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지배의 마족 (5)
조세형은 나선의 성 앞에서 있었던 일들을 외부에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상급 능력자들과 대형 길드들이 브라쇼브로 달려왔지만, 나선의 성에서 퍼져 나오는 마기의 불길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신성 능력자, 무인,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도 마기의 불길은 조금 잦아들기만 했지, 금세 힘을 되찾아 다시 활활 타올랐다.
“젠장….”
조세형은 밀물처럼 들어오는 마기의 불길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 어떻게 막냐고!”
백은경을 따라 많은 마기를 봐 왔지만, 크레온의 마기는 강렬하고, 끈끈했으며, 지독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마기 중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선 일단 물러날 수밖에….”
“물러날 필요 없다.”
조세형이 퇴각을 요청하려 할 때 뒤에서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도 아니었고, 외인이 할 만한 어투도 아니었다.
뒤를 돌았다. 백연휘와 그를 따르는 현검대, 전방의 능력자들이 검은색 창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처, 첫째 도련님!”
“오랜만이다.”
백연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에 든 창을 마기의 불꽃이 타오르는 곳을 향해 던졌다.
자세히 보니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목창(木槍)이었다.
터엉!
마기의 불꽃 앞에 박힌 창대가 부르르 떨렸다.
후우우웅!
현검대와 전방의 능력자들이 백연휘를 따라 창을 던졌다.
터엉! 터더더덩!
서른여섯 개의 검은 목창은 미리 짠 것처럼 약간의 거리를 벌린 채 마기의 불꽃 앞에 떨어져 내렸다. 전방에서 사용하는 진법의 형태였다.
검은 창은 나무로 만들어진 주제에 마기의 불꽃 앞에서 타오르지 않고 기이한 빛을 뿜어냈다.
우우우웅!
전방의 무인과 신성 능력자, 정령사들이 앞으로 나오며 신성의 기운과 정령의 기운, 오러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세 종류의 기운이 어우러지며 목창이 만들어놓은 진법에 강대한 힘을 주입했다.
콰아아아!
목창에서 흐르는 빛이 뒤섞이며 새하얀 광채가 터져 나와 마기의 불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허억!”
“어, 어떻게!”
“저 창은 대체 뭔데!”
그 놀라운 광경을 본 능력자들이 입을 쩍 벌리며 기겁했다.
“처, 첫째 도련님. 대체 어떻게….”
“우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
“제2의 전방 사태가 생길지도 모르니, 빨리 와 달라고 하더군.”
“허….”
조세형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말한 뒤 이런 준비까지 해 놓았다니, 정말이지 빈틈이 없는 남자였다.
“흑목을 이용한 창과 진법이라 불길을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결국 임시 방편일 뿐이다. 오래 유지할 수는 없어.”
“그, 그럼….”
“성안에 들어간 우진이가 마족을 죽여야 끝을 낼 수 있을 거다. 그 전까지 마기의 불길을 오래 붙잡을 수 있게끔 집중하도록.”
“나도 돕지.”
백연휘의 뒤에서 붉은 용의 가면을 착용한 남자가 다가왔다. 웅대한 패기를 흘리는 대연문주의 대제자 광룡이었다.
“광룡? 네가 왜….”
백연휘가 눈매를 좁혔다. 광룡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오러를 끌어 올리며 언제라도 싸울 수 있게 준비했다.
“근처에 있어서 왔을 뿐이다.”
“그니까 네가 왜 왔냐고 묻는 거다. 이런 일에는 관심 없을 텐데?”
“저 안에 빚을 갚아야 할 남자가 있다.”
“설마 우진이를 노리고….”
“패배는 설욕해야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광룡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서 흐르는 기운은 살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굳은 의지였다.
“그는 내 목숨을 취할 수 있음에도 보내 주었다. 그 빚을 갚고 싶을 뿐이다.”
“…너도 변했군.”
백연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광룡은 오로지 무예만을 생각했던 놈이다. 그런 놈이 백우진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는 것만으로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광룡까지 변화시키다니, 막냇동생에겐 항상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빨리 돌아오거라.”
백연휘가 부드럽게 웃으며 나선의 성을 바라보았다.
**
-응?
“흐음….”
백우진은 7층을 뒤덮은 다양한 꽃과 큼지막한 나무, 깔끔하게 정돈된 수풀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숲이 아니다. 잘 가꾼 정원의 느낌을 주는 숲이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채중현과 채소진 부녀도 7층을 보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마기도 없이 깨끗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정원은 아니겠지?
‘물론.’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7층의 꽃길을 걸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자신이 온 것을 반겨 주듯이 살랑거렸다.
“그렇군. 이제 알겠어.”
백우진은 꽃내음을 즐기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꽃과 나무들이 둘러싼 7층의 중심으로 향했다.
“우진아!”
“도련님. 괜찮으시면 저희도 들어갈까요?”
“아니, 오지 마.”
백우진은 뒤를 돌며 손을 저었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독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7층에 존재하는 꽃과 수풀, 나무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화아아악!
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꽃과 나무에서 검은 독기가 피어났다. 평범한 독이 아니다. 뿌리 깊숙한 곳에 감춰 두었던 마계의 독과 마기였다.
후우우욱!
마계의 독은 운무가 되어 7층 전체를 뒤덮었다.
꽃과 나무들은 지독한 독무 속에서 강한 생기를 빛내며 더욱 진한 독을 내뿌렸다. 이 땅의 식물이 아니라, 마계에서 가져온 식물임이 분명했다.
-좋은 함정이다. 누가 들어왔어도 죽거나, 위험했을 거야. 하지만….
“나한텐 통하지 않지.”
백우진이 웃었다. 자신에게는 마기를 막아 내는 특성과 독을 막아 내는 특성이 모두 존재했다.
우우웅!
라사둠의 오러, 왕의 기백, 흑색 광휘. 천독불침이 7층 전체를 휘감은 마계의 독과 마기를 모조리 막아 냈다. 호흡하는 데도, 힘을 쓰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탁!
백우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앞 공간이 세로로 갈라지며 홍색의 불길이 치솟았다.
화아아악!
타오르는 불기둥 속에서 강아지 크기의 이그니스가 나타났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존재감과 화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독도, 식물도 모조리 지워 버려.”
[크아아앙!]이그니스는 귀여운 울음을 터트리고서 입에 한껏 모아 둔 겁화를 바닥을 향해 내뿜었다. 땅으로 쏟아진 새빨간 겁화가 동심원을 그리며 사위로 퍼져 나갔다.
“끼이이익!”
“끼아아악!”
겁화의 불꽃에 닿은 마계의 식물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
“끼익!”
마계의 식물들은 뿌리를 들어 올려서 도망치려 했지만 한번 붙은 겁화는 떨어지지 않았다. 뱀처럼 줄기를 타고 올라, 잎과 꽃잎, 나무 기둥까지 모조리 태워 버렸다.
콰아아아아!
이그니스의 겁화는 7층에 존재했던 모든 식물과 독기를 지워 버리고 나서야 사그라졌다. 남은 것은 시꺼멓게 타 버린 바닥밖에 없었다.
“수고했다.”
[크릉!]백우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이그니스는 졸린 듯 쩌업 하고 입을 벌린 뒤에 정령계로 돌아갔다.
-이 정도면 널 상대하는 놈들이 불쌍해지는군.
무력은 극강이고, 심계도 뛰어나며, 독, 마법, 마기도 통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힘으로 누르는 것을 제외하곤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 위에 있는 놈은 아니야.”
백우진은 겁화검형을 그어 남은 독무들을 지워 버린 뒤 뒤를 돌아보았다.
“가시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
뿌드득!
크레온이 참지 못하고 거칠게 이를 갈았다.
“무슨 저런 미친놈이….”
백우진이 몬스터들이 있는 층을 통과할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6층과 7층까지 가볍게 통과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저 두 층은 강력한 몬스터가 있는 다른 층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었다.
6층에서는 어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죽어야 했고, 7층에서는 마기보다 몇 배는 지독한 독에 극악의 고통을 느끼며 숨이 끊어져야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백우진에게는 마계의 마기도, 결계도, 독도 통하지 않았다.
검술이 강한 거야 알고 있었지만, 저런 능력까지 있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가씨! 막내 도련님이 벌써 7층을 돌파했어요!”
“우와아!”
한유라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아이들도 용기를 가진 채 환호를 질렀다.
“모자란 것들.”
크레온이 서늘한 눈으로 뒤를 돌았다. 기뻐하는 한유라와 아이들을 보며 싸늘한 기운을 피워 냈다.
“너희 옆에 있는 녀석이 왜 조용히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으음….”
한유라가 나무껍질처럼 굳은 백은경의 표정을 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알고 있는 거다. 백우진이 10층을 뚫고 들어와도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말이야.”
“우, 웃기지 마! 싸워 보지 않고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크레온이 고개를 치켜들며 응축된 마기를 펼쳐 냈다. 그 극악하고 막대한 기운에 성 전체가 뒤흔들렸다.
“으으….”
“으아아악!”
“아이들을 감싸!”
백은경이 입술을 깨물며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꼭 안았다.
성자의 기원으로 보호되고 있음에도 살이 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마기였다. 저 마기로 지배 능력을 사용한다면 아버지라 해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젠장….”
백은경은 비할 수 없이 슬픈 눈으로 자신을 향해 살기를 쏘아 내는 박소민을 보았다.
크레온의 마기를 보니, 백우진도 그녀와 같은 모습이 될 것만 같아 벌써부터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저 발버둥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너희들의 눈앞에서 보여 주마.”
크레온이 8층으로 향하는 백우진을 보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백우진은 8층과 9층의 몬스터 웨이브를 통과하고 드디어 10층에 이르렀다.
-흐음….
“이건 또 뭐지?”
10층은 축구장의 2배는 될 법한 넓이였고, 그 가운데에 몸을 축 늘어뜨린 마네킹이 있었다.
-네가 들어가면 저게 움직이면서 공격해 오겠지. 뻔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백우진은 고개를 젓고서 10층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순간 덜그덕 소리와 함께 마네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기긱!
마네킹이 고개를 들어 올려 백우진을 보자, 그의 전신이 검은 마기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마기에 타오르는 마네킹의 모습이 인간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큰 키의 미청년. 백우진의 모습이었다.
-어엉?
“나?”
백우진이 놀랄 때 검게 물든 바닥이 돌을 던진 호수처럼 흔들렸다.
우우웅!
늪지처럼 끈적한 바닥이 일렁이며 수십의 마네킹이 솟구쳤다. 마네킹은 처음에 있던 마네킹처럼 백우진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흑암이 헛바람을 뱉었다. 땅에서는 나타나는 마네킹들은 전부 백우진으로 변한 채 달려오고 있었다.
치이잉!
마네킹들은 가짜 암인검을 뽑아서 검을 날려 왔다. 검격의 위력은 낮았지만, 그 방법은 백우진과 비슷했다.
“조금 다르군.”
백우진은 마네킹들의 검을 막고 피하며 두 눈을 빛냈다.
-다르다고? 검격이 약하다는 거냐?
‘아니, 외형이 달라.’
처음 변했던 마네킹은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외모가 되었지만, 바닥에서 올라온 놈들의 외모는 자신과 달랐다.
큰 점이 있다든가, 키가 좀 작다든가, 얼굴이 크다든가 하는 식으로 외형이 달랐다.
-그러면….
‘여길 통과하려면 처음에 있던 마네킹을 찾아서 죽여야 하는 거 같아.’
-무슨 시험들이 이렇게 귀찮아!
‘그건 나중에 따지고 일단 잡자.’
백우진이 암인검을 뽑아 들었다. 마네킹들이 계속해서 솟아났기에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빠지지직!
뇌전을 두른 암인검을 그어 비뢰섬 두 줄기를 쏘아 냈다.
-어?
“이건….”
두 번째로 무령참을 준비하던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비뢰섬이 마네킹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놈들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흘러나와 비뢰섬을 흡수해 버렸다.
퍼어억!
채중현이 뒤에서 날린 성운시도 마네킹에 닿은 순간 힘을 잃었다. 다만 화살은 마네킹의 몸에 박혔다.
“이제 알겠군.”
백우진은 마네킹의 몸에 박힌 화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로드와 비슷한 능력인가?
‘달라. 저건 오러 무시가 아니라, 오러를 흡수하는 능력이야.’
마네킹들은 오크 로드처럼 오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오러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면 흡수하는 능력 이상의 힘으로 터트리라는 말이군. 쯧, 지독하네.
오러를 흡수하는 마네킹이 계속해서 나오고, 처음에 있던 마네킹을 찾아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니. 말 그대로 지옥의 층이었다.
“힘든 곳이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어.”
백우진은 암인검을 집어넣고 흑암을 잡았다.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마네킹들을 향해 시리도록 날카로운 묵색의 칼날을 내뻗었다.
[흑암의 첫 번째 검 섬야가 발동됩니다.]흑암의 칼날에서 치솟은 검은 섬광이 전방을 휩쓸었다.
콰아아앙!
섬야는 오러와 마법을 흡수하는 마기를 찢어발기고 마네킹들의 몸에 작렬했다.
구구구구!
광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산처럼 쌓인 마네킹들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지금!’
백우진은 솟구치는 검은 연기를 가르며 10층의 끝으로 향했다. 처음에 봤던 마네킹은 역시 그곳에 있었다.
기기기긱!
마네킹이 깜짝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치려 할 때 백우진이 땅을 박찼다.
콰아아앙!
땅에서 솟구친 마네킹들을 터트리며 흑암을 올려쳤다.
[흑암의 두 번째 검 암인이 발동됩니다.]마네킹들의 흔들리는 그림자 속에서 검은 칼날이 치솟았다.
퍼어어억!
예리하고도 두꺼운 암인의 칼날이 마네킹들의 심장을 모조리 꿰뚫었다.
끼기긱.
처음의 마네킹도 암인을 피해 내지 못하고 심장이 꿰뚫린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우우웅!
백우진의 모습을 했던 마네킹들이 바닥으로 녹아내리며 11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런 말 많이 들었겠지만, 괴물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군.”
“저도 도련님을 매일 뵈면서 매일 놀라고 있습니다.”
채중현의 감탄에 문주영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아무래도 저 위가 마지막 층인 것 같아요.”
“그 말은….”
“그 악마 놈과 둘째 누나, 아이들도 저곳에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알겠네. 함부로 나서지 않겠어.”
채중현은 백우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뒤에 가만히 있겠습니다.”
“저, 저도요.”
“그럼 가죠.”
백우진은 세 사람의 다짐을 들은 뒤 계단을 올랐다.
‘이제 마지막이군.’
계단을 밟아 가며 채중현이 이야기했던 백은경의 사연을 되새겼다. 그 분노가 기와처럼 겹겹이 쌓이며 흉흉한 살기를 피워 냈다.
턱.
백우진은 33개의 계단을 올라 11층에 도착했다. 11층에는 입구가 없었다. 계단을 벗어난 곳이 바로 11층의 중심이었다.
“마침 잘 왔다.”
나지막이 들리는 목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성자의 기원이 사라지는 딱 좋은 순간이거든.”
이마에 다섯 개의 뿔이 솟아오른 미청년이 히죽 웃었다. 보는 것만으로 말을 잃게 만드는 고귀한 외모였지만, 검고 푸른 눈에서 빛나는 살기는 지독하리만큼 차가웠다.
-저 새끼가 크레온이냐? 생긴 것부터가 뺀질뺀질하게 생겼네. 죽일 놈이!
“…….”
백우진은 말없이 크레온의 뒤를 보았다.
백은경과 한유라, 아이들을 보호하는 투명한 막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깜빡이고 있었고, 그 앞에서 뿔이 달린 여성 검사가 흉흉한 기운을 흘리며 막이 사라지는 것을 노려보았다.
‘박소민인가….’
백우진은 백은경의 표정과 그녀의 앞에 있는 여성 검사를 보고 한순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크레온은 절대 살려 둬서는 안 될 놈이라는 것을.
“위, 위험해!”
“꺄악!”
뒤늦게 올라온 채중현이 막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활시위를 걸었고, 채소진은 신성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멈춰라.”
바로 그 순간 크레온이 입을 열었다. 공간을 덮은 마기가 요동치며 그의 말에 지배력을 실었다.
“큭!”
“으윽!”
채중현과 채소진,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문주영까지 굳어 버렸다. 지배를 넘어선 언령의 힘이었다.
“말했지? 너희들의 희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이곳에서 날 이길 사람은 없다고!”
크레온은 멈춰 버린 네 사람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흉악한 웃음에 나선의 성을 덮은 마기가 해일처럼 일어났다.
“으윽….”
“아, 안 돼!”
백은경과 한유라가 눈에 핏대를 세운 채로 몸을 떨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백우진도 크레온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
“너희가 성을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짜증이 좀 났지만, 지금 상황도 나쁘지는 않겠어.”
크레온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곳에 가만히 서서 너희가 구하려 했던 인간들이 죽는 모습을 보아라.”
“크윽! 넌 아이들을 데리고 뒤로 물러나. 내가 앞에서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백은경이 땅에 떨어진 검을 주우며 일어섰다. 슬픈 눈으로 박소민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 아가씨!”
“걱정하지 말거라. 바로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저들에게도 너희의 사정을 말해 줘야지. 그래야 더 재밌어지잖아.”
크레온은 여유롭게 걸어가 박소민의 옆에 섰다.
“이 아름다운 뿔을 가진 아이가 누굴 거 같아? 사실 이 아이는 원래….”
“알아.”
백우진이 차갑게 대답하며 크레온을 향해 발을 뗐다.
“어?”
크레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분명 네 명 모두에게 지배의 권능을 사용했다. 저렇게 말을 하고 움직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 멈춰!”
지배력에 마기를 가득 담아 외쳤음에도 백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더욱 힘차게 땅을 밟았다.
“멈춰! 굳어! 서, 서라고!”
“지랄한다.”
“이익! 멈추… 커헉!”
백우진이 좌측으로 짓쳐 들어 크레온의 오른쪽 뺨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뿌드드득!
크레온의 광대뼈가 폭삭 주저앉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끄으으윽! 이, 이놈!”
크레온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마기를 운용하려 할 때 백우진은 놈의 뒤로 이동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직이다.”
주먹이 터질 정도의 오러를 뭉쳐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크레온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퍼억!
백우진은 오른발을 들어 땅에 박힌 크레온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검제군림의 기운이 폭발하며 크레온의 머리가 박힌 바닥이 가뭄 난 논처럼 쩍쩍 갈라졌다.
“내가 고문을 하는 취향은 아닌데….”
백우진은 땅에 거꾸로 꽂힌 크레온의 머리를 한 번 더 내리찍으며 서슬 퍼런 눈빛을 빛냈다.
“넌 좀 맞고 뒤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