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차원을 가르는 검 (11)
“하이고, 저걸 또 보게 되다니.”
7등급 능력자 박현서가 전방을 뒤덮은 회색 안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7등급 마법사 플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봐도 속 싶은 곳에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안개였다.
“3년만 인가?”
“그러네. 3년 쯤 됐지.”
박현서와 플린은 황병훈의 밑에서 6년간 싸워오다가 3년 전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전방에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황병훈의 요청에 의해서 3년 만에 전방에 오게 된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좀 늦을 거라던데. 원래 계획보다 빨리 와달라고 부탁하셨잖아. 우리가 제일 먼저야.”
원래 2주 후에 오기로 했었지만, 황병훈이 다급하게 호출했기 때문에 둘은 먼저 전방에 도착했다.
“근데 그거 정말일까?”
“뭐?”
“백우진이라는 한국인이 흑목의 뿌리를 베고, 엘리트 다크엘프 잡았다는 거 말이야. 그거 때문에 난리 났잖아.”
플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황병훈도, 백우진의 아버지인 백천화도 실패한 일을 20살도 안 된 어린 검사가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일걸.”
“저, 정말?”
“사령관님이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잖아. 그리고 그 백우진이라는 검사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능력자 중 하나야.”
“그렇게 유명하다고?”
“나이만 보면 믿기 힘들겠지. 그가 최근에 한 게….”
황병훈은 백우진이 전방에 오기 전에 해결했던 놀랍고 엄청난 사건들을 말해주었다.
“미, 미친! 그런 일을 처리한 녀석이 20살도 안 됐다고? 이, 인간 맞아? 괴물 아니냐?”
“괴물 맞지. 처음엔 천재라고 불렸는데 이제는 괴물이라고 부르더라. 협웅이나, 협제라고도 하던데.”
“그러면 정말 기대해도 되는 거겠네?”
“흑목을 베는 건 몰라도 다크존은 다 지울 수 있지 않을까?”
박현서와 플린은 발걸음에 백우진에 대한 기대감을 담으며 그레이존으로 향했다.
“저기 보이네. 지랄 맞은 흑목!”
“시발! 보자마자 욕 나오네!”
두 사람은 하늘까지 솟구친 흑목을 보고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보자마자 쌍욕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누가 저 흑목을 당장 베어준다고 한다면 진짜 뭐든지 할 텐데. 뭐든지!”
“뭐든지?”
“그래. 광화문에서 빤쓰 벗고 춤추면서 노래도 부를 수 있어.”
박현서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한 농담이었지만, 되기만 한다면 더 한 것도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왜? 네가 베어 볼텨?”
“네가 빤스벗고 춤추는 모습을 보려면 베어야겠는데?”
“크하하하!”
두 사람은 싱거운 농담을 안주삼아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웃고 나니, 답답함과 짜증이 조금은 가신 것 같았다.
“이제 들어가자.”
“하아, 그…어?”
흑목을 보며 한 숨을 내쉬던 박현서가 입을 쩍 벌렸다.
“야! 저, 저거! 저거 봐!”
“뭘 보라는…허억!”
두 사람의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고, 입은 턱이 빠질 것처럼 벌어졌다.
“아아아!”
“으어어….”
저주받은 흑목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쿠우우웅!
흑목이 가라앉으며 대지가 뒤흔들렸다. 하늘로 섬광이 솟구치며 다크존과 그레이존을 덮은 검은 안개와 회색 안개가 모조리 사라졌다.
후우웅.
전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3년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내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 지독하고 텁텁했던 안개 냄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뭐, 뭐야! 뭐냐고!”
“이게 무슨….”
“허어억!”
차원문을 보호하는 능력자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떨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이 일순간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능력자들은 굳은 듯 멈춰서 안개가 사라진 전방을 끝없이 바라보았다.
“야.”
플린이 넋이 나간 눈으로 박현서를 보았다. 박현서가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플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광화문…빤스….”
**
백연휘는 오늘 두 번 경악했고, 한 번의 눈물을 흘렸다.
첫 번째 경악은 백우진이 하이엘프와 싸우며 강기를 각성했을 때였다.
성장이 빠르다는 것도, 싸우면서 성장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단숨에 강기에 이를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백우진은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괴물이었다.
두 번째 경악은 물론 백우진이 흑목을 벨 때였다. 흑목이 만들어낸 막은 지독하리만큼 강력했다.
솔직한 생각으론 백우진이 그 막을 부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백우진은 그 순간 한 번 더 각성했다. 검과 하나가 되는 경지, 신검합일에 올라 흑목을 베어버렸다.
그 순간 황병훈과 자신의 표정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경악을 넘어선 그 무언가의 감정과 표정이었다.
“아….”
뚫린 하늘에서 붉은 태양빛이 쏟아졌다. 몬스터들이 녹아내리고, 사람들은 환호를 터트렸다. 이 땅에서 수십 년 만에 들려오는 기쁨의 울부짖음이었다.
“으아아아아!”
백연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부끄럽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그대로 즐기고 싶었다.
“드디어, 드디어 끝이 났구나.”
황병훈이 말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주름진 노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십 년을 싸워 드디어 승리를 쟁취해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도, 막을 생각도 없었다.
“사령관님….”
백연휘는 황병훈의 눈물을 보고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역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우아아아아!”
“이겼다!”
“흑목이 꺾였다!”
“우리가 이겼어!”
능력자들이 하늘을 향해 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목이 찢어질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날렸다.
“백우진!”
“백우진! 백우진!”
한 검사가 백우진의 이름을 부른 것으로 모든 능력자들이 백우진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백우진!”
“백우진!”
감동, 경악, 고마움, 미안함, 감사함, 동경, 염원 구원, 영웅, 능력자들은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담긴 울림으로 백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가자! 오늘의 영웅을 맞이하러!”
“예!”
황병훈과 백연휘가 활짝 웃으며 뿌리를 넘었다. 먼지가 걷혀가는 흑목의 밑동으로 다가갔다.
“어?”
“음?”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렸다. 흑목이 쓰러지며 터져 나온 먼지가 거의 가라앉았음에도 백우진이 보이질 않았다.
“뭐, 뭐야! 어디 갔어!”
“우진아! 우진아!”
백연휘가 입술을 깨물며 흑목으로 달려갔다. 백우진이 없었다. 어딜 찾아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땅에 박혀 있는 그의 애검뿐이었다.
“도련님!”
“이번에도 믿고 있었습니다!”
“빨리 고기 먹으러 가죠!”
“음? 도련님은?”
“도련님이 어디….”
의검대가 재잘거리며 흑목으로 다가왔다. 웃음만이 가득했던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도, 도련님!”
홍아라가 멍하게 풀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백우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 사령관님!”
“도련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련님은 어디 계신 겁니까!”
“모, 모르겠다. 사라졌어.”
백연휘가 넋이 나간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진이가 흑목을 벤 것은 확실하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흑목이 넘어가고 먼지가 피어올랐을 때인지, 혹은 빛이 솟구쳤을 때인지 모르겠다.
“서, 설마 돌아가신 겁니까?”
홍남기의 입에서 모두가 꺼내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그건 아니다. 죽지 않았어.”
황병훈이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백우진이 흑목을 베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다. 힘이 다해서 쓰러졌다면 모를까 죽었을 리가 없었다.
“도련님….”
홍아라는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암인검을 끌어안았다.
**
다크존이 지워지고 흑목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졌다.
대형 길드의 주인, 협회의 간부, 마켓의 회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거물들이 전방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전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고, 흑목이라는 최고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전방이 축제 분위기일거라 생각했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무거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흑목이 무너지고, 다크 존과 그레이 존이 모조리 정화됐음에도 전방의 능력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몬스터의 숫자와 위험성이 줄어들어 더 이상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전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황병훈부터 말단 능력자까지 모두가 순번을 정해서 흑목이 있었던 자리를 지켰다.
전방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백우진이 대단한 활약을 했다는 건 알겠지만,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황병훈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그에게 생명의 빚을 졌다고.
그가 아니었다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그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을 거라고.
그가 아니었다면 흑목을 베는 것도, 다크존을 정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라고.
흑목의 주인은 백우진이며 그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 누구도 흑목에 손을 댈 수 없고, 자신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초대형 길드의 주인들, 협회의 간부들, 마켓의 주인과 한 손에 꼽을 최고의 능력자들이 찾아왔지만 황병훈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흑목의 뿌리 하나, 나뭇가지 하나 넘겨주지 않았다.
황병훈만이 아니었다. 전방의 능력자들도 뒤늦게 찾아온 외부의 거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자신들과 함께 싸운 사람은, 자신들을 구원해준 사람은 저 잘난 인간들이 아니라 백우진이었으니까.
전방의 능력자들은 맹세했다.
악몽을 끝낸 영웅이 돌아올 때까지 이 땅을 지키기로.
**
꿈을 꾸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석상이 보였다. 인간과 악마의 외형을 동시에 가진 기괴한 외형의 석상이었다.
석상 아래엔 두 사람이 있었다.
왼쪽에 있는 키가 큰 남자는 흑암이었다.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안개에 감싸여 있지 않았다.
야성적이라고 할 만큼 거칠어 보이는 외모였지만, 눈빛에선 장대한 의협의 기상이 깃들어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흑암과 반대로 선이 고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금발벽안에 선이 얇아 여자라고 해도 믿을 법한 남자였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음습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은 다섯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흑암은 이를 갈며 분노를 터트렸고, 금발의 남자는 흑암을 비웃으며 손을 저었다.
적이나 원수라고 생각했지만, 흑암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보기와 달리 친했던 관계인 듯싶었다.
흑암과 금발 남자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하고 동시에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서로를 노려보던 두 검사가 동시에 비호처럼 뛰어들었다.
흑암은 섬야, 암인, 흑살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진 기술들을 사용했지만, 금발의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
정교하면서도 기습적이고 살기 짙은 공격으로 흑암과 동수를 이루었다.
싸움은 격렬했다. 서로의 목숨까지 노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폐인을 만들법한 공격들이 이어졌다.
노을부터 일출까지 싸운 두 사람이 동시에 검을 내렸다.
흑암은 이를 갈며 고개를 숙였고, 금발의 남자는 등을 돌려 떠나갔다.
“…!”
흑암이 입을 열어서 금발의 남자를 부르는 순간 꿈이 깨졌다.
**
“헉!”
백우진이 거친 숨을 뱉으며 눈을 떴다. 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흑암이 보였다.
“흑암!”
-이제야 일어났군.
“네 꿈 봤지?”
-물론이다. 예상대로야.
“어? 그, 그럼 그 금발이 누군지….”
-나 참 잘생겼더구나. 내 예상대로 난 절정의 미남이었어.
흑암이 흡족하게 웃으며 검날을 끄덕였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고갯짓이었다.
“넌 진짜….”
-농담이다. 아쉽게도 그 놈이 누군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 놈을 보자 있지도 않은 가슴이 아리더구나.
흑암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씁쓸함이 느껴졌다.
-대충 돌아가는 것을 봤을 때 그놈은 내 친구거나 지인으로 보였다. 서로 의견의 충돌이 생긴 것 같더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친해보였으며 어떤 일로 대립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흑암의 기억에서 한 명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분명 중요한 인물일 것이다.
-내 꿈은 나중에 생각해라. 어차피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백우진이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여긴 대체 어디야?”
벽과 천장에는 누런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자신은 누더기 같은 담요를 덮고 있었다. 전방의 의무실은 아니다. 그곳은 여기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리된 곳이었으니까.
“치료는 왜 이 모양이고?”
붕대와 반창고같은 것들이 몸 여기저기에 붙어있긴 했지만 굉장히 어설펐다. 수액도 없었고, 회복약이 아니라 약초를 바른 것 같았다.
영웅 대접은 아니더라도, 이런 대우를 받을 리는 없었기에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나도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뭐?”
-네 눈으로 직접 보아라.
흑암이 검날로 창문을 가리켰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백우진의 입이 조개처럼 쩍 벌어졌다.
“뭐, 뭐야! 여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