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지배의 마족 (6)
“아….”
백은경은 솟아오르는 전율을 느끼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크레온이 사용한 지배의 언령의 기운은 이전보다 훨씬 강했음에도 백우진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저럴 수가 있다니.’
백우진은 지배의 언령을 아예 무시하는 것 같았다.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놈의 지배의 언령을 받았을 때 몸이 지체되는 느낌도 없는 거냐?
‘없어.’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왕의 기백의 능력은 모든 정신 공격의 방어다.
마기를 이용하든, 신성을 이용하든 정신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 성에 들어온 것이다.
-진짜 특성빨 하나는….
흑암이 혀를 내둘렀다. 마족이 지배 능력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백우진에게 통하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아무런 효과도 없을 줄은 전혀 몰랐다.
‘혹시 말이야.’
-응?
‘저 사람을 구할 수는 없나?’
백우진은 멍하니 서 있는 박소민을 가리켰다. 마기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약간의 생기는 남아 있었다. 살릴 수 있다면 살리고 싶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저 마족 놈의 기운을 흡수하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그러면 노력 좀 해 봐야겠네.’
백우진이 크레온의 목을 밟고 있는 발을 떼 주었다.
부그그그.
크레온은 백우진의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몸을 액체로 변화시켜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철렁!
백우진과 한참 떨어진 창가 아래에서 검은 액체가 솟아올라 크레온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크으으!”
크레온은 눈동자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무너진 얼굴과 깨진 뒤통수를 마기로 재생시켰다.
“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곧 뒤질 놈이 알아서 뭐 하게?”
“닥쳐!”
크레온은 빽 소리를 지르며 나선의 성 전체에 뿌려진 마기를 끌어들였다. 광대한 규모의 마기가 11층 전체를 뒤덮었다.
“멈춰라!”
막대한 양의 마기를 운용하여 백우진 한 명에게만 지배의 언령을 발동했다. 이 세계의 최강자라 해도 멈출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저벅.
하지만 그 강대한 언령도 백우진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크레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놈이로군.
‘믿을 수가 없는 거겠지.’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절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지배의 언령이 통하지 않으니, 패닉 상태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크으윽!”
크레온의 눈동자가 말라 비틀어진 나뭇잎처럼 찌부러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죽어! 죽으라고!”
끌어 올린 광대한 마기를 입에 담아 백우진에게 자살을 지시했지만, 이번에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네놈! 내가 누군지 알… 크아악!”
백우진은 쾌와 뇌의 만상보를 밟아 크레온의 앞에 섰다. 또 입을 열려는 놈의 주둥이를 향해 오러를 가득 실은 주먹을 쏟아 넣었다.
뻐드드득!
나무 판자 수십 개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크레온의 새하얀 이빨이 모조리 뽑혀 나왔다.
“아직 안 끝났다.”
백우진은 오른 주먹을 빼며 왼 주먹을 들어 크레온의 뒤통수를 수직으로 내리찍고, 무릎으로 복부를 올려쳤다.
퍼버버벅!
정신을 차릴 수 없게 주먹과 발을 이용해서 크레온의 전신을 폭풍처럼 두들겼다.
“처음부터 그 뿔이 마음에 안 들었어.”
백우진은 팔꿈치로 크레온의 관자놀이를 송곳처럼 내찌른 뒤 놈의 왼쪽 뿔을 그대로 꺾어 버렸다.
뿌드드득!
나무가 뽑히는 듯한 시원한 소리가 울리며 크레온의 뿔이 반으로 뚝 부러졌다.
“끄아아아아아!”
크레온이 술 취한 사람처럼 뒤로 물러나며 괴성을 내질렀다. 뜯겨 나간 뿔에서 검은 기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족에게 뿔이란 마기를 쌓아 놓는 장치다. 그게 부러졌으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럼 숨겨 둔 패를 모조리 꺼내겠지.”
백우진은 양 주먹에 라사둠의 오러를 가득 모은 채로 크레온에게 달려들었다.
뻐어어억!
물러나려는 크레온의 뒤를 잡아, 복부와 얼굴을 연속해서 후려쳤다.
“크아아악! 꺼, 꺼져!”
크레온은 응축시킨 마기의 구체를 폭발시켜 백우진을 튕겨 냈다.
“이, 이대로… 이대로 끝나진 않는다!”
크레온이 이를 바드득 갈며 양손을 펼쳤다. 펼쳐진 손아귀에서 검은 커튼이 내려섰다.
우우웅!
검은 커튼이 걷혔을 때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놈을 막아! 아니, 죽여! 죽여 버려!”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이 붉은 눈을 뜨며 백우진을 노려보았다.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
크레온이 뒤로 물러나면서 마족들에게 자신의 마기를 주입했다. 강렬한 마기가 마족들을 휘감아 그들의 능력을 강화했다.
‘내 능력을 막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해!’
크레온은 마족들을 앞으로 보내고, 백우진의 오러와 상태를 살폈다. 마족들이 버티는 동안 놈의 약점을 찾을 생각이었다.
“꺼낼 거 있으면 다 꺼내. 전부 지워 줄 테니까.”
백우진이 오른 다리를 앞으로 뻗으며 묵뢰를 개방했다. 그의 전신에서 퍼져 나온 흑색의 뇌전이 이 공간을 지배하는 마기를 찢어발겼다.
빠지지직!
11층 전체를 뒤덮은 크레온의 마기가 묵뢰의 폭발력에 의해 힘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그건 또 뭐야!”
크레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백우진이 검은 벼락을 몸에 두르자마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기운이 펼쳐졌다. 보는 것만으로 등줄기가 서늘할 지경이었다.
쿠웅!
백우진이 철퇴 같은 주먹을 가진 마족을 향해 돌진했다.
후웅!
마족이 양 주먹에 마기를 가득 모아 내지르는 것이 보였다.
허나 느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회피한 뒤 놈의 사각인 좌측에서 발을 멈췄다.
치이이잉!
마족이 당황하여 황급히 마기의 벽을 쌓을 때 흑왕탄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흑왕탄의 막대한 오러가 두꺼운 마기의 벽을 뚫고 마족의 상반신을 터트려 버렸다.
단 일검에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소멸했다.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수준의 무력이다.
후우웅!
백우진은 멈추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창을 든 마족을 향해 뛰어들었다. 마족은 들고 있던 창으로 백우진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빠르면서도 강렬한 마기가 담긴 일격이었지만, 백우진에게는 한없이 느리게 보였다.
터엉!
암인검을 ??게 세워 창대를 흘려 냈다. 마족의 창대가 땅을 쳤을 때 창을 오른발로 밟고 놈의 뿔을 향해 무령참을 내리쳤다.
콰아아아!
하늘을 담아낸 듯한 묵직함에 벼락의 속도가 함께했다. 창을 든 마족은 무령참의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치이잉!
바로 그 순간 세 번째 마족이 흑색으로 타오르는 검으로 백우진의 심장을 찔렀다.
쩌엉!
백우진은 시퍼렇게 두 눈을 빛냈다. 마족의 검날이 다가오는 궤도가 보였다. 암인검을 위로 그어 마족의 검의 방향을 틀어 냈다.
시꺼먼 검날이 텅 빈 허공을 찔렀을 때 암인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낙성위화의 서슬 퍼런 검격이었다.
퍼어억!
검을 든 마족이 뒤로 몸을 뺐지만, 떨어진 별에서 피어난 화사한 꽃이 위로 솟구치며 마족의 심장을 뚫어 버렸다.
빠지지직!
마족이 자신의 심장을 재생시키려 할 때 묵뢰의 기운을 압축해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콰아앙!
검을 든 마족은 몸에 대포알만 한 구멍이 생긴 채 뒤로 넘어갔다.
지지지직!
검은 벼락을 몸에 두르고 세 마리의 마족을 순식간에 처리한 백우진의 모습은 하늘에서 강림한 뇌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친….”
크레온이 창백해진 얼굴로 두방망이질 치는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저, 저놈 대체 뭐야!’
백우진이 죽인 마족들은 전부 무투파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대신 전투에 특화된 존재였다.
하지만 백우진의 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했다. 속도도, 위력도 상상을 벗어난 압도적인 무력을 발휘했다.
“이제 다 끝난 모양이지?”
백우진은 묵뢰를 유지한 채 크레온에게 다가갔다. 그가 밟은 땅에서 검은 뇌전이 타올랐다.
“아, 아직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크레온이 창백해진 얼굴로 검은 커튼을 소환했다. 검은 커튼이 걷히며 뿔을 달고 있는 십수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이 아니라, 박소민처럼 크레온이 자신의 마기로 개조시킨 마인들이었다.
“죽여! 저놈을 죽여!”
크레온의 명령에 박소민을 포함한 뿔 달린 마인들이 새빨간 눈을 빛내며 백우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웅!
크레온은 그 이후를 준비하기 위하여 막대한 마기를 운용하여 검은 벽을 만들고 그 뒤에 몸을 숨겼다.
“이걸 기다렸다.”
백우진이 흑암을 꽉 움켜쥐었다. 흑암을 든 오른손을 뒤로 젖히고, 왼손을 앞으로 뻗어 마기의 벽 뒤에 숨은 크레온을 겨누었다.
[흑암의 다섯 번째 검 암극이 발동됩니다.]암극은 운용하며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마인들의 포위를 벗어나 마기의 벽 앞에 이르렀다.
흑암을 휘감은 암극의 기운이 용오름처럼 꼬였다. 전사경. 찔러 내는 오러에 강렬한 회전을 쏟는 상승의 무리가 그 안에 실렸다.
빠드드득!
회전하는 암극의 기운이 묵뢰의 파괴력과 속도를 만나 극강의 무를 발했다.
퍼어억!
두껍디 두꺼운 마기의 벽이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아!”
무너지는 마기의 벽 뒤로 크레온의 경악한 얼굴이 보였다. 떨리는 눈동자를 비웃으며 놈의 심장을 향해 흑암을 꽂아 넣었다.
“끄으윽!”
크레온은 자신의 심장에 박힌 검은 칼날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지독한 고통이었지만 이 공간의 마기를 이용하면 심장을 재생시켜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이다! 난… 어?”
공간을 지배하는 마기를 끌어모으려 할 때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크레온은 시야가 어두워지며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곳에 가면 나보다 더한 놈이 있을 거다.”
크레온은 백우진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이, 이게 무슨….”
**
“크으윽!”
크레온이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여긴!”
주변을 둘러봤지만 보이는 건 모든 것이 새하얀 백색의 공간뿐이었다. 꼭 인간의 정신세계 같은 곳이었다.
“환영한다.”
등 뒤에서 들린 서늘한 목소리에 황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
조금 전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마구잡이로 풀어헤친 머리에 호랑이처럼 매서운 눈매를 가졌다. 풍겨 나오는 기세가 거칠기 그지없다.
“너, 너는….”
크레온이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남자가 나타난 것만으로 텅 비어 있던 공간이 꽉 찬 느낌을 받았다.
“으으!”
남자의 존재감보다 더 무서운 건 그에게서 느껴지는 초월적인 무력이었다. 백우진조차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말은 좀 이따가 하고 일단….”
흑암이 씩 웃으며 솥뚜껑 같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맞자.”
그대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뻐어어억!
흑암의 주먹에 맞은 크레온의 뿔이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끄어어… 캬악!”
흑암은 비명을 지르는 크레온의 턱을 올려쳐 입을 막아 버렸다.
“시끄러우니까 다 맞고 떠들어라.”
흑암이 크레온의 명치를 후려치며 말을 이었다.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거든. 맞을 시간은 충분해.”
**
백우진은 크레온을 흑암이 있는 정신세계로 보내놓고 마인들의 상태를 관찰했다.
명령자인 크레온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마인들은 건전지를 뺀 장난감처럼 멈춰 버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백은경이 기다시피 해서 백우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과 희망이 뒤섞여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크레온에 대해서? 아니면 저 사람들에 대해서?”
“둘 다.”
“크레온은 곧 죽을 거야. 놈의 지배 능력을 막은 방법은 비밀이고. 저 사람들은 나도 모르겠군.”
백우진은 덤덤한 눈으로 마인들을 보았다. 흑암이 크레온의 기운을 먹고 저들을 되돌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부터 실망할 필요도 없고,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모, 모르겠다고?”
“처음 있는 일이니, 나도 알 수가 없지.”
“아….”
백은경이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는 박소민을 보다가 다시 백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
“뭐?”
“우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이 빚은 어떻게 해서든 갚을게.”
“당연히 갚아야지.”
백우진이 어깨를 젖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은경을 구해 주는 것으로 모자라 원수까지 갚아 줬으니, 이 빚은 확실하게 받아 낼 생각이었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유라가 백은경 옆으로 다가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감사와 동경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자, 자네. 대체 그런 힘은 어떻게 쌓은 건가?”
채중현은 본인도 무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백우진의 무력에 경탄한 상태였다.
“믿지 못할 수준이었네. 어찌 그 나이에 그런 무력을….”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보신 뇌기는 비밀로 해 주세요.”
“아, 당연히 알고 있네. 나 입 무거워!”
“저, 저도 조용히 할게요!”
채중현은 믿으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고, 채소진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웅!
“도련님! 아이들은 전부 무사합니다!”
문주영은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활짝 웃었다. 다행히 다치거나, 마기에 씌인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고했다.”
백우진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할 때 허공에서 흑암이 솟아났다. 정신세계에 갔던 녀석이 돌아온 것이다.
‘어땠어?’
-존나게 팼다. 패고, 패고 또 팼어.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흑암은 스트레스를 모두 풀었는지, 목소리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그거 말고 저 사람들 되돌릴 수 있겠냐고.’
-되돌릴 수 있다. 놈을 패면서 물어봤거든. 아주 친절하게 말해 주더라고.
‘친절하게?’
-원래 매에는 장사가 없잖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저 사람들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다만 크레온의 마기가 퍼져 있는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날 저 녀석들에게 겨눠 봐라.
‘알겠어.’
백우진은 흑암을 들어 박소민을 겨누었다. 흑암은 흡수한 크레온의 마기를 운용하여 그녀의 몸에 자리 잡은 마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박소민의 이마 위에 솟아오른 뿔이 태양을 마주친 싸락눈처럼 녹아내렸다. 그녀의 잿빛 피부에 붉은 혈색이 돌고, 뻘겋던 눈동자가 흑색으로 돌아왔다.
“바, 박소민?”
“…아가씨.”
박소민이 무거운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마른 장작처럼 다 쉬어 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너!”
박소민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그대로 쓰러졌다. 백은경은 황급히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하아….”
백은경은 박소민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력이 모두 빠져서 실신한 상태였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쿠구구구!
백우진이 다른 사람들의 마기를 지우려 할 때 성 전체가 무너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진아. 저, 정말, 정말 너무….”
백은경은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백우진을 붙잡았다. 너무 고마워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이라면 목숨을 달라고 해도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단 비켜 봐.”
백우진은 뿔 달린 마인들을 향해 흑암을 내밀고 그의 기운을 넓게 퍼뜨렸다.
“시간이 얼마 없어. 빨리 제거하고 빠져나가야 해.”
**
“어떻게 되는 걸까요?”
조세형이 흔들리는 나선의 성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성 전체에서 흐르던 지독한 마기가 흩어지며 강한 진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끝난 것 같군.”
“예?”
“우진이가 마족을 잡아서 마기의 흐름이 끊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
백연휘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기의 크기가 너무도 거대했다. 저게 터진다면 안에 있을 사람들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앙!
모두가 걱정하고 있을 때 나선의 성의 중앙 부분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옆구리가 터진 성이 서쪽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어? 무너진다!”
“아, 아직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능력자들이 기울어지는 나선의 성을 보며 비명을 지를 때 성의 꼭대기에서 푸른 용오름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구!
깨져 나간 성의 구멍을 통해 푸른 갈기를 세운 호랑이, 은빛의 봉황이 동시에 솟구쳤다.
“저, 저기 있어요! 다 저기 있다구요!”
“음!”
조세형이 봉황과 호랑이의 등을 가리켰다. 백우진의 정령들은 백은경, 한유라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서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들이 탈출하자마자, 나선의 성이 지축을 뒤흔들며 무너져 내렸다.
크레온이 만들었던 마기의 불꽃은 마른 성냥에 붙은 불씨처럼 사그라졌다.
쿠웅!
가라앉은 마기의 불길 위로 봉황과 범이 내려섰다.
“아….”
조세형의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몸 성하게 돌아온 백은경과 한유라 그리고 아이들을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우진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땅에 박은 머리를 들어 올렸을 때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백우진과 눈을 마주쳤다.
“약속 지켰다.”
그 한마디에 참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얀 눈물이 그의 볼을 검게 물들인 마기의 흔적을 지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