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왕좌를 위한 준비
-으따! 좋구먼.
흑암은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새로 시작한 드라마의 다음 화 예고편을 보고 있었다. 검날을 살짝 떠는 것을 보면 꽤 재밌는 모양이다.
“재밌냐?”
-시작이 꽤 참신한데? 대작의 냄새가 솔솔 풍겨.
“어이구! 이제 감별사도 되셨어요?”
-나 정도로 드라마를 본 사람이면 딱 각이 보이지.
“똥 싸고 있네.”
백우진은 쯧쯧 혀를 차면서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려고? 아직 수련할 시간 아니잖아.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다지러.”
-너야말로 무슨 개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가보면 알아.”
백우진은 피식거리며 방을 나섰다. 흑암은 예고편이 다 안 끝났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백우진의 뒤에 붙었다.
백우진이 정문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팔자걸음으로 정원을 나오던 무영객과 마주쳤다.
“어? 검사님!”
무영객이 자신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녀석은 체력도 기력도 모두 회복해서 뺀질뺀질하게 보일 정도로 혈색이 좋았다.
“어디 가냐?”
“아는 사람이 술 한잔하자고 해서요. 오랜만에 배때기에 기름칠 좀 하려고 합니다.”
무영객은 만남이 기대되는 듯 히죽거렸다.
“아는 사람? 너 히키라 아는 사람 없잖아.”
-그러게. 다른 도둑놈이라도 만나는 건가?
“에이! 저도 사회적 동물이에요! 아는 사람 몇 명 정도는 있다구요!”
“누군데?”
“말씀드려도 모르실 텐데요.”
“그래도 말해 봐.”
백우진이 평소와 달리 꼬치꼬치 캐물었다. 무영객이 한동안 조용했기 때문에 곧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김범수라고 하는 놈인데,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김범수? 김범수라….”
김범수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일반인인가 보네.”
“아뇨. 암살자예요.”
-암살자 좋지. 어? 암살자?
“암살자라고?”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암살자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제 사부님하고, 그 친구 사부하고 친분이 있었거든요. 어쩌다 보니 저희도 말을 놓고 친해졌죠. 암살자긴 한데 착해요.”
-암살자가 착하다고? 진짜 저놈의 뇌 구조는….
“착한 암살자가 있을 리 없잖아.”
“일반인은 안 건드리거든요. 거기다 사람을 죽이지 않은 지 꽤 됐을 거예요. 누굴 추적한다고 하는데 걔가 컨셉을 이상하게 잡아서….”
“네 친구인 거 보니, 그 사람도 평범을 벗어났나 보네.”
“평범하고는 저보다도 거리가 멀죠. 그리고 친구까지는 아니고, 그냥 지인 정도예요.”
무영객은 고민하다가 끝내 지인이라는 답을 내놓으며 허허 웃었다.
“정말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사고 안 치고, 그냥 딱 술 한 잔만 걸치고 올 거니까.”
“알겠다. 돈은 있어?”
“검사님! 이러면 저 섭섭해요! 저 몰라요? 저 무영객이에요! 한국 제일의 의적 무영객!”
무영객은 자신의 칭호를 외치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하얀 검이 그려진 우아해 보이는 형태의 가죽 지갑이었다.
-저 지갑은….
“그 지갑 문주영 거잖아.”
“하하, 빌렸어요. 어? 온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무영객은 손을 흔들며 재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야 이 새끼야!”
뒤에서 문주영이 소리를 치며 뛰어오고 있었다. 무영객은 보법까지 쓰며 담벼락을 넘었다.
-크하하하!
“변하질 않네.”
백우진과 흑암은 무영객과 문주영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
백우진은 신검백가를 나오며 존재감을 지웠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떨쳐 낸 뒤 만변귀의 가면을 써서 외모를 변화시켰다.
백가와 한참 떨어진 성남으로 이동해서 지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예전 유진아가 블랙마켓 지부를 운영하던 바로 그 카페였다.
“이제 오냐.”
“좀 늦었는데?”
카페는 비어 있지 않았다. 이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남녀가 양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 둘이 왜 여기 있냐?
흑암은 정자세로 앉아 있는 백연휘와 의자에 걸터앉은 백은경을 보며 헛바람을 내뱉었다.
한곳에 모이기도 힘들고, 아직 루마니아에 있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이 낡은 카페에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왔으니까.’
백우진은 백연휘, 백은경과 눈을 마주치며 의자를 끌어와서 앉았다.
“미안. 중간에 누구를 좀 만나서.”
두 사람은 백우진의 대답에 그러려니 하며 앞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
“이런 곳을 다 아네.”
“예전 블랙마켓 지부야. 당시 지부장이었던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
“그래서 우릴 왜 부른 건데? 그것도 아버지 몰래 들어오라고 하면서까지.”
백은경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와 어투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이 달라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제 시작하려는 건가?”
백연휘는 어느 정도 상황을 예상했는지 덤덤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매만졌다.
“맞아. 시작할 때가 됐지. 누나는 모를 거 같으니, 처음부터 설명할게. 내년 1월 1일. 내가 신검백가의 후계자가 되는 바로 그날. 신검백가는 둘로 갈라질 거야.”
“음….”
“뭐?”
백연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백은경은 테이블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갈라짐은 일 년 후에 끝나게 될 거야.”
“그, 그게 무슨 소리지?”
“그날 후계자의 위를 받고, 아버지가 소원을 말하라고 할 때 그가 생각했던 소원과는 전혀 다른 소원을 빌 거니까.”
“전혀 다른 소원이라면….”
“일 년 뒤 신검백가를 걸고 결투를 하자 말할 거야.”
백우진은 1월 1일 자신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풀어놓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렇게 가는군.
“사실 그것 외에는 아버지의 왕좌를 뺏을 방법이 없지.”
“허, 너, 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대체 언제부터!”
백연휘와 달리, 백은경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눈을 부릅뜬 채 백우진을 쏘아보았다.
“처음부터.”
“그래서 그렇게 목숨을 걸어 가면서 싸운 거야?”
백은경이 혀를 내둘렀다. 백우진이 가진 성장의 동력은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왕좌를 뺏겠다는 확실한 목표와 지독한 독기를 마음에 담아 가며 그런 무지막지한 성장을 이뤄 낸 것이었다.
“근데 고작 1년으로 아버지를 꺾을 자신이 있어? 아직 차이가 날 텐데?”
“자신이 없어도 해야지. 1년 이상이 되어 버리면 이 계획 자체가 무너져.”
백우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너진다니?
‘길어지면 아버지가 이 소원 자체를 덮어 버릴 가능성이 있거든.’
아버지에게 1년 이상의 시간을 주게 되면 이 소원 자체를 무효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런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권은 1년뿐이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뭐지?”
백연휘는 백우진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었기에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물었다.
“형하고 누나는 신검백가의 검사들을 끌어와 줘.”
“끌어오라고?”
“신검백가는 하나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둘로 나뉘어 있어. 내 의지를 따르려는 검사들과 아버지의 공포에 벗어나지 못한 검사들로.”
“음, 그렇지.”
백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0 대 10의 상황이었지만 백우진이 많은 활약을 해 준 덕분에 4 대 6 정도까지는 따라왔다.
“나는 움직일 수 없어. 아버지의 눈이 사방에 깔려 있으니까. 하지만 형과 누나는 아버지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난 상태잖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중립에 선 검사들을 우리 쪽으로 데리고 오라는 말이지?”
“맞아.”
백은경의 말에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이 없는 왕은 가치가 없다.
자신을 따르는 검사들을 많이 확보해야 그날 발언이 가치를 가지게 된다.
“형은 외부에 있는 백가의 검사들을 포섭하고, 누나는 내부에서 움직여 줘.”
“확실히 그렇게 움직이는 게 좋겠군. 알겠다.”
백연휘는 커피를 털어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여러 궁리를 했나 보네.”
“유일한 방법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좋아. 나도 네 말대로 움직일게. 평생 갚아도 모자랄 빚이 있으니.”
백은경은 다리를 고쳐 앉으며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빛 속엔 백우진에 대한 감탄과 대견함, 고마움이 어우러져 있었다.
“둘 다 고마워.”
“그런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그래. 형제끼리….”
백연휘와 백은경은 백우진의 인사에 손을 저었다.
“음, 형제끼리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영 어색하네.”
백은경이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입으로 형제라는 단어를 말하려니, 어색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어쩔 수 없지. 그동안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았으니까.”
백연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귀밑머리를 긁적이는 것을 보니, 그 역시 조금 민망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앞으로 지금까지 못 한 것들을 2배로 하고 살면 되잖아.”
백우진은 여유롭게 웃었다. 모두가 민망해하고 어색해했지만, 그간 바랐던 진정한 형제간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 같아 나름 뿌듯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모은다고 다 될까? 조금 부족할 거 같은데. 아버지가 다 무시하고 파토를 내면 어떻게 해?”
“맞아.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래서 비밀 무기를 준비해야 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은경의 걱정은 타당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다 모아도 백천화가 무시할 가능성도 있었다.
“비밀 무기?”
“아버지가 허튼소리를 하지 못하게 지켜봐 줄 사람이 필요해. 그 사람은 내가 부를 테니, 두 사람은 말한 대로 움직여 줘.”
“우진아. 해가 뜬다고 무조건 날이 밝지만은 않아. 네가 잘 하겠지만, 항상 주의하며 움직여야 한다.”
백우진은 백연휘의 따스한 조언을 가슴에 새기며 웃었다.
“명심할게.”
**
후계자 선정까지 딱 한 달 남은 12월 1일, 백우진은 만변귀의 가면을 착용한 채로 패력적가의 동쪽 담벼락으로 향했다.
담벼락 아래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적연화가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백우진은 바꾼 얼굴과 달리 목소리 그대로 적연화의 앞에 내려섰다.
“어, 그 얼굴….”
“말했잖아. 바꿔서 올 거라고.”
“그런 능력도 있는 거예요?”
적연화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백우진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아니, 이건 아이템이야. 일단 들어가자.”
“꼭 자기 집처럼 말하시네요?”
“변장을 괜히 한 건 아니니까. 들키면 안 되거든.”
“에휴, 알겠어요.”
적연화는 한숨을 내쉬면서 백우진을 데리고 벽의 중간에 있는 검은 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녀는 앞서가면서도 계속해서 백우진을 힐끔거렸다.
“들른다고 해 놓고 되게 늦게 오는 거 아니에요?”
“좀 바빴거든. 알잖아.”
“여러 사고를 치고 다니신 건 알죠.”
“사고를 친 게 아니라 사고를 해결했지.”
“어쨌든요.”
적연화는 백우진의 대답을 들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아직도 그대로네.’
외부에서는 제왕 소리를 듣는 최고의 무인이지만, 말하는 걸 보면 처음 덩굴 두더지 던전에서 만났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가주님은?”
“기다리고 계세요.”
“그럼 잠시만.”
백우진은 걸음을 멈추고 만변귀의 가면을 벗었다. 천무지체를 얻고, 라사둠의 오러를 익히며 꽃을 피운 미안이 화사한 빛과 함께 드러났다.
“으음….”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시선을 끌어모으는 출중한 외모에 적연화가 잠시 말을 잊었다. 그의 외모는 그 무력만큼이나 발전한 것 같았다.
“뭐 해? 안 가?”
“에휴….”
적연화는 짜증이 확 올라온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앞으로 걸었다.
“빨리 와요!”
백우진은 짜증을 내는 적연화의 등을 보며 피식거렸다. 그녀를 따라 둥글게 솟아오른 중앙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너희 가주전이랑 많이 다른데?
‘그러게.’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가의 가주전은 백가와 완전히 달랐다. 넓지도 않았고, 적막한 냉기가 흐르지도 않았다.
아늑했으며, 사람들의 때가 탄 듯한 장소였다. 곳곳에 적연화와 적경훈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평범한 가장의 방을 보는 듯했다.
“오랜만이구나.”
우측 벽면에서 창밖을 보고 있던 남자가 뒤를 돌았다.
“음….”
큰 키. 거대한 기운을 인간의 한 몸에 압축한 듯 꽉 조여진 기파가 흘렀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단단한 철탑을 보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바로 패력적가의 가주 권황 적위진이었다. 대연문에서 만난 이후로 그 역시 성장했는지 느껴지는 기파가 예상을 초월했다.
-네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저 남자도 성장했다. 더욱 단단하고 굳건해졌어.
‘괜히 라이벌이 아니네.’
아버지가 성장했듯이 적위진도 한 걸음 더 위로 올라간 모양이다. 괜히 평생을 겨뤄 온 숙적이 아니었다.
“신검백가의 백우진이 패력적가의 하늘을 뵙습니다.”
“초면도 아닌데, 그런 낯뜨거운 인사는 그만두거라.”
백우진은 극진한 예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적위진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설마 내 딸을 달라고 온 건 아니겠지?”
“아, 아빠!”
적연화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적위진에게 달려들었다.
“크하하하! 농담이다.”
“이익! 진짜!”
“이럴 때 아니면 다 큰 딸을 또 언제 안아 보겠어.”
적위진은 달려오는 적연화를 꽉 끌어안고서 놓아 주었다.
-느껴지는 기파와 다르게 가벼운 성격이군. 저런 성격이라 강해질 수 있었던 건가?
‘전에도 말했잖아. 저 사람은 그냥 딸 바보야.’
백우진은 적가 부녀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적위진은 한국 사대 길드인 패력적가의 수장이자 세계에서도 명성 높은 권황이지만, 가족과 길드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백천화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쉽지만 그건 아닙니다.”
“더 마음에 드는데? 그럼 무슨 일이지? 빨리 말하거라. 지금 기분이 좋아서 웬만한 건 들어 줄 수 있거든.”
적위진이 적연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반대로 적연화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1월 1일에 저희 가문에서 행사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신정이잖아.”
“그게 아니라, 저희 가문에서….”
“후후, 농담이네. 자네가 백가의 후계자가 되는 날 아닌가.”
적우진이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맞습니다. 그날 저희 가문에 가주님이 와 주셨으면 합니다.”
“뭐?”
“어? 뭐, 뭐요?”
적연화와 적위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벙찐 얼굴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날 와 달라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제대로 들으신 거 맞습니다.”
“내가 자네 아버지와 숙적 관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지 않습니까.”
백우진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쁘지 않지. 자네가 내 자식들을 살려 줬으니까. 다만 그 빚은 이제 다 갚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저도 권황님과 권룡 선배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서로의 빚은 사라졌죠. 그래서 이번엔 부탁을 드리려고 찾아온 겁니다.”
“노리는 게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백우진은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팔불출을 왜 데리고 가려는 거냐?
‘아버지의 숙적이니까.’
-응?
‘아버지는 웬만해서는 자존심보다도 실속을 챙길 사람이야. 다만 그런 사람도 평생을 싸워 온 숙적 앞이라면 자존심을 챙기지 않을 수가 없겠지.’
백우진은 턱을 긁적이는 적위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백천화가 스스로 뱉은 말을 어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저 사람이 꼭 필요했다.
“그런 소리 들어봤나? 늑대를 몰아내기 위해서 호랑이를 부른다는 말. 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백가를 친다면 어쩔 거지?”
“권황께서는 제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대연문과의 전쟁도 불사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믿지 않을 수가 없죠. 거기다 전 불러 온 호랑이에게 당할 만큼 무른 사람이 아닙니다.”
“크하하하하!”
적위진이 광소를 터트렸다. 정말 즐거운지 테이블을 내리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주 좋아. 마음에 들어.”
적위진은 큭큭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방을 나서며 뒤를 돌았다.
“따라오너라. 내 시험에 합격하면 네 부탁을 들어주마.”
**
백우진은 적위진을 따라 그의 개인 연무장에 섰다.
넓은 연무장에는 백우진과 적위진, 그리고 옆으로 빠져 있는 적연화 세 명이 전부였다.
“나는 말이야. 말보다는 주먹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커 왔지.”
“알고 있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절대자 중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적위진이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지는 대충 예상이 가지만, 네가 백천화의 기운을 견딜 능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적위진이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그의 전신에서 세상을 짓누를 무시무시한 패기가 치솟았다.
쿠구구구!
연무장 전체를 뒤덮은 모래가 치솟으며 지축을 흔들었고, 하늘이 무너질 듯 내려앉았다.
중력이 고장 난 것처럼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든 막대한 기파가 사위로 퍼져나갔다.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말은 들었다. 네가 정말 나와 같은 위치에 섰다면 그 부탁을 들어주마.”
적위진이 뒷짐을 풀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동급의 상대를 상대하듯 선수의 양보조차 없었다.
“네 무(武)를 보여라.”