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차원을 가르는 검 (10)
“쿨럭!”
백우진은 땅에 쳐 박히며 검은 피를 내뿜었다. 내상을 입고 밀려났음에도 그의 표정은 조금도 구겨지지 않았다.
-끝났군.
‘그래. 확실하게 벴어.’
고개를 들어 올려 인형처럼 멈춰선 하이엘프를 보았다. 그녀가 만든 강기의 구체에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겨났다.
캬아아앙!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강기의 구체가 풍선처럼 터져나가고, 세필리아의 얼굴 중앙에 붉은 실선이 나타났다.
낙일참이 강기의 구체를 넘어 세필리아까지 베어버린 것이다. 오러와 흑무의 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미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좋은 검이었다.
흑암이 만족스러운 고갯짓을 했다. 백우진은 갑작스럽게 각성한 강기를 이용해서 최고의 검로를 펼쳤다. 칭찬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낙일참은 구체를 베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낙일참은 태생이 구체 형태의 공격을 베어버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검로다. 그 능력 덕분에 하이엘프의 강기를 베고 승리할 수 있었다.
툭.
세필리아가 손에 든 검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왼쪽 눈동자의 어둠이 흩어졌다.
흰자가 밖으로 이동하며 검은자가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의 눈빛을 되찾은 것이다.
“아….”
세필리아의 왼쪽 눈은 투명하리만큼 반짝였지만, 오른쪽 눈은 여전히 어둠에 먹혀 있었다.
-죽어서도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지독하군.
‘…’
하이엘프의 왼쪽 눈은 슬픔과 미안함을 담고 있었고, 오른쪽 눈은 자신에 대한 원망과 살기로 번들거렸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어둠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었다.
“끝을 내주는 게 예의겠지.”
백우진이 세필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악행을 멈춰주어서 고맙고,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죄송하다 말하는 것 같았다.
스윽.
세필리아가 덜덜 떨리는 왼손으로 땅에 떨어진 날카로운 단풍잎형태의 목걸이를 가리켰다.
‘저게 뭐지?’
-하이엘프의 상징이 되는 목걸이다. 네 검에 베여서 끈이 떨어진 모양이군.
‘가져가라는 건가?’
백우진이 고개를 들어 세필리아를 쳐다보자 그녀가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오른쪽 얼굴은 이를 갈고 있었다.
“알겠소.”
백우진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세필리아가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눈매에서 마지막 눈물이 흘러내리며 그녀의 몸이 녹색 재로 변해 흩날렸다.
세필리아의 재가 허공에 퍼지며 공간을 덮은 흑무가 연하게 변해갔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백우진은 세필리아의 목걸이를 주우며 서슬 퍼런 안광을 빛냈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라,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베어버릴 때다.
-저 썩을 나무를 장작으로 써버리자고!
“저 따위 건 장작으로도 못 써.”
백우진이 흑목을 노려보았다. 몸과 오러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흑목을 베기에는 충분했다.
[쿠오오오!]백우진의 살기를 느낀 흑목이 포효를 내질렀다. 표호를 들은 다크엘프들의 눈이 검게 물들며 백우진을 향해 몰려들었다. 흡사 검은 쥐떼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백우진이 당황하지 않고 흑암을 잡았다. 미친개처럼 뛰어오는 다크엘프들을 향해 흑암을 그어 올렸다.
치이이잉!
다크엘프들의 발밑에서 어둠으로 빚은 칼날이 솟구쳤다. 흑암의 두 번째 검 암인의 발동이었다.
퍼어어억!
다크엘프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암인의 칼날은 눈이라도 달린 듯 단 하나의 다크엘프도 놓치지 않았다.
“끄윽!”
“커허억!”
“크악!”
이백이 넘는 다크엘프들은 심장이 꿰뚫린 채 바닥에 쳐 박혔다.
“끝을 보자.”
백우진은 다크엘프의 시체를 밟으며 흑목에게 다가갔다.
[쿠아아아아!]하지만 흑목의 포효는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대지를 뒤흔들 정도의 괴성을 다시 한 번 내질렀다.
찌지지직!
비닐 봉투가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흑목의 주변으로 검은색 차원의 문 수십 개가 열리며 몬스터와 다크엘프들을 비처럼 쏟아냈다.
-너 저것도 예상했냐?
‘…’
-최후의 발악이다. 다가가려면 쉽진 않겠어.
‘힘을 아껴야하는데…’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러와 체력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이 이상 오러와 체력을 낭비하면 흑목을 베지 못할 수도 있었다.
쿠구구구.
흑목의 발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크존 전체에 퍼진 두꺼운 뿌리를 문어발처럼 들어 올리며 길을 막기 시작했다.
“추잡한 짓은 다하는구나.”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끝까지 더러운 짓만 골라하는 놈이었다.
-정령은?
“안 돼.”
혹시나 해서 정령을 소환해보려 했지만 소환되지 않았다. 좀 위험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흑목에 접근해서 끝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대체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냐!”
백우진이 오러를 써서 몬스터들을 뚫으려 할 때 뒤에서 우렁찬 노호성이 들려왔다.
“사령관님?”
뒤를 돌아보자 왼손으로 창을 잡고 있는 황병훈이 보였다. 그 뒤에서 백연휘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흑무가 연해졌다. 오러가 없어도 몸은 움직일 수 있지 않느냐! 전부 일어나라!”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넌 흑목을 베는 것에만 집중해.”
황병훈과 백연휘가 백우진을 지나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오러는 바닥이었지만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었다.
“믿고 있었습니다!”
“역시 도련님!”
“저희도 쓸 만했죠?”
“나중에 고기 사주셔야합니다!”
문주영, 홍남기, 박혜리, 김우혁이 웃으며 백우진을 스쳐지나갔다.
의검대 모두가 길을 열겠다는 듯 얼마 남지 않은 오러를 날카롭게 세웠다.
“그렇지. 내가 여기서 빠질 수는 없지.”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잖아! 가자고!”
“으아아아!”
쓰러져 있던 능력자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기를 움켜쥐고, 투지를 피워내며 백우진의 앞에 섰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능력자가 백우진의 앞에 섰다. 자신이 죽더라도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지였다.
“마지막 선물인가.”
백우진이 녹색 빛을 내뿌리는 세필리아의 목걸이를 보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 땅을 지켜왔다! 마지막 싸움에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한다면 어디 가서 무어라 말할 것이냐!”
황병훈의 목소리엔 오러가 없었지만 그의 의지가 담겨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길을 열어라!”
“가자!”
황병훈과 백연휘가 가장 앞에서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아!”
“돌격!”
“흑목으로 가는 길을 열어라!”
수백 명의 능력자들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그들의 뜀박질에 대지가 쿵하고 울렸다.
쿠구구구!
황병훈과 백연휘의 투지가 담긴 돌진에 몬스터들이 움찔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쏴라!”
능력자들이 돌진함과 동시에 원거리 능력자들이 활과 쇠뇌, 투창, 저장해 놓은 마법들을 쏘아냈다.
퍼버버벅!
호를 그리며 떨어지는 화살과 투창이 몬스터들의 살을 꿰뚫었다. 그리 강하지 않아도.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고 다른 능력자들에게 도움이 되기엔 충분한 공격이었다.
“으아아아!”
능력자들이 돌진하며 몬스터들의 바다를 뚫기 시작했다. 오러가 없어도 투지로 버텼고, 동료들의 신뢰로 마음을 다잡았다.
“….”
백우진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감동을 받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뜨거워지는군.
“우리도 가자.”
백우진이 암인검을 쥐고, 동료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달렸다.
“키아아악!”
“카악!”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가십시오!”
몬스터들과 다크엘프가 나타나면 능력자들이 그 앞을 막아주었다.
능력자들은 평소 무력의 10분의 1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기세와 투지는 전력 그 이상이었다.
“으아아아!”
“크아아!”
황병훈과 백연휘는 정중앙에서 길을 열었다. 오러가 바닥임에도 파죽지세로 적을 몰아쳤다.
[쿠오오오오!]백우진이 접근하자 흑목이 발광을 하듯 자신의 뿌리를 들어 올려 길을 막고, 땅을 뒤흔들었다.
“크아아아!”
“흐압!”
황병훈과 백연휘가 무기를 들어 흑목의 뿌리를 막아섰다.
콰아아앙!
두 거인은 한 줌이 될까말까 한 미약한 오러로 그 거대한 뿌리를 막아섰다. 격을 벗어난 정신력이었다.
“이제야 만질 수 있구나. 이 지랄 맞은 나무를….”
“힘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황병훈과 백연휘는 흑목의 뿌리를 만질 수 있음에도 베어내지 못하는 것에 이를 갈았다.
“부탁하마.”
“부탁한다.”
황병훈과 백연휘가 흑목의 뿌리를 억지로 비틀어 길을 만들었다. 둘은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
백우진은 두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말은 필요 없었다. 고갯짓 한 번이면 족했다.
두 사람이 아니, 수백의 능력자들이 열어준 길을 내달렸다. 드디어 흑목의 거대한 밑동이 보였다.
툭.
백우진이 암인검을 놓고, 흑암을 양손으로 잡았다. 단전에 남은 모든 오러를 쏟아 부었다.
쿠구구구.
흑목의 색이 반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 차원을 전환하려 하고 있었다.
“절대 못 간다!”
흑암의 칼날이 지평선에 닿을 것처럼 늘어났다. 흑암의 세 번째 검 흑살의 발현이었다.
“꺾여라!”
백우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검을 내리그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충격파가 터졌지만 흑목은 베이지 않았다. 흑무와 남은 모든 기운을 끌어올려 검붉은 막을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끄으으윽!”
백우진이 부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지금 흑살을 풀어버린다면 다시 공격할 힘이 없다. 무조건 베어야했다.
-흑살의 칼날을 더 예리하게 가다듬어! 낭비되는 기운을 모아라!
‘크윽!’
-저 망할 놈을 놓친다면 다음엔 뭐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베어야 한다!
“알…고 있다고!”
백우진이 악을 쓰며 검에 집중했다. 흑암이 전해주는 기운을 느끼며 흑살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갈았다.
치이이잉!
하지만 흑목의 반항은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거셌다.
검은 스파크가 튀길 정도로 지독한 어둠의 기운을 막에 쌓아 놨다. 생명의 위기에 모든 힘을 방어로 돌린 것 같았다.
“크으으!”
막이 뚫릴 기세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백우진은 물러나지 않았다. 숨을 멈추고 모든 힘과 정신을 벤다는 것 하나에 집중했다.
-베어라!
흑암 역시 끌어올린 기운을 백우진에게 전하며 흑목을 베는 것에 몰두했다.
한 인간과 한 검이 흑목을 베는 것에 모든 정신력을 쏟아 부었다.
흑암의 기운이 백우진을 휘돌고, 백우진의 오러가 흑암의 칼날을 채웠다.
둘의 기운이 그림자에 떨어뜨린 먹물처럼 검게 일렁였다.
백우진의 검이자 흑암의 검.
흑암의 검이자 백우진의 검.
두 개의 검이자 하나의 검이 날카롭게 피어났다.
백우진의 눈동자에 기광이 어렸다.
지고의 경지에 오른 검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검합일의 경지.
홀로 닿기엔 까마득한 신겁합일의 경지를 백우진과 흑암이 함께 이루어냈다.
[백우진과 흑암의 첫 번째 검 천의가 만들어졌습니다.]흑암의 칼날을 타고 정대한 기운이 솟구쳤다.
밤하늘 보다 어둡고, 별보다 반짝이는 검은 광채에 파천의 기운과 협의 의지가 담겼다.
뿌득!
흑목이 만들어낸 막에 금이 갔다. 메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진 막이 사정없이 깨어졌다.
치이익!
흑암의 칼날이 흑목에 닿았다. 살아 있는 생명처럼 흑목이 부들부들 떠는 게 느껴졌다.
“으아아아!”
백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다리를 땅에 박고 허리를 틀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
쩍!
벼락이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흑목의 몸통을 가른 흑암이 되돌아왔다.
쿠구구구,
흑목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내려앉힐 굉음과 함께 땅으로 추락했다.
어둠에서 피어나 수천의 생명을 잡아먹은 타락한 세계수가 가라앉았다.
콰아아아아!
광대한 빛이 흑무를 지워내며 하늘을 열었다. 서산에 걸린 태양이 붉은 서광이 되어 승자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몬스터들이 힘을 잃고 쓰러지고, 인간들이 울부짖으며 환호를 내질렀다.
악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