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56
156
협상을 위해 황소대공의 대리인으로 샤름베르크 성백이 파견되었다.
“세르지오 경의 몸값으로 아젠툼 표준 금화 500닢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성백의 미간이 살며시 일그러진다. 그는 화를 내거나 무례하게 굴지 않고, 침착한 어조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금화 500닢이라. 결코 가볍지 않은 금액이구려.”
“세르지오 경은 무구의 달인이십니다. 그만한 강자라면 응당 몸값으로 지불하기에 합리적인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난색을 보이던 성백은 탁자를 두드렸다.
“혹여 프라이헤어 셰우드께선 어떤 연유로 몸값을 책정했는지 들어볼 수 있겠소?”
그의 물음에 토드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무구의 달인이라면 못해도 일개 대대의 전력과 맞먹는 수준이시지요. 제국에선 통상적으로 3달마다 봉급을 지불하는 관례를 감안하여 책정하였습니다.”
거기에 제국 내 혼란스러운 정황으로 인한 물가 인상까지 반영하여 도출된, 지극히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호갱님.
토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백은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금화 500닢이면 제국백이 봉역에서 거둬들이는 1년 치 조세와 맞먹는 거금이오.”
“대공 전하께선 제국 남부의 광활한 권역을 다스리는 대제후이신데, 그깟 푼돈을 지불하실 여력이 없으실까요.”
묘하게 돌려 까는 말에 성백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크흠.”
미소를 흘린 사령술사가 속삭였다.
“제가 원했다면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을 수도 있을 겁니다. 결투 재판, 그것도 흑마술 공모죄에서 승소한 자의 권리는 제국법에서 규정하지 않으니까요.”
대개 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대가는 관습에 따라 행한다. 하지만 사령술사가 선제후들을 상대로 승소한 경우가 없으니, 토드의 말이 곧 선례로 남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하지 않음은, 마땅히 대공 전하의 위엄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무구의 달인은 대공에게 중요한 전력이다. 여기서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간 휘하 무장들의 충성심도 흔들릴 테니, 무력을 동원해서 시신이라도 되찾아올 것이 뻔했다.
어차피 소화도 못 시키고 체할 바엔 뜯어낼 수 있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갈취한다.
성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소. 단, 전하께서도 당장 그만한 거금을 금전으로 지불할 여력은 없으시니, 일부는 그에 상응하는 현물로 대체하여 분할 지급하겠소.”
의외로 협상은 쿨 거래로 마무리되는 모양새였다. 대리인으로 파견된 성백의 차분한 태도도 그렇고, 지저분한 흥정을 길게 끌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해합니다. 전하께선 무려 일 만의 대군을 이끌고 오셨으니까요.”
토드는 빙긋 웃으며 성백의 손을 맞잡았다.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아무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그대와 대면한다면, 지금처럼 말끔한 탁자는 아닐 것 같군.”
성백의 엄포에 토드가 입가를 비틀었다.
“언제까지 그대에게 행운이 따르는지 지켜보겠소. 프라이헤어 셰우드.”
억세게 맞잡은 손아귀가 벌겋게 변했다. 토드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공손히 묵례했다.
“전하께 제 안부를 전해주시길. 살펴 가시지요.”
성백을 떠나보내고, 토드는 곧장 파멸의 기사가 기다리는 옆방으로 들어섰다.
【토드, 본인은 중상자네. 어찌 혈전을 벌이고 돌아온 자네의 대전사를 제쳐두고, 대공의 수하부터 대면한단 말인가.】
이스라의 투정에 토드는 피식 웃으며 창백한 볼을 꼬집었다.
“중상자치곤 팔팔한 것 같은데요?”
【본인이 상대한 건 무구의 달인이었네! 더욱이 그자는 범인이 쉬이 당해낼 수 없는 일격까지 구가하지 않았나.】
토드의 손을 떨쳐낸 이스라는 당당히 어깨를 치켜세운 채 선언했다.
【본인은 파멸의 기사로서 육신을 항상 최고의 기량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네. 어느 때보다도 소상한 수복 의식이 뒤따라야 마땅하지!】
흠, 그 정돈가?
막상 팔에 둘러준 아마포를 걷어내 보니 말끔했다.
“글쎄요. 따로 수복이 필요할 것 같진 않습니다. 이미 다 나았는데요?”
【뭣이라?】
망자의 안광이 요동쳤다.
황급히 자신의 팔과 옆구리를 확인한 이스라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그 기사의 첫 번째 일격에 맞았을 당시에, 본인이 흘린 출혈이 상당했다만.】
“생각보다 검상이 얕습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인간이 당했다면 사망했겠지만, 당신은 이미 고위 망자인데다, 경지에 오르면서 육신의 격까지 덩달아 상승했으니까요.”
아무래도 이스라는 초인의 반열에 들어선 까닭에 기본적인 스텟이 엄청 높다.
게다가 백기사가 펼친 기교는 의외로 이스라의 육신에 제동을 걸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았다.
붕대를 풀어헤친 살갗을 헤아리던 이스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 늙은이···! 의도적으로 힘을 뺐군.】
피고석에서 지켜보던 토드조차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일전으로 보였는데, 실제로 부상을 살펴보니 정도가 그리 대단치 않다.
나름 눈썰미만큼은 좋다고 자부하는 토드였는데, 자신뿐만 아니라 맞붙던 상대조차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백기사가 제대로 된 일격을 가했다면···”
파멸의 기사가 탄식했다.
【도리어 패배하는 건 본인이었을 지도 모르네. 제길, 이런 식으로 승부를 보는 건 원치 않았거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백기사의 실체는 괴물이었다. 이스라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선을 조절해가며 대결했다는 뜻이 아닌가.
‘나나 이스라나 오만했다. 진짜 달인은 상상할 수 없는 격차가 있구나.’
콘라트도 마지막 대전사이니만큼, 어떻게든 이스라를 꺾으려 자신의 가신 중에서 가장 강한 투사를 내세웠을 것이다.
하물며 오러조차 봉쇄된 결투에서 이만한 실력이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의도가 뭘까요? 보아하니 당신과 구면인 것 같던데.”
망자들을 부려 갑옷을 갈아입히는 와중에, 이스라 역시 의뭉스러운 투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본인의 기억엔 없네. 아마 생전의 인연일 터.】
안광이 맺힌 눈동자엔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토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를 만나보시겠습니까?”
【······.】
파멸의 기사는 말없이 입술을 곱씹었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자비를 베푼 게 아닙니까.”
【자비 역시 기사도에서 강조하는 덕목이네. 본인으로선 가르침을 수행하는 일환이었을 뿐.】
파멸의 기사는 애써 부정했다.
하물며 배회하는 영가의 넋마저 읽어내는데, 어찌 자기 하수인이 품은 염원을 헤아리지 못할까.
토드는 품에서 정교하게 수선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자네, 그건···!】
일찍이 이스라가 차고 있던 에메랄드 반지였다.
“미리 파스티다에게 부탁해서, 수리를 받아왔습니다. 아무래도 파손이 심한지라 목걸이로 고치는 게 낫다고 하더군요.”
토드는 하수인의 손 위에 목걸이를 얹었다.
“당신이 제 부름에 응답하여 일어난 건, 필경 당신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명예뿐만은 아닐 겁니다.”
목걸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다! 본인에겐 명예말곤 없다! 무인으로서 위명을 떨치는 것, 기사도 수행에 정진하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있을 리가!】
사령술사가 잔잔히 속삭였다.
“망자는 생전의 기억을 일부 상실하죠. 어쩌면 당신이 망각한 의식의 기저에, 당신이 바라는 염원이 계약에 작용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안광을 구긴 이스라는 다시금 목걸이를 노려봤다. 토드는 부드럽게 웃으며 하수인을 달랬다.
“···망자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소망을 대행하는 것. 그건 사령술사로서 제 의무랍니다. 이스라. 그걸 다름 아닌 제가 외면할 수야 없지요.”
목걸이를 거머쥔 파멸의 기사가 중얼거렸다.
【본인에게 생전의 기억은 중요하지 않다. 토드. 본인이 쓰러졌던 건, 그런 나약한 마음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눈가에 맺힌 안광이 섬뜩한 빛을 흘리며 타오른다.
【나약한 마음. 나약한 육신. 본인은 그대의 부름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자신의 나약한 것들은 모두 버리기로 맹세했다.】
토드는 손을 뻗어 이스라의 목덜미에 맞닿은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기습적인 손길에 파멸의 기사가 황급히 목을 움츠렸다.
【무슨 짓인가?!】
“저와 당신의 성취가 높아질수록, 여러 전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체의 회복이나, 상실했던 기억의 재생이죠.”
【···그 말인즉, 본인이 부활한다는 건가?】
토드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답했다.
“글쎄요. 원칙적으로 사자의 부활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소생이라기보단, 복원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전의 모습을 되찾아간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낮게 신음한 이스라에게 못마땅한 기색이 깃들었다.
【그리 달가운 소리는 아니군. 전에는 사소한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거늘, 나약한 필멸의 육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의외로 고통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방어 작용입니다. 게다가 고통을 느낀다는 건, 감각의 재활성화를 의미하니, 당신의 인지 능력도 증대되지요.”
【양날의 검이로군. 본인도 이번 결투에서 갓 되살아났을 때처럼 감각이 둔했다면 백기사의 검을 당해내지 못했을 걸세. 허나 통증은 동시에 전사의 육신을 제약하는 족쇄이지.】
이스라에게 수용기관을 제약하는 특성이나 기질을 붙여준다면 다시 무통의 투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드가 보기에 그건 바람직한 육성 방향이 아니었다.
이스라는 고기 방패를 담당할 하수인이 아니다. 죽음의 기사는 사령술사의 검이다.
토드는 이스라를 완전무결한 존재로 예리하게 벼려낼 생각이었다.
“저도 이어질 변화가 어떨진 섣불리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자를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염원의 해소는 당신의 성취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파멸의 기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대꾸했다.
【헌데 토드···. 망자가 염원을 해소하면, 영혼의 대해로 떠나가지 않나.】
그녀는 풀 죽은 눈빛으로 토드를 올려다봤다.
【자네는, 이대로 본인과의 계약을 끝내도 좋단 말인가?】
내심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던 걸까?
하수인의 우려에 토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배까지 부여잡고 낄낄거리는 모습에 이스라가 분개했다.
【우, 웃지 말게! 본인에겐 나름 존속의 여부가 걸린 심각한 문제라네!】
눈가의 눈물까지 훔친 토드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스라, 당신처럼 복잡한 넋으로 얽힌 망자는 그렇게 쉽게 영멸하지 않아요. 아직 무인으로서 명성을 떨친다는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언뜻 이스라는 입가를 움찔거리다가 낮게 탄식을 흘렸다.
【그런 건가.】
샐쭉 웃은 토드는 눈매를 휘며 되물었다.
“설마 뫼를렌푸르트에서의 일만으로 만족한 건 아니겠죠?”
안광이 세차게 이글거린다.
【물론이다! 본인은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아무렴! 본인이 가진 배포는 기껏 대악마와 무구의 달인만으로 그치지 않지! 본인은 자서전을 발간할 희대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란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체결한 계약 기간은 50년입니다? 아직 절반도 채우지 않았어요.”
이스라에게 바싹 다가선 토드가 속삭였다.
“저는 사특한 사령술사랍니다. 이스라. 설마 사령술사가 계약으로 사역한 하수인을 그리 쉽게 놓아줄 거라 생각했나요?”
사이하게 일렁이는 검녹색 눈동자는 강렬한 소유욕을 내비쳤다.
저열한 음욕 따위에서 비롯된 시선이 아닌, 이스라라는 존재를 여기까지 빚어냈다는 자부심이었었다.
여기사라는 틀은 어디까지나 이스라라는 존재의 서사에 독특함을 더해줄 뿐인, 부수적 요소에 불과하다.
‘나만의 기사. 오로지 나의 검.’
이스라의 탄생에 관여한 것이 자신이라면, 마땅히 최후마저 지켜볼 사람은 자신일 것이리라.
오롯이 내가 키워낸 캐릭터.
그게 이스라를 특별하게 만든다.
【하, 하! 하. 그렇군. 그간 교묘한 언변으로 주변을 속여왔지만, 본인이야말로 자네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지! 어찌 사특한 사령술사가 휘하에 거둔 수족을 쉽게 보내주겠나!】
도리어 이런 말이 안심이 되었는지, 이스라가 호방하게 웃었다.
토드는 이스라의 손에서 목걸이를 떼어내곤, 그녀의 등 뒤로 향했다. 키 차이 탓에 까치발로 걸어주는 게 영 모양새 떨어지긴 했지만.
“생전의 기억을 듣더라도. 당신이 제 파멸의 기사라는 건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
【당연한 소릴. 자네야말로 그자가 무슨 소릴 지껄이던, 흔들리지 않을 거라 약속하게나.】
아직 차가운 손가락까지 걸고 나서야 이스라는 묵직한 투구를 받아들였다.
뿌려둔 하수인의 시야를 확인해보니, 마침 세르지오도 정신을 되찾았다.
“가실까요.”
이리저리 고개를 꺾은 파멸의 기사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전장에서 허망하게 죽은 떠돌이 기사에게 그리 대단한 사연이라도 있겠나. 까짓것, 후련하게 전해 듣곤 어서 이 도시를 떠나세! 여기서 더 구할 명예도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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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 걸터앉아 있던 세르지오가 너스레를 떨었다.
“에잉, 쯧쯧. 기사랍시고 거들먹대더니, 힘없는 노인네를 그리 무자비하게 후려패? 고얀 녀석 같으니라고.”
안광을 좁힌 이스라가 으르렁거렸다.
【시끄럽다! 늙은이! 네놈의 음흉한 속내는 본인이 간파했노라! 어째서 결투에 총력을 다하지 않았나! 본인을 기만하려는 술책인가?】
히죽 웃은 세르지오는 양손을 모아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예의 기묘한 구결을 읊조리며 가했던 일격! 막상 타격하는 시점에선 절묘하게 힘을 빼지 않았나!】
“젊은이. 자네와 달리, 나는 점차 기량이 쇠해가는 늙은이라네. 검을 쥔 아귀힘이 옛날 같지 않을 수도 있지.”
천연덕스럽게 빠져나가는 태도에 이스라가 가슴팍을 두드렸다.
“제 기사와의 인연 때문에 일부러 강도를 조절하신 건 아니시고요.”
토드의 물음에 세르지오는 턱을 쓸어올렸다.
“흐음, 글쎄올시다. 나도 이젠 가물가물할 나이인고로.”
【분명 헤젤슈마흐라고 언급했던 것을 본인이 똑똑히 기억한다. 더불어 이 갑옷에 얽힌 사연에 관해서도!】
태연히 눈을 꿈뻑꿈뻑 뜬 세르지오는 토드와 이스라를 돌아봤다.
“거참. 이젠 그 갑옷을 알아보는 거야 나같이 케케묵은 늙다리뿐이라지만, 헤젤슈마흐 가문이야 제국에서 워낙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고?”
들어보니 헤젤슈마흐라는 이름 자체가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인 모양이었는데, 이스라는 당당히 자신의 무지를 밝혔다.
【본인은 필멸자들의 세태에 대해 잘 모른다!】
“부끄럽게도, 저 또한 작위를 받은 진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제국의 고위 가문들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혀를 찬 세르지오는 자신의 옆머리를 문질렀다.
“끄응, 아까 맞았던 부위가 다시 아파질 것 같구만. 제국에는 4명의 대공이 있네. 그들은 각각 제국의 개국 공신들이며, 주요 권역들을 다스리는 패권자들이지.”
대공···? 뜸 들이는 투에 토드는 사뭇 불안해졌다.
“황소대공 콘라트, 순록대공 아이든, 숭어대공 헬름프리트, ···그리고 사자대공 리케르트!”
순간 이스라의 안광이 요동쳤다.
“리케르트 폰 크란츠 헤젤슈마흐. 그의 가문은 과거 위대한 대제 로다빙을 포함하여 여러 위대한 황제들을 배출했으며, 로웬파우스트 왕조의 치세를 개창했다. 비록 말기의 거듭된 패전으로 선제후들의 지지를 잃은 뒤론 라이히슈타크에서 올렌부르크 가문이 황제로 선출되었지만.”
꿀꺽.
절로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왕년엔 황제가 여러 차례 선출된 가문이라니.
‘이스라가 걸친 갑주만 보더라도 대충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규모만 놓고 보면 콘라트 못지않은 권세가잖아?’
이 정도면 선제후들의 신임을 잃어서 그렇지, 현 황실보다 뼈대 있는 성골이다.
급히 토드가 속삭였다.
“이스라, 좀 떠오르는 게 있습니까? 아까 안광이 흔들리던데요.”
이스라가 즉답했다.
【아닐세. 들어봐도 전혀 모르는 이름이라 당황했던 걸세.】
이런.
【흥, 으리으리한 가문이라는 건 대강 알겠군. 허면 그리 대단한 가문임에도, 이걸 사용할 재목이 없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세르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리케르트는 대제의 혈통을 물려받은 만큼, 당대에 필적할 상대가 없는 대단한 무인인지라! 허나 구주께선 야속하게도 후계자가 될 남아를 안겨주지 않으셨나니.”
그는 미소를 흘리며 이스라를 응시했다.
“그에겐 두 딸만이 있었다.”
딸만 둘 있는 대공가의 주인.
더군다나 무구의 달인 피셜 대단한 강자.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만 같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대공 전하, 금지옥엽같이 양육하신 영애는 제가 잘 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영 좋지 않은··· 아니, 방부 처리는 확실하게 해두긴 했는데···.
아무튼 잘 살아(?)있습니다!
토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