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차원을 가르는 검 (2)
“으윽!”
카렌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그렇게 지다니….”
대련에서 지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파랑창검이 완전히 깨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아주 철저하게 졌네요.”
침대 옆에 앉아 있던 파랑검대의 부대주 박선영이 픽하고 웃었다.
“믿을 수가 없어! 그건 아빠가 만든 거라고!”
파랑창검은 창왕이라 불리는 황병훈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 준 검술이다. 패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검술 자체가 무력화된 적은 처음이었다.
“다시 가야겠어! 이대로는 안 돼!”
“가봤자 못 이겨요.”
박선영이 안 된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 사람은 괴물이에요.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대주님의 검술을 관찰한 거라구요.”
“그, 그래도 대련이라는 건 할 때마다 다른 거잖아!”
“그거야 비슷한 수준에서 하는 이야기죠. 대주님과 그 사람의 무력차이는 하늘과 땅인데요?”
“으윽….”
“거기다 두 번이나 싸워주겠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무시하겠죠.”
하나같이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에 카렌은 이를 악물 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또 총사령관님께 혼나지 말고, 2블록으로 돌아가죠.”
카렌은 현재 황병훈에게 징계를 받아서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통제를 받은 상태였다. 또 사고를 쳤다간 한 달 동안 센터블록에만 처박혀 있어야 할 거다.
“그래도 갈 거야!”
“하아….”
카렌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튀어나갔다. 박선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모르겠네.”
카렌은 부모 모두를 눈앞에서 잃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황병훈이 거둬준 덕분에 잘못 된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강해지기 위해서 너무 막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래서 상사를 잘 만나야 한다니까.”
박선영은 불쌍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카렌을 따라 나갔다.
“백우진!”
카렌은 밖에 나가자마자 아이스 커피를 쪽쪽 빨아 먹고 있는 백우진을 발견했다. 그를 보자마자 뒤통수가 지끈거렸다.
“생각보다 빨리 깨는군.”
백우진은 심드렁하게 카렌을 바라보았다. 뒤통수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바로 일어나는 걸 보니 나름대로 맷집이 있었다.
“하, 한 판 더 해! 아까 건 인정 못 해!”
“귀찮은데.”
“뭐?”
“넌 한 판을 하자고 했고, 승부는 이미 났잖아. 또 할 필요가 있을까?”
“끄응….”
“거봐요. 안 한다고 했잖아요. 우리 블록으로 돌아가요.”
“다만….”
박선영이 카렌을 데리고 돌아가려 할 때 백우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내기를 건다면 대련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백우진의 말에 카렌이 흠칫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다.
“내기?”
“그래. 상대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준다는 내기.”
“어, 너 설마 날….”
“너 푼수냐?”
카렌은 백우진에게 눈을 흘기며 뒤로 물러났다. 백우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푸, 푼수?”
“푼수 맞죠. 한 번 보고 알다니, 대단하시네.”
박선영은 우리 대주는 철딱서니가 없어요라고 중얼거렸다.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그, 그럼 뭘 시키겠다는 건데!”
“그거야 대련 이후에 정할 일이지. 세 번의 대련을 진행하면서 네가 내 몸에 단 한 번이라도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이기는 거로 쳐주지.”
“그딴 건 필요 없어! 정정당당하게 싸워!”
“뭐, 그러던가.”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으로 향했고, 카렌은 씩씩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어휴….”
박선영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기회를 날린 카렌의 뒤통수에 꿀밤을 날리고 싶어졌다.
* * *
“허억! 허억!”
카렌은 연무장에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이마 위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이, 이건 말이 안 돼!”
백우진을 이기진 못해도 최소한 몇 번의 공격은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상대의 검술에 익숙해지는 건 자신이 아니라, 백우진이었다. 그는 대련할수록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대련 때는 어떤 회전을 걸어도 중간에 막혔다. 난공불락의 성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카렌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박선영이 왜 대련을 말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
백우진은 검의 괴물이었다.
‘이제 조금 알겠네.’
백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암인검에 오러를 둘렀다. 그의 검을 덮은 오러가 잘게 쪼개지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오러를 회전시키는 게 아니었어. 오러를 잘게 쪼개서 나름의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들을 회전시키는 게 와검의 묘리지?’
-음, 맞다. 오러 전체를 회전시키면서, 작게 쪼갠 오러의 알갱이를 한 번 더 회전시키는 게 와검이다. 잘도 알았군.
흑암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와검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속으로는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걸 이렇게 빨리 알아차리다니….’
고생 좀 해보라고 일부러 와검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건만, 저놈은 한 시간 만에 그 비밀을 낱낱이 파헤쳤다. 놀라울 정도의 관찰력과 집중력이었다
“꺄악!”
카렌은 백우진의 검에서 휘도는 검은 소용돌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너, 너 그걸 어떻게!”
카렌의 턱이 덜덜 떨렸다. 백우진은 분명 와검의 와자도 몰랐건만 이제 파훼를 넘어서 와검의 묘리를 검에 담아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것도 자신의 검술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와검이라는 검술 묘리, 그 자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네.”
-어렵지. 그래서 네가 한 번에 성공한 게 믿기지 않는다.
‘오성이랑 특성 빨이야. 거기다 아직 멀었지.’
현재 사용하는 특성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 특성들의 힘으로 카렌의 검을 관찰한 덕분에 검에 와검의 묘리를 담을 수 있었다.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 소원을 말할게.”
“바, 바로? 지금?”
백우진은 빙긋 웃으며 카렌을 보았다. 카렌은 뭔지 모를 오한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한동안 나랑 좀 어울려줘야겠어.”
* * *
“하아….”
카렌이 연무장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일주일짼가.’
백우진은 지난 7일간 자신이 살고 있는 2블록에 머물렀다. 그는 끝없이 대련을 신청하며 자신이 익혀왔던 와검의 묘리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하지만 백우진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질문을 받아주고, 검술의 성취를 높이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많은 걸 얻었지.’
백우진 덕분에 자신의 앞을 막던 벽들이 단숨에 깨져나갔다. 지난 1년보다 백우진과 함께한 일주일 동안 더 큰 성장을 한 것 같았다.
‘고맙기도 하고.’
항상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사람들만 보다가 반대로 자신을 찾아와서 함께 어울려주는 백우진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도 저건 좀 심하지….”
카렌이 질린 표정으로 백우진을 보았다. 그가 든 검에서 작은 용오름 같은 검은 소용돌이가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제 좀 쓸 만해졌네.”
“조, 좀 쓸 만하다고? 너는 진짜….”
카렌이 이를 갈았다. 자신이 10년 넘게 수련해서 습득한 와검의 묘리를 고작 일주일 만에 익혀놓고서 느렸다니,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었다.
띵!
[상급 검술 속성 와검(渦劍)에 입문하셨습니다.] [돌발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 18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돌발보상이 지급됩니다.]“드디어 나왔네.”
백우진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완료창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밤낮이 따로 없는 일주일간의 수련 끝에 드디어 와검에 입문할 수 있었다.
-저 왈가닥을 수련시켜준 것도 도움이 되었지.
‘그래.’
카렌에게 와검의 묘리를 일방적으로 배우기엔 좀 미안해서 그녀도 수련을 시켜줬다.
카렌이 성장하면서 더 높은 성취의 파랑창검을 사용해준 덕분에 자신의 와검 역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각자의 성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어버린 좋은 결과였다.
‘오랜만에 뽑기나 해볼까.’
백우진이 돌발보상을 받겠다고 누르자, 허공에 100장의 카드가 나타났다.
-카렌이 보고 있는데 뽑게?
‘어차피 안 보이잖아. 그리고 내가 이상한 짓 많이 해서 신경도 안 쓸걸.’
백우진의 말대로 카렌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였다.
‘이걸로.’
-끄윽, 유, 유니크? 진짜 네놈은….
백우진은 뽑은 카드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그는 여전한 행운을 발휘하며 100장의 카드 중에 세 장도 존재하지 않는 유니크를 뽑아냈다.
[검술 속성의 문이 개방됐습니다.] [이해도가 높아지길 원하는 검술 속성을 선택하세요.]메시지와 함께 지금까지 백우진이 배웠던 검술 묘리 13개가 주르륵 나왔다.
“이거야 정해져 있지.”
백우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에 배운 와검을 선택했다. 뇌리에 벼락이 치며 익히지 못했던 와검의 흐름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시스템이 이 망할 놈은 안테나가 63빌딩이냐? 이렇게 꽉꽉 쳐막힌 곳에서도 퍼주네! 이렇게 된 거 퀘스트 때려치우고 그냥 퍼주지 그러냐? 앙?
시스템이 오랜만에 퍼주자, 흑암 역시 오랜만에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띵!
[당신의 빠른 성장에 흑암과 카렌이 경악했습니다.] [600포인트가 추가 지급됩니다.]흑암을 놀리듯이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나, 난 경악하지 않았어!
‘역시 넌 내 편이야.’
-아니라고!
* * *
3일 뒤. 4블록의 능력자들은 현왕의 벽 아래에 열을 맞춘 채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들에게서 강렬한 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안전이다. 오늘 작전은 속도가 중요하지 않아. 느리게 가도 괜찮다. 자신과 동료를 챙겨라!”
백연휘는 작전 시작 10분 전 단상에 올라가서 능력자들에게 작전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안전에 대해서 강조했다.
-쟤 정말 너희 집안사람 맞아?
‘나도 몰라.’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이 부하들에게 안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영 어색했다.
-여기 너희 아버지 있었으면 전부 뒈져도 좋으니, 나를 따르라고 했을 거다.
‘동의.’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심한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엘리트 다크엘프가 나타나면 상대하지 말고 물러나라. 내가 나서겠다.”
“예!”
4블록의 능력자들은 자신의 왼쪽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제 1분 남았다. 모두 마음을 다스리도록.”
백연휘는 그 말을 하며 뒤쪽에 있는 백우진을 힐끔 보았다. 두 형제는 잠시간 눈을 마주쳤다.
뿌우우우!
센터블록에서 수십 개의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능력자들 모두의 눈과 몸에서 파란 안광이 빛났다.
우우웅!
보조 특성을 가진 능력자들이 전 블록에 선사하는 축복이었다.
“가자!”
백연휘가 망토를 휘날리며 선두에 나섰고, 그 뒤를 현검대가 따라붙었다. 능력자 모두가 각자 정해진 위치를 고수한 채로 다크존을 향해서 달렸다.
“우리도 가자.”
“예!”
백우진의 지시에 문주영과 의검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전방에 오크 무리입니다!”
“좌측에서 오우거가 다가옵니다!”
“우측 하피입니다!”
“천천히 제거하면서 전진한다!”
백연휘의 검에서 길쭉한 검기가 솟구쳤다. 촤아악 소리와 함께 앞에 있는 오크들의 몸이 모조리 양분되었다.
-제대로 단련된 검기야. 저 녀석 네게 사기를 치는 것 같진 않군.
‘뭐?’
-검술은 검사의 성격을 나타낸다. 저 녀석은 백성현처럼 널 속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백성현의 경우가 있었기에 백연휘를 믿지 않았지만 볼수록 백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오우거 처리 완료했습니다.”
“하피들도 처리했습니다.”
마법사와 무인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상성에 맞는 몬스터를 상대해준 덕분에 몬스터들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지금처럼만 하면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간다!”
“예!”
백연휘는 능력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으면서 가장 앞에서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뒤에 있는 능력자들은 옆에서 들어오는 몬스터들만 처리하면 됐기에 생각 이상으로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백연휘와 현검대의 활약 덕분에 그레이존의 끝에 달할 때까진 약간의 경상자를 제외하곤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정지!”
백연휘가 손을 들어 올려 모두를 멈춰 세웠다.
“다크엘프다!”
백연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속에서 20마리의 다크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과 곡도, 건틀릿에 창까지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었고 그들의 뒤에는 수를 셀 수 없는 몬스터들이 붉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개진!”
“개진!”
백연휘의 지시에 무인들은 각자 정해진 조대로 진을 열었고, 마법사들은 진의 중심에 들어가서 전투의 보조를 준비했다.
“조장과 대주급들은 다크엘프를 맡아라!”
“예!”
대주와 조장들은 진에서 나와서 자신이 맡아야 할 다크엘프들을 노려보았다.
“개진!”
의검대도 검진을 개진하며 좌측에 있는 몬스터들을 노려보았다. 다만 백우진은 앞으로 나서지 않고 역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백연휘.”
텅 빈 허공에서 장난기가 실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촤아악!
공간이 갈라지며 허리에 곡도를 매단 남성 다크엘프가 나타났다. 인간의 언어는 그 다크엘프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저놈이 엘리트인가?”
“맞습니다. 엘리트 서열 9위에 있는 툴란이라는 놈입니다.”
“툴란….”
백우진이 툴란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엘리트 다크엘프의 모습을 살폈다.
‘저놈이 진짜 다크엘프 맞아?’
-맞다. 저놈이 우리 대륙에 있던 다크엘프다. 다만 그놈들보다도 더 강해졌군. 어둠의 기운이 굉장히 짙다.
툴란이라는 놈은 가짜 다크엘프보다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에 검은 눈동자가 흑진주처럼 뚜렷했다.
풍기는 기세 역시 가짜 다크엘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흉흉했다.
“툴란!”
백연휘가 투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백연휘. 너 혹시 이 친구 알아?”
툴란이 청의를 입은 중년인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중년인은 양팔과 다리가 잘린 상태에서 입으로 피를 게워내고 있었다.
“메튼!”
백연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흘 전 죽었다던 메튼이 살아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리 쪽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이 오셨거든. 그분의 능력으로 잠깐 되살렸지.”
툴란은 히죽거리며 메튼의 목을 잡고 흔들었다.
“네놈들이 감히!”
“자, 네 소원이 저 녀석 보는 거잖아. 말해줘. 네가 뭘 했는지.”
“끄윽, 부사령관님….”
메튼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말 고맙게도 말이야. 너희가 여기 온다는 걸 이 녀석이 전부 말해줬거든.”
“죄, 죄송합니다. 저, 저는….”
메튼은 입술을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이 허접한 작전을 짰다는 걸 알게 된 덕분에 우리도 역으로 작전을 세웠어. 생각해보니까. 오늘이 기회더라고.”
“뭐?”
“너희들이 여기저기 퍼져있을 때 우린 한곳에 모여서 새로운 다크존을 만들기로 했지. 우리가 어디로 갈 거 같아? 1블록? 2블록? 크하하하!”
툴란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광소를 터트렸다.
“너희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어.”
“끄으윽!”
툴란은 손아귀에 힘을 줘서 메튼의 목을 터트려버렸다. 퍼억 소리와 함께 메튼의 머리와 몸이 무너졌다.
“메튼!”
“아, 오해는 하지 마. 어차피 오래 못사는 놈이니까.”
4블록의 능력자들의 모두의 어깨에서 분노의 기세가 타올랐다. 기세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툴란은 갈기갈기 찢겨졌을 정도였다.
“난 다른 곳으로 갈 테니 내가 준비한 선물로 재밌게 놀라고!”
“툴란!”
“그거론 안 돼.”
툴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연휘의 검에서 시퍼런 강기가 솟구쳤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떨어지는 검강 앞에서 툴란은 웃었다.
콰아아앙!
오러의 파도가 몰아치며 앞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이 묵사발이 되었지만, 툴란은 티끌 하나 다치지 않았다. 이미 차원을 전환한 것이다.
“아직도 몰라? 그런 걸론 날 못 죽여.”
“닥쳐라!”
백연휘가 검강을 폭발시키며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했지만, 툴란에겐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또 보자고.”
툴란은 백연휘를 비웃으며 모습을 감췄고, 다크엘프와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콰아아아!
바로 그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던 백우진의 전신에서 흑색 광채가 피어났다.
“그냥은 못 보내지.”
* * *
“이 땅의 인간들도 학습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니까.”
툴란이 낄낄거리며 차원의 통로를 걸었다. 백연휘의 분노한 표정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멍청해.”
인간들의 작전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쪽에서 그 작전을 알게 되면 역이용하기 너무 쉬웠다.
그들의 멍청한 덕분에 손쉽게 새로운 다크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오늘 일로 회무가 더욱 멀리 퍼지겠군.”
회색 안개가 퍼질수록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편해진다. 이제 여길 정복하는 일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농땡이 좀 피우다가….”
툴란이 느긋하게 5블록으로 움직이려 할 때였다. 등 뒤에서 천이 찢겨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뒤를 돌아보자, 붉은 기운을 두른 흑검이 차원을 가르고 있었다.
찌지지직!
차원을 비집고 여는 불길한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온 몸의 피가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어딜 가려고.”
차원의 틈을 열고 생전 처음 보는 인간이 들어왔다. 인간은 서늘하게 웃으며 흑검을 겨누었다.
“목 위에 달린 거 놓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