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87
187
급격히 냉각된 군막의 분위기는 급기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마법사들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당신들은 봉급으로 금화를 수레 단위로 받아놓곤, 저주받은 자들이 돌아다니는 걸 방관하는 저의가 뭐요?”
귀족의 지적에 고동빛 담뱃대를 뻑뻑 태우던 황갈 마탑의 마법사가 표정을 찡그렸다.
“야전 마법사로서 우리의 의무는 상대측 마법사의 주문을 저지하고 전황을 보조하는 것이지, 군병들처럼 일선에 나서서 교전하는 게 아니외다.”
“지금 아군이 시체들한테 공격받고 있는데, 그놈들은 사령술사의 술법에 의해 직조된 피조물들이잖소!”
헛기침한 마법사는 턱을 당기며 답했다.
“엄밀히 사령술사는 마법사라고 볼 수 없소. 제국에서 마법사라 함은, 제국의회에서 정식 공인된 일곱 마탑에서 수학한 권능 사용자요. 그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귀족이 헛웃음을 흘렸다.
“실로 뻔뻔하군! 교묘한 말장난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만 든다니. 사령술은 당신네들이 나온 마탑에서도 엄히 금지하는 술법이잖소! 그런데도 놈과 그 수족들이 활개 치는 걸 방관하겠다고!”
“말조심하시게, 리벤슈타인 성백! 우리는 당신들에게 충성을 서약한 게 아니라네! 당초에 야전 마법사 계약은 언제라도 우리의 의사에 따라 파기될 수 있음을 잊었는가?”
성직자, 마법사, 귀족.
제국의 3대 지배계층 중에서 마법사들은 성직자 다음으로 위세가 높은 엘리트들이다.
용병 나부랭이들과 달리, 마법사들의 몸값은 상황과 실력에 따라 천정부지로 널뛰는 경향이 있었다.
더욱이 지금처럼 전쟁이 발발한 양상이라면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성백처럼 일개 성을 다스리는 제후조차 쩔쩔매는 이들.
마법사가 계약 파기를 들먹이자 오펠부르크 변경백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성백. 거기까지만 하시게. 죽은 자를 조종하는 마법은 시전자만 제거하면 나머지도 무력화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정녕 그자를 요격할 순 없는 거요?”
변경백의 요청에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하오. 이미 우리가 마력을 뿌려 권능의 소재지를 탐색해봤으나, 놈은 교묘하게 자신의 흔적을 숨겨뒀소.”
마법사가 부리는 사역마에는 마력흔이 깃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사령술사의 하수인들 역시 사역마의 일종으로 봐도 무방했는데, 자그마치 사천에 달하는 무리를 이끈다면 필연적으로 규모에 걸맞는 존재감을 발산해야만 했다.
더욱이 불경한 힘을 부리는 자들은 아무리 감추려 시도해도 특유의 사이함 탓에 탄로 나기 마련.
그럼에도 그의 위치조차 유추해낼 수 없었다.
‘놈은 은폐의 달인이다.’
토석 마법사는 눈을 감은 채 담배 연기를 뱉었다.
“놈이 마법사가 아니라 정의내린 건, 단순히 계약을 회피하려는 맥락에서 꺼낸 말이 아니오. 나는 정말 그자가 ‘주문’을 구가하는 지도 의문이군.”
권능이나 마법에 대해 문외한인 귀족들의 시선에선 여전히 그의 넋두리가 핑계로만 느껴질 거다.
어차피 마법사도 그들을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치를 넘보는 현안」이 유일하게 꿰뚫어 보지 못하는 권능은 솔마르의 빛이거늘.’
거기까지 사고가 미치자, 마법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렇다면 사령술사가 부리는 권능이 신적 존재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누가 그에게 그런 힘을 허락했으며, 그 권세가 물질계의 주신인 솔마르와 맞먹을 정도란 말인가?’
한때 이 땅에서 추앙받던 옛 종교들의 신전은 모두 태양교단에 의해 파괴되었다.
40년 가까이 권능과 신비로운 지식들을 탐독해왔어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힘에 마법사가 몸서리쳤다.
“어떻게든 토드 셰우드만 척살하면 되는 게 아니오? 병력을 넉넉하게 붙여줄 테니 그 틈을 타서 제거하면 되잖소.”
“···거부하리다. 사령술사의 술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소. 게다가 대규모 병력이 맞붙는 난전 중에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모르는데, 나로선 그만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나설 순 없소이다.”
이 자리에서 경지가 가장 높은 마법사가 거절하니 다른 마법사들 역시 고개를 저었다.
사령술사란 놈은 직접 전장에 난입하여 제 꼭두각시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데, 고명한 마탑에서 나왔답시고 뻗대는 자들은 자기 보신에만 급급하여 발을 빼려는 상황.
변경백이 답답한 듯 연신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각하, 여전히 전황은 아군에게 우세합니다. 중앙에선 완전히 승기를 잡았고, 우익을 맡은 베르나드의 가신들은 대부분 패퇴하지 않았습니까. 남은 보병과 포병대의 화력을 모두 집중시킨다면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겁니다!”
가신의 발언은 희망 회로가 타다 못해 익어버린 수준이었으나, 오펠부르크 변경백은 솔깃했는지 동공이 흔들렸다.
‘여기서 후퇴한다면, 콘라트 전하께서 단단히 경을 치실 텐데.’
그는 대공의 신임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변경백의 심리를 간파한 스트레이커가 재차 말했다.
“각하, 야전에서 소모전 양상이 지속된다면 사령술사의 군세만 늘어날 겁니다. 지금이라도 병력을 수습해 퇴각하고, 고셀발트에서 수성을 강요하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쯧, 고지대 용병들은 상대가 누구라도 두려움 없이 전투에 임한다 들었는데, 여태까지의 명성은 허명이었나?”
가신의 비아냥에 스트레이커가 미간을 구겼다.
“경. 저는 야지에서만 평생을 굴러온 촌부입니다. 제게 고귀한 나리들만한 식견은 없더라도, 전장의 흐름을 읽는 눈썰미만큼은 쓸만하다고 자부합죠. 설령 이번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사령술사의 군세는 끝이 없습니다! 차라리 병력을 보전하여 고센발트로 후퇴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가신이 삿대질했다.
“자네가 경험 많은 연대장이라는 건 알고 있어도, 나처럼 전문적인 군략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있나? 이만한 대군이 투입된 이상, 이미 물릴 수 없어! 적들에게 뒤통수를 내어줬다간 놈들이 우릴 들개처럼 물어뜯을 거라고!”
스트레이커가 보기엔 현장에서의 병력 운용이라곤 좆도 모르는 애송이의 허언이었다. 그러나 작위가 없는 자신에 비하면 저놈은 제국백이라는 명찰이 붙어있다.
“지금은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각하! 포대장들에게 포도탄을 사용하여 자유 사격하도록 하달하시지요! 송장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화력을 집중한다면, 놈이 일으킬 병사도 없지 않겠습니까? 베르나드 놈이 그토록 자랑하는 란츠크네히트도 속절없이 무너졌는데, 걸어 다니는 송장들이 당해낼 요량이 있을까요!”
아군이 포격에 휩쓸리는 걸 감수하자는 발언에 스트레이커는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랬다간 아군의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겁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대가는 감수할 수밖에! 피 흘릴 각오마저 없었다면 우리가 군사를 일으켰겠나.”
지휘부의 방침은 가용 병력을 모두 좌익으로 돌려 진형을 잠식하고 있는 시체들을 섬멸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군막을 나선 스트레이커가 한숨을 흘렸다.
‘교전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탁자에서만 전략을 논하니 이런 멍청한 결단을 내리지.’
사령술사는 그물처럼 병력을 넓게 퍼트리고 있었다. 아무리 화력을 집중하더라도 참칭파가 운용하는 경포로는 피해가 제한적일뿐더러, 대포의 핵심인 진형 붕괴도 크게 의미가 없었다.
‘죽은 자들에겐 공포가 결여되어있다. 아무리 포도탄을 쏟아부어도, 휩쓸리는 아군만 늘어나지.’
사전에 참칭파 측의 참모들도 사령술의 위력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많은 하수인을 부리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전투 발발 5시간 만에 토드 셰우드가 수족처럼 조종하는 병력만 보병 연대 다섯에 육박한다.
밀집 대형 간의 백병전이 지속될수록 양측의 사상자도 누적되는 게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 당연한 논리가 사령술사에겐 통하지 않는다.
‘소모전? 아니.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건 우리다. 애당초 평원에서 대군을 이끌고 나선 게 실수였어.’
스트레이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변경백을 비롯한 휘하 장군들은 최초의 격돌에서 카이저의 정예병을 격파한 것에 지나치게 도취되었다.
‘지휘부의 결정을 돌릴 수 있는 순간은 지났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해야겠지.’
그는 은밀히 부관을 불러냈다.
“휘하 1종보급관들에게 보급마차의 매듭을 풀어놓고,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라도 고센발트로 기동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해라.”
“예? 지휘부에선 돌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스트레이커가 고개를 저었다.
“마이어. 이번 전투는 패배했다. 사령술사는 터무니없는 존재야. 우리가 여태껏 싸워왔던 놈들관 판이하다.”
주변을 둘러본 부관이 은밀히 되물었다.
“···그럼 우리 식구들만 현 위치를 사수합니까?”
“그랬다간 자칫 항명했다고 책잡힐 수도 있으니, 15보 전진하되, 배후에서 포성이 울리면 즉각 후퇴하라고 작전 장교들에게 전해놔라. 다른 부대 놈들은 몰라도, 우린 여기서 개죽음당할 순 없으니까.”
고지대 용병들이 무적의 부대였기에 명성이 이어진 게 아니다.
대부분의 교전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난 정치적 입지 때문에 내 병사들을 사령술사 놈의 장난감으로 던져주진 않겠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피비린내 가득한 전투가 막을 내렸다. 참칭파 측에서 퇴각 나팔이 울려 퍼졌다. 그나마 병력을 온전히 보전하여 전장을 벗어난 고지대 용병과 달리, 여타 제후들은 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잃고 나서야 가까스로 평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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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참칭파의 양상을 관찰했다.
‘신기하네. 눈이 돌아간 것처럼 달려들길래 추격도 용이할 줄 알았더니. 그런 것치곤 착실하게 퇴각 준비도 해놨고.’
패주하는 잔당들을 소탕하려 구울들을 급파했는데,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수들이 사격을 가했다.
‘머리가 두 개라도 달린 것처럼, 돌격이랑 퇴각을 동시에 안배했단 말이지.’
지휘부에 내분이라도 발생한 걸까?
수만 명이 동원되는 대전은 유례가 없다 보니 참칭파나 존황파 양측 모두 지휘에 혼선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완편된 군대가 아닌, 다수의 제후들이 끌고 온 수십의 소규모 부대가 공존하는 형태라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전공에 집착하는 제후들은 적극적으로 교전에 임하는 데 반해, 소극적으로 굴면서 교전을 회피하려는 연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용케 보급 물자가 담긴 마차는 싹 빼갔어. 전리품이 영 맛없는걸.’
비록 참칭파는 대패했지만, 저들에게 추후 전투를 지속할 여력은 남아있는 셈이다.
전투 말미에는 이스라가 직접 망자들을 이끌고 적의 후방을 휘저었는데, 이미 그 많은 보급마차들이 싹 빠져나갔다는 건 승패가 결정 나기 전부터 누군가가 퇴각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음을 의미한다.
토드는 흙탕물 위로 향로를 흔들며 히죽 웃었다.
‘약삭빠른 게 마음에 드네. 참칭파에서 누가 이걸 명령했는진 몰라도, 나중에 참모들을 포로로 잡으면 그놈만큼은 잡아서 거둬야겠는걸.’
발악하듯이 쏘아댄 대포 탓에 토드도 많은 수의 하수인을 잃었다.
비록 존황파의 다른 제후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순간적으로 7000까지 돌파했던 네크로폴리스 지수가 단숨에 3200으로 내려앉았다.
순록대공이 피로에 찌든 얼굴로 중얼거렸다.
“반쪽짜리 승리로군.”
그는 야전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어도, 제국 원수로서 지휘부를 조율하는 게 쉽진 않았는지 10년은 늙은 모습이었다.
“그나마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거두지 못했겠지만 말일세.”
씁쓸한 미소를 흘린 토드는 향로를 꺼트렸다.
“아군의 손실은 어떻습니까?”
“반을 잃었네. 란츠크네히트 연대는 전멸했고, 우익을 도맡던 오벨하임 공작께선 전사하셨지.”
토드는 서슬 퍼런 투로 속삭였다.
“저대로 적들이 달아나게 둬서는 안 됩니다.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 부대가 있던가요?”
“벨피어 결사대와 나사우 공작은 건재하다고 들었네. 총합 2천가량인데, 그들과 더불어 패잔병들을 추격할 수 있겠나?”
“충분합니다. 잔당들을 완전히 섬멸하진 못하더라도, 당분간 야전에 임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는 입히고 돌아오겠습니다.”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전사자는 전투보다도 퇴각 중에 더 많이 발생하는 법이지. 그렇다고 너무 맹목적으로 쫓진 말게나. 자칫 반격에 호되게 당할 수도 있으니.”
아무리 적이 패주하고 있더라도 여전히 토드가 거느린 하수인들보다 많았다.
그중에서 지쳐 대오를 이탈하거나, 낙오된 부대들을 집중적으로 노릴 생각이었다.
‘다시는 덤빌 생각이 안 들도록 집요하게 괴롭혀주마.’
끝까지 악랄하게 물고 늘어진다.
발 빠른 스킨 워커들이 행패를 부리는 사이, 망자들이 기어코 패주하는 참칭파의 꽁무니를 따라잡았다.
“시, 시체들이다!!”
【캬아아악!!】
양옆에서 구울들이 낫처럼 구부러진 발톱을 휘둘러대고, 혈안이 벌게진 시체들이 버려진 병사들을 물어뜯었다.
분명 일이 수월하게 풀리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비단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는지, 평소 같았으면 신나서 패잔병들을 소탕했을 이스라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읊조렸다.
【토드, 이쯤에서 추격을 멈추는 게 어떤가.】
“뭔가 이상하죠?”
낮게 침음을 흘린 파멸의 기사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묘한 기분일세. 마치 사자대공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공기가 이곳에 흐르는 것만 같군. 분명 그만한 강자는 여기 없거늘.】
토드는 손을 들어 자신의 앙상한 팔목을 쓸어내렸다.
솜털이 온통 곤두서있다.
좋은 예감은 몰라도, 항상 불길한 느낌은 빗나가는 적이 없던데.
돌연 대기 중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낌새에 토드가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뭔 냄새지?’
매캐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경험상 이런 악취는 대게 불과 관련이 짙었다.
악마들이 풍기던 유황 냄새?
아니, 썩은 달걀보다는 좀 더 정제된 인화성 물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묘하게 익숙한 감각이라 곰곰이 머리를 되짚어보던 토드는 손바닥을 때렸다.
‘아, 이거 가스 냄새잖아.’
흔히 가스레인지 점화될 때나 맡아봄 직한 향취다.
‘설마 추격이 붙을 줄 알고 화공을 위해 이 일대에다가 기름을 뿌려둔 건가?’
그렇다기엔 지면에서 보이는 바는 없고, 이 기이한 기운은 공기 중에 얇게 흩뿌려져 있었다.
마법이었다면 진작에 마력의 잔재를 느꼈을 텐데, 아무런 전조도 없고.
“이스라. 일단 하수인들은 추격하도록 놔두고, 우린 여기서 대기···”
돌연 이스라가 안광을 번뜩였다.
【토드!!】
안장에서 도약한 파멸의 기사는 거칠게 사령술사를 끌어안았다.
거칠게 내동댕이쳐진 파멸의 기사와 더불어 사령술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온몸이 구겨지는 감각에 숨이 턱 막혀온다.
‘갑자기? 왜?’
하수인의 돌발 행동에 머리가 하얘진 것도 잠시. 불줄기가 일직선으로 토드가 타고 있던 말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악!!
불운하게도 이스라가 타고 있던 영마까지 휩쓸려 단번에 명계로 퇴출되었다.
토드를 감싼 파멸의 기사가 희미한 안광으로 중얼거렸다.
【하, 하··· 하. 이 불꽃은 제법 뜨겁군.】
항시 두르고 있는 고위 망자의 기운 탓에 서늘하던 갑주에서 김이 세차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스라, 이 불은···.”
안광을 깜빡인 이스라는 힘겹게 토드를 놓아주곤, 등판에 옮겨붙은 불씨를 털어냈다.
【그 마법사 아가씨가 피워내던 것보다도 맹렬한 열기일세. 이만한 불꽃을 일으킬 만한 피조물이라곤 하나뿐이지 않겠나.】
토드는 창공으로부터 드리운 그림자를 목격했다.
육중한 절대자가 유유히 지상의 미물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 ‘마지막 불티’, 아즈트룽엔: Lv.0 》
망자들과 더불어 참칭파의 잔당들을 쫓던 병사들은 망부석처럼 굳어 있었다.
토드의 몸뚱이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으나, 입꼬리만큼은 삐뚜름하게 치솟았다.
“용을 죽이는 기사들의 무용담도 기사도 전집에선 꽤 흔한 편이죠?”
그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기사 역시 몸을 일으키며 안광을 번뜩였다.
【허나 지금 시대엔 흔치 않네···! 이젠 누구도 쉽사리 쟁취하지 못하는 영광일 터.】
드래곤의 사체로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만들 수 있다.
‘가죽으론 사령술 군주의 망토, 뼈론 용아병 해금, 피로는 혈족 계통 하수인 강화, 인자 보강, 날개 피막은 비행 개체 변형···.’
토드의 눈엔 금광맥이 날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