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79
079
파멸의 기사가 팔짱을 낀 채 되물었다.
【허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늘리겠다는 겐가? 무턱대고 흑마법사들을 소탕하겠다며 도시를 들쑤실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토드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도시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요.”
그 말에 이스라가 시름했다.
【흐음··· 사특한 사령술사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봐야, 마땅히 생각나는 게 많진 않네만.】
이에 대해선 마르커스도 동의하는지 불신 어린 투로 토드를 추궁했다.
【흑마법사들은 제물이 필요하기에, 납치, 인신매매, 시체유기 따위의 불순한 짓거리들을 일삼지. 결국 네놈도 시체를 필요로 하니, 비슷하지 않은가?】
사령술사를 향한 대외적인 인식은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토드가 넌지시 쇠렌을 바라봤다.
“쇠렌 씨. 판가우에도 장의사 조합이 있습니까?”
쇠렌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글쎄올시다. 내가 기억하기로 별의별 조합은 다 있을 거요.”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옆머리를 긁적이더니, 자신이 기억하는 목록을 읊었다.
“소매치기, 야바위꾼, 밀수업자, 거지, 고리대금업자, 포주···.”
이스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다.
【보통 조합은 대장장이나 포목상, 탐광꾼 따위의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자들이 결성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판가우에서 정상적으로 돈을 버는 치들이 얼마나 있을 거라 생각하쇼? 하여튼 장의사는 없던 것 같소.”
“그럼 도시에서 발생한 시신이나 장례는 어떻게 치루는 겁니까.”
“장례는 사치요. 선원들에게 돈 몇 푼 쥐여주고, 연해에서 던져버리는 게 관례지. 간혹 간조 때 시체가 떠밀려오는 것마저 불편하면 오크통에 담그고. 아마 판가우 앞바다에만 가라앉은 통이 수백 개는 될걸?”
토드가 혀를 찼다.
“도시의 유력자들이 아닌 이상, 집에서 시체를 운송하고, 공동묘지까지 매장할 여력은 없소.”
듣고 있던 마르커스도 고개를 내저었다.
【도시의 타락한 행태를 보아하니, 굳이 흑마법사들의 수작질이 아니었어도 악령들이 창궐할 만한 곳이었나.】
“어쩌겠소. 애당초 판가우는 태생부터가 제후 나으리들이 뒷돈 처먹으려고 만들어진 곳이었으니. 괜히 자유시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게 아뇨.”
개판 일보 직전인 도시가 어떻게 돌아가나 했더니, 역시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더군다나 쾨흘링 분쟁의 배후로 유력한 황소대공은 흑마법사들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판가우를 흑마법사들의 실험장으로 전락한 것도 대공이라는 자의 암묵적인 묵인이 있었던 걸지도.’
고개를 끄덕인 토드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안치소를 차릴까 합니다.”
일행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안치소? 시체 닦는 일을 하겠다는 거요?”
쇠렌의 말에 토드의 입가가 잠시나마 뒤틀렸다.
“예.”
“허참, 당장 주머니 사정이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험한 일을 하겠다는 건진 모르겠소만.”
토드는 마르커스를 가리키며 일렀다.
“사제들이 양지에서 아버지 신의 뜻을 설파하고,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질서를 추종하며, 구빈을 실천하는 게 당연하듯이.”
괜히 마르커스는 헛기침했다.
이윽고 토드의 손은 자신에게로 향했다.
“사령술사는 손길조차 미지지 않는 음지에서 잊혀진 자들을 인도하고, 죽은 자들을 향해 헌신하는 것. 그게 마땅한 조화입니다.”
호시탐탐 토드의 말에 딴지를 걸려고 날을 세우고 있던 마르커스는 안광을 이리저리 굴렸다.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이 해체되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자는···.’
아니. 흔들려선 안 된다. 누구나 말로는 번지르르하게 떠들 수 있다. 이런 몸뚱어리로 영락했을지언정, 자신의 본분은 여전히 심판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제가 장의사로서 본분을 다하는 게 이상하지 않죠. 염습 또한 궂은 일인 건 분명합니다만, 사자의 최후를 전송한다는 점에서 숭고한 일입니다.”
확신이 깃든 강경한 어투에 쇠렌이 한발 물러섰다.
“뭐어, 사령술사 양반의 뜻이 그렇다면야. 내가 말리진 않겠소. 근데 문제는 보통 안치소를 차린다 치면 비용을 받아야 할 텐데, 여기 사람들이 그걸 감수할지는···.”
“애초에 돈을 받으려고 이 일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장 제 수중에 자금은 넉넉합니다. 일종의 자선 사업이라고나 할까요.”
난색을 표하던 쇠렌이 답했다.
“나야 밑지는 장사를 벌이려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마는. 혹시라도 뭐, 더 부탁할 거리 있소?”
“제가 여기서 안치소를 무상으로 운영한다고 넌지시 알려주세요. 중개업자나 일부 사람들에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알겠지마는, 나랑 관계된 놈들이 썩 제대로 되먹은 인간들은 아뇨. 괜찮겠소?”
“상관없습니다.”
“일단은 알겠소.”
자리에서 일어선 쇠렌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를 향해 이스라가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시게. 쇠렌. 이미 해도 졌는데, 괜히 돌아가다 봉변당하지나 말고.】
“어련하시겠어. 기사 나리.”
놀리는 말에 괜히 씨부렁대던 쇠렌은 조심스레 발을 내딛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헐레벌떡 빠져나갔다.
그를 지켜보던 산시아가 나직이 속삭였다.
“저자를 저렇게 보내줘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이스라가 탄식했다.
【쇠렌은 북부에서 여정 내내 우리와 함께했네. 그대는 여전히 그의 신의를 의심하는가?】
“그땐 동행했으니까요. 더군다나 여긴 그의 기반이 있는 곳이고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선 다른 속셈을 품고 행동할 수도 있잖아요. 가령 저희의 정체를 누설한다던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산시아의 눈동자와 달리, 이스라의 안광은 타오른다.
【그렇게 사사건건 누군가를 의심하는 건 좋지 못한 태도일세.】
“이건 신의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병석에 누워있을 때, 우리 가문을 속이려 드는 협잡꾼들을 숱하게 만나봐서 잘 알아요.”
낮게 시름을 흘린 이스라가 답했다.
【으음, 비록 쇠렌이 비열한 인상에, 대머리인 데다가, 남자를 밝히고, 돈에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그는 내게 충분한 신의를 보였네. 만난 시간이 오래되진 않았을지라도, 그 안에 겪은 일들이 어땠나.】
토드가 손에 차고 있던 반지를 문질렀다.
“이미 영가를 하나 붙여놨으니,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새삼 이스라가 꺼림칙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그래도 유령을 꽁무니에 달아놨다니. 자네도 너무한 게 아닌가.】
토드는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최대한 기력이 약한 녀석이니, 이상은 없을 겁니다. 아마 잘 때 조금 아슬거리는 느낌이 들긴 하겠지만요.”
【그 정도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이스라도 납득했다. 정작 당사자는 이 자리에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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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와 그 일당이 새로 자리 잡은 가택은 제법 규모가 상당했다.
토드, 이스라, 산시아, 마르커스를 포함한 4인이 각자 방을 차지하고도 남을 정도였는데, 성향에 따라 고른 방은 제각각이었다.
마르커스는 볕이 가장 잘 드는 2층의 창문 방을 골랐고, 산시아는 가장 널찍한 곳을, 이스라는 일어나자마자 뒤뜰로 나갈 수 있는 1층의 복도 끝방을, 토드는 지하 계단과 가까운 방을 골랐다.
과거 여기가 밀수꾼들의 은신처였던 걸 감안해 가택 지하에 제법 널찍한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을 영안실로 삼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온도도 서늘하고. 습도도 적당해. 영가들이 도사리기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지.’
엉겁결에 자신의 공간을 침탈당한 알바로는 억울한 심정이겠지만, 어차피 유령이야 형체가 없으므로 어디에나 깃들어 있으면 그만이다.
대략 일주일 정도 가택에 머물렀을 즈음, 해 질 무렵에 웬 사내들이 문 앞에서 서성였다.
“스승님.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한창 소리의 서를 들여다보고 있던 토드가 반색했다.
“아. 드디어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요.”
문을 열어주니 험상궂은 인상이 다분한 사내들이 뒷걸음질 쳤다.
“여기가 돈 안 받고 시체를 처리해준다는 곳. ···맞나?”
토드가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아, 예.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장의사 토드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조수고요.”
산시아는 베일을 드리워 얼굴을 보이진 않았는데, 저들이 보기에도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수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내가 중얼거렸다.
“듣기론 여기가 귀신 들린 집으로 유명하던데. 당신 살아있는 사람 맞긴 한 거지?”
토드의 창백한 안색 때문인지 여전히 의심하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보시다시피 제 손발은 잘 붙어있고, 또렷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사내는 제 동료를 팔꿈치로 치곤,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드잡이할 시간 없어. 어쨌거나 장의사. 우리는 송곳니 형제단에서 소개를 받았다. 여기 실려 온 놈들이 어떻게 뒤졌는진 궁금해할 필요 없고. 그쪽은 할 일이나 하라고.”
판가우에서 활동하는 폭력배로 보였다. 막상 살인을 많이 저지르진 않았는지 피의 업이 옅다.
‘말단이거나 단순히 심부름꾼이겠지.’
“예예. 돌아가신 분들은 이쪽으로 들여주시지요.”
사내가 손을 까딱였다.
“끌고 와.”
수레에 담긴 자루는 네 개 정도.
자루를 옮기던 조직원들은 은연중에 한기를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시발. 뭐 이런 좆같은 곳이 다 있담.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는 거지?”
자루를 내려놓은 조직원이 속삭였다.
“입 조심해. 등신아. 여기가 그 발루크 뒤진 집이잖아.”
팔을 쓸어내린 조직원이 혀를 내둘렀다.
“여기가 그 집이었어? 하필 여기다가 차린 게 안치소라니. 까딱하다간 죽은 놈들 몸에 귀신이 붙는 게 아닌가 몰라.”
“재수 없는 소리 마. 빨리 나가기나 해.”
그들은 자신들의 경박한 행동거지를 무수한 유령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사내가 토드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집안에서 토막을 치든, 땅에 묻든 간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어디에도 저놈들 몸뚱이가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야 할 거다.”
“죽은 분들은 확실하게 수습해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코웃음 치며 가택을 나섰다.
“거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조직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산시아가 물었다.
“저들에겐 따로 영가를 붙여 감시하진 않으실 건가요?”
“저자들은 피래미에 불과합니다. 아직 우리가 노리는 대어들이 아니죠. 일단 수습하실 분들이 들어왔으니, 우리는 당장의 일이나 합시다.”
가뜩이나 오랫동안 방치됐던 가택에서도 단연 썰렁한 분위기가 강하던 지하실은 일주일 전과는 사뭇 풍경이 달라졌다.
약품이나 기자재들을 담을 수 있는 선반을 벽에 달아놨고, 긴 탁자와 침상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괴기스러운 실험실, 혹은 영안실에 가까운 기묘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소리의 서를 빼낼 때마다 살을 가를 필요 없이, 가운데에 있는 제단에 비치해둘 수 있는지라, 수시로 사령술 특유의 연녹색 휘광이 지하실에 흘러넘쳤다.
특히 마르커스는 이곳을 보곤 영락없는 이교도의 방이라며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그럼 산시아. 이만 첫 실습을 진행해볼까요. 복장부터 갈아입읍시다.”
토드는 미리 검은색으로 맞춰온 망토와 마스크, 장갑을 건넸다.
“저 때만 하더라도 피가 묻어 바래져야 검은색으로 깔맞춤을 할 수 있었는데, 판가우에선 이런 복장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더군요.”
“······.”
“이게 참, 우리 학파도 여러모로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이게 좋아진 정도라면, 대체 흑색 학파는 과거에 어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사망자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소리의 서 앞에 예를 갖춥시다.”
토드가 손을 휘젓자 제단 위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스로 펼쳐졌다.
책이 눈을 부릅뜨더니, 산시아를 빤히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