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전방으로
“마, 마나석? 그걸 어떻게….”
카르덴의 턱뼈가 하마처럼 벌어졌다.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형들의 동력원을 백우진이 단번에 찾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느껴져서.”
“그걸 그냥 느꼈다고요?”
“별일 아니잖아.”
백우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예민해진 감각 덕분에 마나가 어디서 나오고 어디로 흐르는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와, 진짜….”
카르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백우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마나석이 좀 특이하네.”
“그건 하몬 마나석이라는 겁니다.”
카르덴이 백우진의 손에 들린 마나석을 보고 눈에 불꽃을 피워냈다.
“하몬 마나석?”
“최상급 마나석들을 세공하고 조화시켜서 만드는 높은 효율의 마나석입니다. 저희 대륙에서도 딱 한 종족만 만들 수 있죠.”
“딱 한 종족? 설마….”
백우진의 머릿속에서 판타지 세상에 나오는 손재주 좋은 종족이 떠올랐다.
“드워프라는 종족입니다. 인간은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손재주를 가지고 있죠. 그들만이 하몬 마나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드워프라니….”
“하몬 마나석은 다른 수단 없이 바로 마나를 흡수하고, 배출할 수 있습니다. 금화가 산더미처럼 있어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죠.”
카르덴은 하몬 마나석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여튼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거면 무조건 챙긴다니까. 독한 놈 같으니.
‘당연히 챙겨야지.’
이 수련장이 계속 남는다면 모르겠지만, 수련장이 없어진다면 마나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뿌드득.
마나석에 생겨난 실금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다 사라지기 전에 흡수해야겠어.’
백우진은 오러를 운용하여 마나석 내부에 있는 마나를 몸으로 받아들였다.
우우웅!
순수한 마나가 밀물처럼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카인의 오러 연공법을 극성으로 운용해서 모든 마나를 몸으로 휘돌렸다.
마나들은 라사둠의 오러가 이끄는 대로 백우진의 전신을 누빈 후 그의 단전으로 흡수되었다.
-양이 상당한데.
‘제대로 연공을 하면 능력치도 올라가겠어.’
연공실로 돌아가서 연공을 하면 오러의 양과 질이 올라갈 것 같았다. 웬만한 영약보다 훨씬 영양가 있는 마나였다.
-게장도 아니고, 아주 쪽쪽 다 빨아먹네.
‘하하!’
흑암의 툴툴거림에 백우진은 그저 웃었다. 보법도 만들고, 마나석의 마나도 챙겼으니, 저 정도 투정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퍽! 퍽!
백우진은 땅을 파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어느새 나타난 무영객이 삽을 들고,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무영객은 눈에 쌍라이트를 켠 채로 미친 듯이 땅을 헤집었다. 입에서 김이 날 정도로 삽질을 하고 있었다.
“진짜 질리지도 않나….”
-어떤 의미로는 너 이상으로 대단한 놈이다….
* * *
“후우….”
백우진은 오러 연공을 끝내고 기분 좋게 눈을 떴다.
띵!
[마나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예상대로 하몬 마나석에 있던 마나를 흡수해서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었다.
-쯧, 진짜 운빨 하나는….
“그래. 내가 최고지.”
백우진은 흑암의 퉁명스러운 말을 웃어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도 끝났나 보네.”
연무장에서 의검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녀석들은 3일에 걸쳐서 사자의 성 7층을 돌파한 뒤 훈련 피드백을 하고 있을 거다.
“고생하셨습니다.”
백우진이 문을 열고 나가자, 대기하던 문주영이 고개를 숙였다.
“너도 고생했어.”
“아닙니다. 제 할 일인데요.”
“이제 검대 아이들을 모아줘.”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군요.”
“그래.”
“알겠습니다.”
문주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의검대 전원을 단상 앞에 모았고, 백우진은 모두가 보고 있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피곤할 텐데 기다리라고 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힘이 넘치는데? 지금부터 다시 수련해도 되겠어.”
“아, 그건 좀….”
김우혁이 볼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3일간 수련을 했기 때문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당장 돌아가서 자고 싶었다.
“농담이다. 사자의 성 7층을 돌파한 거 축하한다.”
백우진은 검사들을 한 명씩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워냈다. 큰 부상 없이 7층을 돌파한 것이 대견해 박수를 쳐주었다.
“내 예상보다 몇 달은 빠른 속도였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백우진의 진심이 담겨 있는 칭찬에 검사들은 뿌듯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어딜 가서도 제 몫을 할 능력은 갖췄어.”
“다 도련님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김우혁의 아부 발언에 다른 검사들이 바로 올라탔다. 목표를 이루고 백우진의 칭찬을 들었기에 고양감이 마구 솟아올랐다.
“난 조만간 전방으로 떠난다.”
“예?”
“어…?”
“저, 전방이요?”
불같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뿌린 듯 확 가라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말에 검사들 모두가 넋을 놓은 표정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가주님껜 미리 말씀드려 놓았다. 물론 부가주님께도.”
백우진이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백천웅에게 시선을 주었다.
“가, 갑자기 왜 전방에 가시는 겁니까?”
“내 부족함을, 내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서다. 아버지와 대연문주의 전투를 보며 내가 아직 하룻강아지라는 걸 알았거든.”
“아….”
홍남기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자신은 사자의 성 7층이라는 작은 성취에 만족해서 훈련 피드백을 제대로 진행하지도 않았는데, 백우진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너희도 알다시피 전방의 전투가 점점 격렬해지고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나라도 한 손 보태기 위해서 가려한다.”
“음….”
박혜리가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훈련을 따라가기 바빠서 외부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자신보다 더 바쁜 백우진은 전방의 사상자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정말 따라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선택권을 주려 한다.”
“선택권이라면….”
“나와 함께 전방에 갈지, 아니면 이곳에 남을지. 너희가 직접 선택해라.”
백우진의 말과 함께 문주영이 검사들에게 서류들을 넘겨주었다.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데려가지 않는다. 날 따라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계속 수련을 하고 임무를 받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고르도록.”
의검대 검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전방에 가고 싶은 사람은 4일 뒤 그 참가서를 작성해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와라.”
“전 갈게요!”
백우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뒤에서 하얀 손이 올라왔다. 홍아라가 토끼처럼 뛰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제대로 생각을 하고 결정해.”
“제대로 생각했어요! 무조건 갈 거예요!”
홍아라는 낭랑한 목소리로 가장 먼저 나서서 손을 올렸다.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쯧, 선수를 뺏겼네.”
“그러게 말이야. 막내가 가장 먼저 나설 줄이야.”
“거기 가면 도련님 정도로 강해질 수 있는 거죠?
“저희도 갑니다. 무조건!”
홍남기와 김우혁, 박혜리가 동시에 손을 들어 올렸다. 남은 검사들도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손을 들었다.
“전방에 가게 되면 쉽게 돌아오지 못해.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백우진의 목소리가 어둑한 저녁 하늘처럼 낮게 깔렸다.
“신검백가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생활과 전투를 하게 될 거다. 말했듯이 4일 후다. 푹 쉬면서 제대로 생각한 뒤 찾아와.”
백우진은 그 말을 끝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검사들은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어두운 하늘을 비추는 별처럼 반짝였다.
-대답은 뻔하구만, 뭘 기다리는 거냐?
흑암이 검사들의 눈빛들을 살피고 검날을 저었다.
‘혹시 모르잖아.’
-혹시는 무슨. 저놈들 표정을 봐라. 과자를 눈앞에 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다. 한 놈도 안 빠질걸?
* * *
백우진은 검사들에게 휴가를 준 뒤 패력적가를 찾아갔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 때문에 정문에서 적연화가 토끼 눈을 한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정말 오셨네요?”
“한 말은 지켜야지.”
“아빠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고 했던 거요?”
“그래.”
백우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직접 찾아가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 적가를 찾아왔다.
“근데 너희 집 장난 아니네. 엄청 넓어.”
“당신 집도 만만치 않잖아요.”
“그냥 아부 한 번 해봤어.”
“하….”
적연화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젓다가 정문을 열었다.
“당신은 진짜 변하질 않네요. 들어오세요.”
“그건 아니야. 변하지 않을 수는 없지.”
백우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어….”
적연화는 멍한 표정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허허로운 기운을 느꼈다.
“왜 넋 놓고 있냐. 혼자 가라고?”
“아, 아버지는 저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적연화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서 왼쪽에 보이는 푸른 정원을 가리켰다.
“정원에?”
“방은 지루하다고, 저길 자랑하고 싶대요.”
“직접 키우시는 건가?”
“혼자 하시는 건 아니지만, 많이 가꾸셨죠.”
“적가주님답군.”
백우진은 피식 웃으며 적연화와 함께 정원으로 향했다. 높고 단단하게 솟은 나무와 생기 넘치는 꽃과 수풀들이 적가의 기세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적가주님을 뵙습니다.”
백우진이 밀짚모자를 쓴 채로, 나무를 훑어보고 있던 적가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전에 보지 않았다면 키가 큰 정원사라고 생각할 정도로 적가주는 정원에 동화되어 있었다.
“전화로 말했으면 됐지. 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
적가주가 밀짚모자를 벗으며 미소를 지었다.
“직접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라 생각했습니다.”
“흐음….”
백우진의 위아래를 살펴본 적가주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사이에 또 성장했나? 넌 정말 괴물이라도 되는 게냐?”
“서, 성장이요?”
“그래. 저 녀석 대연문에서 봤을 때보다 더 강해졌다.”
“허….”
적가주의 말에 적연화의 눈동자가 맥없이 풀렸다. 대연문에서 그런 정신 나간 무력을 보여 놓고서 또 성장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영약이라도 챙겨 먹었나 했더니만, 그것만이 아니야. 기술적으로도 성장했어. 넌 정말 뭐 하는 놈이냐?”
적가주는 백우진의 다리를 보며 씩 웃었다. 그는 보법을 중시하는 권사답게 백우진의 보법이 성장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게 운이라면, 넌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놈일 거다.”
-그건 맞지. 운 하나는 기막히지.
흑암은 적가주의 말에 동의하듯 맹렬하게 검날을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줬지만, 네게 감사 인사를 받을 건 없다. 내가 없었어도 백천화가 와서 널 구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드립니다.”
“신기하군.”
적가주는 백우진의 맑은 눈빛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천화에게서 너 같은 녀석이 나온 게 믿기지 않는구나.”
“그런 말 자주 들었습니다.”
“크하하하!”
적가주는 재미있다는 듯 자신의 덩치처럼 큼지막한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로 감사 인사는 됐다. 하지도 않은 일로 감사를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전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집은 똑같군.”
적가주는 기꺼운 눈빛으로 백우진을 보다가 나무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네게 방해가 많이 붙을 거 같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전방에 가려고 합니다.”
“전방?”
“어?”
백우진의 뒤에 있던 적연화가 깜짝 놀라서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전방에서 제 부족함을 채우고, 더 강해질 기반을 다지려고 합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전방에 간다라, 역시 너도 제정신은 아니야.”
“그런 말도 많이 듣습니다.”
“전방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을 텐데, 내가 좀 풀어줄까?”
“직접 겪으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크하하하! 걸작이군!”
적가주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는 흡족한 눈빛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감사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자네에게 도움을 받은 내 딸과 부하들의 빚을 갚으려 했을 뿐이니까. 저 아이가 널 꼭 도와줘야 한다고 했거든.”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백우진이 뒤를 돌아서 적연화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아, 저는 뭐….”
적연화는 갑작스럽게 감사 인사를 받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고개를 저었다.
“비, 빚!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세요.”
“아, 그러네. 그럼 너한테 있는 소원권 하나는 지워줄게.”
“소원권이요?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그래도 아직 하나 남은 거 알지? 뭘 시킬지 모르니까 단단히 준비해놔.”
백우진이 검지를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진짜….”
“지금 그게 무슨 소리지?”
적가주가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예?”
“소원권이 무슨 말이냐?”
적가주의 목소리가 명계의 수문장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아빠?”
“가, 갑자기 왜….”
-역시 너랑 비슷한 냄새가 난다 했어.
‘뭐가? 뭐가 비슷하다는 거야!’
흑암은 적가주와 백우진을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저 양반 팔불출이자, 딸 바보다. 제대로 설명 못하면 죽을 걸?
‘….’
* * *
“가겠습니다.”
박혜리는 연공실에 들어오자마자, 백우진에게 참가서를 내밀었다. 이걸로 의검대 18명 모두가 참가서를 제출했다.
“전에 말씀드렸죠? 전 여성 능력자 중 최고가 아니라, 그냥 최고가 되고 싶다고. 그러려면 앞으로 최고가 될 사람에게 붙어 있어야죠.”
“내가 최고가 된다고?”
“물론이죠.”
아부가 아니다. 박혜리는 확신을 담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최고고 자시고, 전방에 가면 아무리 못해도 1년은 못 돌아올 거다.”
“상관없습니다.”
“죽을 수도 있어.”
“검사는 싸우다 죽는 게 명예죠.”
“하아, 알겠다. 미리 준비해놓도록.”
백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똑같았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죽더라도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박혜리는 상큼하게 웃고서 밖으로 나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이었다.
-거봐라. 내가 쓸데없다고 했지?
“그러네.”
백우진은 18장의 참가서를 챙기며 웃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따르는 모습에 약간의 뿌듯함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 놈쯤은 남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전부 널 따라갈 줄이야. 좀 섭섭한데?”
백천웅이 허허 웃으며 연공실로 들어왔다.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엔 조금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부가주님이 쫓아내듯 전부 가라고 하셨잖아요.”
“어? 그걸 또 언제 들었대?”
“나 참….”
백우진은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부가주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도 없으면, 심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괜찮다. 오랜만에 여유시간이 생겼으니, 나도 여행이나 다녀올까 한다.”
“어디로 가시게요?”
“제주도에 아는 친구가 있거든. 오랜만에 그 친구와 흑돼지에 소주 한잔하려고.”
백천웅은 벌써부터 기대를 하는지 입맛을 다셨다.
백우진과 함께 지냈기 때문인지 이전에 비해 사람자체가 밝아져 있었다.
“그거 좋네요. 저도 끌리는데요.”
“몸 성히 복귀하면 내가 얼마든지 사주마.”
“알겠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전부 몸 성하게 데려오겠습니다.”
백우진은 확신과 책임을 담아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백천웅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전방은 위험한 곳이지만, 너라면 분명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을 게다.”
“부가주님도 다녀오셨군요.”
“물론이다. 지금과 다르게 내 또래는 몇 번씩이나 전방에 다녀왔었지. 물론 네 아버지도.”
백천웅은 옛 생각을 하는지 눈빛이 조금 투명하게 변했다.
“그런데도 정복을 하지 못한 겁니까?”
“이곳과 달리 던전과 하늘에서 끝도 없이 몬스터가 쏟아지는 곳이니까. 거기다….”
백천웅은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좋겠지.”
“말을 하다 끊으시는 건 너무한데요?”
“허허, 네가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니, 심술 좀 부려봤다.”
“결국 직접 가야겠네요.”
“도련님.”
백우진은 참가서를 챙기며 일어났을 때 문주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주님이 도련님을 호출하셨습니다.”
“하여튼 타이밍은 잘 맞추는 양반이야.”
지금 백천화가 자신을 부를 일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전방에 갈 날짜와 안내자가 정해진 것이다.
“가자.”
* * *
-네 아버지가 날짜 정해준다고 했잖아. 한 1년 뒤에 가라고 하는 거 아니냐?
‘내기를 걸어놓고 그렇게 찌질하게 나오진 않겠지.
가주전으로 향하던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보낸다고 했으면 보낼 사람이다. 그렇게 추잡한 짓까진 하지 않는다.
‘다만 걸었던 내기를 쉽게 보면 안 될 거야.’
-그 블록을 되찾는 거?
‘그래. 아버지는 지금 내 무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그런데도 내기를 걸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네 아버지가 아무리 강했다고 해도 22살에 지금의 너보다 강하진 않았을 텐데.
‘시대가 달라졌으니, 지금의 전방과 변한 게 있을지도…. 응?’
백우진은 가주전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눈을 부릅떴다.
“왜 당신이 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