞대고 있던 검면을 밀어낸 이스라는 검자루를 비틀어 군더만의 손목을 타격했다.
타앙!
거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더만이 뒷날을 비틀어 수평으로 휘두른다.
이스라는 유연하게 허리를 숙여 피하곤, 무릎을 굽힌 채 날과 퍼멀을 잡았다.
그리곤 상대적으로 취약한 목 부위를 향해 찔러넣는다!
“······!!”
터엉!!
찰나에 어깨를 비튼 탓에 목을 찌르진 못했다.
그래도 군더만의 몸이 휘청였다.
놈이 비틀거린 사이, 이스라의 장검이 번뜩였다.
카앙, 카앙!
좌에서 올려치고, 우에서 하단을 두들긴다.
불똥을 튀기며 빗발치는 유려한 연격.
화려한 춤사위 같은 기교에 둘의 대결을 숨죽인 채 지켜보던 군중들이 환호했다.
궁지에 몰린 군더만이 콧김을 흘렸다.
“흠!”
그가 힘을 실어 바닥을 내려찍자, 일대의 지면이 들썩였다. 덕분에 방향을 전환하던 이스라의 발이 꼬이고 말았다.
‘아차!’
몸을 가누기도 전에 그녀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콰직!!
검날에 얻어맞은 이스라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몰아붙일 작정인지 군더만은 쉴 새 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두개골 분쇄자라는 위명답게 그는 날붙이로 돌풍을 자아내고 있었다.
지켜보던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힘껏 주먹을 쥐었다.
“하하! 굴러다니는 꼴이 꼭 굼벵이 같군! 좋아! 그대로 짓뭉개라!”
이스라는 쳐내려는 시도조차 못 하고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그녀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자, 군더만이 이스라를 걷어찼다.
우직!!
【커흡!】
이스라는 눈을 부릅뜬 채 튕겨 나갔다.
뒤이어 그녀의 하단을 노리고 엄습하는 칼날.
파멸의 기사는 가까스로 날을 세워 맞받아쳤다.
카앙!
하지만 튕겨 나간 건 반대로 이스라 쪽.
군더만의 검이 옆구리를 관통했다.
콰드득─.
판갑조차 파고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근력이다.
살갗에 스며드는 날붙이의 감각에 이스라가 안광을 찡그렸다.
‘힘만 놓고 보면 거인이 더 강하지만, 적어도 이자는 자신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군···!’
군더만은 자신의 장기를 백방 활용할 줄 아는, 노련한 전사였다.
어떻게 체력을 분배해야 효율적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두꺼운 판갑을 관통하려면 어느 부위에 힘을 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장을 헤집을 의도로 군더만이 칼자루를 돌렸다. 뼈 갈리는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내의 일부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스라는 그를 강하게 걷어차며 몸을 뒤로 내뺐다.
슬쩍 옆구리를 훑어보니 건틀렛에 새빨간 혈흔과 더불어 흘러나온 내장 조각이 선명하게 묻어나온다.
눈동자를 번뜩인 이스라는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흐으···!】
대공 휘하에 있는 고지대 용병들이 발을 구르며 외쳤다.
“군더만! 군더만!”
“시체의 머리를 터뜨려라! 형제여!”
군더만은 묵묵히 어깨에 검을 걸친 채 접근했다.
강적이다.
자신이 이렇게 수세에 몰린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간만의 호적수였다.
뭉개진 속 때문인지 피가래가 목청 끝을 간질인다.
【퉤!】
일광에 반사된 칼끝이 반짝였다.
종으로 치달는 대검에 이스라도 질세라 검을 올려붙였다.
격하게 맞부딪친 양 칼날에서 불꽃이 일고, 한계까지 휘어진 검날이 견디다 못해 급기야 부러졌다.
쨍강!!
군더만은 득달같이 크로스가드로 이스라의 투구를 후려갈겼다.
쩌억!!
재차 바닥에 엎드린 흑기사와 달리, 거한은 여유롭게 그녀를 돌아보며 넌지시 군중을 향해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이에 관람객들도 열렬히 호응했다.
“골통분쇄자!!”
“과연 신이 내린 전사다!”
한껏 군중의 반응을 만끽하던 군더만은 얼어붙은 채 서 있는 시종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저 시체에게. 검, 갖다 줘라.”
【크윽!】
안광을 치켜뜬 이스라는 훌쩍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기운에 시종이 창백한 낮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감정의 격류가 가라앉는다.
장검을 받아든 파멸의 기사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네. 어서 자네의 위치로 돌아가게나.】
새 검을 받았지만, 장내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여전히 이스라는 옆구리에서 핏물을 뚝뚝 흘렸고, 군더만은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 내렸다.
대번에 싸움의 기세가 군더만에게 쏠렸을 즈음, 이스라의 머릿속에 차분한 의념이 울려 퍼졌다.
‘이스라, 상대의 싸움 방식에 구태여 휘말릴 필요 없습니다.’
【본인은 저놈에게 휘둘리는 게 아닐세! 단지 정정당당하게 힘에는 힘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일 뿐!】
‘애당초 이 싸움은 정정당당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파멸의 기사로서 지닌 모든 권능을 투사했다면, 저깟 놈은 단숨에 고깃덩어리로 전락했겠지요.’
오로지 순수한 육체 기량 외에 여타 권능에 제약을 걸어둔 채 임하는 싸움이다.
‘당신은 저의 권능을 기반으로 한 싸움 방식을 연마해왔습니다. 제 권능의 부재 하에 당신은 상당한 제약을 받는 겁니다.’
파멸의 기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특성, 토드로부터 적용되는 강화기, 결정적 살상기인 오러마저 봉쇄된 상태.
‘그에 비하면 상대는 오로지 육신의 기량만으로 싸워왔던 자. 체격에서의 절대적인 우위는 무시 못 합니다.’
이스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허면 여기서 물러서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랬다간 자네나 본인이나 끝이네! 여기서 본인의 무용담을 이렇게 마무리 짓고 싶진 않아!】
군더만이 재차 등 뒤로 대검을 넘겼다. 예의 자신의 장기인 사선베기를 날리기 위한 동작이다.
‘기사도 전집에서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상대와 무모하게 맞서라 가르치던가요?’
사령술사의 속삭임이 기사의 의식을 잔잔히 흔들어 놓았다.
【그런 게 아닐세···! 어떤 상대라도 정면에서 맞붙어 이기지 못하면, 본인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꼴이네.】
표정을 일그러트린 이스라가 허덕였다.
【본인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랬다간 진흙에 묻혀 있던, 떠돌이 기사 때와 다를 게 없지 않나.】
자신을 무적이라 자처하던 기사의 두려움이 보인다.
가만히 서 있는 이스라를 보곤 위축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군더만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죽지 않는 기사라고? 어디 대가리를 쪼개도 움직이나 보자!!”
노호성과 함께 군더만의 대검이 날아든다.
‘당신의 나약함을 인정하세요. 이스라. 그리고 상대의 강함을 받아들이세요.’
찰나에 당도했을 칼날인데, 어째서인지 검의 궤적이 몇 시간이고 허공에 붙들려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이 그토록 맹신하는 기사도 전집에서도 무적의 적수는 없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이스라의 안광이 흔들렸다.
토드가 옳다.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불가능은 없다.
아니, 설령 불가능하더라도 그에 당당히 도전하는 것.
그것이 기사로서 마땅한 자세로다.
‘그런 적수를 꺾으려면 기사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까요.’
【······!!】
망자 특유의 가라앉은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스라를 둘러싼 심상 세계가 개벽했다.
촤르륵─···!
여태껏 그녀가 탐독했던 기사도 전집의 시구와 고명한 검객들이 후세에 전한 구결들이 펼쳐진다.
그중, 장검의 구조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설명이 이스라의 뇌리를 스쳤다.
「검은 칼끝에 가까운 쪽을 약점(Schwach), 자루에 가까운 쪽을 강점(Stark)으로 구분한다.」
검의 구조상 사용자의 힘이 미치는 축의 거리에 따라, 검을 겨룬 상태에서 강점을 점한 칼날이 약점에 위치한 칼날을 이길 수밖에 없다.
【그랬었지.】
분명 그녀가 읽었던 여러 검술서들은 힘과 체력이 전사의 기초가 될지언정, 검객으로서 능사는 아니라고 가르쳤다.
토드의 충고는 기사도 전집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했다.
분명 상대는 자신보다 힘이 세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군더만의 주특기는 사선으로 치달는 내려베기, 이른바 분노의 일격이다.
남들보다 월등한 장신인 군더만으로선 상대의 상체를 노리기 적합하므로, 분노의 일격만큼이나 효과적인 공격도 없겠지.
그렇다면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본인은 기사도 전집에서 전하는 가르침에 통달해있다.’
이스라가 일컫는 기사도 전집이란, 제국에 전해지는 모든 검술서와 기사들을 묘사한 문학책, 시집 따위의 총체였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읽었던 문장과 삽화 중, 내려베기에 대응하는 기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국 검술의 대가, 요하네스 경께서 이르길, 즈버크하우는 천장으로부터 이르는 어떠한 공격이라도 막을 수 있다 하시었다!!’
그녀에게 덧씌워졌던 장막이 벗겨진다.
노랗게 바래질 정도로 낡은 삽화로 묘사된 자세가 이스라의 육신을 통해 구현된다.
그녀는 검면을 엄지로 받친 채 군더만의 검을 받아냈다.
차앙!!
군더만이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미련한 놈. 난 힘으론 누구한테도 지지 않아.’
하지만 이스라는 힘을 실어 응수하지 않았다.
도리어 힘을 풀자, 걸친 칼날에 힘을 주던 군더만이 졸지에 앞으로 쏠렸다.
“어?!”
검술은 구조적으로 서로의 공방이 차례로 오가지 않는다.
모든 자세는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제국 검술의 묘리는 자세에서 자세의 전환으로 따라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행해진다.
이스라의 수평베기가 기울어진 군더만의 투구를 강타했다.
콰직!!
“크악!”
대번에 목과 투구를 잇던 연결부가 끊어졌다. 머리가 울리는 충격에 군더만이 비틀거린다.
거한이 횡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이스라는 유려하게 칼날을 흘려보내며 팔을 때렸다.
터엉!
이번엔 어깨를 찌르고.
옆구리에 수평베기.
하단을 향해 내리긋는 썰기.
자신은 상대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하는데, 흑기사의 검은 일방적으로 자신을 농락했다.
콱!!
급기야 손목을 때리는 일격에 군더만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이런, 개 씨팔!!”
격분한 군더만이 몸집으로 깔아뭉갤 듯이 검을 휘두르며 접근하자, 이스라가 혀를 찼다.
【어허! 베기를 허공에 그리 날려대다니! 그건 요하네스 경께서 그토록 비판하시던 ‘궁중잡배들의 허세’임을 모르는 가?】
이젠 훈수까지 늘어놓는 모습에 군더만이 소리쳤다.
“죽어라!!”
정면에서 검날로 내리누르는 일격이 들어온다. 안광을 번뜩인 이스라는 크로스가드로 칼날을 걸쳤다.
차앙!!
여유롭게 검격을 막아낸 이스라는 도리어 칼날을 밀어 올렸다.
“뭐!”
쨍강.
츠바이헨더는 이미 경악한 군더만의 손을 떠나 바닥을 뒹굴었다.
가뿐히 그를 무장해제시킨 이스라는 칼날과 퍼멀을 거머쥔 채로 군더만의 팔목을 베었다.
사각!!
“아악!!”
놈이 뒷걸음질 친 사이, 복부를 향해 들어가는 찌르기.
퍼억!!
흑기사의 맹공에 거한이 흔들린다.
이스라는 수모를 갚아주듯 그를 걷어찼다.
쿠웅.
육중한 거체가 지면을 뒹굴었다.
대번에 장내가 고요해졌다.
칼자루를 빙글 돌린 이스라가 히죽 웃었다.
【하, 하! 하. 자루에 가까운 강점은, 탄성이 적고 두껍기에 버티는 힘이 강하네. 지렛대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지.】
파멸의 기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는 장검술의 근간이거늘. 자네는 기초부터 배우고 오게나!】
이스라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관중들이 폭소했다.
“기초부터 배우고 오랜다!”
“땅바닥에 엎드려 뭐하냐! 양피지에 받아적지 않고! 이스라 경이 한 수 제대로 가르쳐주는데!”
와락 인상을 구긴 거한은 입에 들어간 흙먼지를 뱉으며 소리쳤다.
“검!! 검 가져와!!”
쩌렁쩌렁한 울림에 화들짝 놀란 시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억척스럽게 츠바이헨더를 낚아챈 군더만은 가차 없이 대검을 내질렀다.
콰직!
대비라곤 전혀 없던 시종은 단숨에 머리통이 찢어진 채 널브러졌다.
“으우!”
일부 관중들이 식겁했으나, 군더만은 피를 뒤집어쓴 칼을 휘두르며 기세를 끓어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스라가 안광을 이글거렸다.
【그자는, 단지 자신의 위치에서 의무를 다했을 뿐이네. 헌데 자네는 어찌 애먼 자에게 추잡한 분풀이를 하는가?】
“좆까라! 시체! 좀 전엔 이놈이 거지 같은 칼을 줘서 그렇게 된 거다!”
【흥.】
입가를 씰룩인 이스라는 자신이 거머쥐고 있던 장검 대신에, 바닥에 나뒹구는 츠바이헨더를 집어 들었다.
거한이 달려온다.
“으아아아!!”
【기사도 전집, 1장 3절에 가르치기를.】
이스라는 오른발을 앞세운 채로 자신의 자세를 견고히 갖췄다.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라 이른다.】
자신의 내려베기가 파훼 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군더만은 수직으로 찌르고 들어왔다.
【본인이 기사된 자로서, 제대로 된 분노의 일격을 사사해주지.】
쩌엉!!
거한의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졌다.
토드는 흐뭇한 미소를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조만간 걸작이한테 친구가 생기겠는걸.’
파멸의 기사는 2연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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