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65
065
딸랑.
방울이 울릴 때마다 죽은 자들이 일어섰다.
손에 묻힌 피가 짙은 이들은 불러들여 거두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내버려 둔다. 이들의 주검까지 수습해주기엔 그리 여유가 없었다.
4명의 흑마법사들은 망자가 되어 토드에게 속박되었다. 그들을 헤아리던 토드는 감탄했다.
‘마력이 남아있네?’
망자가 된 상태임에도 체내에서 여분의 마력이 느껴진다. 보아하니 아마 스스로 회복을 하진 못하겠지만, 일부 주문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따라오라.”
토드의 호령에 망자들이 낮게 신음했다. 야만전사들은 곧잘 따라왔는데, 흑마법사들은 유독 움직임이 더뎠다.
거의 기어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는 저열한 기동성에 이스라가 그들을 타박했다.
【허어, 이자들 보게. 이리 굼떠서야 어디 써먹겠나?】
그나마 생전에 전사였던 망자들은 형편이 낫지만, 운동 신경이 저열한 흑마법사들을 걸어 다니는 시체들로 살려놓으니 답이 없었다.
‘그나마 살을 발려내면 좀 나을 텐데.’
어차피 주문 사용자에게 썩어가는 살점은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뼈로 엮어 움직이는 게 그나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일이 작업을 해줄 만한 여유가 없다.
토드는 고민 끝에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죽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 언젠가 다가올 필연을 조금 앞당겼을 뿐···.”
노화에 적중당한 흑마법사들은 몸을 비틀댔다. 팔과 얼굴에 붙어있던 살갗이 말라붙고, 육신이 구부정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온몸의 털이 하얗게 센 채로 흘러내리는 광경이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쇠렌이 특히 경악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더불어 지켜보던 이스라가 낄낄거렸다.
【자네는 요상한 부분에서 놀라는구만. 이미 끔찍한 짓거리들은 충분히 저질러대지 않았었나?】
쇠렌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대꾸했다.
“기사 양반. 당신이 뭘 몰라서 그러는 거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빠질 때마다 그 고통은 모가지 뽑힐 때보다 더하다오.”
【흠, 본인은 머리카락이 빠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
아무래도 여인은 남성보다 탈모 발현율이 낮다. 물론 쇠렌은 여전히 그 사실을 몰랐으므로, 풍성충의 기만으로만 여겨졌다.
그는 분통을 터뜨리며 대꾸했다.
“그쪽도 머지않아 이 고통을 알게 될 거요! 온종일 투구를 쓰고 있으면 정수리에 열이 몰려서 머리카락이 힘을 잃는다고!”
【하, 하! 하. 지금 망자에게 저주를 하는 건가. 쇠렌? 그렇게 마음을 못되게 먹으니 머리가 빠지는 걸세.】
이스라는 일행 중에 키가 제일 컸다. 쇠렌은 부들부들 떨면서 투구를 올려다봤다.
“아오, 저 깡통을 벗겨서 머리를 확인해볼 수도 없고.”
토드는 잔해의 약동까지 사용하여 흑마법사들의 뼈에 붙어있는 살점을 모조리 뜯어냈다.
비록 정교하게 작업을 하진 못했으나, 이것으로 해골 마법사 4구가 완성되었다.
하얗게 드러난 두개골이 뺀질거린다.
쇠렌은 경기를 일으켰다.
“다시 걸어보시지요.”
토드의 지시에 해골 마법사들은 어색하게 걸음을 옮겼다. 살점을 잃고 뼈대만 남은 몸이었으나, 저들에겐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만 덜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린 토드는 행렬을 재배치했다. 선두에 이스라와 야만전사들을 앞세우고, 중간엔 토드와 그 일행이, 후미에는 해골 마법사들이 뒤따른다.
“산시아, 방울을.”
“예. 스승님.”
사령술사는 향로를 높이 쳐들고, 제자는 방울을 흔들며 망자들을 통솔했다.
마경이 되어버린 북부의 성지에서 망자들이 행군한다.
///
‘끝이 없다.’
제단을 지키던 수습생으로선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이제 겨우 북부에서 도맡던 고생이 끝나고, 틀림없이 호가호위할 줄 알았는데.
【끄으으···!】
핏발을 세운 시체가 그를 노려봤다. 전열에 선광전사들이 필사적으로 놈들을 틀어막고 있었지만, 저들의 살기 어린 눈빛이 점점 선명해졌다.
진정 흑마법에 입문한 대가를 신께서 단죄하려는 걸까?
아니. 신이 단죄하겠다면 저런 불경한 자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죽은 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처음에는 곧잘 주문으로 대응하던 흑마법사들도 물량에는 장사가 없자 대응을 바꿨다.
“시전자가 어디 있나? 마력의 자취는!”
“서쪽에 뭉쳐진 곳입니다!”
사령술사는 망자들로 두텁게 구성한 호위 뒤에 숨어 있었다. 이를 간 흑마법사가 거울 조각을 꺼내 들었다.
“잡아둔 망령을 모두 풀어낸다. 수습생들까지 모조리 사용시켜! 드레토모스 님을 위해서라도 이 제단은 지켜야 해!”
상급자의 명령에 미숙한 수습생들까지 남은 마력을 무리하게 쥐어짜내 망령을 호출했다. 쏜살같이 날아간 망령들이 곧장 시체들을 뚫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소환된 망령들만 열두 기가 넘었기에, 제아무리 사령술사라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토드의 외침은 저들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저지해라.”
그의 명령에 해골 마법사들이 일제히 손을 뻗었다. 망자들은 턱뼈를 부딪치며 사전에 외워둔 주문을 낭송했다.
【악의 맺힌- 화살.】
【그늘로부터 바람이- 몰아닥친다.】
흑마법사들의 주문에 얻어맞은 망령들은 형상이 녹아내리거나 조각나는 등, 수모를 면치 못했다.
가뿐하게 망령들까지 제압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흑마법사들은 주문을 남발하며 발악했다.
‘흠. 확실히 물량을 쏟아부어도 좁은 골목에선 정리가 되긴 하는구나.’
아무래도 토드가 생각하기에 도시 중앙에 강림한 악마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벌써 수십 구가 넘는 망자들이 분해되었다. 끓는 독이 허공에 쏟아지고, 새카만 가시가 몸속에서 튀어나와 찢어발기는 등, 흑마법사들의 주문도 제법 매서웠다.
‘그럼 더 큰 녀석이 필요하겠어.’
토드는 바닥에 흩어진 잔해들을 향해 읊조렸다.
“여기 조각난 찌꺼기들을 주워 담는다. 다시 일어서라.”
우선 토대를 구축할 뼈대부터 바로 세운다. 육중한 체중을 충분히 받쳐줄 수 있도록, 탄탄하게. 사령술사의 마력에 이끌려온 뼛조각들이 맞물리고, 서로 깎이면서 연결됐다.
“그대들은 이제 죽음 이후에 하나 되어, 육신의 동지가 될 지어니. 나의 명령을 받들고 더불어 죄업을 청산하리라.”
뼈대 위로 살점이 차곡차곡 붙는다. 사이사이 근육과 힘줄을 엮고, 썩은 핏물이 흐른다.
에다리크에서 죽은 거인을 일으켜 보고, 해부해본 경험이 유효했다. 시체 거인 3호를 만들었을 땐 워낙 상황이 급박해 머리 부분을 다소 투박하게 연결했지만, 이번엔 공들여 보강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작업을 마무리 지은 토드는 웅크린 거인을 향해 속삭였다.
“눈을 떠라.”
피막에 잠겨있던 눈동자가 사령술사를 응시했다. 워낙 부위들을 기워 맞춘 탓인지, 겹눈 모양이었다.
“가서 마음껏 날뛰렴. 가서 네 힘을 저들에게 똑똑히 새겨주거라. 나의 걸작품아.”
【걸자악···.】
낮게 중얼거린 살점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대번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거인은 어색하게 입가를 씰룩였다.
【난 걸작품이다아.】
안면 근육이 뒤틀린 탓에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기괴한 표정이었다.
갓 태어난 피조물은 자신의 창조주가 내린 평가에 부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쿵쿵거리며 내달린 살점 거인은 그대로 주먹을 쥐어 버티고 있던 야만전사를 으스러트렸다.
쾅!! 쾅!
주술사들이 세워둔 토템까지 뭉개버린 거인은 거침없이 전사들을 짓밟았다.
“주문을 집중해라!!”
흑마법사들의 일점사에 살점 거인도 오른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살점 거인과 같은 대형 개체가 지니는 의의는 진형 붕괴와 더불어 타고난 맷집이다.
【우으어! 난 걸자악이랬어!!】
급기야 거인은 양팔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발을 구르며 전사들과 흑마법사들을 밟아 죽였다.
살점 거인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체중에서 비롯되는 일격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거인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에 비로소 집중 견제를 벗어난 이스라가 전사들을 쓸어 담으며 날뛰었다.
【하, 하! 하. 이 사교도 놈들! 본인이 왔노라! 네놈들의 참수자, 이스라 경이다!】
전사들을 뚫어낸 죽음의 기사가 달려오자, 흑마법사들은 급히 손을 뻗었다.
“끓어오르는 부패!”
이미 썩어가는 육신에 급속 부패를 시전해봤자, 효과가 미미했다. 게다가 평시에 방부 처리는 철저하게 해두는 편이었다.
“시드는 가지처럼 허물어지는···”
철판에 부딪힌 주문은 새카만 연기만 피워올리곤 허무하게 꺼졌다. 몸으로 주문을 받아내며 달려오는 모습에 흑마법사들이 기겁했다.
그들은 앞다투어 달아났으나, 변변찮은 도주기가 없는 뚜벅이들은 이스라의 마수를 떨쳐낼 수 없었다.
죽음의 기사는 거침없이 가슴팍을 찌르고 배를 걷어찼다. 한 놈이 바닥에 쓰러지면 곧바로 다음 놈을 찾아 검을 휘둘렀다.
그렇다고 지금 죽음의 기사와 살점 거인만 날뛰는가. 죽은 자들은 시시각각 망자로 되살아나 돌아다녔다.
마경을 초래한 자들에게 진정 지옥이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흑마법사가 짧게 탄식했다.
“하.”
그는 자신의 목을 겨눈 채로 중얼거렸다.
“지옥의 투사께서 우리의 복수를···.”
자신이 시전한 주문에 머리통이 으스러졌다. 죽어서도 사령술사에게 농락당하느니 그가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령술사는 용납하지 않았다.
토드는 살점 거인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로 오거라.”
거인은 시시덕거리며 자세를 낮췄다. 녀석이 어눌한 어조로 물었다.
【난, 걸작이지···?】
“그래.”
머리를 잃었어도, 여전히 몸뚱이엔 마력이 일부 남아있다. 토드는 분해된 육신을 향해 잔해의 약동을 시전했다.
쩌적!
찢겨나간 육신을 마력으로 엮어, 살점 거인의 잘려나간 단면에 붙인다. 부족한 뼈와 살조각은 주변에 널브러진 시신으로부터 충당했다.
“아직 저기에 네가 손봐줄 놈이 있단다.”
거인은 기괴하게 웃으며 토드의 말을 따라 했다.
【손··· 봐준다!】
요른카리에 있는 제단은 이것으로 모두 정리했다.
한가운데로 나아갈수록 공기 중의 열기가 점점 강해졌다. 점점 지독해지는 유황 내음에 피에트는 연신 입을 덮은 채로 기침했다.
쿵-!!
바닥이 들썩이자, 갈라진 틈에서 화염이 아른거린다.
일행의 앞에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단의 사원이 있었을 공터는 면적이 상당히 넓었는데, 일대의 지반이 폭삭 주저앉은 것으로 보였다.
밑에선 끊임없이 유황 증기가 올라오고, 이따금 불빛이 번뜩이며 공동의 윤곽을 밝힌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바닥에 있는 악마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살점 거인보다 거대한 체구에 쇠렌이 기겁했다.
“저런 놈을 잡아야 한다고?”
여전히 오드람과 악마는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다. 둘이 권능을 사용할 때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이 울려 퍼지고, 하늘까지 섬광이 치솟았다.
드드드득···!
“이런!”
밑을 내려다보던 피에트가 급히 물러섰다.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그가 엎드려 있던 바닥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나갔다.
“물러서세요! 지반이 극도로 불안해졌습니다. 자칫하다간 여기가 더 붕괴될 수도 있겠군요.”
침음을 흘린 쇠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이라면 진짜 여길 작살낼 수도 있겠는걸.”
드레토모스는 추종자들과 제단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덩이로부터 느껴지는 열기는 강렬해졌다.
“···일단 밑으로 내려갑니다. 만약 못 버티겠다 싶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망자를 붙여서 올려보낼 테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드는 살점 거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앞장서거라.”
【알았다! 난 걸자-악이니까!】
거인은 새로 받은 오른팔을 휘두르며 힘차게 나아갔다. 흑마법사를 갈아 넣어 재조립한 팔에는 보라색 빛이 번들거렸다.
토드는 각각 최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여기서 오드람과 악마가 동귀어진하고, 둘의 시신을 확보한다면 어마어마한 업을 거둘 수 있겠지.’
그러나 현실에 강림한 악마가 모종의 변수를 부린다면?
‘오드람이 패배하고, 처치한 업을 악마가 거둬간다면···.’
업을 악마가 거둬가는 셈이니 좋은 결과는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오드람을 살려내면 돼. 잃은 업은 악마를 잡아서 충당하자.’
한 방에 크게 번다.
유황 냄새가 코를 마비시킬 지경이었지만, 입가에 미소는 선명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