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39
039
장정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적당히 멈춰섰다.
이들의 행렬은 다친 변경백을 대신하여 크뤼거가 이끌고 있었다.
곧 크뤼거의 곁으로 크리슈토프가 다가왔다.
“···쥐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기이하군요.”
“주변에 늑대인간은 없답니까?”
“척후조가 성채 인근을 3번이나 돌았는데, 이렇다 할 조우는 없었습니다.”
성채는 수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크리슈토프가 낮게 물었다.
“정말 그 사령술사가 수작이라도 벌인 게 아닐까요.”
“······.”
침음을 삼킨 크뤼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자가 호언장담했더라도, 홀로 성채를 함락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뚫어낼 수 없는 건 매한가지겠지요. 저만한 방비라면 포위를 1년 넘게 하더라도 공략을 장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때 돌연 누군가가 성벽 위로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새하얀 백골만 남은 모습에 모두가 기겁했다.
“저건···.”
성벽 밑을 두리번거린 해골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제 머리통을 뽑아 종을 두들겼다.
땡, 땡, 땡!
크리슈토프의 사촌, 요코프가 속삭였다.
“화살을 쏴서 저지할까요?”
“아니. 대기하게.”
힘차게 종을 울린 해골은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턱뼈를 부딪치며 웃는 시늉을 했다.
기괴한 광경에 모두가 아연실색하던 차였다.
그그긍―!!
육중한 성문이 활짝 열렸다.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가 눈동자만 굴리는 사이, 돌연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슈피어슐로트 성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
성문 뒤에 선 사내를 확인한 크리슈토프가 히죽 웃었다.
“제가 뭐랬습니까.”
헛웃음을 흘린 크뤼거는 고개를 내젓곤, 고삐를 잡았다.
성내에 진입하자 하수인들을 대동한 토드가 그들을 맞이했다.
“너무 늦게 오셨군요. 기다리느라 지쳐서, 이미 제가 정리는 끝내뒀습니다.”
말에서 내린 크뤼거는 장내를 돌아보다가, 그를 향해 고개 숙였다.
“수고 많으셨소. 토드. 마지막까지 우린 당신의 신묘한 술책에 의지하는군.”
미소지은 토드가 손을 들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게 변경백의 군세는 이리공의 본거지에 무혈입성했다.
사실상 병사들이 할 일이라곤 토드의 하수인들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전리품들의 정리였다.
곳곳에서 성에 있는 물자들, 귀한 가구, 진열장의 장비들을 옮기느라 소동이 벌어졌다. 아예 초상화까지 뜯어가는 모습에 이스라가 혀를 내둘렀다.
【산 자들이 죽은 자보다 지독하군.】
“오히려 망자라면 생전에 미련이 있지 않고서야 재물에 집착할 이유가 없지요.”
【그것도 그렇군. 본인 역시 물욕에는 하등 관심 없네. 오로지 투쟁하고, 더 강한 상대와 자웅을 겨루는 데에만 주력할 뿐-!】
흉판을 두들긴 이스라가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초탈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 기사다운 마음가짐이 틀림없겠지.】
토드의 시선은 이스라가 품에 한아름 들고 있는 낡은 책들로 향했다.
“그나저나 책에 눈독을 들이고 계셨습니까? 이보다 귀중한 물건들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어허! 자네는 진정 이 서적들의 가치를 모르는군! 이건 에셴바흐 경이 지은 《괴짜기사, 파치발》! 주인공의 재치있는 입담과 정신적 성장이 인상적인 작품이라네.】
그 외에도 이스라는 한가득 쌓인 서적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 초판본에는 어떤 오류가 있었는 지까지 구구절절 읊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토드는 돌연 의문점이 들었다.
“잠깐, 이스라. 그럼 여기 있는 책들은 전부 읽어본 게 아닙니까?”
【그렇다네! 본인이 비록 생전의 기억은 잃었을지언정, 이것들을 활자 하나하나 정독했다는 건 똑똑히 기억하네!】
“이미 읽은 책들을 왜 가져 오신 겁니까?”
【독서란 무릇 수련에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과 같네! 어찌 다 읽었다 하여, 마다하겠나? 게다가 거듭하여 읽을수록, 처음에는 미처 몰랐던 감상도 느낄 수 있다네!】
이스라는 흐뭇한 시선으로 책들을 돌아봤다.
【이 정도면 3일 밤은 족히 읽을 수 있겠군!】
망자는 잠이 없다. 아무래도 매번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게 심심했던 모양이다.
토드는 실소를 참지 못했다.
하녀에게 양초 하나 갖다 달라고 부탁해야겠군.
어차피 망자가 시력이 저해될 일은 없겠지만, 안광만으론 보기 어렵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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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공이 생전에 사용했던 집무실은 변경백군의 사령부로 변모했다. 치명상을 입은 슈테판 변경백은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었고, 그를 대신하여 온갖 결재를 떠맡은 건 크뤼거였다.
그리고 전공을 고려하여 전리품을 분배하는 절차가 이뤄졌는데, 첫 번째 순서는 토드였다.
“···영애의 신병을 인도하겠다라.”
“그렇습니다.”
가만히 토드를 응시하던 크뤼거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군공은 부정할 여지가 없소. 토드.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요.”
말을 마친 크뤼거가 집무실을 돌아봤지만, 가신 중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크뤼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양피지를 읽어내렸다.
“산시아 폰 그라워볼프는 여인의 몸이므로 상속법에 따라 작위를 상속받을 수 없소. 볼모로서의 가치가 많진 않지. 이번 분쟁에서 당신의 군공을 고려하면 응당 과한 요구는 아니오.”
탁자를 두들기던 크뤼거가 뒷내용을 마저 읽었다.
“하지만 그녀가 혼약을 맺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녀의 부마에겐 멜다비어 공작령, 뵐케 주에 소속된 휘하 6개 영지, 그리고 그라워볼프 가문의 3번째 상속 자격이 부여되네.”
크뤼거의 눈에 추궁하는 빛이 어렸다.
“영애의 병력에 대해선 익히 들었네. 그럼에도 그녀에게 귀속된 명분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요소지.”
토드는 쓴웃음을 흘렸다.
“저는 그녀와 연을 맺을 생각이 추호에도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영애를 요구하는 저의가 뭔가?”
“그녀를 제자로 삼을 생각입니다.”
크뤼거가 표정을 찌푸렸다.
“제자?”
“예. 그녀에겐 사령술의 재능이 엿보이더군요. 흔치 않은 자질이라, 제가 직접 가르쳐볼 생각입니다.”
가뜩이나 하나만으로도 꺼림칙한 존재를 더 늘리겠다니. 크뤼거와 가신들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여태껏 고수해온 통념 탓에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귀속된 권리는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제가 영애의 신변을 쥐고 있으므로, 대리인 자격으로 상속 포기 서약서를 작성하면 됩니까?”
어차피 작위와 명분 따위는 토드에게 의미 없는 것들이다. 마땅한 기반이나 세력을 일구기 전에, 과도한 권리는 공격당할 여지만 제공할 뿐이다.
크뤼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의제기할 구석이 없군. 이 안에 반대하는 자가 있소?”
가신들은 함구했다. 하인리히가 도주한 이후로, 파벌의 축은 완전히 기울어졌다.
비록 크뤼거는 서자라는 약점이 있었으나, 크리슈토프의 지지 덕에 가신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더불어, 사망한 그라워볼프 공작에 대해서는 사자의 존엄을 존중하여,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장례를 치러주시길 바랍니다.”
“우린 디트마흐가 야수로 전락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오. 그래야 항후 공작령 해체와 작위 편입이 원활해지지.”
“등에 있는 털가죽의 박피 정도야 상관없을 겁니다. 생전에 있던 신체 부위가 아니니까요. 다만 전신을 박제하거나, 그걸 영지에서 전시하는 등의 조치는 지양해주시길.”
그러자 가신 중 하나가 탄식했다.
“아쉽군! 저만한 야수를 끌고 에베르호펜에서 가도행진을 벌인다면 끝내주는 광경일텐데!”
하여간 쇼와 퍼레이드에 환장하는 인간들 아니랄까봐.
“추후 장례 절차에는 프론지 성채에 계신 안돌리코 수사님을 불러주시겠습니까?”
“수도사를?”
“예. 공작의 장례뿐만 아니라, 추모 미사도 겸하여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이 터 전체가 폐하여, 원령들의 소굴이 될 겁니다.”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는지, 크뤼거는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받아들이겠네. 요구는 이것으로 끝인가?”
“옆에 보시면 양도받을 시신의 목록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크뤼거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인장을 찍었다.
쿨 거래 나쁠거 없지.
토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뤼거에게서 문서를 받아든 시종장이 내용을 낭독했다.
“사령술사 토드, 그대는 쾨흘링 분쟁에서 종군마법사로 부임하여 슈테판 폰 켄젤슐리텐 각하의 정당한 권리를 수호하였고, 쾨흘링, 뵐케, 멜다비어의 신민을 이리공의 압제로부터 해방했노라.”
가신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약 종료를 알리는 통보서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끝났다는 체감이 든다.
“사전에 약조한 대로, 변경백 각하의 대리자인 나, 크뤼거 경께선 켄젤슐리텐 변경백의 서명이 기입된 체포 면책권을 하사한다. 이것으로 제국의 권역 내에서 그대의 신분은 켄젤슐리텐 가문이 보증하며, 제국 법정이 아닌 외의 기관에서 행하는 법률적 절차를 거부할 권리가 부여된다!”
시종이 변경백의 인장으로 봉한 편지 봉투를 건넨다.
부복한 토드는 이를 공손히 받아들였다.
“또한 분쟁을 승리로 이끈 그대의 전공을 고려하여, 산시아 폰 그라워볼프 영애의 인도, 그대가 요구한 사망자 11인의 시신, 금화 100닢을 지급하며! 아군이 노획한 전리품의 1할을 주장할 권리가 제공되며, 이는 금전으로 지급된 보수와 별도로 계산한다!”
누군가가 전쟁은 사업이라 하지 않았던가.
실로 맞는 말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터전을 불사르곤, 종래엔 승자가 모든 것을 거둬가는 돈놀이다.
“귀하는 상기 통고문의 내용에 대하여 동의하는가?”
“동의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크뤼거 경을 포함하여, 그 외에 4인의 백작, 10인의 향사, 18인의 기사가 위 내용의 증인이며, 지엄하신 구주의 이름으로 언약을 준수토록 맹세한다! 이것으로 사령술사 토드의 종군 마법사 계약은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노라!”
여기서 할 일은 마쳤다.
장차 쾨흘링에서의 승전은 널리 알려지겠지.
그만큼 반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령술사의 준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들은 자연히 자신의 행보를 주목할 것이고, 망자를 일으키는 행위에 대한 멸시 어린 시선도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나를 찾는 자들도 늘어날 거야.’
막연하게 느껴졌던 자신의 사명, 학파의 재건이 점점 구체화된다.
장차 황제 자리를 두고 벌어질 싸움을 감안하면, 더욱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분란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성장을 도모한다.
이제 이곳의 일이 슬슬 마무리되어가니 다음 행선지로 나아갈 때다.
그렇게 집무실을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등 뒤에서 불러세웠다.
“사령술사.”
“크뤼거 경.”
그는 하인이나 가신도 대동하지 않았다.
“자네는 이제 곧바로 떠나는가.”
“아직 벌여놓은 실험이 있어, 그걸 마무리 짓는 대로 떠날 생각입니다.”
“실험이라면.”
“낭광병에 걸린 사자들의 부검입니다. 개인적으로 학술적 호기심이 있어서.”
“그렇군.”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여 토드가 물었다.
“추가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지요.”
주변을 돌아본 크뤼거가 낮게 속삭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여전히 내 입지는 불안정하네.”
엄밀히 변경백은 후계자에 대해 공언한 바 없다. 하인리히가 달아나고, 때마침 그 자리를 크뤼거가 꿰찼을 뿐.
여전히 상속 순위는 변경백의 동생 하인리히, 그다음이 서자인 크뤼거다.
“가신들 가운데 여전히 하인리히를 추종하는 자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가 서늘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나는 내 자리가 공고해졌으면 하네.”
아, 친족살해. 이 세상의 유구한 전통놀이지.
다름아닌 크뤼거가 제의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선 제시요.
“계약은 끝났습니다. 크뤼거 경.”
“이건 내가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하는 건일세.”
“흐음. 제가 비록 여러 일을 겸하긴 합니다만, 청부업은···.”
“그자는 분쟁이 마무리되면 나와 더불어 그대를 신앙교리성에 흑마술 혐의로 고발할 준비를 하고 있네.”
“제겐 이미 면책권이 있음에도요?”
“하인리히는 교회 쪽에 연줄이 닿아있지. 설령 처벌은 받지 못하더라도, 귀찮은 법정 공방이 이어질걸세.”
발목 잡히는 건 사절인데.
“굳이 살려둘 이유가 하등 없네.”
“흐음, 그래도 썩 내키진 않군요.”
크뤼거는 자신의 품에서 금색 실에 쌓인 물건을 꺼내 들었다.
“자네가 흑마법 유물들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익히 들었네. 이것들은 야영지에서 발견된 서신들일세. 아치발트가 대공의 수하들과 주고받은 내용으로 추측하고 있지.”
대공의 수하들. 서책을 가진 놈들과 연관된 단서다.
당시에 상황이 급박해서 토드와 망자들은 야영지를 들쑤셔놓고 떠났는데, 크뤼거는 그곳을 꼼꼼히 수색한 모양이었다.
“비록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암호로 적혀있었네만, 또 모르지. 사령술사라면 능히 알아낼지도.”
복잡한 도형과 문양으로 이뤄진 문장들.
어렵게 생각되진 않았다. 어차피 흑마법사 놈들 중에 하나만 건져서 일으켜도 알아서 실토할 테니.
“이건 선수금일세.”
대범하게 서신을 넘기는 태도에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추후 제가 떠난들, 그와 마주치리란 보장도 없잖습니까.”
“척후에 따르면 하인리히는 꽤 멀리까지 달아났다가,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회군하는 중이라 하더군. 그들 사이에 심어놓은 길잡이가 내 명령대로 인도할걸세.”
“그럼 북부에서 내려오는 대로로 그를 이끌어주시지요.”
크뤼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엿새 안에 마주치게 될 걸세. 자네에게 준 면책권이 누구 손에서 비롯된 건지 명심하게나.”
토드는 턱을 쓰다듬었다.
“생포해야 합니까? 아니면 몸뚱어리만 보내드릴까요.”
크뤼거가 짤막하게 답했다.
“어차피 자네에겐 어느 쪽이나 별 상관없지 않나?”
그건 맞지.
사령술사가 키득거렸다.
“그의 사망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을 텐데요.”
“사유는 이쪽에서 알아서 만들겠네. 가령 하인리히는 전장에서 불명예스럽게 패퇴하다가, 매복하던 이리공의 잔당에게 휘말려 전사했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그럴싸하군요.”
아직 전황이 수습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다. 게다가 으슥한 오솔길이라면, 마땅히 목격자가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지.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사령술사가 미소 지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차기 변경백 각하.”
크뤼거는 말없이 토드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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