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4
204
안톤과 공조하여 무저갱을 상대하겠다는 구상은 어그러졌다.
그가 의도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를 살해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제부턴 무저갱의 군세와 태양교단을 동시에 상대해야만 한다.
‘환영을 내보냈는데도 이 정도라니.’
토드는 덤덤히 녹아내린 가슴팍을 응시했다.
성전사, 이젠 교구장으로 거듭난 안톤의 신성은 그림자 너머의 육신을 꿰뚫었다.
라노가 하수인으로서 보유한 그림자 권능을 활용한 눈속임이었음에도 자칫 내상을 입을 뻔했다. 아니, 실제론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그 증거로 오른손의 중지와 약지 사이, 새로운 손가락이 돋아 있었다.
‘다지증이면 사망 페널티치곤 싸게 먹힌 거지.’
꼼지락거리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절지동물들의 움직임을 닮았다. 다소 기괴했지만, 토드는 여러모로 뒤틀린 미의식의 소유자였다. 나름 마음에 들었다.
부속지가 있으면 더 정교한 수인을 맺을 수 있다. 게다가 뒤틀린 채로 접합된 형태가 아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게 어딘가.
[육손]이젠 후대에 전해지지 않는 옛 선조들의 모습. 영매들에게 있어 신체의 변형은 퇴행이 아닌, 상서로운 발현이노라.
‘세속 종교’를 추종하는 이들의 혐오도 +25%.
생명력은 15 감소하나, 정신력이 15 상승한다.
우성형질이라 하더라도 기형 판정이라 그런지 생명력은 대폭 까였다. 반대급부로 정신력의 증대는 사령술사에게 이득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큰 페널티는 세간의 혐오도를 끌어올리는 옵션이겠으나, 이제 토드의 평판이 굳건한 이상, 크게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문제는···.’
신성에 직격당한 영혼 목걸이는 본래의 형상조차 상실할 정도였다. 그런데 파손된 잔해에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미미하게 남은 황금빛 기류가 자꾸만 잔해에 남은 진녹빛과 뒤엉키면서 회백색에 가까운 잔광을 내비친다.
마력을 불어 넣어봐도 별다른 작용을 일으키진 못했다. 배색된 두 빛은 자연스럽게 부유했다.
그 색채는 명계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영혼 목걸이는 확실히 기능을 상실했어. 그렇다고 망가졌다기엔,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가늠할수록 파손되었다기보단 새로이 거듭난 느낌이었다.
다만 완전히 개화했다기엔, 아직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채로 잠들어있는 기분.
‘···안톤을 만났어도 여전히 태양신의 저의는 불분명해.’
비록 소기의 목적은 이루지 못했으나, 적어도 피아는 명확해졌다. 애매한 아군으로 두느니, 확실한 적으로 구분 짓는 게 났다.
어쩌면 지옥과 천상의 군세를 동시에 상대할지도 모를 암울한 상황이지만 토드는 히죽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시체가 늘어날수록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만큼 내가 더 열심히 뛰면 되는 거고.’
비관해봤자 득 될 일은 없다.
망토 속에 오른손을 감춘 토드는 호위병들을 대동한 채 황제의 군막으로 향했다.
철컥, 철컥.
파멸의 기사를 필두로 백골 근위병들을 거느린 행렬은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굳이 숯을 덧칠하지 않았음에도 온통 새카만 빛의 갑주가 살아있는 병사들과 네크로폴리스의 정예병들을 구분 지었다.
토드의 군세는 항상 전투에서 앞장섰고, 덕분에 뒤집어쓴 피와 화약이 마를 일 없었다.
“······.”
병사들은 조용히 눈을 치켜뜬 채 토드의 행차를 지켜봤다. 그들의 시선엔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가 깃들어 있었다.
시체 특유의 역한 시취는 없더라도, 토드 셰우드가 이끄는 군세는 특유의 고유한 자취를 풍겼다.
짙은 약품 냄새와 쇠 비린내, 은연중에 서린 적들의 혈향. 절도 있는 움직임과 단합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체가 아닌 강철로 만들어진 전사들이 걷는 듯한 인상을 새겼다.
망자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우리가 저것들과 전장에서 마주 볼 일이 없어서 망정이지.”
“누가 검은 남작의 군세를 막겠어? 그 대단한 황소대공도 속절없이 무너졌는데.”
문득 병사가 중얼거렸다.
“이젠 백작이야. 어제부로 카이저께서 공신들에게 작위를 수여하셨다고.”
“남작이 된 것도 거진 2년 전이라며? 아주 승승장구하는구만.”
바짝 긴장해서 자리를 지키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흩어졌다. 멀어져가는 거미 깃발을 바라보던 이가 나직이 뇌까렸다.
“···적어도 지상에선 앞으로 대적할 만한 자가 없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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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젠하펜, 그리민베르크, 이젠투름, 쿠텐슈타드를 비롯한 4개 자유시가 악마들의 전방위적인 침공을 받고 있습니다.”
아볼루온이 예고했던 대로 무저갱의 침공이 본격화되었다. 놈들은 생각 외로 교활한 구석이 있었다.
제국에서 부유한 측에 속하는 자유시들이 극렬한 공세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건 경제의 근간부터 파괴하겠다는 의도다.
‘흑마법사들은 지상의 물정에 능통하지. 게다가 무저갱은 맹목적으로 파괴 욕구에 사로잡힌 놈들도 아니야.’
단순히 불결한 사념이 뭉쳐진 지점에만 날파리처럼 꼬이는 놈들이었다면 판가우만큼이나 악마가 강림하기에 안성맞춤인 시궁창도 없다.
현재 판가우는 놀라울 정도로 잠잠하다고 들었다.
“이미 중앙 권역은 도처에서 악마들이 목격되었으며, 기어코 청색 마탑이 함락되었다고 하더군요.”
청색 학파는 빙결 주문에 특화되어 있다. 비록 주요 마탑이 흑색 학파에 호의적이진 않으나, 조력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국적 상황에서 빙결 마법사들이 전멸했다는 건 그리 희소식은 아니었다.
“슈타펠부르크 공작과 달랑슈타드 방백의 권역이 청색 마탑 근처에 있지 않던가. 그들에게 병력을 증파토록 공문을 보냈을 텐데, 어찌 청색 마탑이 함락되었단 말이냐.”
황제의 물음에 제국 재무관이 입을 열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변방 제후들이 소집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참칭파에 가담했던 반역자들뿐만 아니라 전쟁에 미온적이었던 제후들마저 재정적 이유를 들어 사절을 돌려보내는 형국입니다.”
어린 황제는 짧게 탄식했다.
즉각 격노한 이스라가 그들을 성토했다.
【그깟 동전이 부족하다 하여 이 땅에 처한 위기를 외면한다고! 겁쟁이나 반역자라 멸시하기에도 부족하다!】
안광을 이글거린 파멸의 기사가 건틀렛을 쥔 채 읊조렸다.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것들 같으니! 당장 출병하여 정신머리를 바꿔놓아야겠군! 전부 네크로폴리스의 충직한 병사로 징집하여 영광스러운 대오에 합류토록 해야만 한다!】
황제를 비롯한 고위 귀족들이 동석한 자리였음에도 이스라는 스스럼없이 목청을 높였다.
상당히 무례한 처사였으나 누구 하나 쉽사리 지적하질 못하고 쩔쩔맸다.
파멸의 기사는 셰우드 제국백의 최측근이었을뿐더러, 저 위압적인 갑옷 속에 헤젤슈마흐 대공가의 장녀가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바였다.
더욱이 이스라의 레벨도 어언 80 후반대.
일기당천에 필적하는 존재가 흘리는 흉흉한 기세에 가신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헛기침한 토드가 점잖게 그녀를 타일렀다.
“이스라 경, 발언에 다소 자중해주세요.”
팔짱을 낀 파멸의 기사는 콧방귀를 뀌며 안광을 누그러트렸다.
재문관이 다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교구의 파문 명령이 통고 되었음에도 놋그릇수도회의 안토니오는 휘하 심문단과 주의 망치 기사단을 소집했습니다. 그는 남서부에서 진격할 겁니다.”
“그나마 교단 내 여론이 엇갈리고 있으니 군세를 결집하는 데 시일이 소요되겠군요. 지금 제국군은 완편되어있으니 군세를 나누어 사전에 그를 격멸하는 게 낫겠습니다.”
토드의 제안에 황제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토드, 병력이 부족하네.”
“예···? 참칭파의 잔당들이 투항하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은 군영에 합류시키기 어렵겠습니다만, 노획한 물자가 충분하니 다른 권역령에서 군대를 재편하기에도···.”
“그것만으론 군세를 분할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네. 게다가 제국 동부에서 대대적으로 반란이 일어나면서 병력을 충원하기도 여의치 않지.”
토드는 벙찐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황스럽군요. 제국에 종말이 도래했는데 동부가 이탈했다고요.”
순록대공 아이단이 대꾸했다.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부에선 악마들로 인한 피해가 미미했소. 아무리 여타 지역에서 저주받은 존재들의 난동이 들끓고 있다 한들, 그들에겐 와닿지 않는 모양이오.”
악마들이 날뛰고 있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영토 반대편의 일. 가뜩이나 전쟁의 여파로 삶이 황폐해졌는데 추가로 징발을 끌어다 쓰겠다니 변방 제후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나름 저들 딴엔 생존을 위한 판단이다.
골머리 아픈 상황이었다.
‘공동의 적이 대두되면 단합되긴 개뿔. 더 개판이 났잖아.’
싸울 군대는 없는데, 반란 일으킬 군대는 있는 나라, 제국! 참으로 대단한 기상이 아닐 수 없었다.
참모진으로 합류한 스트레이커가 속삭였다.
【우선 지금은 중앙의 소요부터 진압하는 게 온당한 처사 같습니다. 주요시들이 함락되면 변방주들의 이탈은 심해질 겁니다. 그랬다간 악마들에게 대항할 구심점 자체가 붕괴됩니다.】
여전히 제국군의 규모는 2만에 육박하나, 광활한 제국령을 통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가신들 역시 중앙을 틀어막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는 가운데, 일부 제후들이 반발했다.
“우리의 고장은 무저갱의 침공을 받고 있소! 고향을 등한시하고 중앙으로 가라니! 그럴 순 없소이다!”
“일부 징집병은 내어줄 수 있어도, 내 가신단은 돌아가겠소. 황실을 위해 싸우더라도 내 봉역이 불타 사라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요.”
존황파에 지지를 보내던 제후들마저 제국군에서 이탈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
실질적으로 변방 제후의 거두에 해당하는 크뤼거 역시 입을 열지 않을 뿐, 미간의 골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가 다스리는 켄젤슐리텐 변경백령은 민란에 휩싸인 동부에 직접적으로 속해 있다.
점점 제후들과 야전 사령관들 간에 언쟁이 격화되자 이스라가 혀를 찼다.
【쯧쯧, 산 자들이란. 부질없는 유산에 목을 매는군. 그에 비하면 영광은 영원하거늘!】
병력의 부족, 제후들의 이권이 상호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파멸의 기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으나,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에겐 목숨 외에도 지켜야만 하는 가치가 많았다.
파멸의 기사가 속삭였다.
【차라리 저들도 네크로폴리스에 입영시키는 게 어떤가? 토드. 우리의 병사들은 시끄럽게 불평불만을 주절대지도 않고, 충직하게 따르니 말일세.】
눈썹을 세운 토드는 단호히 대꾸했다.
“씁, 안돼요. 이스라. 의사와 무관하게 억압하는 건 흑색 학파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게 무저갱의 군세와 다를 게 뭔가요.”
투구를 긁적인 이스라가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쩝··· 적어도 우린 악마 놈들에게 맞서 싸운다는 대의라도 있지 않은가.】
“어떤 대의라도 피로 정당화될 순 없어요. 우리에게 대적하는 자들을 불가피하게 굴복시킬 순 있어도, 살생은 자중해야만 합니다.”
불사자는 생자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적어도 그들을 통솔하는 토드에겐 교화의 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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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한숨을 흘린 황제는 몸을 일으켰다.
최소한의 수행원들만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이런 음침한 장소를 찾으실 줄은 몰랐군요.”
그늘 너머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기사들이 검집에 손을 올린 순간.
어둠 너머에서 불쑥 거구의 새카만 덩치가 튀어나왔다.
【검을 거둬라.】
묵직한 한마디. 기사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투구 속에서 번들거리는 안광을 본 필멸자들은 뼈마디에 사무치는 한기를 느꼈다.
자신들이 당해낼 만한 상대가 아니다.
주군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무감 탓에 필사적으로 위치를 지키고 있으나, 절로 턱과 손이 벌벌 떨렸다.
황제가 손짓하자 그들은 겨우 물러날 수 있었다.
희미한 촛불이 닿는 곳으로 들어선 사령술사는 쓴웃음을 흘렸다.
“제 하인의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흥, 본인의 주인만큼이나 충직한 신하가 어디 있다고 감히 의심한단 말인가.】
이스라를 돌아본 황제가 빙긋 웃었다.
“신념이 올곧은 분이시군요. 저 또한 셰우드 백작의 충절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분들도 의무에 충실한 것뿐이고요.”
안광을 비튼 파멸의 기사는 슬쩍 기사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흠, 뭐. 본인을 마주치고도 도망치진 않는다니, 중앙의 샌님들치곤 썩 나쁘진 않은 것 같군. 그렇지 않아도 본인과 더불어 불멸의 영광을 추구할 기사단원들을 절찬리에 모집하고 있는데···】
애써 꿋꿋한 자세를 유지하던 기사들은 이스라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몸서리쳤다.
“흠흠.”
토드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툭 친 뒤에야 파멸의 기사는 곁눈질을 관뒀다.
“그나저나 여긴 묘역이군요? 양식이 생소한 것으로 보아 현시대가 아닌, 태양 제국 시절의 유산이겠군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를 비롯해 태곳적 제국의 위대한 선조들이 잠든 곳이지요.”
그는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이따금 이런 고즈넉한 장소를 찾을 때마다 전 마음의 평화를 얻곤 합니다. 사색에 잠기기에도 적당하고요.”
어린 황제에게선 지배자에게 뒤따르는 중압감이 엿보였다.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고대의 무덤가라니.
다소 연민이 들기도 했지만, 일시적인 감정에 그쳤다.
석관을 훑어보던 토드의 눈동자에 기묘한 빛이 감돌았다.
‘······여긴 단순히 무덤이 아니라, 영묘(靈廟)다.’
이미 안장된 유골들이 분해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곳이다. 단순히 죽음을 기리는 데 그치는 무덤과 달리, 영묘는 생전에 위업을 달성한 자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
딸랑···.
용골 지팡이에 묶인 방울이 흔들린다.
토드는 재차 석관에 새겨진 문자를 헤아렸다. 정작 후예인 황제는 읽지 못하는 상고의 언어였으나, 토드의 눈엔 선명히 보였다.
「 아센시오의 아들, 집정관 소테리스 세르바티우스가 여기 그의 영광스런 제14군단 전우들과 더불어 잠들었다. 」
육신은 사라졌어도, 원념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상.
“···폐하.”
군단병은 해골 병사 계열의 정점에 해당하는 하수인. 마침 이들의 형상을 잡아줄 용의 뼈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만약 당장 천 명의 병사를 얻을 수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