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3
023
천막에서 빠져나온 크뤼거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토드가 그를 여유롭게 맞이했다.
“아직 정오인데, 심문이 꽤 빨리 끝났군요.”
“놈들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실토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더군요.”
“저런 놈들이 얼마나 더 있다던가요?”
카리나의 물음에 크뤼거가 손에 묻은 핏자국을 옷자락에 문댔다.
“그리 많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리공은 본대를 나누어 순차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더군요. 저들은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급습한 모양입니다.”
팔짱을 낀 토드가 대꾸했다.
“저놈들 외에도 소규모 연대 단위의 병력이 도처에 매복하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크뤼거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아무래도 그럴 테요. 이리공은 지독할 정도로 집요한 놈이니.”
“계속 이렇게 발목이 붙잡히면 결코 좋을 게 없어.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적지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그렇겐 안 되지.
상대가 진흙탕 싸움을 바란다면 굳이 수렁으로 덩달아 끌려 들어갈 필요는 없다.
가만히 생각하던 토드의 머릿속에 묘수가 떠올랐다.
“어젯밤 죽은 놈들. 어디에 모아놨습니까?”
“주둔지 밖에 임시로 옮겨놓긴 했습니다만···.”
토드가 히죽 웃었다.
“밤에 함부로 개를 풀어놓으면 안 되지요. 고스란히 갚아 줍시다.”
불길한 미소에 카리나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것들을 살려놓게? 통제할 순 있겠어?”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옆에서 에스터리츠 양이 날려버리면 됩니다. 늑대인간도 불에 취약하거든요.”
“이씨, 또 나를 부려먹으려고···!”
카리나가 방방 뛰었지만, 토드는 태연히 휘파람을 불었다.
죽은 늑대인간들이 겹겹이 쌓인 구덩이 주변에 파리 떼가 우글거렸다.
자세를 굽힌 토드는 그들 앞에서 방울을 흔들었다.
“짐승으로 영락한 자들이여. 사령술사가 명하노니, 이리 걸어 나오라.”
그러나 호령이 무색하게, 몸뚱어리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재차 시도해봐도 파리들만 요란하게 날아다닐 뿐.
뭔가 모종의 영향력이 사령술에 간섭하고 있다.
“흐음.”
토드가 기억하기로, 인게임에서 늑대인간이 되는 방법은 3가지.
보름달이 뜬 밤에 달빛미나리풀을 섭취하거나, 주술사의 사술에 걸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령술이 영향받을 요인은 없었다.
엄연히 늑대인간의 본질은 영락한 인간이니만큼, 소생에 아무 문제가 없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엔 둘 다 아니라는 뜻.
‘아마 3번째가···’
피의 세례를 받아 혈족으로 거듭나는 거였지.
극히 드문 축에 드는 사례다.
피로 부르는 호령에 반응하지 않는 건, 이미 피로 하여금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놈들은 혈족이라기엔 수준이 저열했다. 마치 양산형 싸구려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에스터리츠 양. 혹시 이리공이 흑마술 혐의로 고발당한 전적이 있습니까?”
다소 생뚱맞은 물음에 카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기론 없어.”
“공작 정도의 지위라면 무마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는 그래. 변경에 있는 제후가 물밑에서 무슨 수작질을 하는진 누구도 모르지.”
그 수작질이라는 범주가 워낙 넓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곁들여 본다면, 이리공이 성의 지하에 늑대인간을 가둬놓고 수하에게 피를 먹인다는 시나리오까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금 귀찮은 방법을 감수해야만 했다.
혀를 찬 토드가 단검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향로에 대고 쥐어 짜내며, 다시금 부른다.
“밤을 거니는 엽사들은 경계하여라. 여기 사냥감의 피에 취해 본질마저 잊은 영락자들이 있나니. 내면의 야수에게 삼켜진 짐승들이라.”
누군가 이미 선수를 쳤다면, 피로 덧씌워 가로챈다.
좀 더 강한 강제력이 필요했기에 일반적인 망자가 아닌, 구울로.
“이제 적시성의 인도하에 다시 일어나, 사령술사 토드의 명에 복종하라.”
살점에 붙어있던 파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작은 미동.
이윽고 잔해를 헤치고, 일어선다.
토드를 바라보는 놈들의 동공은 공허했다.
한때 인간이었다가, 짐승으로 영락하여,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한 것들.
【그르르끼긱-···!】
놈들이 고개를 비틀며 으르렁댔다.
상당한 양의 업을 지불했지만, 충분한 값어치를 해줄 것이다.
뒤따라온 병사들이 질겁했으나 토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크뤼거를 향해 물었다.
“크뤼거, 추가로 매복하고 있는 적병들의 위치. 포로들이 말했습니까?”
“놈들이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다른 연대의 위치는 서로 공유하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토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포로들을 여기 데려와주세요.”
구울이 된 늑대인간들. 포로들을 끌고오라는 사령술사의 주문.
맥락상 누구라도 불길한 장면을 연상할 수 있었다.
카리나가 껄끄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야··· 설마 포로들을 저것들한테 먹일 생각은 아니지?”
“허허. 에스터리츠 양. 아무리 그래도 제가 포로들을 산 채로 던져주겠습니까. 저, 그렇게까지 비인도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즉각 이스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 사령술사가 인도적이라니! 재밌는 농담이었네!】
웃는 건 이스라 뿐, 나머지는 표정이 심각했다.
토드는 억울했다.
“절대 안 죽입니다. 절차상 필요한 일이니, 데려와주세요.”
포승줄에 끌려온 포로들은 되살아난 늑대인간들을 보곤 경기를 일으켰다.
토드는 일일이 그들의 손바닥을 긋고, 머리털을 한뭉치씩 뽑아갔다.
카리나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응시하기에 토드가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이들에겐 주술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코가 좋은 녀석들이라면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되겠죠.”
과연 구울들은 피에 적신 머리카락 뭉치에 관심을 보였다.
그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카리나가 중얼거렸다.
“조금 낡은 방식이네. 오래전 마녀들이 사역마를 이렇게 부렸다고 들었는데.”
양지에서 활동해온 마법사들과 달리, 흑색 학파는 줄곧 음지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왔으니, 당연히 발전이 없을 수밖에.
토드가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향로에 태우자, 연기를 맡은 구울들이 흥분했다.
입에 피거품까지 물며 으르렁대는 놈들을 향해 사령술사가 일갈했다.
“가라! 이것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 놈들을 모조리 물어!”
놈들의 멍한 눈자위에 녹색 안광이 선명하게 타오른다.
【키리긱, 갸아아칵!!】
일제히 포효한 구울들이 숲 너머로 뛰어갔다.
낮에도 멀쩡히 활보하는 시체 야수들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토드가 중얼댔다.
“아마 오래가진 못할 겁니다. 주술로 만들어진 몸이라 부패가 더 빠를테죠.”
“그럼 금방 붕괴될텐데? 그만한 마력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겠어?”
토드가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못해도 사흘 안에 싱싱한 놈들을 잡을테니, 갈아치우면 되죠.”
지극히 사령술사다운 사고방식이었다.
이래놓고 인도적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머리를 짚은 카리나가 되물었다.
“만약에 저놈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할 가능성은.”
그는 향로를 두들겨 보였다.
“그래서 명확히 목표를 찍어뒀잖습니까. 무릇 사냥개를 부리려면 고삐를 잘 채워둬야죠.”
이리공은 도리어 자신이 풀어놓은 들개들에게 당할 것이다.
진정 사령술사의 악랄함은 상대가 안배해둔 수를 되돌려주는 데에서 비롯되니.
그가 크뤼거를 향해 고했다.
“각하께 전하세요. 진군을 멈추지 말라고. 이리공의 들개들은 신경쓸 필요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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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다비어 주는 제국의 북동부에 있다. 대부분의 면적을 울창한 숲과 드높은 산맥이 감싸는 형세였다.
덕분에 늦가을임에도 이른 서릿발이 내리는 가혹한 땅이다.
드센 환경에 걸맞게 이곳에 뿌리내린 자들은 억세고 강인한 성정을 타고났다.
그중 단연코 이리공, 디트마흐 폰 그라워볼프는 변경을 다스리는 군주다운 위압감을 풍기는 인물이었다.
어지간한 용담이 있지 않고서야 감히 눈을 부라리는 그 앞에서 혀를 놀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입을 여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제물이 더 필요합니다. 공작. 이것만으론 의식을 위한 피가 부족합니다.”
공작 앞에 선 자는 기인이었다.
짐승의 가죽을 기워 맞춘 옷차림새는 명백히 야만인들이나 입을법한 양식이었고,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허리춤에 매단 장신구들이 소란스럽게 들썩였다.
“그래서 내 봉토의 신민들을 산 채로 태워죽이라는건가? 아치발트.”
이리공의 스산한 음성에도 불구하고 아치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소작농들은 들판의 야생초와 같은 족속들입니다. 공작께서 거둬들인다 한들, 언젠가 다시 자라날테죠.”
이리공의 눈매에 광오한 기운이 서린다.
“쾨흘링의 핏값으로도 부족했나? 나는 이미 학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젠 나더러 그보다 더한 짓을 벌이라고.”
“전란의 시기에 그런 건 허물조차 못 됩니다. 공작.”
딱 잘라 말하는 태도에 이리공은 한숨을 흘렸다.
애당초 정상적 범주의 사고가 통하지 않는 놈이다.
말없이 그를 노려보던 이리공이 입을 열었다.
“네놈의 사이한 요술만 믿었다가 그 빌어먹을 성채에서 병력을 크게 잃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네놈은 어디 있었나.”
이리공의 위협에 아치발트는 입맛을 다셨다.
“하필 다른 곳에서 제물을 수습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분명 공작의 병력만으로도 승산은 압도적이었을 텐데요.”
“하지만 끼어든 놈들이 있었지. 그놈들은 어떻게 설명할테냐.”
그가 잠시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듣기론 적마법사와 망자를 부리는 자라고요.”
“대공 저하께선 분명 별도의 개입이 없을 거라 약조하셨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치발트가 대꾸하지 않자, 짐짓 이리공이 그를 몰아세웠다.
“슈테판 놈에겐 그런 협력자를 부릴 만한 여력이 없다. 이 또한 대공이 의도한 바가 아닌가?”
“그들은 예상치 못한 복병입니다. 공작. 대공께선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 분쟁이 질질 끌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잠시 적막이 이어졌다가, 아치발트가 턱을 쓰다듬었다.
“다소 이르긴 합니다만, 제례를 앞당깁시다. 보름날이 머지않았으니.”
내내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이리공이 격정적으로 반응했다.
“그 아이는 한계까지 몰렸네!”
“어찌 장담하십니까. 공작.”
이리공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대공은 가문에 내려오는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오히려 부추길 작정인가!”
“그라워볼프 가의 핏줄에 흐르는 힘은 저주가 아닙니다. 공작. 어찌 선조의 유산을 부정하려 듭니까?”
“이런, 망발을···!”
눈 깜짝할 새에 이리공은 아치발트를 향해 장검을 겨눴다.
턱밑에 칼날이 놓였음에도 기인은 태연했다.
“정 아가씨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다면, 그 굴레를 당신이 받아들이시지요.”
주술사가 뱀처럼 속삭였다.
“기질을 강하게 발현한 건 아가씨지만, 혈통에서 비롯된 힘입니다. 당신에게도 그걸 계승할 자격은 충분합니다.”
“망령된 소리다. 짐승의 꼴이 된다 한들, 전세를 뒤집는게 가당키나 한가! 이미 네놈이 풀어놓은 하수인들은 시간도 벌지 못하고 사령술사의 수족이 되어버렸다!”
아치발트가 코웃음쳤다.
“공작. 순전히 당신의 무지에서 기인한 오판입니다. 혈족의 힘은 그깟 졸개들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라이칸스로프는 결코 수백의 창칼이나 마법사의 알량한 불꽃만으로는 죽일 수 없는 불멸의 존재입니다.”
“인지를 초월하는 용력을 갖는다 한들, 시도 때도 없이 피를 갈구하는 야수로 영락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 조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계승자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계승이 이루어진다면 아가씨에게 깃든 피도 잠잠해질 겁니다. 이 책장에 담긴 힘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아치발트는 코앞에서 인피(人皮)로 만들어진 낱장을 흔들어 보였다.
여식의 병세는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아치발트가 합류한 이후에 증세가 완화된 것만은 분명했다.
“후일을 생각합시다. 공작. 켄젤슐리텐을 치기로 결단을 내린 것도 도련님과 아가씨를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이리공이 눈을 부릅 떴다.
그라워볼프.
그 저주스러운 이름.
피에 새겨진 낙인.
비록 그들의 터전은 변방에 있으나, 장차 제국에 몰아닥칠 폭풍우는 모든 곳을 휩쓸 것이다.
아무리 아둔한 자라도 이 땅에 감도는 불온한 기운을 눈치챌 정도였으니.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가 보기에 자식들은 환란을 견딜 여력이 부족했다.
아니, 이만한 재해는 누구라도 쉬이 헤쳐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면 휩쓸릴 것이 아니라, 폭풍우를 이끄는 선봉장이 되어 먼저 물어뜯는게 나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리공은 비로소 대공의 저의를 알아차렸다.
황소대공이 휘하에 초인적인 힘을 가진 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소문이다.
대공이 파견한 주술사, 아치발트 역시 거기 속하는 인물 중 하나였고.
이리공은 무거운 탄식을 흘렸다.
“···대공도 내가 계승하기를 바라는 모양이로군.”
그는 라이칸스로프의 힘을 원한다.
아치발트가 말없이 웃었다.
“빌어먹을 놈!”
이리공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오히려 검을 쥔 손은 약해졌다.
아치발트가 손끝으로 칼날을 밀어냈다.
맺힌 핏방울을 핥아먹는 모습에 이리공이 넌더리를 냈다.
“더는 산시아가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만 하네. 대가는 온전히 내가 치러야만 한다.”
“바라시는 대로.”
검을 집어넣은 공작이 탁자를 두들기자, 문밖에 있던 무관장이 들어섰다.
“뮌파흐, 담로우, 도팅하임으로 출병하게.”
강직한 인상의 무관장조차 인상을 찡그렸다.
“주군, 그곳은···.”
“아치발트가 함께할 걸세.”
속뜻을 헤아린 무관장이 고개 숙였다.
둘이 집무실을 나가는 걸 지켜보던 이리공은 눈을 감았다.
신께 용서를 바라진 않는다.
피붙이를 구할 수만 있다면 늙은 짐승의 영혼 쯤이야 값싼 대가겠지.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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