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25
225
장례 미사를 지켜본 클라우스가 소감을 읊었다.
【강대한 하수인의 재목일 텐데, 저리 땅에 묻다니 애석합니다요.】
토드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안톤은 우리가 감당하기엔 상징성이나 체급이 부담스럽습니다. 괜히 그를 소생시켜봤자 성격상 계약에 반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고요.”
【그래도 교구장의 유해는 교회와의 협상에서 활용하기에 훌륭한 패가 아닙죠?】
유유히 미소지은 토드가 제자들을 통솔했다.
“한 번 지켜보세요. 때론 관대한 제안이 언제나 손해만 보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망토 눌러쓴 자들이 교회의 회랑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일견 수도복과 비슷해 보이나, 특유의 음울한 기운은 도무지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다.
구획을 지키던 성전사들은 그리 곱지 않은 눈초리였다. 허리춤까지 아슬아슬하게 손이 올라가긴 했어도 상부에서 확실한 언질이 있었는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개중에 열성적인 이들이 달려들까 싶어 좌우로 열심히 안광을 굴리던 클라우스는 새삼스러운 눈빛이었다.
【······확실히 우리의 위상이 달라지긴 했군요.】
“그를 두 번 죽이느니, 넘겨주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어차피 업을 청산한 상대는 또 소생시켜 죽여봤자 되려 업만 깎일 뿐이고. 이미 토드가 시도한 바 있었다.
“교단 수뇌부들이 헛으로 요직에 앉은 게 아니고서야 제 저의는 알아들을 수 있겠죠.”
문고리가 열리자 앞서 기다리던 시도우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어조크 셰우드.”
마탑의 주인은 공작위와 동격으로 취급되던가.
토드 역시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요한 주교님.”
태양 교단 최고대법관, 이젠 공석으로 남은 교구장의 대행자, 유일하게 생존한 성직 제후의 어투와 몸짓은 극도로 정중했다.
곁에서 토드를 호위하던 이스라 역시 안광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폈다.
【가만 보니 구면이로군! 뫼를렌푸르트 때 재판석에 앉아선 시종일관 똥 씹은 표정만 짓던 중늙은이 아닌가?】
이스라의 막말은 실질적인 교회의 수장 앞에서도 거침없었다. 아무래도 결투 재판 내내 고압적으로 일관하던 태도가 단단히 밉보인 모양이다.
“제 기사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시길. 원체 정신 나간 이라, 세속의 예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스라 역시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기사는 산 자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다!】
대주교를 보필하던 성직자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럼에도 대주교가 애써 웃으며 무마했다.
“용맹한 기사들은 예의범절에 무지한 경우가 더러 있지. 결투 재판 당시에 내 언행이 심기에 거슬렸다면 사과하겠소. 이스라 경.”
토드는 은밀히 미소를 삼켰다.
‘먼저 꼬리를 내리네?’
회담장에 마르커스가 아닌 미친개를 풀어놓은 건 상대의 반응을 떠보려는 의도였다.
상호 간의 우위를 검증하기엔 충분하다.
파멸의 기사는 건틀렛을 낀 채 대주교의 손을 맞잡았다.
【에헴! 비록 재판 과정이 석연친 않았으나, 대주교께서 이리 나오신다면 본인도 이쯤 허리다!】
한 번 굽혀줬음에도 구태여 사족을 덧붙이니 수행원들은 입이 근질거리는 눈치였으나 차마 대응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고소해 죽겠네.’
재담은 이쯤으로 하고, 토드가 입을 열었다.
“안톤에 대한 파문 명령은 철회토록 동부 대교구와 황실에 전해뒀습니다. 사후 성 안토니오로 복권되실 수 있도록 원만히 조치할 겁니다.”
한숨을 흘린 대주교가 이마를 쓸어내렸다.
“감사를···.”
“인세에 그을음이 번지고 있습니다.”
가는 미소가 목소리에 담긴 예리함을 어렴풋이 감춘다.
“유황 악취가 지독할 지경이죠.”
대주교가 침을 삼켰다.
“불행히도 흑색 마탑과 교단의 견해가 배치되어 불필요한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앞으론 상호 간에 소통 창구를 마련한다면 능히 재발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 믿겠습니다.”
지상에서 악마들이 깽판 치고 있는데, 헛짓거리는 관두는 게 좋을 거다. 다행히 시도우 대주교가 완곡한 엄포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우둔하진 않았다.
“물론이오. 따로 주교를 배속하여 흑색 마탑과 원활히 협력할 수 있도록 하겠소.”
토드는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추종합니다. 그와 달리, 구렁텅이에서 기어 올라온 것들은 가히 상종도 못 할 놈들이지요.”
악마들은 뼛속까지 온통 태워 먹으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다. 이 세상에 담긴 철학을 아시겠냐고 따져봤자 통할 리 없다.
“저는··· 놈들을 경멸합니다. 아니, 경멸할 수밖에요.”
토드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안중을 살피던 대주교가 물었다.
“악마들은 이 땅에 말세를 몰고 오는 존재들. 지상에 죽음이 만연하다면 사령술사들은 반길 일이 아니오?”
토드가 대답하지 않자 시도우 대주교는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덧붙였다.
“그대들이 한때 양례 교단으로서 우리와 공존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이를 기록한 고문헌마저 바랬을 정도로 오래전의 일이오.”
죽음의 사제들은 제 권능에 취하여 걷잡을 수 없는 폐단에 빠졌다. 그 대가는 수백 년간 교단의 존치가 위태로울 정도로 혹독했다.
“토드 셰우드. 이제 난 경을 의심하지 않소.”
대주교의 눈빛이 또렷하다.
“허나 당신 역시 필멸의 운명에 속박된 인간. 흑색 마탑이 셰우드 경 사후에도 그 뜻을 존치하리라 장담할 수 있겠소이까?”
그 역시 교단과의 공존을 물색하려는 토드의 뜻을 헤아렸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무저갱이라는 공동의 적수가 사라진 뒤에도.
대주교의 의문은 지극히 타당했다.
“솎아내기가 좀 길었습니다.”
토드가 품에서 끄집어낸 것을 목격한 사제들은 일제히 성호를 그었다. 대주교 역시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대적하는 게 아니라, 맞물리는 것인데. 이토록 간단한 섭리를 피조물들이 곡해하니 조물주의 뜻이 지상에 두루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굳이 아마포를 들춰내지 않더라도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실체가 주교단을 압도했다.
대주교가 힘겹게 입을 뗐다.
“경은···”
얼핏 경전의 말미를 구성하는 묵시록은 말세에 도래할 징조들을 경고하려는 의도로 비치곤 한다. 신학을 공부한 성직자들조차 여러 표상에 경도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아니, 당신께선.”
하지만 진정한 의의는 장차 돌아오실 신성의 재림을 암시하는 데 있지 않은가.
“당신께선 누구십니까?”
“전 토드입니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지 대주교는 앉은 자리에서 연신 움찔거렸다.
“사령술사 토드.”
가명을 둘러대는 버릇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파리만도 못한 목숨. 하루라도 연명하려면 무수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갈아치워야만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본명이 뭐였더라?’
토드(Tod).
뇌리를 샅샅이 훑어봐도 짤막한 세 음절 외엔 마땅히 떠오르는 바가 없다.
잊어버렸나?
근데 이 이름마저 가명이라기엔 이젠 너무나 생생한걸.
사령술사는 미소 지었다.
“허어······.”
이런. 저러다가 숨넘어가겠다.
잠시 편린을 들여다본 것만으로 힘겨워하기에 배려 차원에서 거둬들였다.
숨을 몰아쉰 대주교가 말했다.
“당신껜··· 전능한 권세가 함께하고 있소.”
그의 눈에 두려움이 엿보인다.
“그걸 들고 어쩔 작정이시오?”
히죽 웃은 토드가 손끝을 내렸다.
“밑으로.”
아무리 파편에 불과할지라도 영영 소유할 순 없다. 일시적으로 대여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 이상, 렌탈 기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알차게 활용할 작정이었다.
“무저갱을 직접 정벌할 생각입니다.”
대주교의 눈이 감겼다.
“그게 바라는 바라면···.”
다시 눈을 뜬 그가 나직이 물었다.
“교회가 어떻게 돕길 바라시오?”
“지옥까지 따라갈 순교자들을 구해주시지요.”
“그렇다면 성전군을 재소집하는 게.”
토드가 고개를 저었다.
“공공연히 원정을 알려봤자 놈들이 방비를 구축할 시간만 벌어주는 꼴입니다.”
관건은 예측 불가능한 기동.
“악마들은 늘상 침공을 벌이는 데만 익숙하지, 반대로 그네가 방어하는 상황은 서툴 겁니다.”
“어찌 장담할 수 있소? 설령 주께서 임재하신다 하더라도 그놈들이 비롯된 본거지를 직접 공격하겠다니. 무저갱은 피조물이 이해 못 하는 온갖 악의로 가득한 곳이거늘.”
토드가 능청스레 대꾸했다.
“취미로 키우는 악마 표본이 셋 있어서 말입니다. 그간 놈들을 굴리면서 적잖게 생태를 캐내 왔었죠.”
비 내리는 자, 임푸트리케. 신기루 비치는 퀴셍달. 무저갱의 조련사 그룸다즈.
읊는 이름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대악마들인 탓에 대주교의 몸이 떨렸다.
“대, 대체 그런 놈들을 어떻게 심문한 거요.”
“아무래도 말귀를 쉽게 듣는 애들은 아닌지라. 적당한 훈육이 좀 필요하긴 했습니다.”
대주교가 조심스레 물었다.
“주문으로 영혼을 찢어발기기라도 했소? 아니지. 그걸로 신성을 쬔다면.”
“물리적 외압은 피학적 욕구를 충족시킬 뿐이더군요. 불멸자에 가까운 놈들이라 그런지 통하지도 않고요.”
히죽 웃은 토드는 당시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떠들었다.
“뚱뚱한 녀석은 화로를 태우는 물레를 돌리도록 독촉했고, 깔따구는 정오마다 경전 구절을 들려줬으며, 조련사란 놈은 죽은 고양이들의 원혼을 넣어주니 좋아 죽으려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이치를 넘어선 증언이다. 어차피 그는 이해를 수반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다.
【역시. 토드 자네는 누구보다도 사특한 사령술사일세. 마귀들조차 치를 떨 정도이니 말 다 했지! 이건 기사도 전집도 인정하는 바이네!】
사뭇 그에게 드리웠던 거룩함이 희석되는 느낌이었으나, 그렇기에 대주교는 내심 안도했다.
일찍이 전능자에 가까웠던 자가 어떤 꼴로 몰락했는진 교단 모두가 알고 있으니.
“이미 놈들은 복마전의 구조를 상세히 실토했습니다. 복잡하지만, 길을 안다면 능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악마들은 진실을 고하지 않네. 그마저도 기만이라면?”
토드의 입가가 휘었다.
“함정이라면 더 좋지요. 그만큼 놈들의 전력이 안배된 곳이니, 거길 분쇄해버리면 침공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대주교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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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탁류가 도달하는 종점.
이곳에선 모든 것이 살갗을 드러낸 채 아우성친다. 아득한 광명조차 밑바닥까진 헤아리지 못했다.
―넌 솥에서 558년. 이 자식은 용광로에 666년.
오늘도 키사르는 지상에서 굴러떨어진 영혼들을 분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본래 그는 수문장을 맡고 있으나, 만신전이 추락한 이래로 분노로 가득한 예토를 감히 침범하는 존재는 없었다.
대강 점토판을 헤아린 악마가 콧김을 뿜었다.
―나머진 땔감! 100년!
찢어지는 조소를 터뜨린 사역마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죄인들을 닦달했다.
“100년이란다!”
“날 위로 걸어라! 걸어라!”
이 빌어먹을 곳에서 얼마나 썩었더라. 한때 자신과 더불어 탄생했던 놈들은 죄다 한 자리씩 차지하곤 지상에 불려 올라갔다고 하던데.
‘왜 나만 이깟 한직에 머물러 있냔 말이야.’
불만스럽게 뿔을 긁어대던 키사르는 꼬리를 휘둘러 말라비틀어진 몸뚱이를 낚아챘다.
“껙, 그에게엑···!”
이젠 5세기 가까이 숙성시킨 놈의 사념을 섭식해도 허기가 기시질 않는다. 손가락으로 영혼을 집어 용암못에 던져버린 악마는 이를 박박 갈았다.
―제기랄! 드레토모스, 도낏자루도 못 쥐던 저능아 새끼마저 올라갔는데! 내가 못할 건 뭐냐고!
흘러내린 고기 기름 때문에 표면이 반질반질한 가마솥 위로 악마는 연신 자세를 취해 보였다.
날카로운 뿔, 육중한 날개, 그간 수급한 금니 녹여 장만한 코뚜레, 쉭쉭거리는 꼬리와 잿가루 훨훨 떨어지는 새카만 터럭까지!
지상의 피조물들이 마주친다면 까무러치기에 충분한 생김새였다.
―원통하다! 원통해! 내가 왕년엔 분노의 못에서 제일가는 투사···
태생부터가 부정한 사념으로 빚어진 존재라 어김없이 열등감을 분출하던 도중, 분주하게 퍼덕이는 날갯짓이 울렸다.
“수문장, 수문장, 비상이다! 비상!!”
눈자위를 부라린 키사르가 냅다 사역마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도 별 해괴한 짐승이랑 붙어먹다가 뒤진 놈을 속보랍시고 호들갑 피우면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 30년 전엔 악어였지. 또 뭐냐!
“켁, 켁켁. 그딴 걸, 일일이 속 좁게 기억하고 있으니 수문장이 여기 처박혀 있는-”
―크아악!!
어차피 사지를 찢어발겨 놨자 10일 뒤면 또 막에서 태어나 주절거릴 놈들. 좌우로 날개를 뜯기기 전에 사역마가 황급히 외쳤다.
“괴, 괴상망측 요즘 지상 것들 이상성욕 근황··· 이런 게 아니라 진짜 비상이란 말이다! 켁! 어떤 놈들이 시궁창 미로를 건너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등신 같은 놈! 거긴 죽어서든 살아서든 통과할 수 없는 곳이야! 차라리 네놈은 똥구멍에 처넣어서 주둥이로 뱉도록···
피조물의 시간관념으론 헤아리기 어려운 세월 동안 격오지에 처박혀 있던 초병들이다. 애당초 유황조차 녹아내리는 땅에 침입자가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쾅!!
돌연 밑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에 키사르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뭐야?
소악마를 내던진 악마가 황급히 도약했다. 안력을 돋우고 보니 웬 살덩어리가 구리 성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뿌우! 대작 왔어요!】
악마가 보기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들이 새카맣게 몰려와 있었다.
‘어느 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