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81
081
빠르게 표정을 지운 토드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괴기스러운 사건이군요.”
라즐이 한숨을 흘렸다.
“저도 나름 판가우에서 오래 살면서 별의별 일을 겪었다고 자부했는데, 전대미문의 일이죠.”
그래도 안치소를 차린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무려 시의회에서 접근해올 줄이야.
“워낙 내용 자체가 불미스러운지라, 시의회에서도 가급적이면 신뢰할 만한 전문가분께 부검을 의뢰하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토드는 겸연쩍은 미소를 흘렸다.
“전문가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시의회 측에서 고평가해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기대하신 만큼 제 역량이 충분할진 의문입니다.”
일단 한발 물러서 본다. 상대의 속내를 떠볼 작정이었다.
“하하, 하워드 씨만한 전문성을 갖춘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이제 갓 안치소를 차린 신분입니다. 더군다나 판가우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인인데, 시의회 측에선 어떤 점을 보고 저를 찾아오셨는지 궁금하군요.
어색하게 웃던 라즐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답했다.
“내심 저도 의구심을 품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들어와 보니 확신이 생기더군요.”
“확신이 생기셨다고요.”
라즐은 고개를 끄덕였다.
“쾨흘링 분쟁에서 켄젤슐리텐 변경백을 도와 승리로 이끌고, 스칼바냐르에선 야만족들의 공세로 위기에 처한 제국 식민 도시를 구해냈으며, 이교도들의 성지에 강림한 악마를 처치한 사령술사, 토드 하워드.”
그는 히죽 웃으며 토드를 돌아봤다.
“제 앞에 계신 분이 그 장본인이라는 걸요.”
의외로 정보력이 상세한데. 게다가 비교적 최근의 행보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이거 참,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시의회에서 제게 그리 열렬한 관심이 있었을진 몰랐군요.”
“오, 사실 저희는 하워드 씨가 판가우에 입성한 순간부터 스칼바냐르로 떠나실 때까지, 줄곧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하워드 씨 정도면 충분히 저명한 인사시죠.”
시의회 측은 사전에 토드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줄곧 감시했던 걸로도 모자라, 정보 수집까지 벌였고.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토드는 오히려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위험인물 취급이라. 색다른 느낌인걸.’
어쨌거나 방금 라즐의 발언에서 중요한 맥락은 2가지.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판가우의 꼴과 달리, 생각 외로 시의회는 정보력도 탄탄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일은 그런 시의회조차 난색을 표할 정도로 까다롭다는 것.
“그나저나 여기 들어오신 뒤에야 확신이 생기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이신지요.”
“아, 저는 판가우에서만 행정관으로 15년째 근속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원체 여기가 험한 곳이라, 자연스럽게 ‘그런 분들’과 마주칠 일이 많다 보니 저도 눈썰미가 생기더군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뭐랄까. 이렇게 하워드 씨를 직접 만나 뵈니 비슷하면서 다른 기운을 풍기셔서.”
라즐을 바라보는 토드의 눈동자에 흥미가 깃들었다.
별난 사람이다.
“마도를 익히신 것 같진 않으신데요.”
“아, 예. 저는 그저 중간 관리직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분들이랑 특별한 관계에 있거나, 그분들에 대해서 어떤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특별히 유착 관계가 없다곤 하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악마를 퇴치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분명 자신이 흑마법사들과 썩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테고.
아니면 관리직에 불과해서 판가우 고위층과 흑마법사들 간의 유착 관계를 모를 수도 있지.
토드는 깍지를 낀 채로 물었다.
“시신 처리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단순히 돌아가신 분의 장례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건 아닐 테고. 시의회에서 구체적으로 제게 바라는 일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이 사태의 원인 규명과 방지입니다.”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지? 다소 두루뭉술한데요.”
헛기침한 라즐이 답했다.
“시의회는 이번 일을 우발적인 사고로 보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미심쩍은 정황도 다분하고요. 돌아가신 의원분도 평소에 창관을 거니는 분은 아니셨거든요. 차라리 정부의 집에 들렸다면 모를까.”
“그런 것까지 말씀하셔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평소에도 대외적인 평판이 썩 좋은 분은 아니셨던지라, 상관없을 겁니다. 게다가 시의회 선거가 2주 뒤에 예정되어 있는데, 이게 다른 의원들을 노릴 수도 있지 않느냐는 불안감이 내부에 팽배해 있고요.”
판가우의 환경을 감안하면 의심되는 세력이 한둘도 아니다. 이곳은 대놓고 밀수꾼 같은 작자들이 조합을 꾸려 활동하는 곳.
얼마든지 시의회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모의할 수도 있는 데다가, 암암리에 흑마법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정황도 유력하다.
“하워드 씨께선 이번 일의 인과를 조사해주시고, 주모자를 색출해 내주셨으면 합니다. 다시는 시의회를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요.”
토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절대 쉬울 리가 없죠.”
“시의회에선 제게 무엇을 보장해줄 수 있습니까?”
토드의 물음에 라즐이 서류를 꺼내 들었다.
“하워드 씨에게 판가우 자유 제국시 1등 시민권이 수여됩니다. 면세와 더불어 중범죄 면책권, 그리고 공방 이용에 대한 무제한 허가, 시의회 도서관 기록실 열람 권한 등등, 하여튼 판가우에서 의원님들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실 겁니다.”
“그리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군요.”
“거기에 아젠툼 표준 금화 100닢을 현금으로 지급할 뿐만 아니라, 하워드 님의 안치소를 시에서 공식 작업장으로 지정하여 정기적으로 시신을 수급할 수 있도록 보장해드릴 수 있고요.”
이미 토드의 안치소는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어차피 수중의 재산은 충분히 운구나 장례 비용을 감당할 정도고, 꾸준히 시신도 입고되는 상황.
다소 미적지근한 반응에 라즐이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저희가 지하 조직을 일망타진하던 와중에 특별한 유물을 하나 입수했던 적이 있습니다.”
“판가우에 널린 게 지하 조직들일 텐데, 그런 걸 시의회에서 일일이 소탕할 줄은 몰랐군요.”
라즐이 어깨를 으쓱였다.
“판가우에선 무수한 업체들이나 단체들은 수시로 협력을 하다가도, 사이가 틀어지는 게 다반사죠. 저희는 가급적이면 최대한 이익 단체들의 자유를 보장하려 노력하지만, 시의 안위에 위험을 끼친다면 제재를 가할 수밖에요.”
그가 품에서 꺼낸 작은 쪽지에는 망가진 모래시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토드는 한눈에 그 유물의 정체를 간파했다.
「역행하는 모래시계」.
각종 악랄한 디버프를 부여하는 흑색 학파의 유산이다. 일찍이 아치발트가 모래시계가 하수구 연맹이 노획했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하수구 연맹의 지부가 판가우에 있다더니, 유물까지 털렸나?
아무리 지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흑마법사 집단을 시의회에서 털어버릴 줄이야.
“듣기론 이게 사라진 흑색 학파의 유물이라고 하더군요. 어떠신가요. 하워드 씨. 이제 좀 구미가 당기시나요?”
라즐의 손가락 사이에 낀 쪽지가 팔랑거린다. 토드가 미소 지었다.
“그건 좀 흥미가 생기는군요.”
“의뢰를 완수하는 즉시, 가져가실 수 있도록 소유권 인도를 보장하겠습니다. 앞서 제시한 조건들도 모두 포함해서요. 어떻습니까.”
교섭이 수월하게 이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유도 없는 호의는 독을 품은 사과와 같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의회는 판가우 내에서 영향력이 지대하군요.”
“물론입니다. 판가우는 이 땅에서 어느 도시보다도 위험하지만, 그만한 기회와 부가 따르는 곳입니다. 당연히 이 도시를 통제하려면, 그에 걸맞는 힘을 갖추고 있어야지요.”
토드가 되물었다.
“그런데 좀 전의 말씀을 돌이켜보면, 시의회는 판가우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판가우에 들어올 때부터 시의회가 감시를 붙일 정도로 요주의 인물이고요.”
라즐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일이 원만하게 마무리된 후에, 제게 유물을 인도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제 힘을 키우게 될 겁니다.”
“좋지 않나요?”
토드가 고개를 기울인 채 속삭였다.
“저에겐 다소 위험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판가우에서 그리 이목을 끌고 싶진 않습니다.”
“염려하시는 바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라즐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하지만 하워드 씨. 애초에 이름조차 바꾸는 성의도 없이, 판가우에 안치소를 차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이건 누가 봐도 알아달라는 신호 아닙니까?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보지요.”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그렇습니다. 저는 시의회 측에서 제게 접근하려는 저의를 도통 이해하기 어렵군요.”
“시의회에서 하워드 씨를 저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거두셔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일은 의뢰인 동시에, 하워드 씨를 향한 ‘후원’이나 다름없거든요.”
라즐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속삭였다.
“쾨흘링 분쟁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 이후로, 시의회에선 하워드 씨의 권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게, 황위를 노린 쟁탈전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검지와 엄지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들죠. 동시에 많이 벌 수도 있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하워드 씨의 권능이 가진 이점을 의원분들은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의외군요. 워낙 저에 대한 평판과는 별개로, 사령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라즐이 낄낄거렸다.
“시의회는 종교, 도덕, 사회적 인식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초월하여 판가우 시의 생존만을 추구합니다.”
그의 눈빛과 행동에선 판가우를 향한 자부심이 드러났다.
“판가우에는 군림하는 제후가 없지요. 출생만 믿고 세금만 거둬가는 무뢰배가 없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그 말은 도시를 보호할 유력자도 없다는 뜻입니다. 고로 판가우는 태생부터 알아서 자립을 도모해야만 했죠.”
라즐은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50인의 의원들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지성이 판가우의 뜻을 관철합니다. 우리는 현재로선 장차 다가올 전쟁에서 어떠한 선제후도 지지할 생각이 없으므로, 상당히 고달픈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중립을 자처하겠다고. 판가우의 배후에 황소대공이 있어서, 그를 지지할 줄 알았더니. 의외였다.
“명목상 자유시지만, 유력 제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라즐이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속단하고 진영을 선택해선 곤란하다는 게 시의 입장입니다. 어쨌거나 다스리는 제후가 없는 자유시는 좋은 먹잇감이죠. 약탈품도 넘치고, 공격하는 데 아무런 부담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판가우는 제국 북부에서 최대의 항만이다. 황위 계승전이 어떤 양상으로 치러질진 의문이나, 자칫하다간 양측, 아니면 삼면에서 공격당할 수도 있는 노릇.
“저희는 쾨흘링 분쟁의 양상을 비교적 상세하게 파악했었습니다. 듣기론 하워드 씨의 시체들은 잠을 자거나, 먹지도, 지치지도 않는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렇습니다.”
라즐이 활짝 웃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나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해서 고용할 수 있는 군대라니!”
어째서인지 그가 토드보다 더 흥분한 기색이었다. 헛기침한 라즐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래서 시의회는 하워드 씨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사전에 투자하려는 겁니다. 더 나중의 일을 위해서라도, 상호 간에 신뢰 관계도 구축하고. 작금의 곤란한 일도 처치하는 거죠.”
라즐은 품에서 깃펜과 잉크통을 자신 있게 꺼내 들었다.
“어떠십니까. 하워드 씨. 이 정도면 시의회의 입장이 충분히 설명되셨을까요?”
물끄러미 라즐을 바라보던 토드는 그가 건넨 깃펜을 받아들었다.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토드가 중얼거렸다.
“범죄의 온상 판가우와, 사령술사의 동맹이라.”
계약서를 받아든 라즐이 킬킬거렸다.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사악한 동맹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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