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흑암 강림
붉은 마법진이 솟구치며 한 남자가 내려섰다.
흑발흑안. 미의 결정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미모를 가진 청년이었지만, 굳게 다문 입매에서는 천하를 짓누를 패악적인 기운이 흘러넘쳤다.
남자는 검은 장포를 휘날리며 백우진의 앞으로 걸어갔다.
백우진의 앞에선 남자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이 어렸다. 피처럼 진한 붉은 색. 강렬한 분노였다.
“저질렀구나.”
듣는 것만으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서늘한 목소리였다.
“마, 마스터!”
“마스터가 오셨다!”
제논의 팔귀중이 미남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따라 제논의 무인들도 남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마스터라고?”
“저 젊은 남자가 김남길?”
능력자들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아무리 많이 봐도 25살이 넘지 않는 외모인데 마스터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물러나!”
“뒤로 빠져!”
백우진과 백연휘가 다급하게 능력자들을 뒤로 물렸다. 둘은 남자의 몸에 흐르는 대해 같은 기운에 식은땀을 흘렸다.
“….”
김남길은 죽은 청마와 뇌검을 한 번씩 보았다. 죽은 범죄자들을 볼 때마다 그의 눈동자에 분노가 쌓여갔다.
“음….”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 남자가 정말 제논의 마스터 김남길이라면 계산이 완전히 틀렸다. 저 자는 재앙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물러나라. 저 놈은 위험해!
흑암은 처음으로 백우진에게 물러나라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게 다가 아니었다. 저 괴물은 내부에 화산 같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네가 오성환과 신창훈을 죽였을 때 확실하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김남길이 뇌검과 청마의 눈을 감겨주고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귓속에 박혀들었다.
“네놈 하나 때문에 20년을 준비한 대업이 무너졌다.”
김남길이 백우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한 걸음에 지진이 난 것처럼 지축이 흔들렸고, 그가 퍼뜨리는 압도적인 기파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크으….”
“으윽!”
“커허헉!”
가까이 있던 전방의 능력자들과 북검섬멸대 무인들이 김남길의 막강한 기세에 중풍에 걸린 환자처럼 몸을 떨다가 무릎을 꿇었다.
“이, 이 정도였다니….”
박철민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나길의 기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자신조차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다.
“대주급이 아니라면 놈에게 다가가지 마라!”
황병훈은 창을 꾹 쥔 채로 언제라도 달려 나갈 준비를 마쳤고, 윤우민 역시 두 상급 정령을 소환한 채 김남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우웅!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허공에 용오름이 일었다. 거칠게 솟구치는 폭풍 속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인이 내려섰다.
온 몸이 근육으로 덮인 거구의 금발 남자였다. 김남길과 달리 전 세계에 외모가 알려진 특급 범죄자였다.
“타론.”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의 이름을 뱉었다. 수많은 범죄 길드를 흡수해 지금의 다크문을 만든 뒷 세계의 지배자이자, 다크문의 마스터였다.
“이 지랄이 난 것도 이것도 당신의 계획이었나?”
“내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소.”
“쯧!”
타론은 주변 상황을 보며 혀를 찼다. 다크문의 피해도 컸지만 제논의 피해와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저 놈이 문제로군.”
타론이 백우진을 보며 흉악한 살기를 드러냈다. 김남길이 손을 들어 타론을 막았다.
“저 놈은 내가 처리하겠소. 다른 곳을 맡아주시오.”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내게 지시를 내리려는 건가? 지금 당신이….”
“지시가 아니라 부탁이오. 연합 조건 중 2안과 3안을 양보하겠소.”
“음….”
김남길의 말에 타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옆으로 빠졌다.
쿠구구구.
김남길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전신이 떨릴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 잘난 재능으로 막아 보거라.”
김남길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백우진은 자신의 눈앞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것을 느꼈다.
콰아앙!
백우진은 자신의 얼굴로 날아온 강기를 간신히 쳐냈다. 하지만 김남길의 공격은 숨 쉴 틈 없이 계속되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중급 강기 이상의 위력이었다.
쩡! 쩌저정!
백우진은 겁화검형을 끝없이 반복하며 허공에서 터지는 김남길의 기운을 태워버렸다.
“우진아!”
“어딜 가려고.”
“이번엔 네 바짓가랑이가 잡힐 차례다. 윤우민!”
백연휘, 황병훈, 윤우민이 백우진을 도우려 할 때 타론과 2번, 4번 월인, 팔귀중의 혈군주와 사령괴가 그 앞을 막아섰다.
“한 팔을 잃은 창왕이 어느 정도인지 볼까?”
타룬은 황병훈과 윤우민의 앞을 막아 선 채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의 양팔에서 푸른 폭풍이 솟구쳤다.
“젠장….”
“일단 싸우는 수밖에 없어.”
백연휘, 황병훈, 윤우민이 자신이 가진 기운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백우진을 돕자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놈들의 목을 따라!”
“일어서서 싸워라!”
“으아아아!”
김남길과 타룬의 등장에 전의를 상실했던 범죄자들이 용기를 되찾고 일어섰다. 9대1로 끝나가던 상황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쿠구구구!
모든 것은 김남길 때문이다. 절대적인 기파를 뿜어내는 김남길 때문에 죽어가던 범죄자들의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절대 물러나지 마라!”
“저 잘난 것들의 목을 베어버려!”
다시 한 번 능력자들과 범죄자들의 격렬한 전쟁이 일어났다.
**
“네놈을 그냥 죽일 수는 없지.”
김남길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위치는 백우진의 뒤편이었다.
“큭!”
백우진이 흐름을 읽고 급히 뒤를 돌았지만 이미 늦었다. 김남길의 수도(手刀)가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치이잉!
백우진은 유의 만상보를 밟으며 김남길의 수도를 향해 암인검을 올려쳤다.
쩌저저정!
수백 개의 징이 깨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백우진이 뒤로 밀려났다. 그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후우….”
-네 아버지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무력이다. 이런 놈이 왜 숨어서 범죄 집단이나 만들고 다닌 거지?
저 무력이면 어딜 가서든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준인데 왜 범죄 집단의 수장이 된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범죄자 집단의 마스터라기에 뇌검보다 조금 더 강할 거라 예상했지만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저 놈은 이미 초월을 향해 다가가는 절대자였다.
‘이길 방법은?’
-너랑 백연휘, 황병훈, 윤우민이 함께 싸운다면 모를까 혼자서는 가망이 없다. 놈이 가진 오러의 양이 가늠되지 않아.
‘망했다는 뜻이네.’
백우진이 회복의 호흡을 발동시켰다. 바닥났던 오러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떻게 해서든!”
오른손으로 암인검, 왼손으로 흑암을 잡았다. 오러 소모가 심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네가 칼 두 자루를 사용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김남길이 양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등 뒤로 하얀 빛을 뿜어내는 구체가 솟구쳤다.
“강환….”
-단순한 강환이 아니다. 오러의 질이 굉장히 높아. 위력도 2배 이상 높고, 강환에 전사경까지 담아냈기 때문에 막기도, 결을 찾기도 힘들 거다.
흑암이 몸을 떨었다. 저 놈은 단순히 강환이라는 기공을 운용한 게 아니라, 제대로 정립한 무예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리 백우진이라도 뚫기 버거울 것이다.
콰아아아!
김남길이 손가락을 뻗자 그의 뒤에서 회전하던 강환이 백우진을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젠장….”
백우진이 암인검을 휘돌려 풍벽검흔을 그어냈다. 백색의 강환이 풍벽검흔의 검벽을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온 순간 흑암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흑암으로 사용하는 무령참과 강환이 맞부딪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크헉!”
“아아악!”
거대한 오러의 충돌로 근처에 있던 능력자들이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버티면서 결을 찾아라!
‘찾고 있어!’
백우진은 무령참을 내리누르며 강환의 흐름을 살폈다.
‘찾았다!’
한순간 강환에서 회전하는 오러의 결이 보였다. 강기를 두른 암인검으로 그 결을 베어버렸다.
콰아아아!
힘을 다한 태풍이 사라지는 것처럼 강환의 회전이 멈추며 오러가 흩어졌다.
“쉽지 않네….”
백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강환을 베는 것은 뇌기를 가를 때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단순하게 베거나 흘렸다면 쉬웠겠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강환을 완벽하게 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다니, 협제라는 칭호 잘도 지었군.”
김남길의 표정은 보는 것만으로 동상이 걸릴 정도로 서늘했다.
“이번엔 세 개다.”
김남길이 양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머리위로 세 개의 강환가 치솟았다.
우우우웅!
이전 보다 더 크고 빨라진 강환이 김남길의 손짓을 따라 백우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얼마든지 와라!”
백우진이 두 검을 다부지게 잡고 세 개의 강환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아!
흑암의 낙일참과, 암인검의 낙일참. 두 검 모두에 낙일참의 참격이 담겨 있었다.
쩌저저적!
두 개의 낙일참과 세 개의 강환이 맞부딪쳤다. 하늘이 쪼개지는 굉음과 막대한 충격파가 사위를 휘감았다.
백우진이 밟은 땅이 무너지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먼지로 화했다.
-버텨라!
피하거나 흘린다면 훨씬 쉽겠지만 백우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힘든 길을 걸었다.
-결을 베어!
그 마음이 기꺼웠기에 크게 도와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알…아!”
백우진은 바드득 이를 깨물며 흑암과 암인검에 힘을 더했다. 강환의 흐름 속에 휘도는 오러의 결을 향해 칼날을 세웠다.
콰아아앙!
흑암과 암인검의 칼날이 묵빛으로 번쩍이며 세 개의 강환을 동시에 베어냈다.
백우진이 결을 베어 어떠한 피해도 없이 강환의 기운을 지워버린 것이다.
“후우….”
백우진이 한숨을 뱉으며 이마을 쓸어올렸다.
‘다행이야.’
시험의 탑에서 아버지와 싸워보지 않았다면 방금 공격을 버티지 못 햇을 것이다. 미리 초고수와의 목숨을 건 전투를 겪어봐서 다행이었다.
“또 성장했군.”
김남길이 검은 눈을 차갑게 빛냈다. 철귀에 이어 뇌검을 잡고, 이젠 자신의 강환마저 막아냈다. 백우진의 성장력은 가히 전율적이었다.
“그런 성장력은 누구에게도 보지 못했다. 백천화는 물론 카이저도 너 정도는 아니었어.”
김남길은 큭큭 웃으며 다섯 개의 강환을 만들어냈다. 그 크기도 회전도 이전과 비할 수 없이 거대했다.
“아….”
백우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세 개로도 이리 힘들었는데 다섯 개라면 완전히 지워내는 게 불가능했다.
“이그니스!”
백우진은 영환을 사용해서 이그니스를 강화시켰다. 이그니스가 상급 사령 넷이 막고 있던 결계를 깨부수고 백우진의 옆으로 소환되었다.
“흑염으로 지워버려!”
[크오오오!]이그니스가 포효를 내지르며 불꽃의 색을 바꿨다. 붉은 불꽃조차 녹여버릴 흑염이 김남길을 향해 쏟아졌다.
“그래. 네겐 정령도 있었지.”
김남길은 당황하지 않았다. 왼손을 들어 강환의 벽을 만들었다.
콰아아아아!
수십 번 꼬인 강환이 거칠게 타오르는 흑염을 막아냈다. 모든 것을 태우는 흑색의 불꽃이 뒤틀린 강환과 함께 사라졌다.
“망할….”
백우진은 암인검을 검집에 넣고, 흑암을 양손으로 잡았다. 이제 자신이 막아야 할 차례였다.
콰아아아!
김남길은 흑염 때문에 위력이 감소한 다섯 개의 강환을 하나로 합쳐서 날렸다. 거대한 톱날이 백우진을 가르기 위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
백우진과 흑암이 가진 의지가 하나로 모였다. 흑암의 칼날이 하늘의 기운을 받고, 백우진의 발로 밟은 대지가 그 힘을 받쳤다.
[백우진과 흑암의 첫 번째 검 천의가 발동됩니다.]하늘의 의지가 담긴 검격이 하나로 뭉친 강환과 격돌했다.
쿠구구구!
천지를 뒤흔들며 비등한 힘을 겨루던 두 기운의 추가 백우진을 향해 기울었다.
천의의 칼날이 강환의 회전을 멈추고, 그 결을 가르기 시작했다.
“폭륜.”
김남길은 백우진이 강환을 베어버리기 직전에 강환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백우진이 뒤로 밀려났고, 강환의 남은 기운이 끝 쪽에 있던 전방의 능력자들을 휩쓸었다.
“아아악!”
“끄아아악!”
“크헉!”
조그마한 강환의 폭발이었지만 그 여파는 살벌했다. 수십 명의 능력자들이 그 폭발에 목숨을 잃었다.
“이 자식!”
백우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일어섰다. 붉어진 눈으로 김남길을 노려보았다.
“예상대로 넌 이런 걸 싫어하는군.”
“뭐?”
“말했지. 네놈은 그냥 죽이지 않겠다고.”
김남길이 양손을 들어올렸다. 강환이 아닌, 강기의 구체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숫자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았다.
-저, 저 자식!
“너 설마….”
“잘 막아봐라. 모두 죽지 않게 말이야.”
김남길이 사납게 웃으며 강기의 구체를 하늘로 띄웠다. 하늘 위로 떠오른 강기들이 소나기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김남길!”
백우진은 이그니스에게 겁화의 벽을 올리라 지시하고, 쌍검으로 두 개의 풍벽검흔을 쳐올렸다.
콰과과광!
강기의 구체들이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겁화의 벽과 풍벽검흔이 세워졌음에도 모든 강기를 막을 수 없었다.
“크아악!”
“어억!”
김남길이 뿌리는 강기를 피하지 못한 능력자들이 우후죽순 쓰러져갔다.
“사방으로 흩어져서 막아내라!”
“우진아. 강기는 우리가 막을 테니, 놈을 공격해!”
황병훈과 백연휘, 적경훈이 각자의 싸움을 끝내고 백우진의 옆으로 붙었다.
모두 힘든 싸움을 겪었기 때문인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멈춰!”
백우진이 극쾌의 만상보를 밟으며 김남길에게 돌진했다.
콰아앙!
김남길은 강기의 비를 내리는 와중에도 왼손으로 강환을 만들어 백우진을 막아섰다.
“이까짓 거!”
백우진은 섬야와 관일극으로 강환을 터트려버리고 김남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늘어나는군. 대공을 이루지 못했다면 위험할 뻔했어. 하지만….”
김남길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딱밤을 치듯이 가볍게 내지른 강환의 창에 백우진이 방어를 실패하고 뒤로 튕겨 나가버렸다.
“크으….”
백우진이 왼쪽 복부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흘리지 않았다면 방금 공격으로 배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이건 안 되겠어. 지금은 일단 물러나야 한다.”
“그래. 타론도 죽이지 못했다. 윤우민이 3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 일단은 물러나자!”
“…알겠습니다.”
백우진이 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라면 몰라도 자신을 믿고 와준사람들을 더 이상은 죽일 수 없었다.
“류헤이! 이동을….”
“알아서 모였구나.”
김남길이 서슬 퍼런 눈을 빛내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 위로 폭풍처럼 휘도는 거대한 강환이 솟구쳤고, 새파란 뇌전이 강환을 휘감았다.
“마지막은 네 놈에게 당한 조경수의 힘으로 죽여주마. 모두 사라져라.”
김남길이 손을 내리자, 집채만 한 크기의 강환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막아!”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막아라!”
황병훈의 외침과 함께 백연휘, 적경훈이 절기를 쏟아냈고, 백우진은 흑왕탄을 터트렸다.
콰아아아앙!
네 명의 전력을 다한 강기의 폭발 속에서도 김남길의 기운을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가 손을 펼치자 강환의 크기가 더더욱 커지며 막강한 기운을 펼쳐냈다.
“크으윽!”
“끄아아아!”
네 사람은 강환과 뇌전의 기운에 살이 터져가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질기구나. 그럼 하나 더 가마.”
김남길이 왼손을 휘돌리자 첫 번째 보다 더욱 거대하진 강환이 만들어졌다.
콰아아아!
김남길이 쏘아낸 두 번째 강환이 첫 번째 강환과 합쳐지며 무시무시한 힘을 폭발시켰다.
“크으!”
“이건….”
황병훈과 백연휘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할!”
백우진이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또다. 또 자신의 무력을 과신했다. 김남길이 이정도로 강할 줄 몰랐다는 건 핑계일 뿐이었다.
거기다 대연문 때와는 달리 달린 목숨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죽게 생겼다.
-집중해! 네 뒤에 있는 사람들 다 죽일 거냐!
“그, 그럴 순….”
백우진이 거친 숨을 뱉으며 단전의 오러를 모조리 쏟아냈다.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강환의 결이 보이지 않았다. 담긴 기운이 너무도 막강했다.
“…사령관님.”
“그래.”
백우진의 좌우로 선 황병훈과 백연휘가 서로를 보며 웃으며, 백우진과 적경훈을 자신들의 뒤로 밀어버렸다.
“서, 선배님들!”
“뭐, 뭐하는 거야! 비켜!”
백우진이 백연휘와 황병훈의 사이로 파고 들려했지만 두 사람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비키라고!”
백우진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 두 사람은 스스로를 희생해서 자신을 살리려 하고 있었다.
저 둘은 저리 가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수십 년은 어둠 속에서 고생하다가 이제야 빛을 봤는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젠장! 뭣들 하는 거야!
흑암이 이를 갈았다. 몸이 없는 것이 피를 토할 정도로 분했다. 정이 든 것을 떠나서 저 둘은 인간적으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죽게 놔둘 수 없다.
“우진아. 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그곳에서 죽었을 거다.”
“그래. 그때의 목숨을 여기서 쓰는 것뿐이니. 미안해 할 필요 없다.”
죽음을 각오한 백연휘와 황병훈이 활짝 웃었다.
투웅!
그 순간 백우진과 흑암. 영혼을 맞닿은 두 존재의 의지와 이해가 일치했다.
[각성의 알의 두 번째 특성이 깨어납니다.] [천무지체의 세 번째 특수 능력 영령강림이 개방됩니다.] [흑색의 왕이 강림합니다.]백우진의 시야가 꺼멓게 물들었다.
**
콰아앙!
하늘에서 쏟아진 검은 광휘가 백우진을 휘감았다. 모든 것을 녹여내던 강환이 흑색의 빛 앞에 사그라졌다.
쿠구구구!
김남길은 백우진의 기운을 느끼고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찬란하면서도 성스러웠고, 음울하면서도 어두웠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저벅.
광대한 빛줄기 속에서 백우진이 걸어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절망에 차있던 때와 달리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물어가던 태양이 겁에 질려 숨고, 하늘과 땅에서 짙은 어둠이 피어났다.
세상의 규칙이 뒤틀린 것처럼 백우진이 선 공간 자체가 꺼멓게 일그러졌다.
“너, 넌 뭐야!”
김남길이 뒷걸음질 쳤다.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저건 백우진이 아니었다. 저 안에 무언가 다른 존재가 들어서 있었다.
이미 완성된 자. 초월하여 하늘의 끝에 닿은 자가 자신을 굽어보고 있었다.
“길고도 길었다.”
낮다 못해 무거운 저음. 백우진이되 백우진이 아닌 자의 목소리였다.
“이제 참지 않아도 되겠어.”
빛의 신을 모신 신관이자, 정점에 선 무인.
마검에 갇혀 잊혀진 흑색의 왕, 흑암이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