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43
043
마드로는 피로 얼룩진 갑판을 돌아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나저나 배를 몰 형편이 될지 모르겠어.”
선장은 죽었고, 팔이 뽑혀 절명한 작자가 갑판장이라고 한다. 그 외에 해적 떨거지들은 무기를 압수당한 채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살려내면 편하게 갈 순 있을 텐데···.’
일단 지금 사령술을 사용하는 건 보류.
죽은 자들을 일으키면 저 주술사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장담할 수 없었다.
“쇠렌 씨, 혹시 배도 몰아보셨습니까?”
토드의 물음에 쇠렌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젠장, 날 무슨 만능으로 아쇼? 뗏목은 끌어봤어도 이만한 배를 몰라니.”
돌연 심상치 않은 소리와 더불어 시퍼런 바닷물이 배의 측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묶어둔 밧줄이 튕겨 나가고, 엉겁결에 서 있던 이들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풍덩.
배가 드럼통 세탁기에 들어간 것처럼 날뛰어댔다. 눈앞이 번쩍일 때마다 사람이 한 명씩 사라지니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승객 중 하나가 비명을 터뜨렸다.
“신께서 분노하신 게 틀림없어! 우린 여기서 다 죽을 운명인 거야!”
겨우 기둥을 부여잡고 있던 토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죽어? 이제 겨우 기반을 다지고, 기껏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익사 엔딩이라니.
절대 그럴 순 없지. 아직도 즐길 컨텐츠가 한가득 쌓여 있는데!
사령술사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는 흠뻑 젖은 쇠렌을 붙잡아 일으켰다.
“뗏목이라도 몰아봤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가서 키를 잡으세요!”
“시발, 어째 어딜 가도 편안하게 가는 법이 없나.”
네 발로 겨우 기어오른 쇠렌이 키를 잡았다.
토드가 좌중을 돌아보며 외쳤다.
“이대로 꼼짝없이 물귀신이나 될 겁니까?! 조금이라도 항해에 익숙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그제야 풍랑에 혼비백산하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선체가 요동치는 탓에 한 발짝 내딛기도 쉽지 않았는데, 비바람에 말소리도 자꾸 묻힌다.
토드는 우물대는 해적들을 향해 똑똑히 일갈했다.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벌이려다간, 바로 던져버릴 겁니다. 내 말 명심하세요.”
그의 뒤에는 마드로가 팔짱을 낀 채로 거닐고 있었다. 아직도 사지가 뽑혀나가는 광경이 눈에 선했는지, 해적들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위치로 가서 할 일이나 하세요.”
그들은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에트 씨, 승객 중에 힘쓸 수 있는 사람은 모아두고, 그 외에 부상자나 약자는 선실로 옮겨주세요.”
“알겠네!”
곳곳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이어졌다. 여전히 어설프긴 했어도 나름 체계가 잡히는 모습에 마드로가 흥미로운 미소를 흘렸다.
“밧줄 묶고, 땡겨!”
장정 너덧이 달라붙어 힘을 줘봐도 바람이 거센 탓에 자꾸만 도르래가 바닥에 떨어진다.
“비켜들 보시게.”
마드로는 그들을 밀어내고는 홀로 줄을 부여잡았다.
“흡!”
외마디 기합과 더불어 단번에 줄이 치솟는다. 활짝 펼쳐진 돛이 세차게 펄럭였다.
기둥에 단단히 줄을 결박해둔 마드로는 태연히 상자에 걸터앉았다.
“다들 꽉 붙들어 매라고. 떠내려가기 싫으면 말이야.”
그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허약한 놈들까지 일일이 챙겨줄 순 없는 노릇이니.
묵직한 오크통들도 바닥을 굴러다니는 마당에, 마드로의 발치에 무언가가 부딪쳤다.
“오.”
술병이었다. 비록 해초 줄기가 좀 엉켜있긴 했어도, 문제될 건 없었다.
마개를 입으로 뜯은 마드로는 병나발을 불며 흥얼거렸다.
“요호, 젊어서 마시세. 언젠가 뒤질 몸. 뒤질 때까지 즐기세.”
“아아악!!”
또 한 명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다.
비명과 소금기 가득한 바람은 스칼바냐르 놈에겐 짭짤한 안주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키를 부여잡은 쇠렌은 좌불안석이었다.
“근데 이거, 맞게 가는 거 맞는 거요?!”
그를 보좌하는 피에트가 피로 얼룩진 지도 쪼가리를 부여잡고 외쳤다.
“일단 해도에 따르면 위쪽 지류를 타야 하네!”
“하, 옘병! 앞에 보이는 게 있어야 뭘 보고 찾아가든가 하지!”
옥신각신하는 둘을 바라보면서 토드는 여전히 고민했다.
‘어차피 바닷물에 빠져 죽나, 망자들을 보고 열 받은 주술사한테 살해당하나, 매한가지 아닌가?’
그래 봤자 지금 와서 망자들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이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해안선을 훑으며 토드가 미간을 좁혔다.
‘여기 실어놓은 화물이 아깝긴 해도,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일행이라도 건져서 가면 되겠어.’
잔해의 몸부림을 사용한다면 뼈와 살점을 엮어 인간 뗏목이라도 만들 수 있다. 여기 있는 모두를 태우진 못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침몰을 가정한 최악의 상황.
‘아직 배는 충분히 버틸 만해.’
“모두 꽉 잡으시오!”
공중에 떠오른 선체가 파도 위를 넘나들고, 철썩대는 물보라에 비명이 쏟아진다. 또 불운한 누군가 쓸려갔는진 모른다. 변덕스러운 바다가 부디 자신만은 끌고 가지 않기를 간절히 빌 수밖에 없다.
“계속 갑시다!”
어느 때보다 토드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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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미숙한 항해술로 극복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끝내 배는 해안가에 좌초되었지만, 그래도 목숨과 화물을 건졌다는 게 어디인가?
간밤의 사투가 적지 않은 심력을 소모했는지,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기진맥진했다.
가장 먼저 앞다투어 배에서 내린 건 다름 아닌 죽음의 기사였다.
【오오, 마침내 육지로다! 이 어찌 감사한 일인가! 마땅히 기사라면 견고한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일평생 살아가야 하는 법! 항해는 수병 물개들이나 하라 전해라!】
무릎까지 꿇은 채로 감격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선실에서 내내 앓는 소리만 흘리다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돌변해 재잘대다니.
건틀렛을 불끈 거머쥔 이스라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앞으로는 평생 어머니 대지에 발붙이며 살아가리!】
전형적인 연극투의 말씨였기에, 보는 토드가 다 민망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드로가 뒤에서 낄낄댔다.
“재밌는 사람일세. 그쪽 일행이오?”
일단 토드는 발뺌했다.
“글쎄요.”
그나마 난파선에서 건질 만한 화물을 건져내는데 모두가 매달렸다.
해안에 다다를 즈음 정박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에 뒤집힌 선체의 하부는 용골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모래사장에 상자를 쌓은 피에트가 고개를 내저었다.
“다행히 짐은 멀쩡하네. 조금 젖긴 했어도.”
상자 위에 걸터앉은 채로 쇠렌이 툴툴댔다.
“우리 짐을 끌어줄 노새랑 말이 죄다 떠내려갔다는 게 문제요.”
안타깝게도 화물칸에 묶여 있던 짐승들은 풍랑을 견디지 못했다.
슬쩍 눈치를 살피던 그가 토드에게 넌지시 속삭였다.
“···생각해보니 그, 저기 송장들도 있겠다. 저놈들더러 맡기면 되는 거 아뇨?”
“쇠렌 씨. 망자들은 아무 때나 부려먹을 수 있는 노예들이 아닙니다.”
“쩝. 뭔 기준인진 모르겠다만.”
코를 훔친 쇠렌은 반대편에 모인 이들을 가리켰다.
“어차피 저쪽은 연안을 따라 다음 부두까지 걸어서 간다더군.”
나머지 승객들은 해적들을 포승줄에 묶어놓고 이동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요른카리는 내륙 쪽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게다가 티르핑 형님의 고향도 위쪽에 있소.”
“뭐, 갈 길이 다르다면야. 여기서 갈라서야지요. 가까운 마을은 얼마쯤 걸립니까?”
“흠, 여긴 물이 얼지 않은 거로 보아 아직 외곽 해안일 텐데, 아마 닷새는 걸어야 할 거요. 여긴 제국과 달리, 도로가 깔린 것도 아니라서 더 걸릴지도 모르지.”
“여기서 미적댈 틈이 없군요.”
토드는 여전히 모래사장에서 술병을 찾아 헤매는 마드로를 곁눈질했다.
저자의 속셈은 뭘까.
무엇을 위해 스칼바냐르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것인지.
여태 무슨 일을 겪은 지도.
‘레벨 79의 주술사와 동행한다면 무서울 게 없겠지.’
그만큼 위험 부담도 존재했다.
저만한 강자를 억제할 만한 수단이 마땅히 없다. 혹시 모를 변덕에 일행이 전멸할 수도 있다.
“산시아, 우선 지금은 우리의 과업을 마무리 지을까요.”
토드의 부름에 산시아가 방울을 받아들었다.
돌연 삽을 들고 땅을 파는 모습에 다른 승객들도 의아해했다.
“그쪽은 뭐 하시는 거요?”
“죽은 자들을 매장해주려고 합니다. 제가 업으로 지고 사는 일인지라, 저렇게 해안에다 내버려 두기엔 마음이 쓰이는군요.”
그가 혀를 찼다.
“우릴 팔아넘기려고 했던 놈들인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겠나.”
토드는 어깨를 으쓱이곤 묵묵히 작업에 전념했다. 가만히 토드와 산시아를 지켜보던 사내가 짐가방을 내밀었다.
“아무튼, 어젯밤 그쪽 덕분에 살았소. 이건 우리가 싣고 가던 음식들인데, 가는 길에 요기나 때우쇼.”
가방에는 치즈와 과일 따위의 식자재들이 들어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그쪽은 내륙으로 간다고 했나? 행운을 빌지.”
“여신께서 당신들의 여정을 굽어살피기를.”
여신? 다소 낯선 대목에 고개를 기울이던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떠나갔다.
산시아는 모래 위에 죽은 자들의 유품을 내려놓았다.
“스승님, 이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대부분이 구닥다리 잡동사니인 가운데, 토드의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저걸 제외하고 나머진 같이 묻어줍시다.”
“네.”
향로를 좌우로 흔들고, 죽은 해적들에 대한 짤막한 추도문을 읊는 것으로 장례는 끝났다. 아무래도 생애가 그리 떳떳하진 않았는지 돌아오는 눈물의 업이 많진 않았다.
토드는 가만히 해적들이 묻힌 자리를 응시했다.
슬며시 손바닥을 긋고서, 마력을 입혀 떨군다. 사령술사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었다.
‘매장해줬다고 순순히 잠들만한 녀석들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보통 해안가에 선박이 좌초하면 하다못해 갈매기라도 고개를 내밀기 마련인데, 스산한 바닷바람만이 찢어진 돛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니라면 너무 짙은 살인의 죄업이 그들의 영혼을 어딘가 묶어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토드는 미소를 흘렸다.
산시아와 더불어 일행이 있던 자리로 돌아와 보니, 마드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상적인 모습이었네. 어제 죽었다 하더라도, 바닷물에 적신 시체를 묻어주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
“이게 제 본분이니까요.”
토드의 대답에 마드로가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사제이신가?”
“그건 아닙니다.”
“흠, 보통 그런 고행을 자처하는 작자들의 동기는 신앙심이던데. 하여간 사자의 명예를 존중해주는 인품이라니, 요즘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고결함이시구려.”
그는 토드를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부디 그 마음을 계속 견지하길.”
이런 소리를 코앞에서 듣고 있자니, 조금 양심이 찔린다.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진 몰라도, 이쪽은 순전히 사령술사의 배경 설정에 따르고 있을 뿐인데.
어쨌거나 좋은 인상을 남겼다면, 그걸로 괜찮은 거겠지.
“···흠흠. 우리 측에 용건이 있으십니까?”
“아, 딴소리해서 미안하오. 듣자 하니 요른카리로 간다 들었네만.”
마드로가 힐끗 주변을 돌아봤다.
“보아하니 날 제외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일행인가 보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제국에서 전사하신 분의 유품을 전해드리고자 일단 동행하는 길입니다.”
“허어, 그렇군.”
일행을 헤아리던 마드로는 지저분한 머리칼을 긁적였다.
“괜찮다면 내가 동행해도 되겠나? 마침 나도 같은 곳으로 가는데, 적적하게 가기보단 길동무들이 있으면 낫지 않겠나 싶어서이.”
자연히 일행의 시선은 토드에게 쏠렸다.
‘이를 어쩐다.’
고민하던 토드는 산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그리 확신이 없어 보였다.
마드로가 보유한 업은 놀랍도록 반반이었다.
악인인지, 호인인지, 이렇게 판단하기 까다로운 인간도 드물었다.
다만 토드는 산시아의 손에 들린 권총을 살폈다.
해적들의 유품 중 유일하게 챙겨온 물건이었다. 안에 든 총알은 4발.
‘흠······.’
가까이 두기엔 많이 부담스러운 상대지만, 이대로 헤어지기엔 궁금한 게 적지 않았다.
왜 레벨은 그 모양인지.
여태껏 어디서 살았는지.
자신과 별개로 빙의된 건지도.
거기에 사령술사로서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망자로 살려낼 수 있나?’
적어도 현실이 된 세상에서 레벨 79라고 불사를 장담해주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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