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마검 대 신검 (3)
실비아는 세계수를 피울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며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고, 백우진은 회의실 앞에서 기다리던 세린에게 성 내부를 안내 받았다.
“엘프족은 실비아님, 드워프족은 타이쿤님 그리고 저희들은 데플님을 따르고 있어요.”
세린은 린덴 성 내부에 형성된 종족들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타이쿤님은 회색 수염 부족의 지도자세요. 전투도 뛰어나시지만, 대장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작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시대요. 다만 말수가 적으세요. 일주일에 한 마디 하실까 말까에요.”
-회색 수염 부족이면 믿을만하지.
‘유명해?’
-드워프 중에서도 손재주가 뛰어나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다만 저 아이의 말과 달리 전투는 별로야.
“음, 그리고 데플님은….”
세린은 다른 지도자들을 말할 때와 달리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원래는 용맹하고, 자상하시고, 자신감 넘치는 분이셨어요. 하지만 그 일이…어? 저 분이 데플님이세요.”
세린은 말을 하다말고 성벽쪽으로 향하는 금발의 청년을 가리켰다.
“음….”
백우진은 데플이라는 청년과 그 뒤를 따르는 기사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힘들어 보이는데.’
안색이 창백하고, 표정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몸에 맞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데플님은 린덴 성의 차기 성주셨어요. 신검의 주인에게 성주님이 돌아가셔서 갑작스럽게 후계를 잇게 됐죠.”
세린은 안스러운 눈으로 데플의 등을 바라보았다.
“전대 성주님이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셨고, 그분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아직도 많이 힘들어하고 계세요.”
-벗어나지 못한 거로군.
‘쉽지 않겠지.’
세린의 말을 듣고서야 데플이 왜 저런 모습이었는지 이해가 갔다.
눈앞에서 존경하는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봤으니,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 대단하다 할 만 했다.
“실비아님, 데플님, 타이쿤님 세분이 회의를 해서 성 내부의 일을 결정해요.”
“세 종족이 모여 있는 것치고는 생각보다는 단합이 잘되는 느낌이네.”
“오래 같이 있기도 했고,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많으니까요. 종족을 떠나서 동료에요!”
세린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로 다른 종족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 위기를 넘겨왔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 상태였다.
“신검의 노예들이 나타나는 주기는 어떻게 되지?”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났지만, 요즘에는 그 빈도가 늘어나고 있어요. 거의 매일 나타나요.”
-더 이상 유인이 통하지 않아서 더 자주 나타나 협박을 하는 건가?
‘그런 거 같아.’
신검의 주인이라는 놈은 초롱 아귀처럼 빛을 따라 이곳에 지원 온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점점 협박이 통하지 않기에 더 자주 미끼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신검의 주인이라는 놈의 이름이 뭐지?”
“보란 블리크에요.”
-쯧, 블리크 가문이었군.
‘알아?’
-그 하이엘프의 말대로 검의 명가다. 정대한 검술을 사용하고, 사람들의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밝았지.
흑암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블리크 가문과는 몇 번 겨룬 적이 있었지만, 문제가 생겼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성격이 좋았던 사람들이었다.
“블리크 가문은 중앙까지 와서 저희와 드워프, 엘프들이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셨대요. 하지만 보란 그 자가 모두를 배신하고 지원군이 숨은 위치와 그들의 약점을 제국에 팔아넘겼어요.”
“허!”
-무슨 그런 미친놈이 있어!
“그자가 판 정보 때문에 블리크 가문의 검사들과 지원군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어요. 그래서 이곳에선 그자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아요.”
“음….”
실비아나 다른 사람들이 보란 블리크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가 그의 악마 같은 행동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어요. 그 악마가 쳐들어오면 다 죽을 걸 알고 있으니까요.”
세린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불안한지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괜찮을 거야.”
백우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세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세린을 본 건 오늘이 처음 이지만, 이런 어린 아이가 성벽에 나와서 싸우고, 매일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것에 속이 쓰렸다.
-여러 가지로 복잡하군.
‘복잡할 거 없어.’
-뭐?
‘우리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 달뿐이야. 그 동안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면 돼. 보란이라는 쓰레기 하나를 죽이고, 라인 숲에 세계수를 심어서 모두를 보호한다. 간단하잖아.’
-그렇게 들으니까 간단하긴 하네.
흑암이 픽하고 웃었다. 백우진의 간단한 정리가 마음에 드는 웃음이었다.
“음, 백우진님이 계약한 정령은 뭐에요?”
세린은 울었던 게 창피한지 눈가를 쓸며, 화제를 전환했다.
“전 이 아이에요.”
“음?”
세린이 손을 흔들자 손바닥 크기의 실프가 나타났다. 백우진은 실프를 보고 고개를 갸웃 거렸다.
“네가 가진 기운은 실프가 아니라, 진을 소환해도 될 거 같은데.”
“그 말은 실비아님에게도 들었어요. 하지만 세계수가 없어서 상위 정령과 연결되기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랬군.”
세린과 엘프들이 가진 정령의 기운이 꽉 막힌 느낌이라 이상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세계수가 없어서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수준의 정령밖에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달라진 게 없었는데.”
“네?”
“이그니스.”
백우진의 부름에 붉은 공간이 열리고, 강아지 크기의 이그니스가 나타났다.
[캬웅?]이그니스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치킨은 없냐는 듯 뚱한 표정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저놈도 참 일관성 있다니까.
“오랜만에 나왔는데 보자마자 치킨이냐?”
“꺄악!”
백우진과 흑암이 한숨을 내쉴 때 세린은 이그니스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너무 귀여워요! 이 아이는 뭐죠?”
“이그니스. 내 불의 정령이야.”
“마, 만져 봐도 될까요?”
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흘리고 있었다.
“괜찮아.”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그니스는 홍아라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쓰다듬어지는 것엔 익숙했다.
[크함…]이그니스는 세린의 손길을 즐기며 백우진을 흘낏 보았다. 정말 치킨은 없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중에 배터지도록 줄게.”
이그니스는 콧바람을 내뿜고서 쩝 하고 입을 다물었다.
-맞다! 이제 생각났어!
‘뭐가? 이곳에 대한 좋은 생각이라도…’
-내 드라마는 어떻게 할 거야!
“….”
**
다음날 백우진은 홀로 성을 돌아다녔다.
대낮임에도 경계를 서는 자들은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다만 눈동자에 담긴 불안감은 숨길 수가 없었다.
-너한테 관심이 많은데?
‘씨앗 때문이겠지.’
어딜 가든 여러 시선이 따라붙었다. 저들은 자신의 무력이나 정령의 기운을 느낀 게 아니었다.
외지에서 온 인간이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사실 이 성에 있는 놈들을 보면 버틴 게 용할 정도다.
‘그래. 다들 수준이 낮아.’
이 성에 있는 자들 중 자신의 무력이나 정령의 기운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전투적으로 전혀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신경 끄고 구경이나 하자고.’
백우진은 누가 시선을 주던 신경 쓰지 않고, 성을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데플이군.’
백우진은 서쪽 성벽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의 성주라는 데플과 마주쳤다. 그는 잠시 멈춰서 자신을 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쳐갔다.
-여유가 없다. 곧 무너지겠어.
‘눈이 죽어 있어.’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어린 나이에 성주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았기 때문인지 그의 눈은 심해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래가지 않아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았다.
쩡!
백우진이 혀끝에서 씁쓸함을 느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망치소리가 들려왔다.
-음?
‘망치소리?’
-장난 아닌데? 김장훈 영감 이상이다.
김장훈 이상의 격을 쌓은 망치소리였다. 백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망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쩡!
긴 회색 수염을 가지런히 묶은 부리부리한 눈의 드워프가 널따란 철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화로의 불씨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쯧!”
한참 쇠를 두드리던 드워프가 혀를 차며 두드리던 철판을 던져버렸다. 그는 다른 철판을 들기 위해서 고개를 들다가 입구 앞에 선 백우진과 눈을 마주쳤다.
“어…?”
드워프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틀고서 턱을 쩍 벌렸다.
“호, 혹시 자네가 세계수의 씨앗을 가져왔다는 인간인가?”
“그렇습니다.”
“허, 다들 눈까리가 삐었구만.”
“네?”
“자네 같은 검사를 못 알아보고, 하급 정령사라 하다니, 아주 미친놈들이야! 크하하하!”
드워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박수를 치며 광소를 터트렸다.
-너를 알아보는 자도 있군.
‘김장훈 장인님 때도 그랬지. 장인들이 눈치가 좋은 건가?’
성에 있는 사람들은 백우진의 무력을 느낄 수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정령사라 여기고 있었다.
엘프들도 세계수가 사라지며 감각이 떨어졌기에 백우진의 정령을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수준이 백우진보다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의 드워프는 유일하게 백우진이 감춰둔 무력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난 타이쿤이라고 하네.”
“드워프 족장이신….”
“맞네. 원치 않게도 내가 지도자를 맡고 있지.”
세린이 말했던 드워프족장이자, 대장인인 타이쿤이 바로 앞에 있는 드워프였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되나?”
“19살입니다.”
“저, 정말인가? 그 나이에 그 수준이라고?”
“그 정도로 대단하진….”
“겸손이 과하군. 내 450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 나이에 자네 정도 무력을 가진 자는 처음보네.”
세린은 타이쿤이 말이 없다고 했지만 백우진에게는 수다쟁이나 다름없었다.
“신체와 검력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깝게 수련되어 있군. 보면 볼수록 대단해. 어?”
타이쿤은 백우진을 칭찬하다가 흑전호포를 보고 눈을 빛냈다.
“설마 이 옷의 재료 만티코어 렉스의 가죽인가?”
“그렇습니다.”
“재료도 최상이지만 제작 솜씨도 나쁘지 않아. 투박한 면이 조금 보이지만 그 이상으로 정성이 깃들어 있어. 그것도 자네의 몸에 딱 맞게.”
타이쿤은 나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마음이 깃든 훌륭한 옷이야. 좋은 물건이구만.”
“감사합니다.”
백우진이 활짝 웃었다. 서인아의 칭찬을 듣자, 자신의 일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야. 세린이 저 영감 과묵하다고 하지 않았냐? 떠벌이 그 자체인데?
‘그러게.’
백우진도 동의를 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네는 그런 검기를 세워놓고 왜 검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겐가?”
“검은 있습니다.”
백우진은 흑암을 흘낏 보고 대답했다.
“허, 벌써 마음의 검을 세운 건가? 정말 대단하구먼.”
“네?”
타이쿤은 백우진의 말을 마음대로 해석해 버렸다.
“자네 같은 대단한 검사가 그런 평범한 의복을 걸치고 있다니, 못 보갰군.”
“음…”
백우진이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전투복이 찢어져서 세린이 준 얇은 옷과 가죽 갑옷을 입은 상태였다.
“딱 보니까. 철제는 안 끼지?”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자네에게 딱 맞는 갑옷을 만들어주지. 마침 좋은 재료도 있고.”
“네? 갑자기 왜….”
“우리를 구해줄 구원자가 나타났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않겠나.”
타이쿤은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아부처럼 말했지만, 그런 의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모두들 지쳐 있다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할지. 이제 지원도 오지 않아서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어. 그러다 실비아가 자네 이야기를 하더군. 자네의 도움으로 세계수를 피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음….”
“솔직히 별로 희망을 가지지 않았네. 세계수의 씨앗이 있어도 숲에 있는 그 괴물을 밀어낼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자네라면 그 괴물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네.”
“전 아직 그가 누구인지 보지도 못했습니다.”
“자네의 검기라면 꺾을 수 있을 걸세. 부탁하네.”
타이쿤이 백우진의 손을 꽉 잡았다. 실비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들은 타 종족이 아니라, 꼭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6일 안에 자네에게 딱 맞는 갑옷을 만들어주겠네!”
**
라인 숲의 중앙.
새하얀 백골로 이루어진 왕좌에 적발의 미남이 앉아 있었다. 그 앞엔 성스러운 백광을 피워내는 검이 박혀 있었다.
“보란님.”
남자의 앞에 다크엘프가 나타나 부복했다.
“세이란 연합과 슈칸성 쪽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린덴 성의 지원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그래? 하긴 오래 해먹긴 했지.”
적발의 청년 보란이 피식 웃었다. 그간 성과 외부에서 오는 지원들을 모조리 죽였으니, 아예 지원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분은 아직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더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쯧, 지루해지는군.”
보란이 해골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딱 일주일만 더 건드려보고 그래도 안 움직이면 끝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저 성에서 살려서 데려올 놈들은 하이엘프 년과 늙은 드워프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준비해놓겠습니다.”
다크엘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보란의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저 성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군.”
보란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성스러움과 사이함이 동시에 깃든 기괴한 웃음이었다.
“다음엔 어딜 먹어치울까?”
**
신검의 노예가 된 빛의 인간들은 3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린덴 성을 둘러쌌다.
그들은 해가 진 저녁에 나타나서 해가 뜰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성을 지켜만 보았다.
성검의 노예들은 살아생전 가지고 있던 외모의 특징을 그대로 가진 채로 나타난다.
성벽을 지키는 자들은 동료 혹은 자신들을 구하러 왔던 지원군들이 역으로 성을 노리는 것을 막아내는 괴로움을 매일 같이 겪고 있었다.
대놓고 공격하는 것 이상으로 지독한 방법이었다.
4일째,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신검의 노예들이 성벽을 둘러쌌다.
숫자가 많았기 때문인지, 성벽을 지키는 자들은 그리운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떨었다.
부모, 형제, 동료, 전우. 꿈에서도 그리워 할 법한 자들이 신검의 노예가 되어 자신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인세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속으로 기원했다. 제발 저들을 구원해달라고, 저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달라고 두 손을 모아 신께 빌었다.
“신검이 저 지랄을 했는데, 신에게 비는 건 말이 안 되지.”
백우진이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이번엔 악마에게 빌어야하지 않겠어?”
**
“크윽!”
데플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성문 앞에 아버지가 있었다. 신검의 괴물에게 죽은 아버지가 그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
그 누구보다 용맹했고, 다정했던 아버지가 그 괴물 놈의 졸개가 되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빠득!
이가 갈렸다. 아버지를 구원해주지 못하는 것도, 대놓고 자리 잡은 악마 놈을 죽이지 못하는 것도 너무 화가 났다.
자신 만이 아니다. 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젠장!”
욕이 절로 나왔다. 저들을 구원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벅.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으려 할 때 누군가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세계수의 씨앗을 가져왔다는 남자였다.
“이그니스.”
남자가 손을 뻗고 뭐라 중얼거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천공으로 홍색 화염이 치솟았다.
콰아아아!
하늘까지 솟구친 화염의 장벽을 뚫고, 거대한 화룡이 나타났다.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화력과 존재감이 느껴졌다.
“겁화(劫火).”
남자의 지시에 화룡이 피처럼 붉은 불꽃을 내뿜었다. 성벽을 둘러싼 신검의 노예들이 모조리 불길에 휩싸였다.
“그래도 소용없어….”
데플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강력한 소환수였고, 멀리서도 피부가 익을 정도의 화력이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신검의 노예들은 저렇게 죽어도 금방 재생해서 그 자리에 나타난다.
하지만 데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아!
붉은 불꽃은 신검의 노예들이 재생할 때마다 옮겨 붙어 또 다시 그들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화아아아!
태우고, 재생하기를 20번 반복했을 때 신검의 노예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성벽에서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세, 세상에….”
“시, 신검의 노예들이 사라졌어!”
“뭐, 뭘 어떻게 한 거야!”
“저 용은 대체….”
인간, 엘프, 드워프 가릴 것 없이 모두의 얼굴에서 넋이 빠져나갔고, 기겁을 하며 뒤로 자빠졌다.
“요즘 불 켜놓고 자는 느낌이었는데….”
백우진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푹 좀 자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