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이프리트 (5)
쿠구구구!
땅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전봇대 같은 길쭉한 뿔이 솟아올랐다. 너무나도 익숙한 어스 리노의 뿔이었다.
“뭐지?”
-왜?
‘내가 소환한 게 아니야.’
눈을 의심했다. 땅을 가르고 나타난 어스 리노는 분명 자신의 정령이었지만 부른 적이 없었다.
-정말이냐?
‘소환하지도 않았고, 느끼지도 못했어.’
적도 없고 싸울 일도 없는데 갑자기 어스 리노를 소환할 이유가 없었다. 녀석은 말 그대로 혼자 나타났다.
-그러면….
‘시스템이 부른 것 같아.’
어스 리노가 나타나기 전에 원하는 방식으로 정령의 보상을 준다는 메시지가 떴었다.
새로운 정령 대신에 어스 리노에게 무언가를 해주려는 것 같았다.
쿠웅.
어스 리노는 땅 위로 올라와서 백우진과 눈을 마주쳤다.
평소처럼 잔잔한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백우진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크릉.]어스 리노는 백우진에게 고개를 숙인 후 뒤를 돌았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천천히 세계수를 향해 다가갔다.
“어스 리노잖아?”
“어, 어떻게 저런 크기를….”
“어디서 나온 거래?”
모두가 거대한 어스 리노를 보고 벙찐 얼굴이 되었다.
어스 리노의 크기도 크기지만, 갑자기 어스 리노가 나타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인의 어스 리노다. 길을 비켜라.”
“아….”
“은인의 정령?”
루카가 어스 리노의 주인이 백우진이라고 말하자, 세계수를 둘러싸고 있던 세 종족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쿠웅!
어스 리노는 열린 길을 따라 세계수에게 다가갔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세계수에 자신의 뿔을 가져다 대었다.
화아아아!
어스 리노의 뿔과 세계수가 닿은 순간 세계수의 정상에서 별무리 같은 황색 빛이 내려섰다.
빛은 배우를 비추는 무대의 조명처럼 오직 어스 리노 하나에게만 집중되어 쏟아졌다.
“대지의 기운….”
백우진은 저 황색 빛이 어떤 기운을 담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차렸다. 저건 대지의 기운 그 자체였다.
우우웅!
어스 리노가 대지의 기운을 흡수하자, 풍선에 바람을 집어넣은 것처럼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건물 기둥 같았던 다리가 교각의 지지대처럼 두꺼워졌고, 전봇대 같았던 뿔이 산봉우리처럼 솟아올랐다.
단순히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스 리노의 가죽 위로 악어거북 같은 뾰족한 등껍질이 돋아났고, 꼬리는 용의 그것처럼 길고 날카롭게 뻗어 나갔다.
“허, 장난 아니네.”
백우진이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스 리노는 용과 코뿔소, 거북이를 합쳐놓은 듯한 외형이 되었는데, 원래 그런 생물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이 있었다.
-화, 확실히 멋있긴 한데….
‘그렇지?’
흑암이 인정할 정도로 어스 리노의 외형은 멋들어졌다.
다른 종족들의 남자들이 어스 리노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은 놀라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우웅!
대지의 기운을 담았던 빛이 가시고, 어스 리노의 성장이 멈췄다.
[어스 리노가 영혼의 진화를 통해 새로운 왕의 그릇이 되었습니다.]백우진의 눈앞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역시 그랬군.’
왜 시스템이 어스 리노를 성장시켜주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었어.’
-그게 무슨 말이냐?
‘난 이번 퀘스트 보상이 새로운 정령이라는 걸 보고, 대지의 그릇이 나올 거라 생각했거든.’
-나도 마찬가지다.
백우진의 운과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를 생각했을 때 대지의 그릇이 나올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스 리노를 놔주기엔 또 싫었어. 저 녀석의 성격은 너도 알잖아.’
어스 리노는 자신의 정령 중에서 큰형처럼 묵직하고 참을성 있는 성격이었다.
-건방진 정령 놈들 중에서는 제일 순하지.
‘맞아.’
어스 리노는 다른 세 정령들이 음식을 먹고, 이름을 받아도 질투 하나 없이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런 녀석이었기에 끝까지 함께 싸우고 싶었다.
어스 리노만큼은 새로운 대지의 정령을 얻어도 계속 부르려 했는데, 녀석이 왕의 그릇이 되다니 자신이 바라던 최고의 보상이었다.
-뭐, 나쁘진 않군.
흑암도 어스 리노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 보상은 마음에 드는 듯 검날을 끄덕였다.
“고맙다. 정말.”
백우진은 혹시나 들을지 모르는 시스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정령이야?”
“와….”
“진짜 멋있네? 드래곤 아니야?”
인간과 드워프들은 달라진 어스 리노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여러 정령을 봤지만, 저렇게 묵직하고 멋진 녀석은 처음이었다.
“허….”
“저, 정령이 변했어!”
“이게 가능한 일이었다고?”
반면 엘프들은 너무 놀라서 일순간 숨을 쉬지 못했다. 정령이 변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저, 정령왕의 그릇이다! 후천적으로 왕의 그릇이 되다니!”
루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저 강한 정령이었던 어스 리노가 정령왕이 될 수 있는 왕의 그릇으로 바뀌었다.
‘정말 저분은 대체….’
이런 일은 긴 엘프 역사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백우진이라는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였다.
[크릉!]어스 리노는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백우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 어떠냐는 듯 뿔을 살며시 흔들었다.
“정말 멋있어 졌다.”
[크르릉!]백우진은 씩 웃으며 어스 리노의 뿔을 두드려 주었다. 어스 리노는 기분 좋다는 듯 콧김을 길게 내뿜었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크롬이다.”
백우진은 이전부터 생각했던 어스 리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크롬은 고대신의 이름으로 대지를 관장한다고 했다. 어스 리노와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서 미리 정해놓았다.
[크어엉!]어스 리노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것 같았다.
띵!
[대지의 그릇에 걸맞은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크롬이 그 이름에 맞게 성장합니다.]메시지나 나타나기 무섭게 이젠 크롬이 된 어스 리노의 몸과 기운이 다시 한번 커지기 시작했다.
-또, 또 성장시킨다고? 시스템, 이 미친놈이 뇌를 360도 돌렸냐?
‘뇌가 360도를 돌면 아무 변화도 없는 건데?’
-닥쳐!
이미 건물 크기로 성장시켜놓고 또 대지의 기운을 밀어 넣다니, 뇌에 빵구가 났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띵!
하지만 시스템의 퍼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지 속성 감응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대지 속성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이번엔 크롬이 아니라, 백우진의 성장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아, 빈혈이….
흑암은 날개가 젖은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땅에 처박혔다.
**
라인 숲과 그리 멀지 않은 들판에서 서른 명 정도의 인간과 엘프들이 흑귀와 몬스터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 얼마 남지 않았어!”
인간 검사 레첼린은 맨 뒤에서 동료들을 격려하며 숲을 향해 달렸다.
“저, 저기 세계수다! 정말 세계수가 피었어!”
엘프 카셀이 라인 숲의 꼭대기로 솟구친 세계수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며칠 전 세계수의 기운을 느끼고 이곳까지 온 것인데, 정말 세계수가 되살아나 있었다. 위험한 순간임에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감상은 나중에 하고 일단 달려!”
“숲의 입구까지만 가면 된다!”
“젠장! 다크엘프야!”
중앙에서 활을 날리던 엘프가 좌측에서 다가오는 다크엘프와 상급 몬스터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저놈들이 오기 전에 숲에 진입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싸워!”
엘프와 인간들을 걸음을 멈추고 전투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쿠구구구!
흔들리는 대지가 생명을 가진 것처럼 불쑥 일어났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태산 같은 무언가가 몸을 들어 올렸다.
“아….”
“허억!”
엘프들이 입을 쩍 벌렸다. 분명 정령이었지만, 처음 보는 외형과 크기 그리고 거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콰아앙!
거대한 괴물은 들어 올린 다리를 그대로 내리찍어 흑귀와 몬스터들을 일격에 짓밟아 버렸다.
“크윽! 또 저 괴물이….”
“후퇴한다!”
다크엘프들은 악귀처럼 인상을 구기며 도망쳤고, 라인 숲에서 수십의 인간과 엘프들이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가장 먼저 달려온 데플이 인사를 건네며 엘프와 인간들의 상태를 살폈다.
“더, 덕분에요. 저기 저 정령은….”
“제 스승님의 정령입니다. 멋지죠?”
데플이 웅장하게 서 있는 크롬의 다리를 툭 치면서 웃었다.
“스승님이요?”
“혹시 엘프나 하이엘프 입니까?”
“아뇨. 저 분이에요.”
데플이 뒤에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백우진을 가리켰다.
“인간?”
“마, 말도 안 돼!”
“저게 인간이 소환한 정령이라구요?”
“사실 인간이 아닙니다. 신이나 다름없죠.”
데플은 신관 같이 신성한 얼굴빛을 한 채로 양손을 모았다.
“신?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커헉!”
백우진은 양손을 모아서 자신에게 기도를 하는 데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너 달릴 때 무게 중심 낮추라고 말했지?”
“아, 죄, 죄송….”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간다. 그리고 스승도 아니야.”
백우진은 데플의 왼쪽 귀를 잡고 다시 숲으로 끌고 갔다.
“아….”
“뭐가 뭔지….”
“잘 왔다.”
황당해하는 엘프들에게 루카가 다가갔다.
“루, 루카 님!”
“살아계셨군요!”
카셀을 비롯한 엘프들은 루카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실비아 님도….”
“그래. 당연히 살아계신다.”
“다행입니다! 역시 그분이 세계수를 피우신거군요!”
“아니. 전부 저분이 하신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루카는 데플을 끌고 가는 백우진의 등을 가리켰다.
“예? 저 건달 같은 인간이요?”
“말조심하도록. 저분이 신검의 악마를 죽이고, 이프리트에게서 숲을 지켜낸 분이시다.”
“신검의 악마?”
“이, 이프리트요? 정령왕 이프리트?”
모두가 눈을 찢어져라 벌린 채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들은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
루카는 그들의 반응을 즐기며 입을 열었다.
“저분은 정말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
“오늘 들어온 27명을 포함해서 엘프 40명, 인간 160명, 드워프 50명이 늘어났습니다.”
데플은 회의실에 앉아 있는 실비아와 타이쿤, 백우진에게 최근 일주일간 숲에 들어온 인원의 숫자를 말해주었다.
“인원이 점점 늘어나네요.”
“세계수가 되살아났다는 걸 모르는 엘프가 없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소수의 엘프들이 동료를 데리고 모이는 거예요.”
“그럼 숲을 확장시켜야겠군요.”
“네. 세계수의 힘을 이용해서 좀 더 빠르게 숲을 늘려야 할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
실비아가 테이블 위로 대륙의 전도를 펼쳤다. 손을 들어 동쪽 끝에 있는 세이란 왕국을 찍었다.
“라인 숲의 동쪽 끝과 세이란 왕국의 거리가 짧아져서 다른 곳과 쉽게 왕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세이란 왕국에서도 보란이 죽고, 세계수가 피어난 것을 모를 수가 없을 테니, 곧 연락이 올게다.”
“세이란만이 아니라, 대륙 전역에 퍼진 엘프들과 왕국들이 연락을 취해올 거예요.”
타이쿤과 실비아의 얼굴에 밝은 빛이 어렸다. 이곳에 세계수가 피어남으로 인해서 대륙의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숲을 중심으로 엘프와 드워프, 인간들의 세력이 뭉칠 수 있을 겁니다. 드디어 동쪽의 반격이 시작되는 거죠!”
데플이 활짝 웃으며 지도에 여러 선을 그었다. 라인 숲을 중심으로 하나의 세력이 형성되는 그림이었다.
“전부 우진 님 덕분이에요. 당신이 이 대륙의 판도를 바꿨어요.”
“전 그렇게 거창한 일을 하진 않았는데요.”
백우진은 귀밑머리를 긁적였다. 많은 사람을 구하고, 저들에게 큰 도움을 준 건 맞지만 대륙의 판도를 바꿨다는 말을 듣기엔 민망했다.
“이건 과한 칭찬이 아니에요.”
실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진 님이 저희를 구하지 않았다면 세계수는 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이 숲은 아무런 존재가치도 가지지 못했고, 제국의 세력은 린덴 성과 라인 숲을 넘어 대륙의 5분지 4를 먹었겠죠. 그리되면 반격은 거의 불가능해요.”
“저 말이 맞다. 네가 한 일은 그저 수백의 생명을 구한 게 아니야. 멀리 보면 수만 단위의 생명을 혹은 대륙 전체를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쿤은 빈 곰방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백우진이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흐흐!”
데플은 백우진의 칭찬이 듣기 좋은지 그저 고개만 만족스럽게 웃고만 있었다.
“우진 님은 이곳의 역사를 바꿔주신 거예요.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요.”
-난 오버하는 걸 싫어한다만 저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너와 내가 한 일은 대륙의 판도를 바꾼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음….”
백우진은 자신에게 향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마주치며 자신의 행동이 이루어낸 거대한 결과를 받아들였다.
“어쨌든 저희는 라인 숲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해요. 그래야 반격의 봉화를 올릴 수 있어요.”
“동의한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은 가장 먼저 라인 숲을 키워서 남은 세력들을 모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카잔은 어떻게 됐죠?”
“아직 깨어나진 못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백우진이 입맛을 다셨다. 카잔에게 알아내야 할 정보가 많았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정신을 지배당한 시간이 너무 길어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네. 알고 있습니다.”
카잔의 정신이 어둠에 먹힌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빠르게 회복하긴 무리였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저희는 각 종족의 인원들을….”
실비아와 타이쿤, 데플은 새로 오는 인원들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다.
“그럼 이 계획대로 움직이고 이틀 뒤에 추가 회의를 해요.”
“알겠습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백우진은 회의가 끝났을 무렵 처음으로 입을 뗐다.
“네? 어떤 걸….”
“음….”
백우진의 무거운 어조에 실비아와 데플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 일주일 정도 뒤에 이곳을 떠납니다.”
“네? 이렇게 빨리요?”
“너, 너무 빠릅니다!”
“말씀드리기 복잡하지만, 제 의사는 아닙니다.”
벡우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에 조금 더 도움을 주고 싶지만, 시스템이 정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르지 않느냐. 네게 만들어주고 싶은 물건이 산더미야!”
“전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벌써 가시면 전 어떻게 합니까!”
타이쿤과 데플이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눈빛은 아쉬움과 당황으로 꽉 차 있었다.
“오셨던 곳으로 가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너무 아쉽네요.”
실비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떨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바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백우진은 세 사람을 보며 조그맣게 웃었다. 퀘스트와 보상을 떠나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마음은 홀가분했다.
“그럼 다시 언제 오시는 거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번 일은 시스템의 다급한 호출 때문이다. 다시 오게 되겠지만, 언제 어디로 오게 될 줄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볼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백우진이 웃으며 지도에 있는 제국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이들과 전쟁을 벌일 땐 분명 저도 있을 겁니다.”
**
백우진은 연공을 위해서 회의실 옆의 공간을 빌렸다.
안정화 된 세계수를 이용해서 열매에 담긴 기운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아, 저건 내가 먹었어야 했는데….
흑암은 백우진의 손에 들린 세계수의 열매를 보고 쩝쩝 입맛을 다셨다.
“나중에 네가 원래 몸으로 돌아오면 하나 구해서 줄게.”
-음….
흑암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확신을 못 하는데 백우진이 자신의 몸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니, 있지도 않은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었다.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흑암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고맙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싱겁기는.”
백우진은 피식 웃으며 네 정령을 소환했다.
강아지만 한 크기의 이그니스, 설빙, 레오, 크롬이 백우진의 주변으로 나왔다.
-정령들은 왜 소환했냐?
“세계수의 기운이 이 녀석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세계수의 열매와 세계수에는 자연의 기운이 담겨 있다. 열매를 먹고 세계수의 기운을 받는 것으로 정령들도 성장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캬릉.] [크릉!] [….]이그니스와 설빙은 관심 없으니, 먹을 거나 달라는 표정이었고, 레오는 잡초를 뜯었으며, 크롬은 바위처럼 몸을 웅크렸다.
“어휴….”
백우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세계수의 열매를 입에 넣었다. 열매는 혀에 닿자마자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세계수의 열매에 담긴 기운은 뭉쳐놨던 가루가 터진 것처럼 백우진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우우웅!
눈을 감고 카인의 오러 연공법을 운용했다.
단전의 오러가 세계수의 기운을 이끌며 뜨겁고, 차갑고, 가볍고, 무거운 기운이 전신을 적셨다.
우우웅!
백우진은 오러를 연공하며 내부에 있는 열매의 기운과 외부에서 뿜어지는 세계수의 기운을 동시에 흡수했다.
같으면서도 다른 두 기운이 내외를 전환하며 백우진의 신체와 오러를 강화시켰고, 그가 가진 속성의 기운들을 상승시켰다.
우우웅!
백우진만 세계수의 기운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네 정령들의 몸에서도 각자의 속성에 맞는 정령의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백우진이 예상했던 대로 세계수의 기운이 그를 축으로 삼아 정령들에게 퍼져나간 것이다. 세계수의 기운을 받는 정령들의 빛과 색이 짙은 물감을 푼 그림처럼 짙어졌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이 지났을 때 백우진과 정령들이 연결되던 기운이 서로의 몸속으로 갈무리되며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