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동해의 섬
“글래시아?”
얼음 속에서 깨어난 글래시아의 전신은 푸른빛 솜털로 보송하고 있었다.
머리 위엔 파랗게 반짝이는 벼슬이 세워져 있었고, 꼬리가 아홉 줄기로 나누어져 있었다.
작고 귀여웠지만, 온몸에서 뿜어지는 냉기와 빛이 녀석을 신비롭게 만들고 있었다.
“짹!”
글래시아는 푸른 눈동자로 백우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허억!
자신의 머리를 백우진의 다리에 비비며 방실방실 웃는 글래시아의 모습은 흑암마저 사로잡아버렸다.
“음….”
백우진은 글래시아의 머리에서 흐르는 냉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녀석 외형은 대체 뭐지? 부리가 날카로운 걸 보니, 매나 독수린가?”
-이렇게 귀여운 걸 보면 그런 쪽은 아닌 거 같은데.
“새끼 때는 다 귀여워.”
-넌 안 귀여웠을 거 같은데.
“시끄러워.”
백우진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아기 새들을 검색해보았지만 저런 외형은 어디에도 나오질 않았다.
“그만 좀 쳐다보고 말 좀 해봐. 저런 녀석 본 적 없어?”
-크흠, 저 녀석하고 다르긴 한데 비슷한 건 본 적 있다.
글래시아를 멍하니 바라보던 흑암이 민망한 듯 뒤로 물러났다.
“그게 뭔데?”
-피닉스다.
“엉?”
백우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피닉스는 불의 정령이다.
얼음의 속성을 가진 글래시아에게 피닉스라니 이게 말인가 싶었다.
-알에서 되살아났을 때의 피닉스를 잠깐 본 거라 정확하진 않아. 다만 저 아이처럼 여러 갈래로 나뉜 꼬리는 확실하게 기억한다.
“잠깐만 꼬리?”
백우진은 글래시아의 늘어진 꼬리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환상의 새가 생각났다.
스마트폰으로 다시 검색을 해보고 입을 쩍 벌렸다.
“보, 봉황?”
백우진이 봉황의 그림과 글래시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색은 정반대였지만, 머리에 세워진 벼슬과 번쩍거리는 여러 갈래의 꼬리는 봉황의 새끼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러 갈래의 꼬리, 머리 위에 세워진 것도 비슷해. 너 무슨 생각으로 저 녀석을 부른 거냐?
“이그니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만 않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큰 바람은 없었다.
이그니스가 불이고, 글래시아가 물이니 이그니스에게 너무 밀리지 않게 단단한 녀석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 바람과 네 괴물 같은 감응력에 정령석의 힘이 더해져서 저런 외형이 된 건가?
“그런 거 같아.”
깃털의 설명에선 주인에 따라 글래시아의 능력과 기질이 달라진다고 되어있었다.
글래시아가 이런 외모가 된 이유는 분명 자신의 바람 때문이었다.
-어떤 외형이 될지는 나중에 알 수 있을 테니, 일단 계약부터 해라.
“그래야지.”
백우진은 글래시아의 작은 날개를 잡고, 수 속성 감응력을 넘겨주었다.
“짹!”
글래시아는 여러 음으로 울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서 백우진에게 자신의 기운을 전해주었다.
치이잉!
백우진의 심장과 글래시아의 심장에서 하얀 실이 나와 매듭이 지어지며 계약이 이루어졌다.
-저 녀석에게 이름이라도 지어주는 거 어떠냐?
“이름?”
-갓 태어난 녀석이니, 글래시아라고 부르는 것보단 이름을 정해주는 것도 좋을 테지.
“너 다른 정령들은 이름이건 뭐건 별 관심 없었잖아.”
-얜 귀엽잖아.
“이그니스도 귀여운데?”
-쩝쩝거리며 초콜릿만 먹는 용이 귀엽냐?
흑암이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몸을 비틀었다.
“이름이라….”
백우진은 흑암과 글래시아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났어.”
-쩝쩝이 대신 짹짹이라고 부르면 내가 널 죽이겠어.
“그런 거 아니야. 이 녀석의 성체가 봉황이나, 피닉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좋은 이름이 번뜩였어.”
-불안하지만, 어디 말해봐라.
“설빙(雪氷) 어때? 네 이름이랑 비슷한 느낌으로.”
-흐음….
자신의 이름처럼 어순도 좋고, 밝으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넌 앞으로 설빙이야.”
“째액!”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글래시아는 지금까지 중 가장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마음에 든 모양….”
백우진이 이제 설빙이 된 글래시아를 쓰다듬으려 할 때 냉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하게 뭉쳐진 냉기는 설빙을 둥글게 둘러싸서 얼음의 알을 만들었다.
-이거 이그니스에게 이름을 정해줬을 때랑 똑같잖아! 설마….
흑암이 넋이 나간 눈으로 냉기로 가득 찬 얼음 구슬을 바라보았다.
빠지직!
잠시 후 얼음 구슬이 부서지며 설빙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작고 귀여웠지만, 꼬리가 길어졌고, 털의 색이 진해졌으며 눈동자가 얼음처럼 반짝였다.
-다, 다행이군. 큰 변화는 없어.
“아니야.”
-뭐?
“이 녀석 크기만 변한 게 아니라고.”
백우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알을 깨고 나타난 설빙은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정령의 기운까지 성장한 상태였다.
마치 이그니스의 힘이 강해지는 것처럼.
띵!
백우진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알림음이 들려왔다.
[물의 그릇에 걸맞은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글래시아에게 특성 재생연설이 생성됩니다.] [백빙의 냉기가 강해집니다.] [백빙의 제어력이 상승합니다.]띵!
[수 속성 감응력이 10포인트 상승합니다.] [수 속성 저항력이 15포인트 상승합니다.]-그, 그릇이라고? 저 병아리가?
흑암이 검날이 부러질 정도로 몸을 떨었다.
-이게 말이 되냐? 엉? 무슨 이런 미친 소리가!
“흑암.”
백우진이 난동을 부리려는 흑암을 붙잡았다.
“네 말대로야. 저 녀석 정말 귀엽다.”
-귀엽기는 개뿔이!
* * *
“짹!”
설빙은 접시에 담아놓은 콜라를 조롱조롱 마시고 있었다.
음식들과 과자, 음료 중에 설빙이 가장 좋아하는 건 시원한 콜라와 아이스크림이었다.
“째액!”
기분 좋은 울음을 지르는 설빙의 기운과 몸은 조금이지만 성장한 상태였다.
녀석은 정말 왕의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쩝쩝.
이그니스는 설빙의 반대편에서 순살 치킨을 미친 듯이 흡입하고 있었다.
투명해졌던 세 번째 뿔은 다시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크릉!”
“짹!”
둘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음식만 먹는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불의 용과 얼음의 새. 뭔가 멋지지 않냐?”
-저, 정령왕이 둘, 둘….
흑암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이제 정신 좀 차려.”
백우진이 흑암을 툭툭 건드렸다.
-너라면 제정신이겠냐? 이 미친 운빨 자식아! 이건 말이 되질 않아! 넌 세상에 사기를 치고 있다고!
“그렇긴 한데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 뭐 어째.”
백우진이 흑암을 놀리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 정말….
오늘만큼 육체가 아쉬웠던 적이 없었다.
생생한 육체를 가지고 백우진의 뒤통수를 후리고 싶었다.
“이름을 지어주라고 한 건 너야. 너 아니었으면 설빙이 왕의 그릇인지는 한참 후에나 알았을걸.”
-끄으으윽….
“정말 고맙고. 음?”
백우진은 흑암을 놀리는 것을 멈추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주영이나 전준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노크 소리 이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흑검대 김재환의 목소리였다.
“하아….”
백우진은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김재환은 항상 보여주는 그 가짜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께서 도련님을 소환하셨습니다.”
* * *
“가주님을 뵙습니다.”
백우진은 백천화의 호출을 받아 가주전에 들어갔다.
백천화는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댄 채 백우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오는 건 오랜만이군.
‘한동안 부르지 않았으니까. 미노타우르스를 잡았을 때 호출할 거라 생각했는데.’
미노타우르스를 잡았을 때 부를 거라 생각해서 대답까지 준비했었건만 예상외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음….”
백천화의 눈빛엔 확연한 놀람이 담겨 있었다.
‘그사이에 또 강해졌군.’
백천화도 백우진이 미노타우르스과 싸우는 영상을 보았다.
백우진의 날카로운 검격에 나름 감탄했었는데, 지금의 백우진은 그때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이 녀석의 성장 속도는 성현이나 연휘보다도 위로군. 천재라는 단어로 설명이 안 돼.’
무력이 강해질수록 성장 속도가 늦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백우진은 강해질수록 성장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일어나라.”
백천화는 감탄과 기대감이 담겨 있던 눈빛을 감추며 백우진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큰일을 치렀더구나. 문제가 생기는 곳에 네가 가는 건지, 네가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 모르겠군.”
“….”
백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백천화를 바라보았다.
“플레임 드래곤과 어스 리노는 처음부터 소환할 수 있었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령술 수련을 하다 우연히 얻게 된 힘입니다. 제가 부족해서 녀석들을 사용하기에 제약이 많습니다.”
“혹시 바람의 정령도 특별한 녀석을 소환하는 거냐?”
“제 바람의 정령은 아시다시피 중급 정령 진입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거짓과 진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백우진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너 정말 배우 해도 되겠다. 대놓고 거짓말하면서 떨지 않다니.
‘대놓고 하는 건 아니지, 진실이 섞여 있으니까.’
-근데 왜 속이는 거냐?
‘아버지는 날 계속 시험하려 할 거야. 무력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정령술이라도 약하게 봐주면 좋잖아.’
백우진은 위기를 이겨내고 많은 것을 얻었다고 방심하지 않고,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미노타우르스가 나타날 때 피어를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
“몰랐습니다.”
“그럼 어떻게 대비를 한 거지?”
“전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한발 뒤로 물러나서 균열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미노타우르스가 나타났을 때 오러를 운용해서 피어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직접 경험해본 투기의 느낌은 어땠느냐?”
백천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몬스터가 아니라, 강한 오러를 가진 무인과 싸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버겁기도 했지만, 전투를 하며 즐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백우진은 미노타우르스와 싸우며 느꼈던 감상을 솔직하게 말했다.
“즐거웠다?”
백천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한 존재와 싸우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건 경지에 오른 무인이나 느낄만한 감정이다.
막내아들은 드디어 제대로 된 무인의 길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마지막에 사용한 연계 검술은 뭐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숙한 검술입니다.”
“미노타우르스의 목을 벤 검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가 바라보는 곳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백천화가 의자 손잡이를 내려치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 아래에 감춰두었던 백우진에 대한 감탄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아주 좋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건 무인으로서 훌륭한 자세야.”
백천화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백우진을 칭찬했다.
‘점점 물건이 되어가는군.’
백천화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백우진을 내려다보았다.
막내의 성향과 무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그릇이 완성되어 가는 것 같아서 흡족해졌다.
‘이제 그곳에 보내도 개죽음을 당하진 않겠어.’
백천화가 마음을 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초에 네게 임무를 내리겠다.”
“어떤 임무를….”
“벌써 알려주면 재미없지. 다만 지금까지와 달리 쉽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도 딱히 쉽진 않았잖아. 왜 저러는 거냐?
흑암의 말대로 백천화가 내려준 임무들은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흑암이 없었거나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몇 번은 죽었을 거다.
“내년 초까지 네가 또래에 비해 강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죽을힘을 다해서 수련하고, 임무들을 수행하거라.”
백천화가 싸늘하게 웃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 * *
“흐음….”
백우진은 의검대가 개인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임무일까?”
-내가 아리?
“어휴.”
백우진은 혀에서 느껴지는 쓴맛을 다셨다.
아버지를 만나고 이 주일이 넘게 지났지만, 그가 줄 임무가 무엇인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내년 초라면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그냥 수련이나 해라.
‘그건 당연한 일이고. 내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천지 차이잖아.’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거냐?
‘몇 개 있지. 첫 번째는 리젠 구역 탐사, 두 번째는 새로운 던전 공략, 세 번째가 암살. 그리고 네 번째가 가장 확률이 높은 거 같은데 아마….’
“도련님!”
백우진이 흑암에게 네 번째를 말해주려 할 때 문주영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뭐가 그리 급해.”
“동해에 섬이 떠오른 거 알고 계십니까?”
“섬?”
“이틀 전에 작은 섬이 나타나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전혀 몰랐어.”
아버지가 말한 임무에 관심이 쏠려서 섬이 올라왔다는 건 알지 못했다.
-섬이 나타났다고? 화산이라도 폭발한 거냐?
‘아니, 갑작스럽게 섬이 생겨난 거야. 바다 위의 균열이라고 보면 돼.’
육지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것처럼 바다에선 섬이 나타나고, 그 위로 해양 몬스터가 모여드는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그 섬 공략이 내 다음 임무인가 보네.”
“그, 그렇습니다. 다만 그 안에 다른 임무가 하나 더….”
문주영이 마른침을 삼키고 임무서를 내밀었다.
임무서를 본 백우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