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48
048
토드는 슬그머니 일행을 뒤로 물렸다.
“무덤의 주인은 저와 제 기사가 처치했습니다.”
“···단둘이 쉽진 않았을 텐데.”
“그럭저럭 운이 좋았죠.”
마드로가 허탈하게 웃었다.
“운?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한 것 같지 않나.”
“물론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일으킨 마드로는 묵묵히 토드를 응시했다.
“그랬군. 조력자들이 좀 많아 보인다만.”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방에 망자들이 가득했다. 지하의 한기와 더불어 손에 낀 반지로부터 서늘한 감각이 피어오른다.
“여기서 날 죽일 작정인가? 장의사.”
“꼭 그렇진 않습니다. 저는 가급적 당신을 죽이고 싶진 않습니다.”
눈앞의 상대는 자신이 키운 주술사 캐릭터, 오드람이다. 스킬 트리까지 고스란히 같을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거리에서 자신을 죽일 만한 기술들은 차고도 넘친다.
“나 또한 마찬가지네.”
하지만 이렇게 좁은 지형, 그것도 지하에서 주술사가 활용할 수 있는 스킬들은 많지 않다.
우선 천둥 토템을 떨굴 기미가 보이면 즉시 천장을 무너뜨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주술사의 시체를 활용하여 속박.
“당신에 대해 확신이 제대로 서질 않아서요. 어떤 의도를 품고 요른카리로 향하는지도.”
“흠, 그렇게 내가 의심됐다면 굳이 동행할 필요가 있었나?”
“저는 당신에게 호기심이 있거든요.”
짐짓 마드로가 정색했다.
“나는 사내의 관심이 부담스럽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쇠렌이 머리를 긁적거리는 가운데, 마드로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내가 요른카리로 향하는 게 그리도 궁금한가?”
“예.”
“별거 없네. 난 요른카리에서 제례를 올릴 생각이라네.”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례라. 설마 지맥을 틀어막을 셈입니까?”
“허, 그걸 자네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여전히 마력은 충분하다. 더불어 상대도 기력을 회복하곤 있지만, 그 사이 시체 주술사 3호기가 준비해둔 저주가 10개에 도달했다.
마드로의 얼굴엔 조금 놀랐다는 기색만 보일 뿐, 아직 달려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안구의 움직임이나 맥박에 크게 변화가 없다.
“예. 어쩌다 보니 다른 주술사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거기서 예전에 지맥을 봉한 대제례가 행해지지 않았습니까.”
마드로가 턱을 쓰다듬었다.
“나는 딱히 그쪽엔 흥미가 없네. 나는 단지 그 옆에다 말뚝을 하나 추가할 생각이지. 이 세상에 주술의 재능이 꽃피지 못하도록.”
초연한 말투와 달리,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당신도 주술사 아닙니까? 왜···.”
“이번엔 내가 되묻고 싶군. 자네는 왜 기존에 행해진 대제례에 관심을 가지나? 내가 알기로 그곳은 사령술의 맥을 막은 곳이라네.”
“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드로의 말문이 막혔다. 재차 주변을 돌아보던 그가 입을 더듬거리다가, 작게 감탄했다.
“놀라셨습니까?”
“조금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미구현 상태로만 있다가, 이제와서 나타나다니.”
‘주술사 오드람’은 2회차 캐릭터였고, 사령술사 클래스는 5회차에 와서야 개방되었다.
‘이후 회차에 대해서 모르는 건 확실해 보이네.’
미간을 좁히고 있던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필시 자네가 흑마법사라고 생각했네. 이 시대에 죽은 자들을 부려 장난질을 치는 놈들이라 봐야, 오래된 장서나 골동품들을 모으는 음흉한 녀석들뿐이거든.”
“그렇지 않아도 저는 그런 놈들을 쫓고 있던 참입니다.”
마드로는 연신 턱을 문질렀다.
사령술사의 출현에 그도 조금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저는 요른카리에 자리 잡은 사령술의 맥을 뿌리 뽑을 생각입니다.”
토드의 선언에 마드로가 히죽 웃었다.
“반대로 나는 요른카리에 주술의 맥을 못 박을 생각이라네.”
잠긴 문을 열어젖히려는 자와 문을 닫으려는 자.
“비록 우리의 지향점은 서로 반대지만, 목적지는 같구먼.”
“그렇군요. 이해가 맞아떨어진다니 다행입니다. 다만 아직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보증이 부족합니다.”
마드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보증이라니.”
“당신이 섬기는 신, 후단 앞에서 피로 맹세합시다.”
“그렇게까지 해둘 필요가 있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사소한 변덕만으로도 우리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이 응하지 않겠다면···”
여기서 순순히 내보내지 않겠다.
녹색 눈동자가 사이하게 이글거린다.
머리를 긁적이던 마드로는 입맛을 다셨다.
“거, 의심이 엄청 많구먼. 하긴, 상호 간에 신뢰가 쌓이기엔 조금 이르지. 신중한 것도 나쁘진 않아.”
투덜대긴 했어도, 마드로는 소매를 걷었다.
“내용은?”
“간단하게 합시다. 우리의 목적은 각각 요른카리의 맥을 추가하고, 제거하는 것. 그걸 달성할 때까진 상호 간에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한다. 또한 동행하는 일행에 대해서도.”
“맹세는 간단할수록 강력하지. 이걸 자네가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겠다만···.”
토드가 손바닥을 그어 피를 뿌리자, 마드로 역시 그 위로 자신의 핏방울을 덮었다.
까악.
지하에 울려 퍼지는 까마귀 울음소리.
토드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전에 느껴본 바 있어서, 괜히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머니도 그렇고, 솔마르에, 후단까지.
왜 초월적인 존재들이 자신에게 저리 관심을 기울이는 걸까.
토드로선 두려울 따름이었다.
맹세가 완료되고, 마드로가 자신의 손바닥을 천으로 감쌌다.
“자, 그럼 됐나? 이제 저 친구들더러 무기 좀 거둬달라 해주게. 보다 보니 소름이 좀 끼쳐서 말이야.”
토드가 손을 까딱이자, 대기하고 있던 망자들이 일제히 걸어 나왔다.
“장관이군! 저들은 앞으로 계속 끌고 다닐 건가?”
“아니요. 이들은 이곳의 정리를 마친 뒤에 지상에 매장해줄 겁니다.”
“그런가.”
이젠 굳이 마드로 앞에서 눈치를 볼 필요 없으니, 거리낌 없이 토드는 망자들을 동원하여 고분을 샅샅이 정리했다.
100명이 부산스레 움직여 흩어진 뼈 무더기들을 정성스레 포장하고, 부장품들을 처분한다.
토드가 고분에서 건져낸 것은 서리 반지와 의식용 단검을 비롯하여 주술사들이 가지고 있던 잡다한 약초들이었다.
“이런 건 분명 팔아넘기면 은화 몇 푼은 받을 수 있다니깐.”
그 중에 쇠렌은 낡은 토기들을 몇 점 챙겼는데, 부득불 고고학적 가치가 있을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그 외에 고대에나 쓰였을 동전, 녹슨 무기, 갑옷 따위는 들고 가기에 여의치 않아 묻고 왔다.
‘어차피 수중에 금화는 아직 넉넉한데, 이젠 이런 잡템들까지 챙기기엔 좀 그렇지.’
토드는 망자들을 부려 토굴의 입구를 완전히 봉하고, 그들이 자진해서 묫자리를 파도록 권유했다.
그러자 해골 전사들은 저들끼리 볕이 좋은 자리를 찾아 두리번대고, 의욕적으로 삽을 퍼냈다.
토드는 산시아와 더불어 전사들의 주변을 겉돌면서 끊임없이 향연을 올리고, 방울을 흔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망자가 땅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토드는 향로를 거뒀다.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 눈물의 업은 이제 보람을 넘어서 희열까지 느껴진다.
“수고했습니다. 산시아.”
“예, 스승님.”
고요해진 무덤가를 돌아보며 산시아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또 영혼들이 편안히 잠들겠네요.”
“그렇지요. 한결 몸이 편해진 기분도 들지 않습니까?”
“조금은요.”
여전히 산시아가 축적한 업은 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차차 균형은 맞추면 될 일이다.
그녀를 헤아리던 토드가 작게 감탄했다.
“당신에게 경지의 상승이 머지않았군요.”
“경지요?”
“그간 행한 업을 진상하여, 어머니로부터 축복을 받는 겁니다. 전에 준 적 있는 구결은 읽었습니까?”
산시아는 반쯤 늑대인간인 덕에, 서책의 필사본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예.”
어째서인지 토드는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흠흠, 준비는 되었으니, 때가 되면 저에게 말씀을 해주시길. 그에 관해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산시아를 어느 유형의 사령술사로 키워야 할진 미정이었다.
일단 첫 선택지가 어떻게 제시될지도 의문이고,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달리 동료 캐릭터는 어떤 메커니즘이 적용되는 지도 의문이었고.
‘산시아가 하수인들을 대규모로 부리는 거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데···.’
효율과 적성을 고려하여 선택을 잘 유도해줘야겠지.
그렇게 마을로 돌아오니 노파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까무러쳤다.
“우, 우린 틀림없이 당신들이 죽은 줄만 알았네.”
【고분 지하에 있던 악한 존재는 우리가 멸하였네. 다시는 죽은 자들이 일어나 마을을 공격하는 일이 없을 걸세.】
“우리네 사람들은···.”
죽음의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곱씹던 노파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이스라의 건틀렛을 부여잡았다.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덕분에 우린 여기서 살아갈 수 있게 됐구려.”
그녀가 손짓하자 여인들이 바구니를 들고 온다. 산딸기나 호밀빵, 달걀 따위가 담겨 있었다. 황급히 이스라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사례를 바라고 행한 일도 아니네!】
“부디 받아주시게. 목숨을 걸고 다녀왔는데, 이만한 사례마저 못 하면 이 늙은이 마음이 편칠 않으니.”
노파의 간곡한 부탁에 이스라는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흠흠···. 그대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겠네.】
“기사님에게도 도나르께서 굽어살피시길.”
과연 북부의 전사신이 이방으로부터 온 기사에게 축복을 내릴진 의문이다. 하물며 피가 식은 죽은 자에게.
문득 마드로는 꼬마 영매에게 뼈로 엮은 토템을 건넸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토템을 쳐다보던 꼬마는 흔들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히죽 웃었다.
텅 빈 동공을 들여다보던 마드로는 다소 의례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을을 등지자마자 그의 안색은 곧바로 굳었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토드는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다음에 들리는 곳에선 모피 장갑이라도 껴야겠어.’
가뜩이나 손이 시린데, 서리 반지까지 끼우니 한기가 배가되는 느낌이다.
점점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뺨을 스치는 바람이 예리해지는 거 같지 않나.
떨어지는 기온과 비례해 주변의 풍경도 사뭇 웅장해진다.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은 하늘과 지상을 가르는 솟대이며, 저 너머에 험준한 산맥들은 세상의 지붕처럼 치솟아있다.
사진으로나 봐왔던 풍경 속을 직접 거닐며 토드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슬 젖은 공기가 제법 차다.
망토 자락을 추스른 토드는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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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수사는 손을 떨었다.
거머쥔 묵주를 하염없이 매만지면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을 살피느라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언젠가 예정된 만남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자신을 심판관이라 소개한 사내는 안돌리코에게 사령술사에 대해 캐물었고, 그는 자신이 목격한 바를 낱낱이 고했다.
수십의 시체들이 일거에 일어났다거나, 장례 절차를 신경 썼다는 증언에도 심판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돌리코가 구축의 제례를 올렸음에도 사령술사가 별다른 해를 입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그가 손을 들었다.
“광륜표에 빛이 어렸었다고.”
수사가 가슴팍을 두들기며 하소연했다.
“그렇소! 내 신앙엔 한 치 의심이 없었다오! 그럼에도 어찌 그 불결한 자를 구주께서 벌하지 않으신 거요?”
그는 직접 자신이 매고 있던 광륜표를 건넸다. 심판관은 가만히 손바닥에 들린 교회의 표상을 들여봤다.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할 작정인지, 수사가 목청을 높였다.
“그놈은 어찌 피조물이 천상의 저의를 짐작할 수 있겠냐며, 뜻하신 대로 이루어지리란 말까지 지껄였소!”
심판관이 조용히 한숨을 흘렸다.
“그래서, 그자가 어디로 향했다고 하던가?”
“나도 잘 모르겠다만, 듣기론 스칼바냐르로 향한다고 들었소이다.”
“그런가.”
심판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구주에 대한 신앙을 의심해본 적 없―”
빛이 번뜩인다.
목을 꿰뚫은 백색 칼날 탓에, 수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었다.
심판관은 수사를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의심이 없긴.”
칼자루를 휘어잡자 수사의 목이 바닥에 뒹굴고, 몸은 낡은 침대 위로 기울었다.
우당탕!
심판관은 선반에 놓인 아마포로 칼날을 닦았다.
“안돌리코 수사. 나는 거룩한 교회가 심판관에게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노라. 그대는 흑마술 행위를 방조한 걸로도 모자라, 이를 행하는 마법사에게 동조하고, 주의 신성을 모독하였다.”
새하얀 칼날 위로 새겨진 황금 무늬를 따라 넘실거리는 불꽃이 안돌리코의 낡은 숙소를 휘감았다.
“이에 따라 심판관 마르커스는 죄인 안돌리코에 대하여 파문과 사형을 동시에 집행하였나니. 이 또한 구주께서 바라시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노라.”
영원의 성화가 꺼진 것은 극비 사항.
그 뒤로 강력한 성유물이나 대주교 정도의 인물이 아닌 이상, 평신도들이나 사제들은 악령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세를 상실하고 말았다.
신앙 교리성을 비롯해 대외 전선의 선봉을 맡는 심판관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자칫 교단 뿐만 아니라, 신민들의 동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기에 중앙 교구는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
분란의 싹은 틔우기 전에 밟아놔야 하는 게 마땅한 도리.
거기에 어떠한 의심도 없다.
홀연히 말 위에 올라탄 심판관은 망토를 내렸다.
말머리는 북쪽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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