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26
226
쾅!
자그마치 반 천년기 가까이 피조물들의 사념으로 담금질한 강판이다. 무식하게 주먹질을 해댄다고 열릴 만한 문은 아니었다.
【예의 바르게 노크하는 방법쯤은 대작도 안다!】
쾅!!
문틈을 틀어막던 황동 경첩이 으스러진다. 아무리 무저갱 종자들이 막돼먹었다지만, 멀쩡한 문짝을 부수고 들어오려 하진 않는다. 하물며 지옥의 입구를 강제로 열어젖히려는 게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잉걸불 대의회는 두려움을 먹고 사는 우리 동족들의 본성마저 군림하는데.’
키사르가 보기에 저 미물은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히히. 대작은 역시 똑똑하다.】
무저갱의 입구가 헐리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키사르가 퍼뜩 날개를 펼쳤다.
―멈춰라! 고깃덩어리 놈!
소악마들이 호송 중인 죄인을 다그치려 휘두르는 채찍은 키사르가 쥔 병기의 모방품에 지나지 않았다. 무저갱의 신장(神將)이 꺼내든 채찍은 가닥만 수백 개에 달하는 데다, 일찍이 이곳을 거쳐 간 몰락자들의 척추뼈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촤악-!
【아야!】
신나게 성문을 두들기던 거인이 와락 표정을 구겼다. 팔뚝에 휘감긴 쇠줄을 거슬러 올라간 하수인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방금 건 좀 아팠다!】
조금 아팠다고? 원래라면 살을 찢어발기는데 그치지 않고 필멸자의 영혼까지 뜯어내야만 한다. 생경한 반응에 당황한 키사르는 거세게 채찍을 내질렀다.
팡, 팡!
유황에 절인 채찍이 나부낄 때마다 총성처럼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마는 다소 가혹할 정도로 거인을 몰아붙였지만, 단단히 몸을 웅크린 하수인이 태연히 중얼거렸다.
【우워, 따끔하다.】
진작 외피가 터지고, 혈관과 내장이 드러나야 정상이다. 충격의 여파로 쏟아지는 불똥만 하더라도 강철을 녹이기에 충분할 정도.
거인은 꿋꿋하게 견뎌냈다.
위화감이 들어 거인을 살피던 키사르는 기막힌 비명을 터뜨렸다.
―이 미련한 놈! 그걸 살집으로 튕겨낸다고?
표면을 두들길 때마다 두툼한 지방층이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세한 실금이 그어지더라도 기포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엉겨 붙는다. 아무리 후려갈겨도 재생하는 속도가 월등했다.
뚱한 표정을 지은 거인이 가드 자세 너머로 키사르를 노려봤다.
【이래 보여도 대작. 관리 열심히 한다.】
살점 거인도 예전처럼 마냥 얻어맞으며 버티는 포지션에서 그치지 않았다. 얼핏 살에 뒤덮인 눈매가 둔한 인상을 풍기지만, 거인의 작은 눈동자는 채찍의 궤적을 좇고 있었다.
【대작은 미련하지 않다. 좀 클 뿐이다.】
거인은 엉겨 붙은 살덩어리들로부터 깨어났다.
원초적 허기와 저열한 본성만 남아 하릴없이 썩어갈 뿐인 응어리에 의미를 부여한 건 그의 주인이었다.
【토드가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고 했다.】
어설플지라도 토드는 타박하지 않았다. 하수인의 투박한 눈높이에 맞춰 훈육하고, 타일렀다. 하여 피조물 역시 조물주의 애정에 힘입어 성장했다.
콱!!
날쌔게 휘날리던 쇠줄이 두툼한 손아귀에 붙들렸다. 거인이 헤벌쭉 웃었다.
【날파리. 드디어 잡았다.】
샛노란 눈동자를 치켜뜬 키사르가 손잡이를 비틀었다. 가닥에 박힌 뼛조각이 뭉툭한 손아귀를 할퀴며 핏물을 자아냈으나, 거인은 단단히 움켜쥐었다.
‘무슨 힘이!’
놈이 채찍을 놔버리기 전에 팔뚝 위로 혈관이 불거졌다.
【뚱뚱해 보여도. 나름 근육이라고오!!】
온 힘을 실어 악마를 끌어당긴 거인은 자신과 맞먹는 거구를 패대기쳤다.
콰앙!!
【우하하! 역시 대작은 위대해!】
몸집으로 키사르를 깔아뭉갠 거인은 울화를 토해내듯 발길질을 퍼부었다. 성문도 거뜬히 부수는 완력에 악마가 몸부림쳤다.
―크릉!!
도저히 육박전은 성립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키사르의 발치에서 불꽃이 고리를 그렸다. 화염 너머로 도끼를 움켜쥔 악마가 날을 내리치기 전, 대검이 놈의 팔을 찔렀다.
―캬악!!
후웅-!
묵직한 도끼날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가른다. 궤적이 엇나가지만 않았다면 대번에 머리가 날아갔을 정도로 위협적인 일격이었다.
날붙이를 목격한 거인이 황급히 물러섰다.
【무기를 쥔 상대라면 본인이 전문이지!】
휘청거리는 악마 앞에 파멸의 기사가 바로 섰다. 육중한 상대이니만큼, 그에 걸맞게 패용한 대검 역시 적당히 묵직했다.
【가만 보니 요른카리에서 잡았던 마귀와 비슷하게 생겼군.】
한 놈을 보냈더니, 또 괴상한 놈이 얽혔다. 수문장의 표정이 수모로 일그러졌다. 분노를 담아 내리친 도끼날이 대검과 충돌했다.
쩌엉!
제법 거칠게 걸친 병기들이 쇠판 긁는 소음을 일으키며 팽팽하게 맞섰다. 힘겨루기에 키사르의 눈매가 잔뜩 비뚤어졌다.
【혹시 친척인가? 만일 그렇다면 안부나 전해주시게.】
반면 투구 속 안광은 한없이 잔잔했다. 도리어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점점 호선으로 기우는 모양새에 악마가 주춤거렸다.
―네놈들, 여기서 어떻게 움직이는 거냐?
이스라는 가뿐히 도끼날을 튕겨내며 대꾸했다.
【왜, 죽은 자들이 움직이는 건 처음 보나!】
저 기사가 손목을 비틀 때마다 검의 궤적이 신묘하게 엇갈리며 찔러온다. 지나치게 앞으로 쏠렸다 싶어 내리찍으면 잽싸게 빠져나가고.
양자 간에 격렬하게 합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여도, 피 흘리는 쪽은 일방적이었다.
삐걱대는 무릎을 다잡은 악마가 중얼거렸다.
―밑바닥의 열기는 비단 피륙뿐 아니라 존재를 구분 짓는 정념마저 불사르는데.
이스라는 능청스레 고개를 까딱였다.
【확실히. 조금 후끈하긴 하군.】
―후끈할 정도일 리가.
탄식하는 악마를 향해 파멸의 기사가 나지막이 조소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섬기는 주인의 안배 덕분이겠지.】
사이한 안광이 이글거린다. 불꽃을 닮은 눈동자는 얼핏 이곳의 겁화와 닮았으나, 정작 키사르조차 움찔거릴 정도로 색채가 강렬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발굽을 끌다가, 신경질적으로 지면을 긁었다.
‘···내가. 순간 두려워했다고?’
결국 눈앞의 적수 역시 한때 필멸자에 지나지 않는다. 두려움을 먹고 존속하는 존재가 도리어 피식자로부터 두려움을 느끼다니.
【문, 열어라아아!】
우지끈!!
기어코 저 비곗덩어리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무저갱의 관문이 무너졌다. 거인을 필두로 새카맣게 물결 지은 하수인들이 내부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에 키사르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투각!!
화끈한 격통에 황급히 도끼를 빗겨 세우고 보니 어느새 칼날이 옆구리를 스친 뒤였다.
【하, 하! 하. 딴청 피울 틈은 없다고 보네만!】
도낏자루의 반경 내로 접근한 이스라는 거침없이 발을 구르며 키사르를 몰아붙였다.
무저갱의 수문장이 한낱 미물을 상대로 완력이나 기교, 어느 쪽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그학!
다급함이 앞설수록 치명상만 가파르게 누적된다. 분노의 못에서 잉태된 태생이라 버티곤 있지만, 악마의 몸뚱이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간 본인이 자네의 동족을 베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이 있네.】
싱글거린 파멸의 기사는 사선에서 후려치는 꼬리를 가볍게 잘라냈다. 악마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가짜 몸뚱이로 강림한 지상이 아닌, 지하에 있는 본신을 베어낸다면 어찌 될지.】
검녹빛 섬광이 파형을 그린다. 이미 반응하기 전에 현상이 선행하고 있다.
콰직!!
검날은 도낏자루와 더불어 쥐고 있던 손가락까지 통째로 날려버렸다. 손목이 절단된 악마는 낮게 울부짖으며 바닥을 기었다.
【악마도 죽음을 두려워하나?】
가쁘게 투레질친 키사르는 주변을 살폈다.
파멸의 기사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휘하는 죽음의 기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가라앉은 시선 너머로 한기가 엄습한다.
무저갱에서 탄생한 악마에겐 너무나 낯선 감각지만, 무엇보다도 키사르로 하여금 두렵게 만드는 건 저 피조물들에 담긴 악의였다.
―···이 많은 수에. 일일이 주문을 새겨놨다고?
두터운 판갑 표면 위에 수시로 결정이 인다. 미세한 틈새조차 무저갱의 열기가 새어들지 않도록 꼼꼼하게 그려 넣은 문양이 도드라졌다.
고위 마법사조차 하나 그려도 수고스러울 작업을 휘하 하수인에게 전부 행했다니. 이해를 넘어선 집요함에 악마가 몸서리쳤다.
‘단단히 작정하고 들이닥친 놈들이다. 이건,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어!’
무저갱의 수문장이라는 자존심마저 내동댕이친다. 설령 동포들에게 영원토록 멸시받더라도 이 땅의 주인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펼친 키사르는 지면을 박찼다.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악마의 뒷모습을 보곤 이스라가 뇌까렸다.
【흐흠, 차라리 본인에게 당하는 편이 나을 것을.】
날개의 피막도 군데군데 찢어진 데다, 꼬리까지 잘린 탓에 키사르의 비행은 다소 위태로웠다.
코앞에서 도주하는 걸 보고도 순순히 검을 갈무리하는 데서 오는 위화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대체 그놈들 배후에 있던 건···’
하나의 거대한 의지가 저 게걸스러운 무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무저갱에도 사령술 학파의 악명은 자자했기에, 키사르 역시 토드의 존재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천, 수만 개의 분할된 의식을 한가운데로 그러모아 통솔하는 게 정녕 피조물이란 말인가?
‘그건 잉걸불 대의회의 군주들도 못하는 짓이라고···!’
반드시 알려야만 한다.
지상에서 무언가 불온한 것이 탄생했고, 그게 어느새 우리의 목전까지 도달했노라고.
불행히도 사명감에 찬 전령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멸망하여라!!
신체가 찢어 발겨지는 고주파가 엄습함과 동시에, 어깻죽지 어귀에 허전한 감각이 든다.
발톱을 세운 유해룡은 부식된 어깻죽지를 도려냈다. 한쪽 날개를 잃었음에도 키사르는 필사적으로 퍼덕댔지만, 아즈트룽엔이 힘껏 다리를 물어뜯었다.
이내 고개를 튼 유해룡은 지면을 향해 급격히 하강했다.
드드득!!
악마의 피가 용융을 일으키며 갈려 나간 땅바닥에 쇳물의 궤적을 남겼다. 격하게 바둥대던 키사르도 그 상태로 10분 가까이 지면에 대고 면상 사포질을 해주니 잠잠해졌다.
훌쩍 악마를 집어 든 아즈트룽엔은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확인시켜줬다. 온통 흙먼지와 용암으로 얼룩진 키사르는 간당간당하게 숨이 붙어있었다.
―이 정도면 되었느냐?
“네. 진이 다 빠졌을 테니, 대화를 나누기엔 충분한 상태로 보이네요.”
조심스레 등뼈에서 내려온 토드는 사뭇 흡족한 표정이었다.
‘상대방 홈그라운드에서 본신을 상대로 이 정도로 선전하다니. 장하다. 내 하수인들.’
유해룡은 여전히 입가에서 독기를 발산하며 경멸 어린 안광을 내비쳤다.
―구덩이 마귀! 아주 추악한 족속들이니라! 저것들관 교섭할 게 아니라, 모조리 없애야만 하노라. 순 믿지 못할 놈들이니!
아즈트룽엔이 길길이 날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드래곤들의 멸족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게 분노의 대악마들이라나.
“엄밀히 저 녀석과 교섭하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 측 첩보원에 따르면 이 녀석은 단지 문지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절대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해두었기에 차마 숨결을 토해내진 못해도, 분풀이는 못 참겠는지 아즈트룽엔은 연신 키사르의 머리통을 쥐어박아 댔다.
―교섭?
눈자위를 번뜩인 악마가 중얼거렸다.
―네놈들이, 지금···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도.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
“아직 말투가 저런 걸 보니까 기력이 남아도나 봐요.”
대번에 불퉁하던 유해룡의 안광이 밝아졌다.
―그럼 더 혹독하게 징벌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겠노라!
뼈마디만 남아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타 종족들과 격이 다른 골밀도의 소유자다. 징벌을 빙자한 구타를 거둔 뒤엔 악마도 입을 꾹 닫았다.
“무저갱의 수문장, 키사르. ···한때 지상에선 열쇠지기들의 수호신으로 떠받들어졌던 자. 맞죠?”
―토드 셰우드. 음험한 거미의 앞잡이.
악마, 혹은 옛 하위 신이 냉소를 삼켰다.
―외신들이 기어코 우리를 지상에서 내몰더니, 이젠 최후의 피난처까지 정복할 작정인가?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착오가 있으신 모양인데, 전 무저갱을 정복하러 여기까지 내려온 게 아닙니다.”
―정복이, 아니라고? 그럼 뭐하러 이렇게까지 횡포를···.
토드는 허공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분진을 비비고는, 입가를 이죽거렸다.
“직접 와보니 알겠군요. 여기야말로 진정 하수구입니다. 이보다 끔찍한 장소가 있을 수 없어요.”
유기체가 1초도 생존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인 주제에 발치에 굴러다니는 자갈이 비명을 내지르는, 기분 나쁜 곳이다.
“하수구가 없어지면, 이곳에 머무르던 온갖 해악이 지상으로 역류하겠죠. 그건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명계가 그나마 재활용 여지가 있는 정순한 영가들이 오가는 통로라면, 여긴 그야말로 끝판왕들이 오는 종말처리장이라고 해야 하나.
‘괜히 기어 나오지 말고 타는 쓰레기들만 잘 처리해주면 고마운 친구들일 텐데 말이야.’
자꾸만 딴 속셈을 품으려 드니 문제가 되는 거다.
그래서 버릇을 들이기 위해 직접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