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64
064
“저와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요. 어째서요?”
“흑색 학파는 우리와 더불어 솔마르의 개들에게 오랫동안 억압받던 역사가 있지 않은가. 오드람은 비밀리에 교회와 협력하는 자일세.”
흑마법사는 토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우리와 함께하세나. 그대가 하등 우리를 적대할 이유가 없네.”
“그렇다면 당신들이 훔쳐간 흑색 학파의 유물들도 돌려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흑마법사의 표정이 굳었다.
“정정해주게. 우리는 훔쳐가지 않았네. 오랫동안 주인을 잃고 유실되었던 것들을 보관했을 뿐이니. 게다가 유물에 대해선 공동으로 연구를···”
기가 찬다. 토드가 낄낄거리자 흑마법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쾨흘링과 에다리크, 요른카리에서 죽은 자들의 넋을 달랠 제례를 행할 용의가 있습니까?”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왜 그런 거추장스러운 짓을 해야 하나.”
“거추장스럽다라. 당신들에겐 희생자들의 핏값이 그 정도로만 여겨지는 모양이군요.”
흑마법사는 토드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대는 정말 이상하군. 죽은 자들을 거두어 사역하는 자가. 제물로 사용된 소모품들의 처우를 신경 쓰나?”
하긴, 수백 명을 제물로 바쳐 악마를 소환하는 놈들이 업에 대해 이해할 리 없지.
토드는 머리를 긁적이곤 대꾸했다.
“유물도 내놓지 않으면서 죽은 이들의 원념도 무시하겠다니.”
사령술사는 향로를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당신들과 함께하긴 어렵겠네요.”
흑마법사 역시 품에서 거울 조각을 꺼내며 응수했다.
“안타깝군.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다면 육신이라도 건져가겠다. 거절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피의 업이 짙다.
대가를 묻겠다면 내가 아니라 그쪽이 지은 죄에 대해 물어내야 하지 않을까.
이스라가 선두에서 대검을 쥐고 달려가자 야만전사들이 제지에 나섰다.
‘보좌하라.’
토드의 명령에 망자들이 이스라와 더불어 야만전사들과 격돌했다. 놈들은 살아 움직이는 송장들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모종의 주술이나 약에 취한 것인지, 짐승처럼 으르렁대며 육박전을 벌인다.
어쩌면 양쪽 다 살아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놈들일지도.
죽지 못하는 존재들의 악다구니가 팽팽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스라의 활약으로 점점 전사들이 밀리자 흑마법사는 손아귀에서 거울 조각을 으스러트렸다.
피에 젖은 손을 털어내니, 바닥에 떨어진 파편들에서 소름 끼치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끼야아악-!】
망령이 튀어나왔다. 검붉은 기류에 휩싸인 망령은 찢어진 옷자락을 휘날리며 부유했다.
‘거울 조각을 매개로 명계와 현실의 통로를 만들고, 마력으로 망령을 불러낸 건가?’
흑마법사가 불러낸 망령은 3기.
그가 토드를 향해 손짓했다.
망령들은 일제히 허공에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물리적 실체가 없어서 그런지 놈들은 야만전사와 망자들이 뒤엉킨 사이를 자연스레 뚫고 나왔다.
급히 자신을 붙잡고 있던 야만전사를 걷어찬 이스라가 망령을 향해 냅다 대검을 내리쳤다.
파공음은 울려 퍼지는데, 베는 감각이 없다.
【이런, 칼이 들질 않네!】
“이스라, 검기를 실어보세요.”
토드의 지시에 이스라는 횡으로 칼날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망령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비록 츠바이헨더가 아슬아슬하게 스치긴 했어도, 하늘거리는 끝자락이 잘려나갔다.
【하, 하! 하. 유령도 벨 수 있었군! 이놈, 이리 오거라!】
이스라가 망령 하나를 잡아두긴 했어도, 나머지 둘은 여전히 접근하고 있었다.
발 없이 날아오는 모습에 특히 쇠렌이 기겁했다.
“시발, 시발! 대낮에 귀신이라니! 어떻게 좀 해보쇼!”
엉겁결에 붙잡힌 피에트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더러 저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일단 쏴보라고! 영감!”
쇠렌의 닦달에 급히 총구를 겨눈 피에트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탄은 망령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갈 뿐,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했다.
토드가 손을 뻗어 업의 손아귀를 시전하자 망령의 몸이 붙들렸다.
【끼이이익!!】
하지만 거세게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아 오래 묶어두기엔 글렀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사령술사의 치명적인 결점 중에 하나.
살상력을 지닌 즉발기가 없다.
소환수에 의지하거나, 강화나 디버프 따위에만 치중되어 있지, 토드는 마땅한 공격 스킬이 없었다.
급기야 업의 손아귀를 끊어낸 망령이 토드를 향해 달려들려는데, 옆에서 산시아가 끼어들었다.
카가각···!
그녀의 길게 자라난 발톱이 망령의 칼을 막아냈다. 피의 업이 서린 손아귀는 실체가 없는 상대로도 유효했다.
급하게 움직인 탓에 머리에 눌러쓰고 있던 베일이 걷혔다.
“발톱이 멋있군요. 산시아.”
뾰족해진 귀가 움찔거린다.
표정을 찡그린 산시아는 힘껏 받아치곤 중얼거렸다.
“이 모습으로 오래 있기 싫어요.”
하수인들론 막을 수 없고. 업의 손아귀도 통하지 않고. 혹시나싶어 토드는 노화까지 시전해봤지만, 애초에 수명이 다한 유령을 상대로 의미 없는 짓이었다.
산시아가 망령들을 막아 세웠지만,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놈들은 교활하게도 공격할 때만 실체를 갖췄다가, 빠질 땐 흐릿해지면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잇따른 맹공에 산시아의 팔에서 피가 흘렀다.
고민하던 토드는 지난밤 오드람이 정령들을 불러내던 모습을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망령도 영가의 일종이야.’
다소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정령들과 달리, 차라리 인간의 혼령이라면 통할 여지가 있다.
적어도 사령술사라면 이 분야에서 흑마법사보단 능통해야 하지 않겠나.
토드는 느긋하게 상황을 관망하는 흑마법사를 응시했다.
‘놈에게 유물이 있다 하더라도, 나도 영안을 틔웠어. 어쩌면 망령의 통제권을 내가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방울을 꺼내 들었다.
딸랑!
방울 소리에도 불구하고 망령들은 거침없이 산시아를 밀어붙였다.
‘들리지 않는 건가?’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응답하던 영가들과 달리, 망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토드는 방울을 흔들면서 동시에 휘파람을 불었다.
【끼야아악!!】
마력이 새어나가고 있지만, 망령들은 산시아를 난도질했다. 저들은 온통 분노에 잠식된 것만 같았다. 일그러진 얼굴엔 온통 지독한 악의가 묻어난다. 마치 사령술사의 부름 따윈 듣지 않겠다는 듯, 핏빛으로 불거진 눈동자는 적개심으로 가득했다.
‘젠장.’
그래도 토드는 포기하지 않고 소법을 지속했다. 오드람이 조언했던 대로, 자신의 대역폭을 영적인 존재들에게 맞추는 듯한 느낌으로.
당초엔 그게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개소린가 싶었지만, 기이하게도 점점 마력을 소모할수록 토드는 뭔가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손이 간질거리고, 목 뒤가 서늘해지는 듯한.
그 감각을 느낀 토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영체와 연결될 때의 전조인가?’
일종의 동화율이 올라가는 과정일까.
토드는 애써 동요심을 억눌렀다. 특유의 한기를 놓치지 않고, 계속 잇기 위해 휘파람과 더불어 방울도 거세게 흔들어댔다.
망령들은 피투성이가 된 산시아를 밀쳐내곤 토드를 향해 접근했다.
망령의 찢어진 옷자락이 선명해진다. 놈들이 칼을 치켜들었다.
토드는 이 악물고 낭송에 집중했다.
‘좀 들어라, 들어!’
휘오오···!
돌연 저들과 토드 사이에 싸늘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힘껏 내지르던 칼날이 허공에서 우뚝 멈춰있었다.
‘된 건가?’
손에 땀이 맺혀 있었다.
겨우 숨을 몰아쉰 토드가 망령들을 향해 고했다.
“비통한 혼령들이여!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부당한 탈취자가 아닌, 사령술사의 인도를 따르라.”
그런데 망령들은 우두커니 서서 토드의 뒤를 응시했다. 그토록 사납던 망령들의 눈동자가 언뜻 이상하게 보였다.
‘무서워하고 있어?’
토드가 고개를 기울인 사이, 쇠렌이 조심스레 말했다.
“사령술사 양반, 뒤에···.”
엉겁결에 고개를 돌린 토드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대낫을 치켜든 존재가 토드를 응시한다.
망토가 드리운 그늘 너머엔 얼굴 없이 공허했다.
한 번 망령들을 꼬드겨볼까 불러본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튀어나왔다.
그를 바라보던 토드는 침을 삼켰다.
‘왜?’
그림 리퍼.
망령 따위와는 급을 달리하는 개체였다. 엄연히 상급 망자에 속하는 죽음의 기사보다도 급수가 높을지 모른다.
분명 특정한 요건을 충족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만한 존재가 부름에 응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림 리퍼가 흩뿌리는 음울함에 모두가 얼어붙은 가운데, 토드조차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다만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지켜보니 모양새가 마치 할 말이 있냐는 듯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 아까 연결되었던 게 그림 리퍼였다고?’
정말 저 존재가 자신의 부름에 응해서 나타난 거라면. 이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림 리퍼라면 죽음의 전령인데, 설마 사령술사가 입을 열었다고 베겠어?
토드는 피가 마르는 기분을 겨우 떨쳐내고 입을 열었다.
“저기 있는 적들의 영혼과, 여길 떠도는 영가들을 거둬가 주시지요.”
그러자 사신이 힘껏 대낫을 휘둘렀다.
기이하게도 소음은 없는데, 어느새 산시아 앞에 서 있던 두 망령의 목이 날아갔다.
‘입 다물고 있어서 다행이다.’
자칫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줄 알고, 계집애처럼 울부짖을 뻔했다.
머리를 잃은 망령들은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수축하다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망령들이 스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얼어있던 흑마법사들의 세상이 흘러내린다.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나머지 조각, 다 깨! 막아!”
흑마법사들은 감추고 있던 거울 조각을 모조리 깨트리곤, 10기가 넘는 망령들을 불러일으켰다.
망령 하나가 달려들자, 리퍼는 냅다 망령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곤 바닥에 내던졌다.
망령을 벌레 때려잡듯이 다루는 모습에 흑마법사들이 주춤거렸다.
“사형, 저건 사신이 아닙니까? 저걸 어떻게 막습니까···.”
흑마법사가 와락 표정을 구겼다.
“그럼 여기서 그냥 죽겠다고? 발버둥이라도 쳐야 될 거 아니냐!”
유유히 다가오는 그림 리퍼를 향해 주문이 쏟아졌다.
보랏빛으로 번뜩이는 가시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바닥에서 꿈틀대는 불꽃이 솟구친다.
숱한 주문 세례를 정면으로 얻어맞고도 그림 리퍼는 멀쩡했다.
불길을 가르고 나타난 사역마들이 응수했지만, 그림 리퍼가 낫을 휘둘렀다. 낫질 한 번에 사역마들이 일제히 쓸려나간다.
흑마법사들에겐 항거할 수 없는 재해가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그림 리퍼에게 주문이 먹히질 않자, 흑마법사들은 대상을 바꿔 토드를 노렸다.
하지만 여긴 주변에 온통 죽은 자들의 육신이 가득한 곳이었다.
“잔해의 약동.”
살점과 뼛조각들을 그러모은 육벽이 일어난다.
토드는 그 뒤에 일행들과 몸을 숨겼다.
흑마법사들의 주문이 맹렬하게 육벽을 두들겼다. 구멍이 뚫릴 때마다 토드는 재빨리 살점을 끌어와 메꿔버렸다.
육벽 뒤에 숨어 있던 쇠렌이 혀를 내둘렀다.
“허,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내가 저 양반들이라도 여기 숨어서 부하들만 내보내면 엄청 화날 것 같소.”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밖에서 처절한 비명들이 울려 퍼졌다. 이내 고요해지자 토드는 육벽을 해체하고 밖으로 나왔다.
제단 인근에 있던 전사들과 흑마법사들은 모조리 죽어 있었다. 가만히 눈치를 살피던 이스라가 토드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왔다.
【토드, 저건 자네가 불러낸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망령들의 소유권을 확보하려고 한 거였는데, 엉뚱한 존재가 제 부름에 응하더군요.”
그림 리퍼를 살피는 이스라의 안광엔 불안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럼, 저것도··· 자네의 하수인으로 삼을 건가?】
“글쎄요.”
대낫에서 핏방울이 떨어진다. 유유히 낫을 이고 제단을 배회하던 그림 리퍼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인근에 있던 주검들에게서 피의 업이 죄다 빨려 들어갔다.
‘저걸 다 가져가 버리네.’
그래도 저 정도면 그림 리퍼를 부른 것치곤 싸게 먹힌 거라 치부하던 와중에, 그림 리퍼가 다가왔다.
“······?”
리퍼는 말없이 토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뼈마디만 남은 손바닥에는 구슬 형태로 붉게 뭉쳐진 피의 업이 있었다.
망토 자락 너머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령술사··· 아직 약함.】
엉겁결에 토드가 구슬을 받아들자, 리퍼가 나직이 읊조렸다.
【경지의 상승··· 더 요망됨. 너무 오래 걸림···. 그러나 기다리겠음.】
그 말과 함께 그림 리퍼는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토드로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뭐지. 마지막에 뭔가 재촉당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림 리퍼라는 존재에게 과연 안달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맞나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성장세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빨리 레벨이나 올려서 나를 사역하라는 듯이.
【흠흠. 역시 자네가 저만한 존재를 사역하기엔 아직 무리인 모양일세.】
이스라는 또 어째서인지 안심한 듯한 눈치다.
그 사이 발밑에서 다시금 진동이 울려 퍼졌다.
피에트가 다급히 물었다.
“여긴 대강 정리했으니, 다른 제단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같이 데려갈 분들이 계십니다.”
토드의 시선은 사방에 널브러진 야만전사들, 그리고 흑마법사들의 시신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