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이프리트 (3)
“5등급 경계태세를 발령한다! 전원 숲 중앙으로 모여!”
데플이 숲 안쪽으로 달려가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새로운 훈련인가?”
“데플 님?”
휴식을 취하거나 근무 교대를 준비하던 인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데플을 바라보았다.
“은인께서 5등급 경계태세를 지시하셨다! 종을 울려라!”
“비, 비상이다!”
“최고 등급 비상경계를 발동시켜라!”
“조, 종을 쳐!”
데플의 입에서 은인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야 인간과 드워프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땡! 땡! 땡! 땡! 땡!
종이 다섯 번 울리며 5등급 경계태세가 발동되었다. 모든 인원들이 데플을 따라 숲의 중앙으로 향했다.
“전원 자신의 위치로 이동하라!”
“이동하라!”
인간과 드워프들은 데플을 따라 숲 안쪽으로 달려가 지정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데플 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실비아의 수호 엘프 루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데플의 팔을 붙잡았다.
“5등급 경계태세 연습이라도 하는 게냐?”
타이쿤이 피우던 곰방대를 내려놓으며 허연 연기를 뿜어냈다.
“비, 비상입니다! 은인께서 비상사태라고, 전부 불러서 실비아 님 곁을 지키라 명령하셨습니다!”
“은인께서?”
“백우진이?”
백우진이 지시를 내렸다는 말에 루카의 표정이 굳어지고, 타이쿤이 곰방대를 떨어뜨렸다.
“은인께선 어디로 가셨습니까?”
“서쪽 숲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서쪽 숲?”
루카와 타이쿤이 황급하게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 혹시 잘못 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루카가 눈을 감고, 서쪽에 심어둔 나무와 감각을 연결했다.
“상급 정령?”
나무의 눈을 통해 서쪽 숲이 보였다. 상급 정령 셋이 숲을 파괴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서, 설마….’
세 정령의 외형과 정령들을 다루는 기운이 너무도 친숙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느껴봤지만 확실했다. 그놈이었다.
“그, 그놈입니다! 그놈이 왔습니다!”
루카가 이를 바드득 갈며 눈을 떴다.
“그놈?”
“하이엘프 카잔! 세계수를 불태운 놈입니다!”
“카잔!”
루카가 카잔이라는 이름을 말하자마자, 실비아를 둘러싼 엘프들의 눈에서 귀화가 피어올랐다.
“카잔이 왔다니!”
“그놈이 또!”
카잔은 세계수를 불태운 것으로 모자라, 수많은 엘프들을 학살했다. 아무리 제국에게 조종당했다고 좋은 감정일 수가 없었다.
“결계의 수준을 최고로 올려라!”
루카의 지시에 뒤에 빠져 있던 엘프들이 결계 위로 올라가 자신의 기운을 뿌렸다.
실비아를 감싼 푸른 결계의 색이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진해지고 넓게 퍼졌다.
“으음….”
실바아는 외부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잡은 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세계수를 피워내기 위해서 집중하는 것이다.
“하필 이런 때에….”
루카가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세계수가 필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건만, 최악의 손님이 와버렸다.
“그 녀석은 뭐라고 하더냐?”
“이쪽을 확실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혼자 싸우겠다는 건가?”
“그런 거 같습니다.”
“음, 카잔이라는 놈도 엘프이니, 세계수가 없어져서 소환 능력이 약해질 수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루카가 불안한 눈빛으로 서쪽 숲을 바라보았다. 이제 육안으로도 서쪽 숲이 무너지는 게 보이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아서 나무와 감각을 연결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던 상급 정령들의 앞을 백우진이 막아서는 게 보였다. 그는 한 번에 사대 정령 모두를 소환했다.
“뭐, 뭐야!”
루카가 기겁하며 입을 쩍 벌렸다. 백우진에게 플레임 드래곤이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삼대 정령을, 그것도 전부 상급을 한참 벗어난 괴물들을 소환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백우진의 정령들은 카잔의 정령들을 말 그대로 짓밟아버렸다.
‘말도 안 돼….’
인간이 사대 속성 모두를 다루는 것도, 그 정령들의 수준이 격을 한참 벗어난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놈들이 온다!”
타이쿤의 경호성에 루카가 눈을 떴다. 흑귀와 다크엘프들이 결계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결계 개방!”
“개방!”
루카의 다급한 지시에 중앙의 푸른빛이 동심원을 그리며 밖으로 퍼져나갔다.
“쏴!”
데플의 명령에 엘프들이 활을 쏘고, 드워프와 인간들이 쇠뇌를 당겼다.
후우우웅!
하늘로 솟구친 활과 볼트들이 흑귀와 다크엘프들의 숨통을 노렸다.
“산개!”
가장 앞에 있던 다크엘프의 지시에 흑귀들과 다크엘프들이 부채꼴로 펴져서 화살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결계 안에 들어온 상태였다.
숲의 결계가 작동하며 적들의 움직임을 늦추고, 세 종족의 능력을 강화시켰다.
퍼버버벅!
다크엘프들은 재빠르게 몸을 놀려 피했지만, 흑귀들은 화살과 볼트에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에 처박혔다.
우우우웅!
다크엘프들도 결계의 중앙으로 다가올수록 점점 움직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자리를 지키며 싸워라!”
“망치를 들어라!”
루카와 데플. 타이쿤이 병사들을 격려하며 가장 앞에서 다크엘프와 맞서 싸웠다.
세 종족과 다크엘프 흑귀과 접전을 벌이기 시작할 때 서쪽 숲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
“뭐, 뭐야 저건….”
싸움이 멎었다. 서쪽 숲에서 나타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모두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프리트….”
루카가 넋이 나간 눈으로 서쪽을 보았다. 세계수를 불태운 이프리트였다.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젠장!”
루카는 뒤로 빠져서 서쪽 숲의 나무와 감각을 연결했다.
“미, 미친!”
백우진이 이프리트의 보호를 받는 카잔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예 죽여 달라고 목을 통째로 내놓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백우진은 자신의 예상과 달리 이프리트의 방어를 모조리 뚫어버리고, 카잔이 아니라, 이프리트에게 검을 날렸다.
무지막지한 무력과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백우진이 이프리트의 검을 가르려는 순간 시야의 모든 것이 재로 변했다.
콰아아아앙!
서쪽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에 모두가 몸을 낮게 움츠린 채로 벌벌 떨었다.
서쪽 숲에서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푸른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이프리트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끝났어….”
루카를 포함한 모든 엘프가 고개를 떨궜다. 저 상태의 이프리트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이곳에 없다. 모든 것이 끝났다.
드워프도, 인간들도 자신들에게 죽음이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어!”
데플이 검을 들어 올려 다크엘프를 겨누었다.
그 누구보다 절망하던 인간이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희망을 품었다.
“그분은 지지 않는다! 모두 검을 들고 싸워!”
**
“후욱….”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보이는 모든 것이 일그러져 보였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폐를 칼로 찌르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저거 알고 있었지?’
-그래서 멈추라고 했던 거다.
‘그렇지만 어차피 겪어야 하잖아.’
어떻게 싸웠든 결과적으론 이프리트가 저 모습이 됐을 거다. 차라리 힘이 빠지기 전에 빨리 변하는 것이 나았다.
-어떠냐?
‘견딜 만해.’
-겨, 견딜 만하다고?
이프리트의 청염을 보고, 견딜 만하다는 말을 하는 인간이 존재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미친놈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
-당연한 일이다.
백우진과 이프리트는 가진 기운이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걸 이용해야겠어.’
백우진이 이프리트의 옆에 있는 카잔을 가리켰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군.
‘이프리트의 힘을 감당을 하지 못하는 거야.’
하이엘프는 눈을 까뒤집은 채 전신을 떨고 있었다. 지금의 능력으로 이프리트가 가진 본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충격을 준다면 이프리트를 역소환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게 그나마 가능성 있군.
‘버티다 보면 세계수가 피어날 수도 있고.’
흑암과 실비아는 세계수에 악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했다. 세계수가 피어날 때까지 버틴다면 하이엘프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타악!
백우진이 뒤로 물러나며 정령들을 보았다. 설빙, 레오, 어스 리노는 이프리트의 기운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크르르르!]반면 이그니스는 이프리트의 기운과 푸른 화염의 열기를 버티며 투지를 불태웠다.
“같이 싸우자고?”
[크아아아!]“좋아.”
백우진은 다른 정령들을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이그니스 하나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준비는 끝났나?”
이프리트가 어깨를 돌리며, 거만한 눈빛으로 백우진을 굽어보았다.
“기다려 준 덕분에.”
“딱 좋은 상황이군.”
“뭐?”
“저 녀석이 정령왕이 되기 위해서는 시험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신의 섬에서 바람의 정령왕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귀찮으니, 그 시험도 지금 하지.”
“뭐?”
“저 녀석이 내 청염을 막아내고, 네가 내 몸에 칼을 박아 넣는다면 네 정령이 차기 불의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곳에서 물러나 주마.”
이프리트가 이그니스와 백우진을 차례로 보며 빙긋 웃었다.
“물론 네 칼날은 내 몸에 들어가기 전에 녹아내리겠지만.”
-저 새끼가 미쳤나? 녹아? 내가 누군지 알고!
흑암은 당장에 튀어 나갈 것처럼 발버둥 쳤다.
“좋네. 나도 한 번에 끝내는 게 편하거든.”
백우진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내뱉는 숨조차 녹아내릴 것 같은 열기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시작하지.”
이프리트가 청염으로 타오르는 거대한 칼을 내리쳤다. 대지가 반으로 쪼개지며 푸른 화염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
백우진은 비룡처럼 솟구치는 청염을 유의 보법을 밟으며 피해냈다.
하지만 이프리트의 불꽃은 눈이 달린 것처럼 그의 뒤를 추적했다.
“이번엔 2개다.”
이프리트가 검을 두 번 휘둘렀다. 공간이 찢기며 푸른 화염 두 줄기가 백우진의 목과 심장을 노렸다.
“큭!”
백우진은 유와 변의 만상보를 밟으며 청염을 피해냈다. 이프리트는 멈추지 않고 더 많은 불꽃을 쏘아냈다.
후우욱!
순식간에 여덟 줄기의 청염이 공간을 뒤덮었다.
“이그니스!”
백우진의 부름에 이그니스가 기다렸다는 듯 겁화를 내뿜었다.
콰아아아아!
겁화는 청염을 이겨낼 수 없었지만, 속도와 위력을 저하시킬 수 있었다.
치이잉!
백우진은 흑암을 양손으로 잡고 사성류를 발동시켰다. 흑암의 칼날을 타고 새하얀 눈의 꽃이 피어났다. 설빙의 특성 백빙이었다.
화아아악!
백우진은 백빙과 강기를 두른 흑암으로 청염을 찢어발겼다.
“무예와 정령술의 조합인가? 재밌는 놈이로구나.”
이프리트가 큭큭 웃으며 다시 칼을 들어 올렸다. 칼에서 타오르는 청염이 눈이 아플 정도로 이글거렸다.
화아아악!
이프리트는 불검을 휘둘러 푸른 불꽃의 탄환들을 쏘아냈다. 하나만 맞아도 목숨을 잃을 만한 위력이었다.
화아아아악!
이그니스가 겁화의 벽을 쌓았지만, 푸른 탄환은 벽을 바스라 버리고, 백우진의 전신으로 쇄도했다.
“후우!”
백우진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흑암을 들어 올렸다. 무희가 춤을 추듯 부드럽게 검을 내리긋고 사선으로 올려쳤다.
화아아악!
이그니스의 겁화를 담은 연계 검로 겁화검형이었다. 일검 작화련부터 구검 겁화천화까지 한 호흡에 검을 아홉 번 휘둘렀다.
콰아아아!
청염의 탄환들이 겁화검형을 뚫어내지 못하고 땅으로 가라앉았다.
“하아….”
백우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강기와 백빙도 강력했지만, 겁화검형으로 청염을 깎아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열기에 의한 고통과 피해로 겁화검형의 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이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이프리트가 들고 있던 검이 아홉 가닥의 채찍으로 변했다.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바로 채찍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백우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더 빠르게 겁화검형을 내질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겁화검형이 다섯 번 휘돌았다.
콰아아아!
이그니스는 백우진을 보호하기 위해서 겁화를 뿜어냈지만, 채찍에서 뿜어지는 청염은 계속해서 백우진의 주변으로 쌓여갔다.
쿠구구!
이프리트는 채찍을 다시 검으로 바꾸고 땅에 박아 넣었다.
그 순간 백우진의 주변에 퍼져있던 청염이 돔처럼 둥글게 말아 올라가서 그를 가뒀다.
“이건….”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보이는 건 푸른 불꽃뿐이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네가 부쉈던 화옥의 상위 능력 청옥이다.”
이프리트가 바닥에서 허깨비처럼 솟구치며 말을 이었다.
“네 무덤이 될 곳이지.”
이프리트가 백우진에게 달려들며 검을 날렸다. 어설픔이 보이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검로였다.
화아아악!
푸른 불꽃의 벽이 이프리트의 검과 공명하며 화염의 줄기를 뿜어냈다. 줄기 하나하나가 강기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윽!”
백우진은 유와 변, 환의 만상보를 밟으며, 손으로는 겁화검형을 반복해서 그어냈다.
한 호흡에 목숨을 걸었다.
제때 호흡을 하지 못하면, 제때 검을 휘두르지 못하면 바로 죽는다는 경각심을 머리에 새겼다.
자신의 호흡에 데일 만큼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검을 휘두르고, 발을 놀렸다.
[겁화검형의 단계가 상승했습니다.] [화속성 저항력이 상승했습니다.] [화속성 감응력이 상승했습니다.]겁화검형의 단계가 상승했고, 화염의 감응력과 저항력도 올라갔지만 이프리트의 불꽃은 여전히 위협적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뭘 믿는 거지?”
“밖에 있는 내 용가리를 믿는다.”
“뭐?”
“그놈은 성질이 더럽거든.”
“알고 있다.”
“거기다 지는 걸 무지하게 싫어해. 어린 설빙에게도 져주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백우진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웃었다.
“그런 놈이 네 불꽃에 지고만 있지는 않겠지.”
**
화르르륵!
이그니스는 청염의 감옥을 깨기 위해서 겁화를 내뿜었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불을 뿜었지만, 청염의 감옥은 깨지지 않았다.
[크르르르!]이그니스는 지친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양손에 겁화를 두르고 청옥을 직접 내리쳤다.
청옥에는 금조차 가지 않았지만, 손을 덮은 겁화는 청염에 먹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크어어어!]이그니스는 양손이 타는 와중에도 청옥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더 강한 힘을 주었다.
[크으으으….]백우진은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준 유일한 존재였다. 홀로 있는 자신을 챙겨준 유일한 존재였다. 소멸한다고 해도 그를 이곳에서 죽게 만들 수 없었다.
치이이익!
이그니스의 손이 청염에 녹아내릴 때 그의 몸을 덮은 미약한 불꽃이 검게 물들었다.
화아아아!
먹물이 우물을 물들이듯 이그니스의 전신이 검게 타올랐다. 손에 붙은 청염이 사그라지고, 새싹처럼 흑염이 피어올랐다.
[크아아아!]이그니스가 거친 포효를 내질렀다. 싸움을 시작할 때 이상으로 힘이 넘쳤다. 지금이라면 저 망할 감옥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
이그니스는 심장을 맴도는 흑색의 불꽃을 끌어올려, 청옥의 중심을 향해 광선처럼 뿜어냈다.
찌지지직!
청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만들어졌다. 그 균열이 극에 달한 순간 푸른 화염의 감옥이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다.
콰아아아!
백우진은 청옥이 깨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그니스의 옆으로 물러났다.
“해낼 줄 알았다!”
[크릉!]활짝 웃으며 새롭게 각성한 이그니스의 다리를 두드려 주었다. 이그니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콧김을 내뿜었다.
“주인과 같은 검은 불꽃이라….”
“내가 말했지. 이 녀석은 지길 싫어한다고.”
“그 녀석은 지기 싫어서 각성한 게 아니다.”
“뭐?”
“….”
이프리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이그니스를 바라보았다.
“준비됐지?”
[크아아아!]이그니스가 준비됐다는 듯 포효를 내질렀다.
“정면으로 가자.”
-이그니스가 각성했다고 해도 이프리트의 정면으로 가는 건 미친 짓이다!
‘괜찮아. 무기는 두 개니까.’
백우진이 회복의 호흡을 발동시키며 웃었다.
-두 개? 검운 말고 또 뭐가 있다는 거냐?
‘영성이 있잖아.’
검선지체는 검과 영물을 다루는 검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검운과 소환수를 강화시키는 영성 두 가지 특성이 있었다.
쿠구구구!
백우진은 검운을 운용하고, 이그니스에게 영성을 사용했다. 이그니스의 몸을 덮은 검은 불꽃이 두 배로 커졌다.
“날려 버려!”
[크아아아!]이그니스는 남은 모든 불꽃을 모조리 모아, 이프리트에게 뿜어냈고, 백우진은 흑암의 칼날에 강기와 흑염, 백빙을 두른 채로 돌진했다.
“그 정도로는 모자라.”
이프리트는 양손을 들어 올려 광대한 불꽃을 소환했다.
왼손의 청염으로 이그니스의 흑염을 막아내고, 오른손의 청염으로 거대한 구슬을 만들어 백우진에게 쏘아냈다.
“구체로 쏴주면 고맙지.”
백우진은 흑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절벽을 깎아 낼 것처럼 강렬한 예기를 둘러 청염의 구슬을 내리쳤다.
촤아아악!
낙일참의 검격이 이프리트의 구슬을 베어버렸다.
“음….”
백우진은 베어진 구슬 사이로 이프리트의 눈을 보았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화아악!
이프리트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자, 대지에서 아홉 줄기의 불기둥이 솟구쳐 백우진을 덮쳤다.
콰아아아!
지금까지 이프리트가 사용한 불꽃 중 최고의 화력이었지만 백우진은 물러나지 않았다. 흑찬석을 발동시키며 앞으로 걸었다.
“크윽!”
흑찬석이 발동되었음에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신과 신체, 단전을 하나로 만들어 검을 휘둘렀다.
한 걸음을 걸으며 가로로 검을 베었다.
두 걸음을 걸으며 검을 세로로 그었다.
세 걸음을 걸으며 검을 사선으로 올렸다.
네 걸음을 걸으며 청염의 중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촤아아악!
푸른 불꽃이 마른 장작처럼 갈라지며 흔들리는 이프리트의 눈동자가 보였다.
[화속성 저항력이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화속성 감응력이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이프리트를 향해 달렸다.
“흐읍!”
호흡을 멈추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겁화검형을 사용했다.
후우웅!
이프리트는 청염의 방패를 만들어 겁화검형의 아홉 초식을 막아냈다. 수없이 본 검로였기에 막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백우진의 검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흑암의 칼날을 휘감은 강기가 불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펼쳐졌다.
[겁화검형의 열 번째 초식 겁화만개가 생성되었습니다.]만개하는 칠흑의 강기가 청염의 방패를 찢고, 이프리트의 몸을 갈랐다.
쿵.
이프리트의 왼팔이 떨어지고, 왼쪽 뿔이 무너진 땅에 박혔다.
“….”
이프리트는 말이 없었다. 땅에 박힌 뿔과 떨어진 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과는 정반대의 웃음이었다.
“예상 이상이군.”
“뭐?”
“합격이다.”
이프리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숲의 중앙에서 장대한 푸른빛이 솟구쳤다.
푸른빛은 폭발처럼 퍼져나가며 청염을 지우고, 죽어가던 숲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