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50
050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일행은 다시 여관에 모였다. 쇠렌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소. 그놈들이 나까지만 받는다더군.”
“이 사람아,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인가?”
피에트의 핀잔에 쇠렌은 황급히 에일을 비웠다.
“영감, 잘 생각해보쇼. 원래 그쪽은 지금이 한창 장사할 때라니깐? 성업할 시간에 짐이나 싸고 있다니, 이상하지 않소?”
여관 안에는 토드 일행과 주인장을 제외하곤 사람이 없었다.
쇠렌이 주변을 돌아보곤 목소리를 낮췄다.
“뭔가 도시 전체에서 요상한 내가 나. 영감은 오늘 돌아다니면서 눈치 못 챘소?”
그러자 골똘히 생각해보던 피에트도 소곤거렸다.
“그러고 보니, 날이 저무는데 도시를 나가려다 제지당하는 행렬이 꽤 있었네. 최근 외부 동향이 흉흉해서 야간 통행을 일체 금지한다고 했음에도, 계속 열어달라고 실랑이를 벌였지.”
영적인 기운을 읽지 못하더라도, 불온한 낌새를 감지하는 건 여러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어째 거래소에도 물건 팔려는 작자들보다 이상하게 구걸하는 사람들만 많고···.”
분통을 터뜨린 쇠렌이 얼굴을 감싸쥔다.
“이런, 젠장. 이미 여길 빠져나가긴 글러 먹었구만.”
“성문을 통제하고 있는데, 창부들은 어떻게 도시를 빠져나간답니까?”
“딴 거 있겠소. 원래 그놈들이야 뒤가 구리니 향시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놓지. 보통 땅굴을 파거나 할 텐데, 여긴 여의치 않으니 아마 하수로에 별도로 통로를 만들어놨을 거요.”
일단 사창가 쪽에 비밀 통로의 가능성. 확인해뒀다.
토드를 지켜보던 쇠렌이 물었다.
“계획이 뭐요?”
“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농성을 합시다. 전에 토굴에서 챙겨온 사슬 조끼는 입고 있죠?”
“두말하면 잔소리지.”
“원래라면 마드로 씨가 합류했어야 했는데, 소식이 없군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별이 없다면 정오에 도시를 즉시 떠납시다.”
“젠장, 그 양반도 눈치껏 튄 거 아뇨?”
글쎄. 레벨 79의 주술사라면 여기 성에 있는 모두가 달려들어도 홀로 감당할 만한 전력이다.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친우분과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 모양이죠.”
“그렇게 수다스러운 사람 같진 않아 보였는데 ···.”
쾅-!!
밖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조용하던 에다리크의 밤거리가 점점 소음에 휩싸인다.
창문 너머 새어들어오는 주황색 불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결국 불안감을 견디다 못한 주인장이 여관을 박차고 나가더니, 하얘진 얼굴로 돌아왔다.
“소, 손님들. 방 안에 계시지요. 뭔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경비대에···”
토드가 그를 만류했다.
“아마 여기 골목에서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지금 나가셨다간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말터의 가게에 불이 붙었소. 사,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밖에서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스칼바냐르는 우리의 땅이다! 외지인들을 몰아내고, 자유를 되찾자!
―동포들아! 우린 가축이 아닌, 전사들의 후예다! 제국 놈들을 때려죽여라!
토드는 계속 딸꾹질을 해대는 주인장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주인장.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밖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에일 한 잔 드시지요.”
그의 권유에 탁자에 놓여있던 잔을 비운 주인장이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여태 이랬던 적이 없었는데. 비록 북부인들이 살가운 이웃은 아니더라도, 나름···.”
창밖을 살펴보니 도시 곳곳에서 연기가 솟구친다. 특히 시장 쪽에서 번진 불길이 뻗어가는 가운데, 폭도 무리로 보이는 이들이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들은 제국풍으로 지어진 건물에만 집중적으로 불을 놓고 있었다.
곧 그들이 여관 앞에 도달했다.
“이 수탈자들! 저 건물을 보라! 저게 바로 스칼바냐르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착취의 표상이다!”
그러자 여관주인이 허탈하게 웃었다.
“수탈은 무슨. 시청에서 임대료 빌려서 지은 여관인데.”
“불태워라!”
그들을 예의주시하던 토드가 나직이 외쳤다.
“여러분, 물러나시지요.”
느닷없이 검은 망토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오니, 폭도들도 주춤댔다.
토드의 행색을 훑어보던 무리의 지도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저는 장의사입니다.”
지도자의 표정이 구겨진다.
“장의사라고?”
“예. 여긴 제가 묵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부디 이곳은 넘어가시지요.”
고개를 기울인 지도자가 이리저리 토드를 훑어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순 미친놈일세.”
거침없이 걸어온 지도자가 토드의 낯을 들여다봤다.
“북부 말이 익숙해서 몰랐는데, 너. 제국 놈이잖나. 장의사라고?”
토드 역시 그의 눈동자를 마주 봤다.
“그럼 이 건물을 불태운 뒤, 마지막에 널 죽여야겠군. 그래야 시체들이라도 땅에 묻어줄 테니.”
처음 에다리크에 들어섰을 때부터 토드는 업의 흐름에 주목했었다. 마치 슈피어슐로트 성채에 들어섰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기에.
그래서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에게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딘가 홀린 듯 보이는 눈동자.
용케 잘 감췄지만, 사령술사의 시야를 피해갈 수 없다.
이 남자에겐 누군가가 빙의되어 있다.
토드는 이 북부인의 육신 너머, 그를 지배하고 있는 다른 존재를 향해 속삭였다.
“···당신도 스칼바냐르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 이게 실성했나.”
“몸뚱이는 몰라도, 그 안에 든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지도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황급히 단검을 뽑아 들기 전, 손가락들이 옭아맸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뒤에 있던 폭도들이 달려들었다.
‘이스라.’
그늘진 곳에서 돌연 녹색 안광이 타오른다.
오러조차 필요 없었다. 가로로 휘두르고, 사선으로 내리긋는다. 갈라진 몸뚱어리들이 바닥에 엎어졌다.
그런데 저들이 보이는 반응은 사뭇 괴이했다.
“제국 놈들의 폭정이다!”
“동포의 원수를 갚자!”
오합지졸들은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면 도망치기 마련인데, 오히려 눈동자에 핏발을 세우며 달려든다.
하물며 저들은 명백히 전사 계층도 아니었다.
【사령술사! 이놈들, 조금 이상하군!】
“그래 보입니다.”
이스라가 골목에서 밀고 들어오는 폭도들을 붙잡고 있는 사이, 토드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에 대고 읊조렸다.
“내가 그대들을 부르노라. 사로잡힌 자들.”
다시 일어난 망자들이나, 핏발선 폭도들이나 얼핏 비슷해 보인다. 놈들은 망자를 보고도 계속 제국의 압제를 몰아내야 한다며 소리 지르다 죽었다.
상황은 빠르게 종결되었으나, 졸지에 여관 앞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토드가 넌지시 2층에 올라간 산시아를 향해 물었다.
“산시아, 더 보이는 게 있습니까?”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산시아의 동공이 날카로워졌다.
“대로에선 경비대가 교전을 벌이고 있어요. 곳곳에서 수비 병력이 돌아다니고 있긴 하지만, 여의치 않아 보이네요.”
토드는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꿈틀대는 지도자를 응시했다.
“쇠렌 씨, 피에트 씨! 저자의 포박을 부탁합니다.”
줄로 팔을 묶으려는데, 자꾸만 놈이 반항하자 쇠렌은 그의 머리통을 술병으로 내리쳤다.
지도자가 축 늘어지자 한결 작업이 수월해졌다.
“아니, 토드 군이 구태여 살려놓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뇨?”
“그자는 바닥에 확보해두고, 감시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살펴볼 구석이 있는지라.”
토드가 망자들을 부려 현장을 수습하는 사이, 이 광경을 목격한 여관주인이 기겁했다.
“시, 시체. 시체가···!”
토드는 슬그머니 그의 시야를 가리며 물었다.
“여기도 지하에 창고가 있습니까?”
“차, 창고라면 있소.”
“그럼 거기 들어가서. 문을 꼭 잠그고, 해가 뜰 때까지 나오지 마세요.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싶다면.”
“여, 여긴 내 여관인데. 내가 지켜야···”
토드의 뒤에 선 죽음의 기사가 츠바이헨더를 부여잡았다.
【주인장, 본인이 장담하지! 아마 오늘 밤 조금 부서지고, 탁자 몇 개도 날려 먹긴 할 것 같네만, 적어도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나을 걸세.】
고위 망자가 흩뿌리는 기세를 정면에서 맞은 주인장은 멀뚱히 서 있다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런.”
【헛.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네만, 설마 기백에 죽은 건가?】
맥을 짚는 토드를 향해 이스라는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죽진 않았네요. 지하실에 잘 눕혀드리고 오세요.”
【끙.】
그 사이 또 골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이 쫓기고 있었는데, 그들을 향해 토드가 외쳤다.
“이리로 오십시오!”
단시간에 그들의 감정 변화는 상당히 다채로웠는데, 처음에는 안도했다가, 토드의 하수인들을 보고는 기겁하고, 와이번을 피하려다 드래곤 둥지에 들어간 것처럼 후회막심한 표정이었다.
도망쳐온 사람들을 돌아본 쇠렌이 물었다.
“뭐여. 지금 저놈들이 제국인들만 쫓고 있는 것 같던데. 당신들은 왜 도망치는 거요?”
그러자 사내 하나가 답했다.
“아무리 남부인들이 마음에 안 든다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죄다 때려죽이자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잖소.”
그는 연신 시체들을 힐끗거리며 지금이라도 여기서 달아나야 하나 고민하는듯싶었다.
“동포들의 뜻에 함께하지 않는 자, 변절자다!”
그러나 골목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사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쇠렌, 일단 이들은 객실 안으로 들여주세요. 제 하수인들에 대해선 알아서 설명해주시고요.”
“알겠네. 얼른, 이리들 들어오쇼!”
방금보다 수가 더 불어난 폭도들은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고했다.
“여기, 변절자들이 들어간 걸 봤다! 순순히 내놓으면 편안하게 죽여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저걸 들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토드가 읊조렸다.
“하수인이 되길 자청하는 자들이 이리도 많다니.”
【캬아악!!】
돌연 시체들이 튀어나오자 폭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아, 아악!”
이번엔 좀 토드가 익히 알던 반응이었다.
거침없이 사람을 물어뜯는 시체들의 모습에 폭도들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물론 인자 연구가 완료된 시체들은 한 놈도 놓치지 않고 모두 처치했다.
보아하니 폭도들도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아까 첫 번째에 잡아들인 것처럼, 모종의 주술, 혹은 마법에 걸려 광분한 인간들.
두 번째는 지금처럼 분위기에 덩달아 동조하면서 약탈과 방화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무리들.
‘봉기야 언제나 배후에 의도가 깔려있겠지만, 이건 순수하게 북부의 저항 운동이라기엔···.’
지나치게 불순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폭도 무리가 여관을 지나칠 때마다, 토드는 기꺼이 그들을 수확했다.
여관을 지킬 하수인들의 숫자가 충분해졌을 즈음엔, 아예 토드는 주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집안에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까지 여관으로 데려왔다.
시체들의 모습에 불신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어차피 폭도들에게 끌려나가 개죽음당하는 것도 매한가지라 여겼는지 상당수가 따라왔다.
그렇게 날이 밝을 즈음엔 이 작은 여관에 온통 사람이 몰려 북적이고 있었다.
【하, 하! 하. 사람 구하는 사령술사라니. 이 어찌 어울리지 않는 울림이란 말인가!】
산시아는 간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던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뭐하러 이런 수고를 감수하는 건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군요. 산시아.”
“죽을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스승님.”
“지나치게 많은 피의 업이 축적되는 건 언제나 지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제 손이 닿는 범위에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지요.”
“이쪽 구역에서만 사상자가 상당했을 텐데요. 도시 전체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가 얼마나 많을진···.”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토록 짙던 피의 업이 어느새 걷히고 있다.
“산시아. 공기 중에 흐르는 업의 끈이 보이십니까.”
“네. 마치 갈래갈래 끊어진 것처럼··· 흐르고 있네요. 일이 모두 끝나서 그런 건가요?”
토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경우엔 업이 해소된 게 아닙니다. 어디선가 형태를 갖추고 발현되었을 경우 이런 형상이 남죠. 저는 이걸 소위 업이 튀었다, 고 말합니다.”
업이 튀면 발생하는 현상도 다양하다. 밤마다 혼령들이 나타나거나, 매장해뒀던 시체들이 스스로 일어나거나, 주변을 지나가는 이들의 정신이 무너질 정도의 악몽에 시달리거나.
토드의 설명을 듣던 산시아가 답했다.
“그것만으론 스승님이 이토록 경계하실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 이후에 경과가 있나요.”
“예. 제가 앞서 설명한 사례들은 전조에 불과합니다. 전조들이 연이어 거듭되다 보면, 궁극적으론 명계의 틈새가 현실에 열리게 됩니다.”
제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저승의 입구가 현실에 열리는 건, 보통 저희 같은 사령술사들이 흔히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토드는 헛기침했다.
“물론 우리에겐 명계의 영향이 이롭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경지 상승을 꾀하고 명계의 틈새를 열기엔, 그 뒤에 찾아올 불청객이 달갑지 않죠.”
“불청객이요?”
“악마들은 명계의 틈새를 자주 애용합니다. 특히 저급한 존재들은 악령의 형태를 취해 지상의 피조물들에게 들러붙죠.”
토드는 여관 바닥에 깔린 폭도 무리의 지도자를 내려다봤다.
이 자 역시 머리에 금제가 걸려 있었다.
아치발트에게 새겨진 것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흑마법사 집단의 것이다.
이놈들, 왜 에다리크에 악마를 소환하려는 거지?
“명심하세요. 산시아. 그들은 우리의 적입니다. 심지어 교회보다도 오래된 숙적이지요. 이 땅에 솔마르가 내려오기 전부터···”
골목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아보니, 웬 병사들이 서 있었다.
“여기에 장의사 토드 하워드가 있소이까?”
“여기 있습니다.”
복장을 보아하니 이들은 성주의 근위병으로 보였다. 그들은 주변에 선 망자들을 보곤 애써 혐오스러운 눈빛을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에다리크의 성주, 에른스트 공께서 귀하를 호출하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