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73
073
【알겠네. 어떻게든 놈을 그쪽으로 몰아보지.】
시체 폭발은 적지 않은 마력을 소모한다.
최대한 파괴력을 늘려야 한다. 토드는 이스라를 제외한 나머지 망자들을 모조리 잠재웠다.
돌연 주변에 있던 하급 망자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지자, 잠시 심판관의 신경이 거기 쏠렸다.
그 틈을 타 이스라가 검을 찔러넣었다. 심판관이 가까스로 쳐냈으나, 날이 어깨를 두들기고 지나갔다.
카앙!!
칼날이 긁은 부위에서 녹색 불티가 흘러내린다.
“크흠···!”
한발 물러선 심판관이 신음을 삼켰다.
오러로 갑옷을 녹이고, 명계의 검인 듀렌달은 점진적으로 생자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거기에 서리 반지의 효과까지 겹쳐 피격 부위에서 자라나는 얼음 조각들까지.
파멸의 기사가 심판관을 향해 조소했다.
【그대의 권능이 영원할지 몰라도, 그대의 육신이 영원히 버텨줄진 모르겠군.】
이빨을 깨문 심판관은 성검을 다잡았다.
“감히! 역겨운 꼭두각시가 내 신앙심을 우롱하더냐!”
분개한 심판관의 머리 위로 빛나는 두루마리들이 펼쳐졌다. 연달아 축복을 받은 심판관은 수세에 몰렸다가도 다시 파멸의 기사를 몰아세웠다.
시체 쪽으로 유인하겠답시고 괜히 사령술사처럼 도발을 해본 게 실책이었다.
이스라는 후회했다.
【하, 하! 하. 칼이 제법 매섭구나! 광신도여!】
겉으론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스라는 의념으로 다급하게 외쳤다.
【토드! 자네의 술수는 언제 완성되나?!】
팽만해진 시신의 복부에 연록 빛이 감돈다.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살가죽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이라, 인위적인 부패가 필요했다.
‘1분. 1분만 더 끌어주세요.’
【이러다 사람 잡겠네!】
비명을 터뜨린 파멸의 기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자꾸만 저 검이 흩뿌리는 빛이 거슬리는 정도를 넘어, 고통마저 잊어버린 육신의 통각을 되살리고 있었다.
전신에 따끔거리는 감각이 심히 불쾌하다.
견디다 못한 파멸의 기사가 검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물-럿-거-라-!】
코앞에서 쏟아낸 귀곡성에 심판관의 몸이 요동쳤다. 투구에서 얼핏 핏물이 흘렀으나, 검을 휘두르자 쏟아진 빛무리가 금방 상처를 회복했다.
경이로운 생명력에 이스라가 이를 갈았다.
【이 지독한 놈! 밟아놔도 죽지 않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것이, 네놈은 바퀴벌레가 따로 없구나!】
“구주의 신성은 불멸이다. 악의 하수인이여.”
심판관의 검은 이스라에게 치명적이었다. 갑옷 안에서 살점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생경했다.
더 끌었다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때마침 사령술사의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이스라. 폭발이 있을 겁니다.’
발치에 놓인 시체가 꿈틀댄다. 심판관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시전한 주문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해졌다.
입가를 비튼 파멸의 기사가 검을 거머쥐었다.
【그래. 교회의 대전사. 네 끈질긴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 이스라가 저돌적으로 달려나갔다.
일신의 방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무모할 정도의 돌진.
뻔히 보이는 일격이었기에 심판관은 정면에서 파고든 검을 쳐냈다.
터엉!
그리고 성검이 판갑을 부수고, 이스라의 어깻죽지에 틀어박혔다.
콰직.
파고든 성검이 망자의 육신을 태운다. 도리어 파멸의 기사는 히죽 웃었다.
【제법 따끔하군.】
그간 감각이 무뎌진 채로 지내면서, 향시 물에 잠긴 채로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고통은 잠겨있던 망자의 의식을 일깨우는 자극에 지나지 않았다.
이스라의 안광이 일렁였다.
【그대가 사령술사의 주문 속에서도 그리 멀쩡할지. 두고 보세.】
망자는 억척스러운 손길로 심판관을 부여잡았다. 당황한 심판관이 신성을 퍼부었으나, 갑옷이 녹아내리는 열기 속에서 이스라는 끝끝내 놓치지 않았다.
“당신의 거룩한 분노를 저 뒤틀린 흉물에게···!”
【하, 하! 하.】
광소를 터뜨린 파멸의 기사는 심판관과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지면에 내동댕이쳐진 심판관은 그제야 지척에 놓인 시체를 발견했다.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육신이 세 구. 기괴할 정도로 부푼 형상은 더 이상 사람의 유해가 아닌, 생체 풍선에 가까웠다.
그는 황급히 기도문을 읊조리려 했으나, 이스라가 연신 투구를 때리며 훼방을 놓았다.
꿈틀, 꿈틀···.
낭송이 마무리되었다.
사령술사가 읊조렸다.
“시체 폭발.”
퍼어어엉――!!
폭발이 두 인영을 덮쳤다.
사용한 매개는 드레토모스에게 현혹되었던 광전사들의 시체. 악마에게 씌웠던 육신에 누적된 피의 업은 어지간한 악인들보다 짙다.
심판관을 단숨에 제압하기 위해 토드는 남은 마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의 파괴력에 토드조차 전율을 느꼈다.
‘엄청난데.’
폭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특유의 단백질 탄내가 짙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체내의 가스가 마력과 결합하여 폭발한 탓인지, 유독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토드조차 절로 헛기침을 뱉곤 코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이스라, 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폭발의 여파에 휘말린 탓인지 답이 없다.
토드도 마력을 탕진하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썩은 내 때문인지 몸을 가누기 쉽지 않았다.
위력이 막강했지만, 적어도 망자들은 사령술에 입는 피해가 경감된다. 무사할 것이다.
‘그놈이 이 폭발에서 살아남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토드는 바닥을 뒹굴고 있는 몸뚱이 중에 그나마 온전한 시신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희끄무레한 인영이 보인다. 여타 시신들이 폭발에 휩쓸려 녹아내린 것과 달리, 형체가 그나마 멀쩡해 보인다.
토드는 조심스레 향로를 꺼내 들고 읊조렸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그런데 주문을 마치기도 전에, 돌연 시신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시체가 아니잖아.’
더욱이 시체에게 저런 환한 광채가 머무를 리 없다. 연기를 뚫고 타오르는 망치의 형상이 떠올랐다.
마르커스였다. 놈은 살아있었다.
그는 넝마처럼 너덜너덜한 팔을 들어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토드를 가리켰다.
“나는, 심판관 자격으로서, 이단자에게··· 처형을. 선고하노라.”
권능의 위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아무래도 성검을 놓친 것이 주효해 보였다.
그러나 저만한 권능조차 토드에겐 위협적이었다. 이스라였다면 콧방귀를 뀌며 거뜬히 넘겼겠지만, 토드의 육신은 그녀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잔해의 육벽으로 투사체를 막았겠지만.
‘마력이 없어.’
미처 반응하기 전에 빛으로 만들어진 망치가 날아들었다.
우지직.
뭔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바닥을 뒹군 토드 앞으로 심판관이 비틀대며 걸어왔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심판관이 걸치고 있던 갑옷과 투구는 온통 핏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죽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었는데, 성검을 놓쳤음에도 자체적으로 보유한 신성력이 그의 목숨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극한의 고통 탓인지 심판관의 동공이 연신 꿈틀댔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걸음을 내디뎠다.
겨우 고개를 든 토드는 심판관을 향해 중얼거렸다.
“대단한 집념입니다.”
깨진 파편 속, 심판관의 핏발선 눈동자가 엿보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당신들은 지독하군요.”
“지독한 건, 네놈들이지. 아무리 싹을 말려도, 잡초처럼 자라나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종자들···.”
얼굴을 찡그린 심판관의 손아귀에 빛으로 만들어진 송곳이 들렸다. 그를 보호해줄 신성력이 빠져나가니,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사령술사 중에 한 명쯤은, 정도를 추구하는 이단아가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심판관은 단호히 답했다.
“교단의 정의에 예외는 없다.”
“···그게 교회 전체의 뜻인가요.”
추후 교회와 협상할 일이 생길 텐데, 쉽진 않겠는걸.
송곳을 치켜든 심판관이 읊조렸다.
“형을 집행한다. 이 또한 구주께서 바라시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노라.”
토드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는 찰나.
득달같이 달려든 인영이 팔을 휘둘렀다.
가뜩이나 쇠약해져 있던 심판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걸 지켜봤다.
【크르르륵···!】
완연히 짐승의 형상을 한 존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곧 사령술사의 앞에 자세를 굽힌 짐승의 몸이 급격히 수축했다.
“···스승님.”
여인의 눈동자에도 녹색 빛이 어려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심판관이 탄식했다.
“사령술사가, 둘이었나.”
이미 절멸된 줄로만 알았던 사령술사가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있다니.
‘분명 사령술사들의 영맥은 단절된 것으로 아는데, 왜 후신이···’
교단에 알려야 할 일이다.
스승과 제자가 있다는 건, 가르침이 전승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학파가 또 지속해서 존속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르커스는 희미한 자신의 생명을 느꼈다. 이 중대한 목격을 보고할 수 없다는 게 유감이지만, 그래도 자신은 소임을 다했다.
‘그래도 스승 쪽은 처단했다.’
남은 신성력으로 목숨을 보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 자신의 목숨으로 악의 싹을 도려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사령술사의 제자는 어떻게든 붕대로 출혈 부위를 동여매는 등, 필사적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심판관이 힘겹게 웃었다.
“···소용없다. 구주의 징벌은 살갗을 태운다. 오로지 신성으로만. 그 불꽃을 걷어낼 수 있지.”
노려보는 산시아를 향해 마르커스는 입가를 이죽댔다.
“네놈들처럼 불경한 족속들은 절대로 씻어낼 수 없는 낙인이지. 이대로 영원히 불타다 죽어라.”
“이미 다 죽어가는 놈이···.”
어깨를 들썩인 마르커스는 눈을 깜빡였다.
“나는 소임을 다했다. 그것으로 난 만족한다.”
이를 악문 산시아가 발톱을 뽑으려던 차에, 토드가 작게 속삭였다.
“산시아···.”
“스승님. 무리하게 말씀하지 마세요. 상처가 벌어져요.”
산시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토드가 재차 물었다.
“지금, 어디서 계속 재잘대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까···?”
“재잘댄다고요?”
뜬금없는 소리에 산시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얼핏 죽어가는 자의 헛소리처럼 들릴 법한 내용이었지만, 그 소리는 실로 토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아주 미세하게 웅얼대는 합창.
심판관 마르커스조차 듣지 못하는 웅대한 고요.
어째서인지 낯익은 선율이었다.
숨을 헐떡인 토드는 겨우 눈에 힘을 주었다.
‘들어본 적 있어.’
멜다비어의 예배당에서였던가.
그때, 미지의 호의를 접견했었지.
토드는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쪽을 가리켰다.
“산시아, 저쪽에. 있습니다. 서두르세요.”
산시아가 보아온 바로, 토드는 괴이한 언행을 일삼더라도 쓸모없는 헛짓거리를 하진 않았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여전히 짙게 깔린 연기를 뚫고 토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주변을 헤매던 산시아는 문득 바닥에서 아른거리는 빛을 목격했다.
“이건···.”
껄끄럽다.
낭광병이 발현되었던 시절부터, 언제나 그녀에게 교회,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껄끄러웠다.
그녀의 눈앞엔 피로 얼룩진 성검이 떨어져 있었다.
주저하던 산시아는 힘겹게 성검을 잡아들었다.
반쯤 눈을 감고 있던 마르커스는 산시아가 성검을 든 채로 돌아오자, 그녀를 비웃었다.
“흐, 미숙한 사령술사야.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아느냐?”
조소를 흘린 마르커스는 가래 끓는 외침을 토해내곤,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그건 악을 멸하는 필벌, 달렌티아의 거룩한 분노다! 무수한 흑마법사들과 그 피조물들을 멸하신 교회의 수호성인, 안토니오님의 애검이란 말이다!”
죽어가는 자답지 않게, 그의 눈동자엔 선명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그런 성물을 너희 족속들이 손댔다간, 거룩한 천상에서 직접 심판하실 거다. 굳이 어리석은 파멸을 자처하겠다니, 이것만큼은 내 눈으로 보고 눈을 감아야겠군!”
‘저놈도 어지간히 미친 새끼일세.’
토드는 한숨을 흘렸다.
왜인진 모르겠다.
죽음의 여제.
까마귀 신.
그리고 솔마르까지.
단순히 플레이어라서, 신들이 부르는 것인가?
까마귀 신이 말했듯, 그는 자신에게 자격이 있다고 했다.
넌지시 주술사로도 거듭날 수 있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아마도?
“산시아, 제 손에.”
“스승님, 저자의 말대로 이건 솔마르의 검이에요. 자칫 이걸 쥐었다간···.”
산시아의 우려에 토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을 겁니다.”
입술을 곱씹던 산시아는 몸도 가누질 못하는 토드의 손에 성검의 손잡이를 쥐여주었다.
손아귀에 불덩어리가 들어온 것처럼 뜨거웠다.
작열하는 감각을 느낀 순간이었다.
쿠웅.
무언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고, 그를 지켜보던 심판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주변의 연기가 순식간에 걷혀나갔다.
먹구름을 뚫고 내리쬔 섬광이 사령술사를 비춘다.
끊임없이 그의 살갗을 살라 먹던 거룩한 불꽃이 눈물로 산화하여 핏물과 더불어 흘러내렸다.
멍하니 지켜보던 심판관이 중얼거렸다.
“이럴 수 없어.”
사령술사를 불태웠어야 할 성유물이 도리어 그를 치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